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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서해안 따라 인연 따라 영광 법성포 가던 길, 미당 서정주 선생 생가,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손화중 선생 피체지, 인촌 김성수 선생 생가 들러
풍수와 사람
 장팔현 칼럼니스트 (발행일: 2017/02/10 19:31:55)

[탐방] 서해안 따라 인연 따라 영광 법성포 가던 길, 미당 서정주 선생 생가,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손화중 선생 피체지, 인촌 김성수 선생 생가 들러
풍수와 사람
-SPn 서울포스트, 장팔현 칼럼니스트


↑ 미당 서정주 시인 생가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장팔현

봄바람도 불어오고 마음은 싱숭생숭 하고 휑하니 어디든 떠나고픈 날이다. 봄 소식에 들뜬 기분으로 오늘은 조기가 많이 나는 법성포를 향해 달린다.

서해 고속도로 따라 내려가다 내비게이션 아가씨의 안내대로 따라가지 않고 선운사IC에서 빠져나왔다. 영광에서 내려 가는 것보다 거리도 가깝고 주변 풍광도 구경할 생각이었다.

가끔 계획에서 벗어나 시골길 달리는 것도 재미있다. 고속도로에서 내려 왕복 4차선을 달리다 예의 2차선 시골길로 접어든다. 선운사 가는 길도 보이고 주변을 보니 풍천장어를 간판으로 단 식당들이 눈에 많이 띤다. 역시 바닷가 답다. 문득 장소를 보니 법성포까지는 37킬로 정도 되는 전북 고창군 부안면 이란다.

법성포를 30여분이면 달릴 수 있는 거리에 미당 서정주 시인 생가(전북 고창군 부안면)란 간판이 보인다. 이거 웬 횡재냐? 이번 기회 아니면 언제 이곳을 또 와볼 것인가? 란 생각이 들어 점심 때 법성포에서 만나기로한 약속도 잊은채 일단 미당선생 생가로 방향을 틀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은 선운리에 미당 서정주 선생의 작품들을 모신 기념관이 나오고 생가가 나온다. 일단 생가부터 들려보기로 했다. 기념관에서 수백미터 우측으로 생가가 있는데 아담한 대지 위에 우물이 있고 우물가엔 커다란 참죽나무가 있다. 그리고 이곳이 길지임을 나타내듯 까치집이 있다.참으로 정겨운 광경으로 옛 시골풍경이 생각났다.필자가 어렸을 때도 초가집에 참죽나무가 있어 어린 잎을 따 나물로 만들어 먹거나 튀겨 먹었던 일이 있었다. 한참을 옛 생각에 잠겨있다가 미당선생의 대표 시인 '국화꽃 옆에서'를 읊조려 본다.

↑ 미당 서정주 시인 문학기념관과 수월봉

뒤돌아 오면서 기념관에 들러 미당 선생의 업적을 둘러 본다. 주변 산을 보니 동쪽으로 소요산이 막아섰고 그 옆에 붓처럼 뾰족한 문필봉 형상의 산이 있었다. 역시 문필봉 형상의 기를 받아 미당 같은 시인이 탄생했던 것 같다. 사람은 소우주이자 자연의 일부로 풍수지리설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뾰족한 문필봉 형태의 산과 명당 터의 생가에서 미당선생은 한송이 국화꽃 피우듯 엄중한 일제시대에 문학을 꽃 피웠다.아쉬운 점은 미당선생이 친일 행위를 했다는 비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2킬로미터 정도 달리다 보니 역사적 인물이 또 들렸다 가라고 필자의 팔을 잡아끈다. 동학농민운동의 리더 중 한 사람인 손화중선생(전북 정읍시)이 혁명 실패 후 체포된 피체지였다. 동학혁명이 실패 후 도피 중 이곳 봉암리 소재 재실을 지키던 사람이 밀고하는 바람에 체포당했다 한다. 현재도 재실이 있고 이를 관리하는 민가가 같이 붙어있다.

↑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손화중 선생 피체지 알림

↑ 손화중 선생 피체 현장

손화중 피체지에서 1.3킬로미터 정도 바다 쪽으로 달려가 보니 인촌 김성수선생의 생가가 나타났다. 인촌은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마을 이름은 봉암리로 바뀌었다.

하여튼 인촌은 조선말에 태어난 인물로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인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위인들의 흔적을 4킬로미터 이내에서 세 분이나 만나 볼 수 있었다.인촌 김성수 선생은 고려대학교와 동아일보의 설립자요 제2대 부통령을 지낸 인물로 해방 후 대한민국의 교육,언론,정치 분야에 있어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러나 아무리 큰 업적을 남겼다 해도 그의 친일 행위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옥의 흠결을 보는 듯 했다.

↑ 인촌 김성수 선생 생가 알림

↑ 인촌 김성수 선생 생가

미당 서정주와 인촌 김성수 생가(전북 고창군 부안면)는 길지(吉地)임엔 틀림없어 보였다. 두 곳 모두에는 까치집이 있는데 참 신기했다. 풍수지리학에서 까치는 기맥이 흐르는 나무 위에 집을 짓는 습성이 있다한다. 그러한 좋은 땅위에서 태어나 이름을 크게 날린 것 같다. 친일이라는 결점을 빼고는.

어쨌든 굴비와 꽃게무침으로 유명한 법성포 가는 도중에 뜬금없이 들린 고창군 부안면에서 나라가 혼란할 시 각자가 대처하는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손화중 선생은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에 분노하고 일본의 국권 침탈 야욕에 맞서 조국을 구하기 위해 일신을 바쳤다. 반면 미당은 뛰어난 문학성을 이용해 친일을 함으로써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인촌도 정치, 사회, 경제 등 다양한 방면에서 엄청난 업적을 남겼음에도 친일 행위로 말미암아 뒤끝이 상쾌하지 않다.

이처럼 조선말과 일제시대를 거쳐온 세분의 삶을 통해 교훈을 얻고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는 최고위층의 무능과 파렴치한 통치행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장팔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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