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포스트 권종상 자유기고가=] 애향심, 사전적 의미로는 '고향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겠으나, 저같은 경우는 이걸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싶을 때가 많습니다. 우선 저는 본적이 서울 정동입니다. 덕수궁 돌담길이 끝나는 곳엔 지금은 '구세군 서울 제일교회' 가 된, 구세군 서대문 영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이곳은 구세군의 신학교 격인 '사관학교' 가 있었습니다. 조부께서는 구세군 사관학교의 교장을 오랫동안 역임하셨고, 그 사택이 제 고향인 셈입니다.
그러나 서울이란 곳을 고향으로 갖는다는 것은 참 멋대가리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생긴 것은 어디 강원도 감자바우가 고향이어야 딱 맞을 것 같은 놈이 "아, 제 고향은 원래 서울입니다"라고 말하는 거, 별로 안 어울립니다. 그러나 어쩝니까. 저는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절반 앞부분의 대부분을 사대문 안쪽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고향'이란 단어를 생각할 때는 바로 그곳, 누하동과 효자동 일대를 생각합니다. 빠리미술학원 유치부-청운국민학교-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를 내내 걸어다녔고 내 어린 자아가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한 그 동네, 지금은 '서촌'이라는, 뭐 좀 있어보이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그 동네가 내겐 고향으로 느껴집니다.
아버지의 이민 결정으로 이뤄진 급작스런 도미, 그리고 나서 나는 분명히 고향을 잃은 슬픔 같은 것에 젖어 있었습니다. 한 3년 정도? 그런데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며 헤맸지만, 그 동안에 저는 이곳에서 내게 힘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자신감없고 늘 쪼그라들었던 그 초창기 이민생활을 버티게 해 준 것은 바로 그 친구들이었고, 그들 덕분에 저는 그 전까지와는 다른 타입의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조금은 더 낙관적이 됐고, 조금은 더 뻔뻔해지기도 했고, 내 권리를 주장할줄도 알게 되고.
그런 식으로 내 자신의 모습을 나름 긍정적으로 고쳐갈 즈음에 아내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시애틀을 처음 여행하는 여행객으로 왔고, 나는 우연히 그녀 조카의 친구로서 내 친구와 친구 이모의 가이드를 맡았던 것인데, 그것이 결혼의 연으로까지 이어질줄은 몰랐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3년 동안 미국의 동부 끝과 서부 끝에 살면서 전화비 엄청 나오는 비싼 연애를 했고, 그녀는 내 아내가 되어 20년째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두 명의 징그런 사내놈들과 살고 있지요. 징그럽고 든든하고. 하하.
그래서, 나에겐 고향이 다시 생겼습니다. 내 가족이 일궈진 곳, 그곳이 고향입니다. 우리 부모님도 계시고, 내가 누군가의 부모가 된 곳. 그래서 시애틀은 내 고향입니다. 1990년부터 이 서북미에서 살았으니, 미국에서 산 시간은 만으로 27년이 다 되어갑니다. 내가 만 스물 한 살이 되기 전에 한국을 떠났으니 정말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산 겁니다.
그런데 - 죄송합니다. 이야기의 본론은 지금부터입니다 - 내 이 새로운 고향은 나를 참 자랑스럽게 합니다. 요 며칠동안 시애틀에서 일어난 일들은 제가 이곳에 산다는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만들어줬습니다.
이곳의 로컬 인터넷 신문 시애틀 N에 따르면, 어제 시애틀 연방판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내렸던 행정명령은 일단 무효화해 미 전국적으로 효력이 중단되면서 입국이 금지된 7개국 여행객 입국이 허용됐습니다.
시애틀의 제임스 로바르트 연방판사는 지난 3일 열린 행정명령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 재판에서 밥 퍼거슨 워싱턴주 법무장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밥 퍼거슨 법무장관은 "오늘 헌법이 승리했다"며 "대통령을 포함한 그 어느 누구도 법위에 존재하지 못한다"고 기뻐했습니다. 제이 인슬리 주지사도 트위터를 통해 "워싱턴주에게 큰 승리"라고 말했습니다.
로바르트 판사는 "워싱턴주는 이 소송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즉각적인 위협을 초래하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했다"고 판결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영구적인 효력 정지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영구정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반이민 행정명령' 위헌 소송에서 승소해야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판결을 내린 로바르트 판사가 지난 2003년 공화당 출신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욕을 먹었던 '또라이' 부시가 임명했던 강경 우파 범조계 인사들조차도 이번 행정조치는 미국이 신봉하는 가치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이번 판결로 인해 해외 여행이 금지된 이란ㆍ이라크ㆍ리비아ㆍ소말리아ㆍ수단ㆍ시리아ㆍ예멘 등 7개국 국민들은 미국 입국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시애틀 지역의 초선 프라밀라 자야팔 연방하원의원은 이 반트럼프 운동의 선두에 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에디 머리 시애틀 시장은 이 행정명령이 처음 발동됐을 때 "시애틀 시는 연방정부의 지원이 끊기는 한이 있더라도 서류미비 이민자들을 받아들일 성역이 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밝힘으로서 연방정부의 뜻에 맞설 것임을 분명히 한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제이 인슬리 워싱턴 주지사는 밥 퍼거슨 주 법무부장관을 대리로 내세워 연방정부의 행정명령을 일시적으로나마 무력화시켜버린 겁니다.
내가 뼈를 묻어야 할 제 2의 고향, 이곳의 정서가 이런 것이라면, 그래서 내가 이곳에서 사는 것이 자랑스러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애향심'을 심어주는 데 하나의 비중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지요. 함께 이곳에서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들, 그것이 저를 자랑스럽게 해 주는 것이니.
미국에서 살면서 이곳에서 애향심을 갖는 것이 이곳을 연고로 한 스포츠 팀 - 이곳엔 야구팀으로는 매리너스가, 축구 팀으로는 사운더스가, 풋볼 팀으로는 시혹스가 있고 여자농구 팀으로 스톰스 등이 있습니다. 대학 풋볼팀으로 유명한 허스키도 있고 - 을 사랑하게 되는 것과, 뭔가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자랑거리들을 늘어놓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이곳의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그 자유롭고 진보적인 정신이 좋아서 애향심을 갖게 되는 것은, 여기에 살고 있는 나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뜻하지 않게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게 된 사람에겐 축복과도 같은 일이지요.
아, 굳이 시애틀 자랑을 하나 더 하자면, 이곳이 예향이라는 겁니다. 1960년대엔 지미 헨드릭스의 전위적 블루스가, 이소룡의 흔적들이, 그리고 그런지 락의 대표주자인 커트 코베인의 너바나, 그리고 사운드가든과 펄 잼의 음악들이... 도시 곳곳에 묻어있는 예술의 흔적들, 그리고 음악 뿐 아니라 문학과 미술, 건축 등 도시 구석구석에서 묻어나오는 그 향기들, 1가의 리틀 이태리, 그리고 원주민들의 흔적, 차이나타운과 일본타운, 월남타운, 필리핀 타운 등이 몰려 있는 곳들에서 흘러나오는 이국적이면서도 정겨운 음식 냄새들, 이런 것들이 모두 뭉뚱그려지면서도 개성있게 빚어진 '시애틀 문화'는 늘 나를 가슴뛰게 한단 말입니다. 그것들이 시애틀을 지금의 진보적이고 개성있는 도시로 만들어 냈으니까요.
시애틀에서...
▣ 재미교포, 자유기고가
(권종상)
[NEWStory makes History - 서울포스트.seoulpost.co.kr]
'서울포스트' 태그와 함께 (상업목적 외) 전재·복사·배포 허용 (*포털
다음 에 뉴스 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