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지리산 종주] 고원을 걷다(2) - 산꾼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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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주능선 |
니가 지리산을 알어?
희한하다. 일어나보니 어느구석 하나 아픈데 없이 말짱하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무려 눈길 23km를 걸어왔으면 삭신이 욱신거려야 맞다. 엊저녁만 해도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술이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만큼 고단했다. 게다가 씻지도 못하고 두어평 공간에서 네 명이 새우잠을 자야할 만큼 잠자리도 불편하지 않았던가.
하룻밤 사이에 몸이 이만큼 거뜬해진 원인에 대해 지리산의 영험한 기운말고 무엇을 가져다 댈것인가. 이래서 예나 지금이나 죽을병 걸린 사람이나, 마음이 다친 사람, 세상이 버린 사람, 세상을 버린 사람들이 본능에 이끌려 지리산으로 찾아들지 않았나 싶다.
지리산을 좋아는 하지만, 나는 아직 지리산에 대해서 단, 1%도 알지 못한다. 이번 처럼 산등성이를 걸어본 정도는 안면을 튼 사람과 통성명을 하고 악수를 나눈것에 불과하다. 사람에 대해서도 술도 마시고, 치고 받고 싸우기도 하고, 밤 새워가며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정도가 되어야 고작 5%를 알까 말까인데, 하물며 이 드넓은 산이랴.
지리산에 대해서 얼마나 더 알 수가 있을까. 이번처럼 기회가 있을때마다 무조건 들이 대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것 같다.
사진을 생각한다면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
새벽 5시 무렵이 되자 일순간에 대피소가 수선스럽다. 추운 날씨에 편안한 구석이라고는 무엇하나도 없는데, 이 개고생을 자처하면서도 누구하나 얼굴을 찡그리거나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날 어렵사리 대피소를 예약해서 하룻밤을 묵었다는 그것 만 보더라도 죄다 산에 미친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천왕봉을 거쳐 곧장 중산리로 내려갈 계획이라서 오늘은 굳이 산행을 서둘러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느긋하게 조찬을 즐기고 오전 7시경 세석평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촛대봉에 올랐다. 그때까지도 지리산은 아직 미명(未明)이다. 동화책에 등장하는 산속의 외딴집처럼, 세석 대피소의 불빛이 유난히 포근해 보인다.
날씨는 어제 보다 훨씬 더 춥다. 바람도 제법 있어 체감온도로 따지면 족히 영하 20도는 될 것이다. 우리는 바람을 피해서 각자 자리를 잡고 일출을 기다렸다. 지리산에 두툼하게 쌓여 있던 어둠이 한 켜씩 벗겨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이윽고 지리산 연봉들이 동쪽과 남쪽에서 그리고 서쪽에서 불끈 불끈 솟아나면서 천지창조의 순간 같은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시간에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빛이 부족한 여명기에 저 신비스러운 천지창조의 순간들을 오롯하게 카메라에 담으려면 삼각대는 필수다. 날씨가 춥고 바람이 불어서 월출산에서 시도했던 돌각대와 배낭위에 올려 찍는 배각대는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ISO 잔뜩 올려서 막무가네로 셔터를 눌렀다. 이번에는 35미리 단렌즈만 달랑 챙겨와서 광각도 너무나 아쉬웠다. 지금 만나는 지리산 촛대봉의 아침은 지난 가을 월출산에서 만난 아침 그 이상의 감동과 상징성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에 준비만 착실하게 갖추었다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기왕에
일반적으로 미명과 여명 그리고 박명의 개념에 대해서 헛갈릴 수 있다. 기상청 홈페이지에서도 일출시간과 더불어 박명시간을 함께 발표하기 때문에 알아두면, 일출여행이나 출사여행때 유용하다.
미명과 여명의 차이
-미명(未明): 어슴프레한 어둠이 남아있는 새벽녁 이지만 아직 날이 밝지 않을 무렵, 해뜨기 약 90분 전
-여명(黎明): 사물의 형상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밝아오는 상태에서 일출무렵까지, 먼동이 틀 무렵, 90분에서 일출때까지.
-박명(twilight): 일출 전, 일몰 후 하늘이 희미하게 빛나는 현상으로 지평선 아래쪽에 있는 햇빛이 상층대기에 반사, 산란하며 붉게 보인다. 태양과 지평선 사이의 각도가 벌어질 수 록 어두어 지는데 밝기에 따라 상용박명, 항해박명, 천문박명으로 구분한다.
-상용박명: 태양이 지평선(수평선)아래 6도 정도에 위치해 있는 상태로서 일출몰 전 후 약 30분 이내의 상태를 말한다. 외부 조명이 없어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태이며 이때, 가장 분위기있는 사진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항해박명: 태양이 수평선 아래 약 6~12도에 위치해 있고 일출 30분~1시간 사이의 미명에서 여명으로 넘어가는 시간이다. 이때는 하늘이 어두워서 별도 보이고, 수평선도 분간 할 수 있어 , 위성항법 장비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외항선 항해사나 대륙을 횡단하는 비행기 조종사들은 이때를 기다려 육분의를 이용하여 별과 수평선 사이의 각도를 재서, 선박이나 항공기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천문박명: 태양이 수평선 아래 12~18도 사이에 있을 때이며 하늘에 별은 총총하나 어슴프레한 빛이 느껴지는 상태를 말한다.
제대로된 일출을 보려면 상용박명 시간에 맞추어 찾아가야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일출 이전 새벽을 일반적으로는 미명과 여명으로 구분하고 좀더 전문적으로는, 박명의 상태로 구분한다. 산에서 맞이하는 일출도 감격스럽지만, 대지가 시나브로 제 모습을 찾아가는 모습도 대단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래서 딱 일출 시간에 맞추기 보다는 위에서 설명한 상용박명 시점에 맞추어 찾아가서 빛의 미세한 변화와 함께 일출이라는 클라이막스까지 음미하는 것이 제대로된 일출감상법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만약 일출 시간이 7시 40분이라면 7시나 7시 10분 부터는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 겨울철에 그것도 기온이 낮은 산정에서 꼼짝 않고 30분넘게 버티기 위해서는, 완벽한 방한복을 착용하는 것은 물론 홧팩과 뜨거운 물을 준비하는 것은 필수다.
운해는 출렁이고 산은 불끈 솟는다
천상의 화공이 실수로 화선지위에 주황빛 물감을 툭 떨어뜨렸을까. 손톱에 물들인 봉숭아꽃물 같기도 하고 황도 복숭아 속살 같기도한 매혹적인 주황빛이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남해 바다에 이르는 동녁 하늘 위로 빠르게 번지더니, 이내 그 서기가 온 하늘을 덮는다.
옅은 회색조로 출렁이는 운해위를 떠다니던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일어나 불끈거리며 솟구친다. 강물은 밝아오는 하늘을 담고 유유히 대지를 적시며 흐르고, 바라보는 이의 가슴엔 불이 붙었다.
지평선을 연무가 가로막고 있어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일출, 그 정도로 쨍하고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시정도 좋았고, 옅은 운해가 쫘악 깔려있는 산아래 풍경도 볼만했으니, 내 속으로는 그 이상이다. 여기 촛대봉( 1703미터 ) 조망이 천왕봉( 1954미터 ) 보다야 다소 떨어지겠지만 동서남북 어디로든 일망무제로 열려 있어 지리산 전역을 포함해서 전라남도, 경상남도, 전라북도 일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리산에서도 손꼽히는 일출명소라 할 수 있겠다.
'이리오너라 내가 여기 있다. ’ 비록 마음속이지만 산 아래 저 천하를 향해 사자후를 토하는 이 순간 이 세상 어느 왕후 장상이 부러우랴.
풍류산행이란, 멈추고, 보고, 느끼면서 감동을 이어가는 것
해가 남아 있을때 세석 대피소에 도착하기 위해서 서둘렀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급할 것 하나도 없어 그야말로 유유자적 이다. 더구나 불과 몇 달전에 걸었던 길이라서 한결 더 여유롭다. 지난번 연하선경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온갖 들꽃으로 천상의 화원을 보여 주었다면 겨울 연하선경은 스산하고 삭막하지만 , 그 대신 능선 양옆으로 전망이 광활하게 열려있어 저 산아래 펼쳐진 남녁땅을 바라볼 수 가 있는 이길은 여전히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눈이 펑펑 쏟아진다면 활엽수림과 바위와 간간히 서있는 침엽수들이 어울려 알프스와 다름없는 환상적인 설경이 펼쳐질 것이다. 그때는 연하선경을 연하설경이라 불러야 되지않을까 싶다.
거리와 시간이 정해진 종주산행이라 하여 굳이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정 안되면 거리를 줄이거나 하룻밤을 더 묵어가면 그만이다. 연하선경처럼 좋은 길에선 앞만 보고 급하게 걷는 것 보다는 느릿느릿 경치도 구경하고, 콧노래도 부르고 동행과 재미난 얘기도 나누고, 핸드폰으로 인증샷을 찍어서 산아래 친구들에게 보내주기도 해야 제격이다. 그것이 이런 산행을 하는 재미고 멋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것을 풍류산행이라 부른다. 풍류산행의 요체는 멈추고, 보고, 느끼면서, 감동을 이어가는 산행이다. 풍류산행에 제대로 빠져들면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 그런 상태는 우선 건강에도 큰 도움을 준다. 그렇게 해서 분비된 세르토닌으로 암도 물리칠 수 있다지 않던가.
그리고 산행에도 멋이라는 것이 있다. 그 멋을 즐길 수 있어야 풍류가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유롭게 걷고 마음의 여백을 만드는 법부터 익혀야 한다. 그래서 올해 내 산행컨셉도 풍류산행이다.
10개의 고원 트레킹 코스에 도전하는 것이 2015년 산행 목표
장터목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천왕봉을 향해 출발했다. 1.4km만 걸어가면 내 산행기록에 그동안 미완으로 남아있던 지리산 종주라는 새로운 기록 하나를 얻게 설렘에 제석봉을 오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까지 100대 명산이나 백두대간 종주산행 같은 이른바 기록산행을 다소 경원시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냥 산을 즐기면 되지 굳이 다소 타당성이 결여되어 보이는 의미까지 부여해 가면서 그것을 쫓아 다닌다는 것이 좀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은 내 무지에서 비롯된 유치한 생각임을 깨달았다. 그런 기록산행에 도전하고 있는 이웃들의 포스팅을 드려다보고 얘기를 들어보면 기록에 대한 성취감은 물론 산과 인생을 알아가기위한 그 이상의 가치를 얻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두대간을 단독 무보급으로 마친 한 지인의 말을 빌리면, 우리나라 땅이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이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내 한계와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잘 살아갈 자신감과 용기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내 경우도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만 하더라도,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들고 별다른 산행계획이나 코스에 대한 지식 없이 그냥 집을 나서서 발길 닿는데로, 운전대 돌아가는데로 다니거나, 거기가 어딘줄도 모르고 누군가의 꽁무니를 따라다니기 바뻣다. 만약 어떤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런 산행을 계속 답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심사숙고해서 코스를 정하고, 첫걸음이라면 철저한 루트파인딩을 통해 어디가 힘들고, 내 체력으로 혹은 동행자들의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곳인지 부터 파악한다. 그것이 10년쯤 쌓이다 보니 지난날 무작정 산행에 비해 체력도 엄청 좋아졌고, 산행기술에 있어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자평한다.
요즘 100대 명산이나 백두대간 종주에 부쩍 관심이 가는 것을 것을 보니, 이제 내 산행 패턴도 한 단계 스킵하여 업그레이드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싶다. 그렇다고 곧장 100대 명산이나 백두대간을 따라하기 보다는, 내게 맞는 산행 방식을 개발하여 올해는 우선 그것 부터 도전해보려 한다.
지리산 주능선에 버금가는 고원을 걷는 트레킹 코스 10개를 골라서 그곳을 걸어볼 계획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야할 것인지를 꾸준히 드려다 보는 중이다. 우선은 이번 지리산 종주에 이어 남덕유에서 시작하여 향적봉에 이르는 겨울 덕유산과 만복대에서 바래봉에 이르는 지리산 서북능선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다.
산꾼
천왕봉에 가까워질 수 록 산객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북한산을 방불케 한다. 나처럼 한해를 마무리 하고 천왕봉의 힘찬 기운으로 한해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이다.
겨울 특유의 광활한 고원 풍경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제석산 구간에서는 자꾸만 걸음을 멈추게 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길은 어제보다 훨씬 더 분주해졌다. 통천문에서 천왕봉 정상까지는 무척 가파르지만 어제에 비해서, 그리고 배낭이 훨씬 더 가벼웠던 작년 가을보다도 오히려 걷기가 수월해졌다.
이때 천왕봉쪽에서 내려오는 한 산객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100리터쯤 되어 보이는 박 배낭을 메고 있었고 배낭에는 메트리스는 물론 눈을 치우는 삽까지 각종 겨울 비박 장비가 매달려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하고 인사를 건넷더니 답례 대신 반야봉 옆으로 보이는 무등산과 북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덕유산의 위치를 알려주고 홀연히 산 아래로 사라졌다.
그런 산꾼들에 대해서 막연한 존경심과 더불어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다.대학시절 장비도 변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설악동을 출발하여 백담사로 내려갈때도 어디선가 나타난 산꾼이 잘 못든 길도 바로잡아주고 간식도 나눠주면서 친절을 베풀어 주었고, 내연산에서 저 체온증으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을때, 응급조치를 취해주고 자신의 자켓까지 벗어주던 산꾼을 비롯해서 힘든 상황에 처할때 마다 공교롭게 나타난 산꾼들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산꾼이란 지리산같은 깊은 산중에서 목적지를 향하는 길과 안전한 잠자리를 찾는 감각과 산에 대한 깊은 지식과 혜안을 갖고 있으면서, 20~30kg 박배낭을 짊어지고 하루에 20km 이상의 가파른 산길을 이동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과, 홀로 어둔 산길을 걷고 비박할 수 있을 정도의 담력과 용기가 있어야 하며 어려움에 처한 등산객들을 만났을때 조건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아량을 가진 산객이다.
그래서 내게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그런 산꾼 반열의 끄트머리에라도 서 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나이에, 이 체력에, 이 허접한 산지식으로 과연 가능할까도 싶지만, 예전에 포스팅에서 소개한 김명효씨의 [인생에 한계란 없다]를 읽고 마음을 다시 잡아본 것이다. 훗날 이번 지리산 종주를 산꾼이 되기 위한 첫 걸음으로 기억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천왕봉에서 시작하는 또 다른 출발
바로 눈앞에 천왕봉 정상이 보이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감격 때문인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설움이 복받쳐 오른것 같기도 했다. 지난 10년 동안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아주 사소한 일 조차 꼭 종국에 가면 틀어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달려올 수 있었던 에너지원이 바로 산이다. 작년부터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예전의 용기와 자신감도 회복하고 있다.
이 또한 산이 주는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2014년을 마감하고 2015년을 시작하려는 이때 지리산 종주가 주는 의미는 대단히 특별하다. 그래서 만약 천왕봉 정상에 아무도 없었다면 펑펑 눈물을 쏟고 말았을 것이다.
지난번에는 희미한 운무가 끼어 있어서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사방으로 조망이 일망무제로 열려 있어, 전라남도의 동부일원 전라북도의 남부일원 경상남도의 서부일원은 물론이고 멀리 남해바다 까지 한눈에 들어오면서 남한에서 두번째로 높은 성산으로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산들이 마치 여기 지리산 천왕보을 향해 일제히 읍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그걸 보면서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무엇보다 지리산 서북능선과 덕유산 그리고 무등산등 다음 산행 목적지들이 미리 인사를 건넨다. 아~~~ 나 지리산종주했어.
이번 지리산 종주 산행은 붕어아빠님, 셜리님, 조나단님, 미녀님께서 함께해주셨습니다. 이 중요한 성수기때 힘들게 예약한 대피소 티켓을 제게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지리산 종주의 감격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산행에 아직은 미숙하여 매번 식사시간마다 큰 도움을 도움을 받았네요. 이 기회를 빌어서, 붕어아빠님, 셜리님, 조나단님, 미녀님, 이 네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붕어아빠님, 셜리님, 조나단님, 미녀님 그리고 바위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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