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지리산 종주] 고원을 걷다(1) - 행복한 고행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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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의 아침 |
2014년 12월 27일 부터 28일 까지 이틀간,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 약 33km에 이르는 지리산 주능선을 걷는 지리산종주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지리산은 고교시절부터 만나고 있는 친근한 산이지만 종주산행은 이번이 첨입니다. 지리산 종주산행은 기대했던 것 이상의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야 하는 가파른 능선길은 무척 고통스러웠고, 숙식 환경은 열악했지만 산 아래에는 맛볼 수 없는 동행들과의 끈끈한 우정, 자기 자신과의 진지한 만남,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이틀간의 여정을 2 회로 나누어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받은 감동에 비해 글이나 사진은 많이 미흡하지만 그것의 작은 부분이라도 전달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머니 품처럼 포근했던 지리산의 새벽
어슴푸레 밝아오는 하늘에 드문드문 박힌 별들이 졸린 듯 깜빡이는 박명, 헤드렌턴 불빛들이 남은 어둠을 쓸어내고 있는 눈길위를 숱한 발걸음들이 저벅거리며 지나간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지리산의 새벽 6시, 별 감흥 없이 노고단 고개 [지리산 종주시점]을 통과한다. 지리산 종주에 임하는 마음은 성삼재에서 이미 다졌던 것이다.
이런 새벽 산길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맛이 있다. 한 시간가량 걷다보면 경직된 근육이 풀리고 몸은 어느새 가파른 산길과 배낭 무게에 적응한다. 새벽녘의 고요함과 어둠이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여 깊은 명상에 들 때와 마찬가지로 마음은 점점 더 깊은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럴 때마다 고향 뒷산 오솔길을 걷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곤 하는데, 아마도 그곳의 기억이 내 의식의 심층부에 자리 잡고 있어서일 것이다.
겨울 지리산엔 무서운 호랑이대신, 세찬 칼바람과, 매서운 눈보라와, 살을 에는 혹독한 추위가 산다. 그런 길을 걷겠다며 길을 나선 나그네의 비장함이 무색할 정도로 오늘 지리산 새벽은 어머니 품처럼 포근했다.
지리산 아침이 펼치는 기적
임걸령에서는 남원에서 피아골로 넘어가는 장꾼들의 봇짐을 노렸다는 임씨 성을 가진 도둑놈 대신 하늘이 환한 표정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참선에 든 것 같던 고요한 마음이 일순간에 멋진 일출 사진을 얻겠다는 욕망으로 출렁였다. 어쩌겠는가. 마음 가는 데로 가야지. 그 도둑놈이 목을 축였다는 맛난 샘물도 마다하고 조망이 열리는 곳을 찾아 냅다 달렸다. 그런 간절한 바램조차 허망하게 지리산의 태양은 건너편 능선의 등허리를 타고 올라와 잡목틈새로 햇살을 뿌렸다. 이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때마침 동녘 하늘에 옅은 구름이 깔려있어 설사 전망 좋은 곳을 찾았다 하더라도 똑 떨어진 지리산 일출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을 테니까.
사진에 대한 욕망대신 다시 마음의 평화를 챙기고 지리산의 아침을 온몸으로 맞이했다. 예배당이나 절간의 그것 보다 훨씬 더 진한 신성(神性)이 지리산에 가득했다. 아마도 그런 기운이 예수님을 새벽 미명에 산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이때는 하늘이 나처럼 길을 버린 양의 기도라도 흔쾌히 들어주실 것 같았다. 그래서 병석에 누어계신 누님과 화순 친구의 완쾌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아침햇살에는 하찮은 것일 지라도 아름답게 꾸며주는 마력이 숨어있다. 화상환자처럼 껍질이 벗겨져 볼품없는 사스레나무나 바람이 지나가면서 심한 굴곡을 만들어 놓은 눈 더미도 아침햇살이 와 닿으니 황홀한 빛을 발한다. 풍만하고 부드러운 산등성이는 툭 건들기만 해도 장엄한 음악이 울려 퍼질 것 같았다. 지리산 아침을 맞이하는 이 순간,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산행의 본질을 찾아서
삼도봉에 오르니 눈 덮인 산록과 골짜기들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하염없이 밀려오는 대양의 파도를 연상시킨다. 지리산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가슴 툭 트이게 하는 광활한 풍광이다. 북쪽 남원, 서쪽 구례, 그리고 동남쪽 하동방향을 각각 바라보며 크게 세 번 숨을 들이쉬었다. 그렇게라도 지리산의 모든 것을 가슴에 담고 싶었다.
지리산 같은 육산을 걷는 것은 골산의 그것에 비해 한결더 여유롭다. 긴장감의 차이가 직접적인 요인이겠지만, 부드럽고 긴 파장의 산등성이로부터 전해지는 안정감도 큰 몫을 차지한다.
몇 년 전 민주지산에서 그 묘미를 터득하고, 마음은 항상 그런 육산을 걷고 싶었으나, 막상 걸음은 골산을 향한다. 아무래도 밋밋한 육산에는 사진 찍을 꺼리가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요즘 화두로 떠오르는 ‘ 비정상의 정상화 ’를 따라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나도 삶에 있어서 ‘비본질의 본질화 ’를 지향하려 한다. 산행만 해도 그렇다. 산악 사진가가 아닌 이상, 산과 만남이 본질이며, 사진은 부수적이다. 그런데 요즘 내가 추구하는 산행은 사진을 찍기 위한,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블로그 포스팅꺼리를 찾아다니는 꼴이다.
이틀에 걸쳐 그것도 한겨울 눈길을 헤치며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 무려 33km를 걷는 것은 분명 고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걷는 짬짬이 유장하게 뻗은 지리산 연봉들의 능선위에 눈을 턱 걸칠 땐 ,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온다. 내게 산행의 본질이란 바로 그런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난 식사
지리산에서는 등산객 안전을 위해서 각 구간별로 통행시간을 제한한다. 그래서 혹여 걸음이 늦어진다면 오늘 묵어가기로 예약된 세석대피소까지 갈 수 없게 된다.지리산 미아신세가 되어 주능선 종주를 포기하고 벽소령에서 산을 내려가야 할지도 모른다. 우린 이미 한 시간을 까먹고 있는 상태라서 밍기적 거려다가는 위험해질 수 있다. 그래서 삼도봉부터는 걸음을 재촉했다.
지리산 주능선에는 적당한 거리마다 취사와 휴식이 가능한 대피소가 있다는 점이 새삼 고마웠다. 노고산 휴게소에 이어서 연하천 대피소에서 이번 산행 중 두 번째 식사시간을 가졌다. 밥과 김치찌개 그리고 한두 가지 반찬이 전부인 단출한 식단이었지만 이 세상의 어떤 성찬이 이보다 더 맛있을 수 있으랴. 너무 맛있어서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나누었다. 지리산의 신선함이 양념으로 들어가면 어떤 음식이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숙련된 산행 요령이 필요한 [박산행]
나를 제외한 일행들은 여러번 지리산 종주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인지, 오늘 분량 산행 중반에 접어들었는데도 별로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 보다 더 부러운 것은, 스패츠를 착용하는 것에서부터, 식사준비, 배낭에서 준비물을 꺼내고 다시 꾸리는 것 같은 노련한 산행 운영이었다. 나는 허둥대느라 일행들에 비해 번번이 3~4 분씩 늦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것이 얼마나 큰 차이라는 것은 산행을 해본 사람만이 안다.
지리산 종주 같은 장거리 산행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체는 체력의 안배에 달려있는데, 뒤진 거리를 좁히려다 보면 오버페이스가 불가피하다. 그것은 자칫 치명적인 체력소모를 초래할 수 있다.
비박을 하거나 이번처럼 대비소에서 묵어가는 것을 꾼들은 [박산행]이라 부른다. 당일 산행과 달리 [박산행]에서는 산행 준비는 물론 배낭을 꾸리고, 길을 찾고, 장비를 다루고, 식사 준비를 하는 산행의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고 정확하고 신속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남다른 준비를 갖추어야 남다른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가 아닌가.
지리산에선 1km 걸을 때 마다 배낭 무게도 1kg 늘어난다.
요즘 같은 겨울철엔 평균 해발 1400~1500미터에 이르는 지리산 주능선의 기온은 아무리 포근해도 영하 10도를 오르내린다. 오늘은 수은주가 좀 더 올랐을 것으로 치더라도 영하 5~6도 보다 높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워낙에 청명한데다가 눈(雪)에서 반사되는 열까지 더해져, 양지바른 곳은 살랑거리는 바람이 반갑게 여겨질 정도로 무더웠다. 벽소령 대피소에서는 무릎 높이까지 눈이 쌓인 마당 테이블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콜라의 청량감을 즐겼다. 그래서 여느 때 보다 배낭의 무게감이 느껴졌고, 걷는 속도에 대한 압박감도 있었지만 마음은 여유로웠다. 여기다가 세찬바람에 눈보라까지 휘몰아 쳤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우리 다섯 명의 일행은 가끔은 함께 걸었지만 각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름의 방법으로 포근한 지리산을 만끽했다.
벽소령 대피소를 떠나 세석 대피소를 향하는데 부담감이 찾아왔다. 여기까지도 힘들어 죽겠는데, 지리산 주능선 최대의 난코스라지 않는가. 지금부터는 뒷쳐지기라도 하면 일행들에게 걱정을 끼칠까 싶어서, 일부러 앞서 걸었다. 그런데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초반 1.5km는 다른 구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시야가 열린 언덕에선 스틱에 몸을 기대고 서서 주능선에서 양 갈래로 뻗어 내려간 능선들과 산 아래 풍경을 감상하는 여유까지 부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세석 대피소까지는 아직 4 km나 남았는데, 날은 저물고 길은 점점더 가팔랐다. 지리산 다른 국간에서는 1km 마다 배낭의 무게가 1kg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지만 여기서는 100미터마다 1kg씩 늘어나는 것 같다.
지리산 종주산행은 인생의 산을 오르기 위한 예방백신 같은 것
몸은 천근만근인데다가 한동안 별 탈이 없었던 발목까지 시큰 거렸다. 산등성이엔 땅거미가 짙어가고, 가파른 길은 기약없이 이어지는데 목적지까지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이때다 싶어 내가 올라야 할 인생의 산을 바라보았다.
가장이라는 산, 직장인이라는 산, 그리고 인간으로서 주어진 소명의 산들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리고 세석 대피소를 향한 마지막 관문인 영신봉 계단, 이 현실의 산은 몸을 짓이겼다. 자신에게 물었다. ‘ 이것보다 힘드냐. ’ ‘지금보다 힘드냐. ’ ‘ 도저히 못하겠는가. ’
벗어 던져버리고 싶은 배낭의 무게감, 허벅지를 당기는 고통, 발목 통증, 가쁜 호흡, 이런 고통과 정면으로 맞섰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 별거 아니잖아’ ‘할 만 하잖아’ 그랬더니 정말 견딜만 해지면서 없던 힘도 솟았다. 지금까지 괜한 엄살을 부린것이다.
이번 지리산 종주처럼 의도적으로 선택한 고행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고난은 서로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고행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투지를 발휘 할 수 있다면, 고난 역시 얼마든지 능동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악조건을 감내하고 영신봉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인생 노정에서 만나는 어떤 산이든 다 오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신념이 생겼다. 산다는 것은 결국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나의 이번 지리산 종주산행을 짧게 정의 한다면 고난과 맞서기 위한 예방백신 같은 것이다.
지리산의 석양
영신봉에서 내려다 본 지리산 산록이 석양빛으로 붉게 불타오르면서 골짜기들은 이미 어둠에 녹아들었다. 주황빛 하늘이 점점 짙어 가더니 홍시처럼 삘개 지고, 이내 새빨간 핏빛으로 바뀌었다. 어둡기 전에 아직 1.5km나 남아있는 세석 대피소에 도착하려는 잰걸음을 멈추고 배낭까지 내려놓고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지리산이 하루를 마감하는 장관을 지켜보았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노을을 배경으로 어둠속에 떠 있는 한 점 섬처럼 아스라이 멀리 반야봉이 서 있다. 선계와 속세의 경계인듯, 반야봉 허리를 지나가는 선이 서천(西天)을 빛과 어둠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합장으로 경의를 표했다. 이토록 장엄하고 아름다운 지리산을 눈앞에 펼쳐 보여주신 하늘과 이 머나먼 길을 걸어온 내 자신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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