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관우'를 기리는 사당, 관왕묘 - '동관왕묘(東關王廟, 동묘)'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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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로 인근에서 풍물시장,벼룩시장이 펼쳐지는 동묘돌담길 ⓒ20130623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서울 동관왕묘 [─東關王廟]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崇仁洞) 238-1 소재
•보물 제142호 (1963년 01월 21일 지정)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
※ 주 건물 평면은 세로가 긴 직사각형. 터 와 건물 구조가 좌우 완전대칭을 이룬 형태는 우리나라 문화재 - 궁궐, 관저 사적지를 통틀어 유일하다. 또 우리나라에서 드문 중국식 으로 건물 정면에는 '현령소덕의열무안성제묘(顯靈昭德義烈武安聖帝廟)', 뒤쪽에는 '만고표명(萬古標名)'.. 건물 내외 천장에 현판 가득
'관왕묘(關王廟)'는 무묘(武廟)로 3세기 중국 명장인 관우(關羽)를 모시는 곳이다.[공자(孔子)를 모시는 곳은 문묘(文廟)]
자료1에는, ['동묘'(東廟, 동관왕묘의 줄임말)는 3세기의 중국 명장인 관우(關羽)를 모시는 곳으로, 임진왜란 중인 1593년에 왜군에 의해서 파괴된 것을, 명나라 신종이 친필 현판과 함께 건축자금을 지원하여 재건하였다. 1599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1601년에 완공. 1601년에는 동묘, 서묘, 북묘가 건축되었으나 현재는 동묘만 남아있다...]
자료2에는, ['관왕묘'는 선조 31년(1598)에 서울 남대문 밖에 처음으로 건립되었는데, 남쪽에 있다 하여 남관왕묘라고 했음. ≪증보문헌비고≫ 예고(禮考)에 따르면, 임진•정유왜란 때 관우의 혼이 나타나 때때로 명나라 군사를 도왔다 하므로, 군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하여 관왕묘를 건립한 것으로 보임. 동관왕묘는 선조 33년(1600)에 명나라의 칙령으로 건립하여, 선조 35년(1602)에 준공하였음...]
자료3에는, ['동관왕묘' 외에 조선 1598년(선조 31) 남관왕묘(南關王廟), 1883년(고종 20) 북묘, 1902년에 서묘가 세워졌으나 현재는 동묘만 남아 있다.
관왕묘의 설치에 대하여는 세종 때 훈련원 안에 무묘를 설치하자는 건의가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임진왜란 뒤 비로소 세워지게 되었다. 당시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던 명나라 장군 진인(陳璘)이 부상으로 서울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때 거처하던 후원에 관왕묘를 건립한 것이 남관왕묘이다.
그 뒤 역시 명나라 사람에 의하여 동대문 밖에 동관왕묘가 설치되었으며, 숙종 때부터는 왕이 능행(陵幸: 임금이 능에 거둥함) 때 관왕묘에 들르기도 하였다...]
(
※ 자료를 검토한 필자의 주관적인 분석에 의하면, '관왕묘'는 임진왜란 이전에도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명나라 도움으로 난리를 수습한 후 명나라 신종이 다시 '관왕묘'를 동쪽에 지었다. 개화기를 거치면서 왜구에 위기를 느낀 고종이 '어게인 왜구격퇴'를 외치며 서,북쪽에 신축, 남쪽을 개축하여 동관왕묘,서관왕묘,남관왕묘,북관왕묘 라고 불렀는데, 일제 때 명나라가 직접 지은 동관왕묘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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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묘 옛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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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사진 |
관왕묘(동묘)는 정면 5칸, 57.5척(尺), 측면 4칸, 63.5척의 단층 정자형(丁字形) 기와지붕집이다. 정전(正殿)은 평면에서 정면보다 측면이 길게 되어 안으로 깊은 공간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평면구성은 중국건축에서는 흔히 볼 수 있으나, 우리 나라 건물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모습이다. (가장 큰
특징은 직사각형의 중국 전통 정전형식이며, 정전 내외전 천장 곳곳에 현판을 달아 두었다.)
공포(拱包)는 익공계통(翼工系統)의 건축으로서 연등천장이며, 지붕은 특수한 평면에 따라 복잡한 정자형을 이루고 있다. 건물의 내부 바닥에는 벽돌을 깔았는데 본실에는 중앙 뒤쪽에 단(壇)을 만들어 관우의 목상(木像)을 안치(安置)하였고, 그 좌우에는 권속(眷屬)인 관평(關平)·주창(周倉) 등 4인의 상이 있다.
남쪽에 대문이 놓이고 대문을 들어서면 동쪽에 네모나게 쌓은 석단(石壇)이 있고, 그 옆에 제사를 모시는 사람의 거처가 있으며 대문 뒤에는 축선에 맞추어 중문이 놓인다. 중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정전이 놓이고 그 앞 좌우에 동무(東廡)와 서무(西廡)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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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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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떼내니, 400년간 감춰진 조선 최대 용그림
[중앙일보, 2013.02.20일 기사]
일월오봉도 병풍 떼내니 400여 년 숨어있던 백·청·황룡 9마리 ‘꿈틀’
높이 275㎝, 폭 495㎝ 색채 생생
나무로 만든 벽 감싼 모시에 그려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달과 해,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그림)’ 7폭 병풍을 한 폭씩 떼어낼 때마다 뒤쪽 벽에 숨어 있던 용들이 조금씩 자태를 드러냈다. 병풍을 모두 거둬내자 거대한 ‘운룡도(雲龍圖)’가 펼쳐졌다. 백룡 한 마리와 청룡 한 마리, 그리고 일곱 마리의 황룡이 구름에 휘감겨 있는 모습이다.
400여 년간 병풍 뒤에 감춰져 있던 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용 그림이 발견됐다. 서울 종로구 동관왕묘(東關王廟)의 정전(正殿)에 있는 금동 관우상 뒤편에서다. 흔히 ‘동묘’로 불리는 동관왕묘는 촉한(蜀漢)의 장수이자 무운(武運)의 수호신인 관우(關羽)를 기리기 위해 선조 35년(1602년)에 지어진 사당이다. 정전의 안쪽에 위치한 높이 2m51㎝의 거대한 관우상 뒤로 일월오봉도 병풍이 쇠못으로 벽에 고정돼 있다.
이번 ‘운룡도’는 2011년 10월 동묘 유물을 조사하던 문화재 전문가들이 병풍에 박힌 쇠못을 뽑아내면서 처음 발견됐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다가 최근 종로구청이 낸 ‘동관왕묘 소장유물 기초학술조사 보고서’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의 크기는 높이 2m75㎝, 폭 4m95㎝다. 목재 벽을 감싼 모시 위에 먹으로 선을 그리고 안료로 채색했다. 파란 눈과 흰 수염을 가진 용 아홉 마리가 구름과 뒤엉켜 있으며, 아랫부분에는 파도 치는 바다가 있다.
조선시대 용 그림은 왕의 권위를 상징했다. ‘관왕(關王)’이라는 호칭에서 드러나듯 당시 왕으로 추앙받았던 관우의 사당에 운룡도가 그려진 것은 이런 이유다. 그러나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궁궐의 용 그림은 대부분 불에 타 없어지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경복궁 사정전(思政殿)의 어좌 위에 걸려 있는 운룡도가 유일하다. 현재 원본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중이고, 사정전에 걸려있는 것은 같은 크기의 사본(寫本)이다.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갖고 노는 이 그림은 높이 2m87㎝, 폭 4m77㎝ 크기다. 이번에 발견된 운룡도보다 폭이 20㎝가량 작다.
전문가들은 용들의 생생한 표정과 세밀한 선 처리, 조화로운 배치 등으로 볼 때 당대 최고의 화원들이 그린 수준 높은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장경희(문화재보존학) 한서대 교수는 “그림이 벽에 붙어 있는 상태 등으로 볼 때 17세기에 그려진 후 한 번도 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병풍에 의해 공기가 차단되고 먼지가 묻지 않아 원래 색채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말했다.
또 대부분의 조선시대 용 그림이 용 한 마리나 쌍룡을 담고 있는 것과 달리 중국 회화에 주로 등장하는 구룡(九龍)이 그려져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문화재위원장을 역임한 안휘준 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용의 얼굴 표현 등이 다소 관습적이긴 하지만 궁중 용 그림이 현재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예술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운룡도가 언제부터 일월오봉도에 가려져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쇠못의 형태가 조선시대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 선조 이후 수차례 진행된 동관왕묘 보수공사 과정에서 누군가 병풍을 벽에 고정시킨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또한 1960년대 이후 여러 번 진행된 보수공사에서 왜 운룡도가 발견되지 않았는지도 미스터리다.
운룡도는 조사를 마친 후 다시 일월오봉도 병풍으로 덮인 상태다. 일반 관람객들은 볼 수 없다. 따라서 하루빨리 그림의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휘준 교수는 “운룡도 외에도 동관왕묘에는 17세기의 수준 높은 공예품이나 서화 등이 다수 보관돼 있다. 유물의 관리와 활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영희 기자
[사진=사진작가 최호식]
◆동관왕묘(東關王廟)=보물 제142호. 서울 종로구 숭인동 소재.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장수 관우(160~219)의 사당이다. 임진왜란 때 관우 신령의 도움으로 조선과 명나라가 승리했다는 뜻을 담아 명나라 황제 신종(神宗)이 직접 건립 비용을 댔다.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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