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바위 만경대의 가을을 훔치다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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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 만경대의 가을을 훔치다 ⓒ20121010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
한가위날의 신발 도둑질
쑥고개 위로 덩실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만큼이나 부푼 마음을 품은 친구들이 하나둘씩 잔등으로 모여들었다.
그동안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사느라 서로 보지 못했던 동창들이 추석을 맞이해서 모처럼 모여서
한 바탕 걸판지게 놀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다니던 중학교 부근 외진 산골짝에 술이며 음식 그리고 모닥불과
야외전축까지 미리 준비해 두고 밤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여자애들은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삼십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잔뜩 들떠서 신나게 얘기를 주고 받던 우리들의 분위기는 이미 밤 공기처럼 싸늘하게 가라 앉아있었다.
이번일을 추진한 동창회장 영민이에 대한 닥달도 점점 심해졌다.
" 야 회장, 니가 엄한데(엉뚱한곳) 알려준거 아니여. "
" 아따. 그럴 일 없당께. 곳 오것지. 쫌만 더 기다려 보자고. "
기다리다 지친 우리는 급기야 각 마을별로 정탐병을 파견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탄 정탐병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불길한 소식을 전했다.
" 워매 이것들이 어디 가불었는지 콧뺑이도 안보여야. "
한 시간 후에 다시 집결하기로 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며 이동네 저동네를 이 잡듯 뒤졌다.
나와 함께 있던 일행들은 2 년 선배들이 모여 있다는 선황산 아래 외딴 제각(제사를 모시는 사당)을 찾아가 보았다.
과연 그곳에 가까이 갈 수록 수십명의 남녀가 모여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십중팔구 자기네 동창들끼리 놀고 있을테지만 일단 확인해보기로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몸이 가볍고 날랜 현수가 휙~ 하고 제각의 담장을 넘어서 달빛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그가 돌아와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씩씩거렸다.
" 워매 요런 잡것들, 쩌그 다 있어야. 저것들을 으째부러야 쓰까이."
다른 마을을 뒤지고 있던 친구들도 연통을 듣고 속속 제각 뒤켠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2년 선배들과 우리 동창 가스네들이 확실히 함께 놀고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우리들의 모처럼의 한가위 추억을 송두리채 앗아간 선배들과 저 배반의 장미들을 어떻게 처단할까.
우리는 이마를 맞대고 속닥거리며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 신발을 죄다 걷어다가, 파묻어 불더라고.... 낼 저것들 서울이든 부산이든 광주든 오도 가도 못허게 해불자고..."
이런 반대를 하는 사람 아무도 없이 만장일치로 이 과격한 결론이 통과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확실히 엿먹이기 위한 준비가 휘영청 밝은 한가위 보름달 아래서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었다.
마침내 작전을 개시했다.
1 조는 신발을 쥐도 새도 모르게 비료부대에 담았다.
2 조는 그것을 살금살금 담장 밖으로 옮겼다.
3 조는 그걸 자전거에 싣고 내 달렸다.
4 조는 인적이 드문 산속에 미리 구덩이를 파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그것을 꽁꽁 묻었다.
아예 짐작조차 못하게 그위에 나무까지 옮겨심었다.
거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잔등에 모였다. 휘영청 밝은 달빛에 비치는 저마다의 얼굴은 비장함으로 번득였다. 광주에서 건달 노릇을 하고 있다는 어렸을적부터 깡이 남달랐던 문규가 땅바닥에 침을 두어번 뱉더니 섬찟한 건달기를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 울덜은 명백한 도둑질을 한거여. 우리 모두 빵(감옥)에 가고도 남을 일이다 이거여.
저 염병헐 것들의 신발을 땅에 묻었듯이 이번일도 죽을때까지 가슴에 묻는 거여. 글고 오늘 아무일도 없었던 거여 "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큰일을 저지른것이 아닌가 싶어 다리가 약간 후둘 거렸다.
그래서 다음날이 연휴인데도 공부를 핑게로 서둘러서 도망치듯 광주로 올라왔다.
한 달후 집에 내려갔더니 어머니가 근심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 야 느그덜 추석날 저녁에 밸일(별일)없었재잉."
나는 속을 찔린것 같아서 움찔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어머니에게 반문했다.
" 먼일 있었어요? 엄니. "
" 응 지서 순경들 우리집 올일이 없는디, 추석 담날 너 광주로 올라간 그날 바로 왔다 갔어야. 너 어디갔냐고 허드만 마루밑을 후라시(후래쉬)로 요리조리 비춰 보더니 암소리 않고 가드라."
나중에 들으니 서울서 내려온 청년들, 처자들 구두 수십컬레를 추석날 저녁에 어떤놈들이 한꺼번에 다 돌라가부러서(훔쳐가서) 아조(아주) 난리가 나부렀닥 안허냐."
명절이라고 때빼고 광내고 좋은 구두 사 신고 고향에 내려왔다가 졸지에 신발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신발을 찾아달라고 지서에 신고를 했고 그 범인으로 우리 동창들을 지목했지만 이미 완벽한 알리바이까지 만들어놓은터라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할때면 오히려 펄쩍펄쩍 뛰곤했다.
그리고 우리끼리 있을때도 한 십년동안은 여간해서는그일을 입밖에 조차 내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속에 묻힌 그 일은 지금은 아련한 추억의 한 조각이 되어 명절때 마다 되살아나곤 한다.
이십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다음 신발을 묻어 놓은 그 자리에 가봤더니 우리가 옮겨심은 소나무 두그루가 영양분이 풍부한 가죽 비료 탓인지 엄청난 크기로 자라있었다.
북한산의 가을숲에 스며들다.
누군가 날더러 참 선량해 보인다고 말하면 그일을 떠올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 나 절대 착한사람 아닌데... "
아닌게 아니라 지금 내가 학생이라고 가정 할 경우 선행상을 받는 다면 진짜 낮이 뜨거울 것 같다.
진작부터 링컨님을 닥달했었다.
'거기 한번 가봅시다.'
그 험하다는 만경대를 그토톡 사뿐하게 드나드는 길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추석 연휴!
고향에서 갓 올라온 링컨님을 앞세우고 도선사로 향했다.
탐방지원센터에서 마주친 공단분에게 인사를 건넷다.
그는 인사도 받지 않고 우리 옆에서 입산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힐책했다.
산에서 술을 마시면 벌금이 10만원이라고 거듭 엄포를 주었다.
언제 그런 법이 생겼는지... 원
하루재에서 다른 공단분을 만났다.
그분에게도 아는채를 했다.
도둑이 제발 제린 겪이라고.... 그가 영봉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우린 반대편의 어둔 숲속으로 스며들었다.
▲ 곰바위
줄줄이 늘어선 환상 전망대에 갖혀 한다는 짓이...
영봉의 줄기는 하루재에서 한번 꺽어진 다음 곧장 만경대를 향해 솟구쳐 오른다.
숨은벽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잠수함 능선 맞은편 능선이 바로 거기다.
참고로 그 두능선 사이의 협곡이 백운대로 향하는 대표적인 등산로인 것이다.
곰바위로 향하는 이능선이 지금까지 미답지로 남아 있어서 북한산을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다니는 링컨님에게 길잡이를 부탁드린 것이다.
하루재에서 조금 올라가자 곧장 조망이 열렸다.
곰바위에 이르기까지 북한산의 환상적인 비경이 펼쳐지는 전망대가 줄줄이 있어 몇 시간째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바늘도둑 소도둑! 사진 몇장 훔치러 갔다가 작심하고 가을을 훔치다.
이 능선에서 바라보면 북쪽으로는 지척에 인수봉과 백운대가 푸른하늘과 흰 구름을 이고 서서 가을 나들이 나온 이쁜 여인네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고, 동쪽으로는 영봉과 우이능선 넘어로 아스라이 도봉의 준령들이 풍선처럼 떠다니는 구름 아래서 소풍나온 아이들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뛰어놀고 있었다.
남쪽으로 눈을 돌려보자.
평소엔 어둡던 서울 하늘이 만경대 산자락에 기대어 마냥 즐거워 어디선가 희파람 소리라도 들려올것만 같다.
그렇다.
아~ 가을이구나.
아무리 못난산이라도 가을엔 죄다 이뻐 보이는데 이 곰바위 능선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이랴.
솔직히 도둑산행 하는 처지에 이렇게 잘생긴 가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고작 닭서리정도 하러 들어간 것이었는데 거기에 고삐풀린 송아지 한마리가 있었던 것이다.
기왕에 시작한 도둑질. 마음 단단히 먹고 북한산의 아름다운 가을을 맘껏 훔쳤다.
▲ 핸드폰에 들어있는 사진으로 연출.
그 능선길 100미터를 가는데 30분 가량은 걸렸나 싶다. 빵빵하게 넣어온 카메라 바테리가 위태로울 정도로 우리는 북한산의 가을을 담고 또 담았다. 그 호젓하고 햇살고운 바위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부부도 만났다.
이번 산행에는 짙푸른 하늘과 구름도 제대로 한몫을 거들면서 천상의 그림을 만들어 주었다.
거기서 인수봉까지는 직선거리로 1km도 채 안될것 같다.
실제로 인수봉을 오르는 클라이머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 바위의 바위 본능을 심하게 자극했다.
저들이 있어 인수봉이 살아 숨쉬면서 꿈틀거리는 듯 했다. 고독의길, 취나드길. 의대길... 나도 꼭 저길들을 걸어볼 것이다.
곰바위부터 아늑하던 능선길이 점점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만경대에 가까워질 수록 고소감의 찌릿찌릿함이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이런기분 뭐 그리 나쁘지 않았다.
드디어 만경대 정상 직전에 있는 테라스에 이르렀다.
건너편에 북한산 최고를 자랑한다는 명품송과 민어 머리가 보이는 지점이다.
바로 이곳에서 보는 인수봉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거기에다 링컨님의 출중한 사진 실력까지 더해지니 이 사진은 그야말로 인수봉을 감싸고 있는 환상 그 자체를 보여준다.
에이스님과 만경대 리지등반을 할 당시에도 만경대 정상에 올라본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때보다 훨씬 더 느긋하게 주변의 경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
긴 인간띠가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 백운대의 풍경이 그중 압권이다.
그리고 링컨님이 즐겨 다니는 만경대 워킹루트를 찾았다. 설악산 뺨치게 아름다운 단풍길 구간도 있었지만 말은 워킹루트지 대부분은 상당한 리지내공이 필요한 구간이었다. 특히 만경대 밴드길을 향해서 내려갈땐 그야말로 진땀을 쏟아냈다.
만경대 워킹루트?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다.
노적봉은 오늘 만경대 서리의 덤이다.
전번에 안개를 훔쳤고 이번엔 가을을 훔쳤다.
딱 여기까지만 하고 손을 씯겠다고 맘을 먹지만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가을의 유혹을 어찌 견뎌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는 없지만 그래도 될 수 있으면 선행상을 받을 정도로 착하게 북한산을 다닐려고 한다.
그러나 광주에서도 부산에서도 북한산을 생각했다.
미안하다. 딱 한번만 더...
사족
이번 거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카메라안에 있는 장물들을 쏟아놓은 다음 우와 쾌재를 불렀다.
내 카메라 이미지 프로세서에 먼지가 묻어있는 까닭에 사진에 따라붙는 잡티까지 말끔히 닦아놓고 아껴두고 혼자 실컷 감상하다가 시간날때 포스팅할 요량으로 노트북 C 드라이브에 잘 건사해 두었다.
그러던 중 노트북 운영체계에 문제가 생겨 좀 처럼 해결이 안되어 차근차근 살펴보니 프로그램중에 노트북 메이커(LG)가 깔아놓은 [Smart Recovery]가 눈에 띄어 옳타꾸나 이눔이 손상된 OS를 복구시켜 주는 놈이로세 하고 " 꾸욱 " 그런데 허걱 "드라이브 포멧중"
워매나.
다 날아가 불었네.
불갑산의 상사화나 법성포구의 풍경들은 시한이 지났으니 그렇다 치고라도 계양산의 가을꽃들도 불암산의 쪽빛 하늘도 목숨걸고 훔쳐온 만경대의 가을도 죄다 날아가 버렸다.
외장하드, USB,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외부 저장장치 갖고 있으면 뭐하냐고...백업에 딱 일분만 투자했으면 이런일 없었을 것을... 그 귀한놈들을 줄레줄레 바탕화면에 방치해 놓은 이 게으름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아름다운 북한산의 가을을 다시한번 되새겨 볼 수 있었던 것은 존경하는 산 사진가 링컨님이 피땀흘려 훔쳐온 것을 뚝 분질러서 나눠준 까닭이다. 고맙고 또 고마운 링컨님이다.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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