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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난 발표 글 모음 9 ('이제 바야흐로 사과나무를 심을 때' 外)(41~45편 )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05/12/26 14:08:26)

45. 아이~ 러브~ 코리아피자
7인치 파전과 11.1인치 피자의 효용가치
양기용 기자, 2005-12-01 오전 1:42:08

언제부턴가 우리의 경제력이라든가 국민의식수준, 삶의 질을 알고 싶을 때는 문방구에 가서 편지봉투를 조사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습관이 생겼다. 10년전에도, 5년 전에도, 오늘도 내가 찾고 싶은 편지봉투는 없었다.

고교 2학년 때부터 10여 년 편지를 나눈 독일 여자친구가 있었다. 순혈통을 자랑하는 노랑 금발을 길게 느려뜨리고 라인강에서 찍어 온 가족사진이 매우 인상적인 친구. 하트 모양으로 색칠한 편지지에 Dear~로 시작해서 Lovely~로 끝내곤 했던 그의 일상에서의 여유를 받아보는 것이 큰 기쁨이었던 시절이었다.

30여 년 전이었지만 그의 편지봉투는 에어메일이라고 써지지 않았어도 어느 곳 하나 흠없이 정확히 풀칠돼 있고 정교한 커팅으로 제조돼 있었다. 내피는 기름종이를 쓴 이중봉투였고 그들의 주소는 교과서 인쇄체로 Viola...로 찍혀 있었다. 직지심경과 구텐베르크 활자를 생각케 했다.

그녀가 6년제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서 찍어 온 사진은 책상 위 텔레비젼을 보면서 타자를 치는 포즈였다. 그로부터 10년후 그것이 데스크톱PC라는 것을 알았다.

왜 독일인가?

독일은 이제 한물 간 나라고 우리는 알고 있을지 모른다.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 속에 도도히 흐르는 게르만 피는 세계최고의 혈통임에 분명하다. 우리가 비싼 로열티(40%이상)를 주고 반도체와 휴대폰으로 세계를 잡는다 한다면 그들은 각종 '측정장비를 측정하는 장비'의 세계시장 40%를 점유하고 있다.

다시말해, '자(尺)'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자를 측정하는 '자'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플렉서블하면서 벽지처럼 얇은 발광(發光)체의 기술력은 세계 최첨단, 최고의 기술력이라고 한다. 그들의 과학강국이라는 자부심에 누가 낚시표를 달 것인가.

일본의 산업화 초기에 파독 일본 기능공이 바늘을 삼키고 죽어 돌아 온 일화가 있다. 바늘을 만드는 금속의 순도와 강도, 조직을 연구하기 위함이라 했다. 지금도 내용년수가 지난 일본산 베어링이 새 국산보다 훨씬 좋은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우리가 기초산업 등에서 기본이 아직 덜 된 민족임은 사실이다.




2차대전 때 오스트리아는 다재다능한 히틀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스위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의 나라말이 독어를 포함한 3개어가 공용어라하니 부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들은 독일의 음악과 철학과 기술력을 쉽게 접목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유감없이 뽐내고 있다.

스위스제 전동공구, 다용도 칼, 특히 시계와 다이아몬드는 재미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쇼핑상품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몽고에 95년 동안 피지배, 35년 일본의 속국으로 그 동안 친일을 청산하고 반일과 극일을 외쳐 댔지만 지금 한반도에는 섬뜩하리만치 왜색(倭色)이 만연하다.

특히 국내 넷에서는 일본어와 일본식이 미국, 중국을 압도한다. 한류열풍 이상으로 잠식당한 우리의 터는 가시적인 것 이상으로 넓어졌다. 이러한 우려에 때맞춰 삼성전자가 7인치 크기의 휘어지는 컬러 TFT LCD를 개발했다고 한다.(중앙일보 일본판 11.28일 자)

아이 러브 코리아피자

'기존의 유리보다 얇고 가벼워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 기판을 이용한 이 제품은 지금까지 개발된 플렉시블 LCD 가운데 가장 크다. 올 초 선보인 5인치 제품의 거의 두 배다. 해상도도 아날로그 TV 방송과 비슷한 VGA급 (640x480)이어서 LCD TV로도 사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플렉시블 LCD는 얇은 데다 자유로운 형태로 만들 수 있어 휴대전화나 노트북 컴퓨터 같은 휴대용 기기에 최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입는 컴퓨터>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바가 11.1인치를 벌써 개발했다,며 아직 일본의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고, 국내에서도 자국비하성 논쟁도 진행 중이다. 삼성과 도시바의 제품을 1 : 1로 평가할 수는 없다. 7인치의 파전과 11.1인치 피자의 효용가치가 다르듯.

그러나 이참에 우리는 그들에 확실히 선포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논란이 일었던 줄기세포 연구가 '윤리'라는 정당성보다 힘의 논리에 폐퇴한다면 지금 갓 굽기 시작한 7인치 파전이 세계 피자 시장을 완전 석권할 날이 곧 오리라는 것을.

2005-12-01 오전 1:42:08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 미래정경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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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나는 절망하기에 소망한다
그 때, 대박을 터뜨린 점쟁이는 오데로 갔을까...
양기용 기자, 2005-11-24 오전 2:22:52

'박학다식한 말쟁이' - lab

[어제밤 KBS에서 행한 노무현대통령의 TV토론을 시청하면서 우리나라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파산국면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느꼈다. 노무현대통령은 스스로 패한 장수임을 자인하면서 무릎을 꿇고 항복을 선언하였으나, 한나라당은 "내 한몸도 추스르기 힘든데 어찌 나에게 나라를 맡기려 하는가."라고 눈만 멀뚱거리고 있다.

아! 이 나라가 풍정등화에 있건만 어찌 뜻있는 인재는 산야에 숨어 코배기도 보이고 않고, 왠 잡것들은 이리도 주저리 주저리 해대는가. 노무현대통령은 이미 인격적 불안증세를 보이고 있다. 세상을 보는 안목도 보편타탕하지 못하고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다.

일본 고이즈미총리와 독일 슈레더총리의 최근 행보는 정치소신과 관련된 사항이나, 노무현대통령의 최근행보는 자신감 상실에 따른 돌출 언행이다. 이를 동일시하는 생각은 엄청난 망상이다. 자신은 잘 하고 있는데, 백성이나 국회가 이에 따르지 못해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인격적 장애를 겪고 있다고 보아도 과하지 않다.

2년반이라는 기간은 너무나 긴 세월이다. 그를 허수아비로 밀쳐내고 수렴청정할 인재는 정령 없다는 말인가!...]

오랫만에 해 본 삽질

위 글은 어느 정당 토론방에서 펐다. 말줄임 부분에서 'lab'라는 필자는 40대가 만들어 준 대통령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 그도 박학다식한 말쟁이에 현혹된 그 세대이지 않을까,는 생각이 들었고 대부분 그의 논조와 일치하지만 그는 나하고는 너무나 다르다.

40대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당시 상황이 화두를 이루면 난 은근히 자부심을 느낀다. 난 과거나 지금이나 노무현이 나와 수준이 비슷한 잡학다식쟁이요, 오기와 고집으로만 살아 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번도 그가 박식한 논리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호남인이지만) DJ의 계승자라고 생각치도 않았다.

민주당 지지자였지만 나라 말아먹을 것같은 후보를 내세운 민주당후보를 찍어줄 수 없었다. 인물로 눈을 돌려보니 겨우 보이는 것이 한나라당이었는데 이회창 후보도 노무현 후보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2002년을 상실하고

2002년을 지나며 통수권자가 바뀐 나라의 미래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사람은 나 뿐이라고 생각한다. 마침내 바뀔 세상에 백성들은 흥이 났으며, 너도나도 완장을 차고 거만하게 길거리를 활보했었다. 그런 신천지가 개벽한 날 늦잠을 자고 할일이 없어서 가까운 산책을 했노라고 말했다면 당시로는 영락없는 반동으로 몰매를 맞을 상황이었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뜨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눈앞에 펼쳐져...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아~~아~~대한민국...

노무현 거품이 빠지기 시작할 때 나는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부모형제, 친구, 지인들이 수두룩한 고향을 향해 독설을 날렸다. 아무리 하나님을 잡고 통성으로 기도해도 마음속의 분노는 식을 줄 몰랐다.(개인적인 사건으로 본다면 이것이 매우 잘 된 일이다.) 탄핵 때 극을 이룬 후 하나둘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나날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 대통령 후보를 잘못 세운 것은 노무현이 지극히 나와 닮은 사람이기에 나에게 이미 간파당했다. 그의 심성, 향후 펼쳐질 국가의 운명이 내 손바닥을 들여다 보면 답이 나왔다. 그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점쳤다는 점쟁이는 주간지에 한참 광고를 내더니 요즘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강남에서 한번 찾아가 볼려고 그렇게 수소문했는데...

칼만 망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 많아지면 말 속에 화도 있고 독도 들어 있다. 한개의 거짓말을 진실처럼 꾸밀려면 일곱개의 새로운 거짓말을 해야한다는 격언도 있다. 그래서 나는 말이 많고 앞서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독자는 이것을 보통사람의 언행을 놓고 한 말이려니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에...진리라는 지식도, 하나님의 말씀도 늘어 놓을수록 모순을 같이 생산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식도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나의 버전으로) 헛된 것도 헛되다,고 말씀하셨다.

그 헛된 것 중에 가장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法이라는 조문이다. 생각해 보라, 한평생 먹고 살다 가는데 이만큼 많은 법이 필요한가를. 그래서 불문법이 발달된 영국이 우리보다는 신사의 나라요, 법보다도 건전한 윤리가 저변에 깔린 나라일수록 선진국이요, 그런 나라의 국민일수록 상식적이다. 상식이 강하다는 것이 진정으로 강한 것이다.

법은 도덕을 앞설 수가 없다. 윤리학이 성문법 이전이었다거나 도덕율이 바로 법을 우선해야 마땅하다. 오늘날 몰상식꾼들이 저지른 탈법행위로 선량인이 감당해야하는 고통이란 법의 잣대 그 이상이다. '목적이 좋으면 나쁜 수단도 정당화 된다'는 그 마키아벨리즘은 어디서 왔는가.

제주이트 - 정치의 자율성

태고부터 인간이 가지는 마키아벨리적 사고는 존재했다. 간단히 '인간의 양(다)면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빠르겠다. 이전까지는 체통 때문에 괴로워하는 군주를 마키아벨리가 '이중규범 - 이분법적 사고'를 정립하면서 추악한 왕의 모습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비로소 신에서 왕으로 권력이동이 되는 시기였다. 제주이트(Jesuit예수회)교단이 신권의 수단을 정당화시켜 주었다면 마키아벨리가 그 맥을 왕권으로 전이하는데 공헌했을 뿐이다.

왕을 중심으로 명문화되기 시작한 법은 (힘없는 백성들은 착각하지 말지어다.) 주종관계를 모태로 했지 평등이 아니다. (만인이 평등한 권리와 의무가 지워진다면 법이 필요없다.) 이 법의 훌륭한 시녀이자 브로커가 바로 '변호사'라는 직업인 것이다.

8년을 머리 싸매고 공부해서 변호사가 된 노무현을 인정하지 않는 나의 궤변은 여기에서 시작이다. 필드에 나가지 않는 골퍼를 '닭장 골퍼'라고 부르듯, 세상에 나가보지 않고서 불과 몇 평 속에서 죄인을 풀었다 결박했다가 하는 그들의 인생사가 닭장 속과 다를 바 있겠는가. 동일한 혐의로 한사람이 원고 또는 피고 입장이냐에 따라서 반대논리를 펴야하는 모순된 직업이다.

이 점에서 당시 이회창이라는 후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의도 면적을 덮는 군중 앞의 연설이 있었다면 내 눈으로는 둘 다 광장 공포증으로 연단에 오르기 전에 오줌을 질질 재릴 인물로 보였다. 실지 TV토론에서 보여준 - 어깨를 겸연쩍게 들썩인 모습이라든지, 횡설수설한 그들의 모습을 나는 정확히 보아 왔다.

앞으로 믿거나 말거나

밟히는 것이 대졸자라면 기회비용은 계속 증가하고 비용을 회수하기 위한 기간 또한 늘어난다. 저소득층의 면세정책없이는 공적자금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서민들은 영영 일어설 기회조차 없다. 산학연구자금, 벤쳐지원금들이 우선적으로 개인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한데도 나라가 팡팡 돌아간다고 하니 이 나라는 맹물로 굴러가는 자동차같기도 하다.

노정권의 개혁 드라이브를 일정 부분을 인정해 주겠지만 그들만의 화신인 양 한참을 더 떠들 것이다. 집권 반을 지나며 종합주가 1000선 위에 안착시킨 공적을 자랑할 것이며(본지 8. 2일자 '종합주가' 네자리 시대의 의미), 그가 하야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아참, 최고의 정치적 위기나 승부점에서 '화폐개혁'을 단행할 것이다. 이 말이 틀릴 것인지, 맞을 것인지 남은 2년을 지켜보자. 표본실의 청개구리 보듯.

2005-11-24 오전 2:22:52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 미래정경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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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칼럼] 국보1호 될뻔한 훈민정음, 문제있다
유?뉴?류?類가 벌인 무례와 숭례의 착각은 어디까지냐
양기용 기자, 2005-11-17 오후 1:48:29

무례와 숭례

숭례문에서 '국보 1호'라는 계급장을 떼고 훈민정음에 붙여주자는 여론이 만들어지기에는 성공했으나 공감에는 실패를 보았다. 禮를 덕으로 삼는 우리들의 인간근본을 만방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남대문이 국보 순번 '1'이라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번 잡음은 물적 구체물이 아닌 심적 추상물이 상징성을 띠기란 어려운 일인데도 훈민정음이 국보 1호이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겸했으니 필자 입장으로 본다면 참으로 한심한 관료들이요, 무심한 백성들이다. 잠시 유?뉴?류?청장류가 벌였던 무례함은 유치하기 짝없다.

창세기에 의하면 인간이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오르려는 어리석음의 응징으로 이전의 통일된 언어를 여러개로 나눠 인간세계의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였다고 한다. 끝없는 분쟁을 일으켜 지배에 용이하게 하기 위해 언어를 다르게 했다는 기록이 11장에 있다.

결국 언어의 통합이 쉽지 않다는 말이 된다. 한때 세계 공용어를 외치며 탄생한 에스빠란또도 지금은 배울려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한개의 통일된 언어로 되어 간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

고립된 국어, 과연 훌륭한가?

'앤드루 달비'는 <멸종위기의 언어>에서 금세기에 약 2500개의 언어가 사라지고 2200년 쯤에는 150개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언어의 소멸은 그 나라의 문화의 잊혀짐으로 보고 있다. 한개의 언어 사용으로 지구상 어디서건 표면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번역없이 지식이 전달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수 백년 전에 몽골어 계통의 언어가 50여 개에서 현재는 다섯개 정도 남아 있는데 심지어 몽고에서조차 그 계통의 언어를 지양한지 오래 전이다. 다만, 한국과 일본만이 과거 몽골어의 특징을 이어오고 있다.

언어의 형태상 분류에서는 굴절어(屈折語), 교착어(膠着語), 고립어(孤立語)로 나뉘지만 모든 언어가 세 요소를 일정 부분 공유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굴절어로는 영어가 있고, 교착어로는 국어.일본어가 있고, 고립어로는 중국어를 들고 있는데 어디를 뒤져봐도 '형태'를 가지고 명쾌하게 해석해 놓은 곳이 없었다.

고립어의 특징은 주어+목적어(보어)+동사 순이다. 국어(일본어)가 교착어로 분류되지만 이 예를 든다면 고립어로 분류되기에 충분하다. 세계적으로 유일한 발명품이라는 훈민정음이 언어학자들에게 고립어로 분류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영어는 사각형(ㅁ)이 없고, 한문은 동그라미(ㅇ)가 없는 특징이 있다. 국어는 이 둘을 다 갖고 있다. (오늘 쓰고자 하는 것은 국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으로서의 비능률성만 지적하고자 함이니 이해하기 바란다.) 영어, 중국어, 일어는 필기체가 인정되나 국어는 인정되지 않으며, 같은 고립어로 일어에도 (다른 언어에도 거의)없는 종성(終聲)이 반드시 인정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진정한 실사구시를 생각할 때

실용성에서 과연 한글이 국어 기호학자들이 말한 정도로 과학적인가. 흘림체가 없고 연음과 연이어 쓰는 것이 인정되지 않은 글이 갈수록 시각과 영상에 의존하는 언어 표현의 세계를 따라갈 수 있는가. 대통령의 이름이 오무현인지, 노무현인지, 로무현인지 아직도 헛갈리는 두음법칙이 이 시대에 꼭 남아 있어야 하는가.

지금 대한민국은 영어 하나로도 년간 수 조원의 돈이 외국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 언어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사용이다. 필리핀은 토속어(따갈로그)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일본도 공용어로 채택한지 오래 전이다. 동남아, 태평양 미개국도 대부분 영어가 국가어로 되다시피 했다.

인사동에서 캐나다 여성을 보고 '어디서 왔는가'를 묻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 때가 생각난다. 오랫동안 산 속에서 혼자 생활하다가 문명에서 친구를 맞딱뜨렸을 때 '반갑다'는 말이 입 속에서 맴돌기만 했던 그때도 생각난다.

소위 실어증을 경험했던 나만의 생각으로 - 정말로 하나님이 이방을 지배하기 위하여 각기 다른 언어를 만들었다면 우리가 지나치게 훈민정음만 고집하는 것도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 아닐까.

2005-11-17 오후 1:48:29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 미래정경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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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이제 바야흐로 사과나무를 심을 때
너희들은 물레질을 하라, 그 다음에 나에게 命하라
양기용 기자, 2005-11-11 오전 3:07:57

▲ 58면으로 커팅된 다이아몬드

대한민국이 망해도 렌즈를 깍겠다

자연산 물질로서 현재까지 가장 단단한 것으로 알려진 다이아몬드는 순수하게 탄소로만 구성된 광물질로 모오스 경도(硬度)가 10이다. 4월의 탄생석이기도 한 다이아몬드는 권력, 성공, 안정 외에도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기도 해서 구애나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의 상식물로 정착이 되었다.

그 색상은 무색에서 흑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보석용으로는 투명한 무색이 대부분. 원래 굴절능과 분산능을 가지고 있는 물질이어서 화려한 광채를 띨수록 그 가치는 더해진다.

빛은 투명한 물질(유리나 물 등)를 통과하면서 굴절된다. 꺽인 빛의 입자는 반사하면서 대기중에서 산란, 분산하는데, 이 현상이 광채인 것이다. 광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정교한 각을 주는 작업이 '커팅'이고 커팅 기술력이야말로 바로 엄청난 가치의 재생산 작업이다.

암스테르담에는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 커팅 센타가 있다. 3C(캐럿 Carat, 색깔 Color, 선명도 Clearness)에 1C(Cutting)를 더해서 다이아몬드의 '4C'의 가치를 창출해 내는 곳.

손으로 부여하는 절대가치 - 커팅(Cutting)

원석을 쪼개서 원하는 캐럿(1Carat = 200mg = 10부)으로 연마하고 정교한 비율과 면과 각도를 주는데 58면이 이상적인 각을 이룰 때 광채와 분산효가가 최대가 된다고 한다. 이른바 브릴리언트 커트라는 표준형이 이 58면이다.

네덜란드 커팅 센타에서는 한국의 상인이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아예 상품가지가 없는 다이아몬드까지 프레미엄을 주고 싹쓸어 오는 모양이다. 그러한 제품들을 국내로 들여와서 유명 감정소의 평가서를 붙이면 B,C급이 A급으로 둔갑되어 시중에 유통된다. 실물가치와 무관하게 종이딱지의 도장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만약 소비자가 A급을 되팔 때는 그들은 정확히 B,C등급으로 감정한다.

인생사에서 다이아몬드만 그러겠냐만, 그래서 국내 감정서는 세계 유명 감정기관의 감정서가 아니고 세계기관에서 대부분 인정도 못받는다고 한다. 가짜 인증서로 자산의 20-30%는 버블인 셈이다. 공인자도 짝퉁이요, 짝퉁인 물건(!)이 그 시장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진품으로 행세하고 있다.

사과나무 심는 스피노자의 렌즈

네덜란드의 다이아몬드 커팅기술은 그들의 렌즈 기술로 거슬러 올라간다. 렌즈의 발명은 빛에게 새로운 힘과 영역을 허용했다. 이탈리아의 갈릴레오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17세기 초 네덜란드의 한스 리퍼쉬이에 의해 발명된 두 렌즈를 이용한 망원경은 천체에 있어서 새로운 세계의 탐색을 가능케 했다. 현미경도 네덜란드 반 레벤훅이라는 자연과학자가 만들어 물질의 구성을 규명하기에 이른다.

(예수 이래로 인류가 신과 왕의 억압에서 해방되는 계기들이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기 시작한 시기 전후로 나타난다. 종교개혁과 문예부흥 등이다.)

이러한 정밀한 렌즈를 가장 잘 깍아 명성을 날린 제조가가 바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네덜란드 찰학자 스피노자다. 그는 <에티카>에서 윤리학을 기하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하였고 또한 신학과 정치학에서 정치란 철인만이 적임자임을 (플라톤처럼)주장하였다.

렌즈를 깍는 철학자, 신학자, 정치가, 사상가... 이 점에서 나는 스피노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신학자로서 교회장로들과의 종교적인 마찰, 유태계면서 유태 사회와는 처절하게 고립된 선택, 비물질주의와 질박한 생활, 지혜를 사랑하면서 그는 그 유명한 '스피노자 렌즈'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가 궤변론자는 아니지만 왕따철학자 쯤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 시대와의 부조화스런 삶을 추구하였던 삶을 살았던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제반 윤리문제에 철학적 탐색을 했던 그가 렌즈깍기에 몰두했고, 가장 성능 좋은 렌즈를 만드었다는 사실 - 그리하여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나는 깊은 감동적이다.

이제 우리도 사과나무를 심자

물레질을 하는 인도의 간디를 우리는 흔히 본다. 비평가들은 간디의 비폭력주의와 물레와의 관계를 묶어서 생각한다. 나는 그런 비평가들을 비판한다. 글로 머리로만 하는 비평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물레가 비폭력을 위한 하나의 도구도 아니고, 렌즈도 철학의 방법이 아니었다.

물레질는 간디 생활의 일부요, 렌즈깍는 일은 스피노자의 돈버는 직업중 하나였다. 위대한 사상은 정신과 육체의 유기적인 노동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겠다. 대한민국에는 위대하다는 정치가도 많다. 법률가, 이론가들이 음습한 바이러스처럼 창궐한다. 그러나 그들이 나의 궤변을 당해내지 못함은 나는 나만의 사과나무를 심을 줄 알기 때문이다.

식목은 잎이 피기 시작하는 4월만은 아니다. 새봄에 가장 안전하게 소생시키기에 적당한 시기가 잎이 다 떨어진 바로 이 시기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말로 나무를 심고, 말로 열매를 수확하는 것들이 넘쳐나서 탈이다. 내가 너희들한테 진정으로 명(命)하노니, 조국의 산야에 나무를 심으라, 그런 다음에 나에게 命하라.

2005-11-11 오전 3:07:57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 미래정경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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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투명인간, 비저블 오어 인비저블
아름다운 나목을 준비하는 은행잎의 떨림으로
양기용 기자, 2005-11-04 오전 2:59:03

보일락 말락

20여 년전 쯤, 외국에서 특수안경이 개발 되었다. 옷만 투과해서 사람의 알몸을 볼 수 있도록 제작되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나는 그런 안경이 왜 없는가? 생각을 했고 나온다면 꼭 사고 싶었다. 호기가 분출할 나이치고는 내 생각은 기상천외했다. (지금도 생각이 너무 앞서서 탈이지만) 결국 그런 안경이 제조되었으나 유통에 실패를 본 모양이다.

목적한 바를 알기 위하여 투과력이 훨씬 좋은 X-선도 있다. 뢴트겐의 이 발명으로 인류는 신개념의 의술이 도입 되었고 처치법도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광선들은 물질의 껍데기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확인 시켜주었고 내부적인 크랙이 결국 큰 화를 부른다는 구조론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는데 기여도 했을 것이다.

X-선으로 미인을 감상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뼈대 숭숭한 모양과 닮은 모양의 심장과 위치...대동소이한 조합들. 그런 면에서 이 선이야말로 신비롭고 공평한 광선임에 틀림없다. 선악도 미추도 과감히 괄호쳐 버린는.

군에서 쓰는 적외선 관측장비로는 소총에 부착하는 야간 조준기, 칠흑을 뚫어보는 관측기 등이 있다. 해안초소에서는 그 장비가 야간의 모래사장의 에로틱한 모습도 곧잘 구경시켜주는 기분 좋은 선이다. 별이 쏟아지는 백사장에서 아무도 없는 것을 두리번거림으로 확인한 반(전)라의 연인들의 재미난 장면들.

아무튼 보이지 않는 선이 펼쳐준 예술이란 많은 부분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굴절각을 제로 또는 무한대로 만들어 버린 건물의 전반사유리 속에서는 지금 무슨 장면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없다. 그 공간 안에서 묘기를 부리는 사람을 나는 '투명인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저블 오어 인비저블

그러나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곤혹스러울까. 우리들의 우화에서 보여 준 벌거벗은 임금은 어떠했는가. 불알 달랑거리며 다니는 - 부끄럼 모르는 세살박이 아이로서의 임금을 보여 주었다. 수오지심 - 부끄러워 할 줄 안다는 것이 인간의 근본이라는 것을 느끼게한 요즘이지만, 내 역시 여전히 세상에 내놓고 딸랑거리며 다니니 인간되기 한참 먼 모양이다.

그래서 난 늘 고독을 느낀다. 이 점에서 100여 전에 발표된 H.G.웰스의 SF소설 <투명인간>이 퍼득 떠오른다. 그리핀이라는 과학자는 자기가 발명한 약을 먹음으로써 타인이 자기를 볼 수 없게 만들고서 그들의 일상과 신비를 들키지 않게 엿보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그의 욕망은 끝이 없어 황금을 축적하고 권력을 잡아 휘두르면서 사람을 괴롭히는데 마냥 빠져든다. ...결국 권선징악적인 소설의 특성상 그는 제거된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고독과 소외감과 함께.

이 소설은 인간과의 관계는 '자아성'보다 '타자성'에 귀결됨을 일깨워 준다. 필자는 거기에 투명한 자아성 보다 21세기에 불투명한 폐쇄성을 한꺼번에 경계하고 싶다. 그 소설에서 투명해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불투명해서 보이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둘 다 '나'를 드러내 보이지 않고 타인으로 부터 '나'의 존재를 획득하는 데 실패한다는 것이다. 나를 내보이지 않음으로서 아무런 절대 권력도, 부도 인정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나의 창으로 타인을 인식하고 인정한다고 해도 타인의 인식이 없다면 나의 존재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몰인식 속에서 죽어가는, 죽는 것조차 아무도 인식하지 않은, 있지도 않는 것이 사라지는 해괴성를 낳은 것이다.

나는 멀쩡한 시력으로 썬글라스를 낀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강력한 빛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몰라도 그 검은 경계 너머에서 어떤 눈깔로 나를 째려볼까 겁나기 때문이다. 그가 자기를 가리고 나를 감시하는 눈초리를 보낸다면 나의 사랑을, 누구의 사랑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깊어가는 가을에 나는 진정 타인에게 몸과 마음을 열었는가. 한없이 부족한 나에게 그들은 다 열어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부끄럽게 살아온 날이 아닐 수 없다. 더 추워지기 전에 내가 알몸으로 노상에 서고 싶음은 아름다운 나목을 준비하는 은행잎의 떨림 때문만은 아닐지 싶다.

2005-11-04 오전 2:59:03 양기용 기자 : 취재국장/ 미래정경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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