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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박근혜의 추억여행
박정희 테마 에세이 中
 김인만 작가 (발행일: 2008/05/05 15:34:05)

여름에 입는 소매 짧은 남방셔츠는 남방, 즉 바다 건너 남쪽지방의 옷이라는 뜻이다. 이 남양의 옷을 만들어 입게 된 것이 해방 후의 일이다. 그 전에는 남방셔츠란 것이 없었다. 남양의 바람을 타고 온 식품도 있다. 우유다. 우리가 우유를 만들어 먹게 된 것은 남방셔츠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 호주 목장지대의 박근혜(오른쪽). 왼쪽은 이동환 호주 및 뉴질랜드 겸임대사의 딸이다. ⓒ김인만 서울포스트

오늘의 장년, 노년층은 미국이 원조물자로 보내준 우유를 먹은 기억을 갖고 있다. 우유가루를 물에 개어 밥에 쪄서 딱딱해진 것을 먹으면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어쩌다 좀 맛을 보았을 뿐, 낙농업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던 시절에 우유를 일상적으로 먹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우유가 의식주 생활의 한 부분으로 들어온 것은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한 후의 일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에도 낙농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대통령을 수행한 축산 실무자들은 우리나라 흙을 직접 현지로 갖고 가서 목초 재배의 토질을 비롯, 사료와 저장 방법 등에 관해 그곳 관계자들과 협의를 하고, 대통령 자신이 목장을 방문하여 자세한 작업 과정을 일일이 돌아보았다. 그리하여 얻은 결론은 한국의 자연조건이 호주와 뉴질랜드에 못지 않다는 것이었다.

종합낙농개발사업의 주관처인 농어촌개발공사가 외국 차관과 기술을 제공받아 시범목장을 건설하고, 사람도 타기 힘든 비행기에 젖소들을 태워 수입할 때는 ‘수입젖소 환영’이라고 쓴 현수막을 내걸고 환영식을 베풀 만큼 우리에겐 식생활의 부족한 양과 질을 메워줄 우유 생산이 그토록 간절한 희망이었다.

종합낙농개발사업 계획에 따라 정부가 조성한 시범목장들은 열성적인 민간업자에게 이양되고, 늘어가는 전원의 목가적인 풍경과 함께 매일유업, 남양유업 등 유가공 기업이 성장하면서 우유가 일상의 식품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 호주의 푸른 초원을 산책하는 두 소녀. 당시 호주는 면양이 1억5천만 마리나 되는 축산왕국이었다. ⓒ김인만 서울포스트

박정희 대통령이 축산왕국인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했던 1968년으로부터 40년이 흐른 2008년, 그의 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양국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5월 중순 일주일 가량의 일정으로 두 나라를 방문할 것이라고 언론이 보도했다.
그는 1968년 9월 부모를 따라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했었다. 당시 양국 정부가 대통령 가족의 동반을 요청해서 가게 된 것이다. 그로서는 최초의 해외여행이었다. 그때 나이 17세, 성심여고 2학년이었다.
40년만에 호주와 뉴질랜드로 추억여행을 떠나는 그의 소회는 어떨까.

당시 대통령 일행은 공식수행원 15명, 비공식수행원 5명으로 단촐했다. 국적기도 없어 노스웨스트 여객기를 빌어 타고 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9월16일 대통령 내외는 호주 공항에 도착해서 케이시 총독, 고튼 수상 부처의 영접을 받은 후 공식 일정을 시작했고, 박근혜는 같은 또래의 안내인 겸 동행인이 있어 따로 움직일 기회가 있었다. 이동환 호주 및 뉴질랜드 겸임대사의 딸이었다. 그와 함께 비행기로 멜버른시를 구경하고, 1772년 호주를 처음 발견한 캘린 쿡의 기념관과 올림픽 경기장을 돌아보고, 성심학교와 더불어 가톨릭 계통인 세이크릿 걸즈 스쿨을 찾아 견학했다. 그는 처음의 해외여행임에도 현지 분위기에 잘 적응해서 영어도 부자연스럽지 않게 의사소통을 잘했으며, 시드니시를 한바퀴 돌아보고 와서는 어머니 육여사에게 상점의 물건들은 우리나라 수준과 비슷한데 포장이 잘 되었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호주의 언론들은 조석간으로 대통령 내외의 동정을 대서특필하면서 장녀 박근혜의 사진도 큼지막하게 실어 보도했다.

호주의 일정을 마친 대통령 일행은 9월19일 뉴질랜드 오하키 공항에 도착, 폴리트 총독 내외, 홀리오크 수상 내외의 영접을 받았다.

뉴질랜드에서 대통령 일행은 가장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존스턴 목장을 방문했다. 랜드로바 차를 타고 목장을 1시간 동안 돌아본 대통령은 면양털을 깎는 숙련공들의 솜씨를 세밀히 관찰하고, 목장 경영주로부터 목초의 재배와 저장 방법을 들으면서 한국과 뉴질랜드의 토질 비교 등에 관해 소상하게 물었다. 이어서 코마코라우 치즈 공장도 둘러보고 세부적인 작업 과정을 캐물으며 직접 메모를 하기도 했다.

한편 육영수 여사는 장녀 근혜가 늘 집에 갇혀 지내는 것이 안쓰러웠는데 이번 여행에서 퍽 좋은 경험을 얻어서 다행스럽고, 영어로 의사전달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기쁜 일이라며 대견스러워했다.

▲ 뉴질랜드 존스턴 목장을 시찰하는 박대통령 일행. 박근혜가 송아지를 만져보고 있다. 존스턴 목장에선 면양 4천 마리, 소 6백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김인만 서울포스트
40년 전 박근혜 모습이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정치인 박근혜에게 남다른 추억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때 최초의 해외여행 사진이 그에게 없었다고 한다. 2001년 한나라당 부총재 시절에 공식석상에서 주한 호주 므카티 대리대사를 만나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사진이 없어 아쉬워하자, 그가 호주 외무부에서 찾은 당시의 컬러사진 9장을 전달해 준 적도 있다.

그때 그 사진에 담겨 있는 17세 소녀의 추억은 축산왕국인 호주와 뉴질랜드로 우유의 개척항로를 떠났던 그 아버지 대통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축산도 식량이다.”
대통령은 말했다. 이는 한국인의 식생활 변화를 예고하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과연, 경제성장에 따른 식생활 변화는 한국인의 체형을 바꾸어 놓았다.
우유를 먹고 자란 청소년과 젊은층의 키가 부모 세대보다 훨씬 크다. 청년들의 평균 키는 북한 청년들보다 15센티나 크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쪽으로 오는 탈북 청년들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또래의 키와 비슷한 탈북 청년들을 보면 기가 막혀 앞날이 아득하고 착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이 그토록 격차를 벌여놓았을까.
잘 먹을 수 있고 없음의 차이다. 식량이 넉넉하고 모자람의 차이다. 또 중요한 것은 우유가 있고 없음의 차이다. 그리고 남북 지도자의 차이다.

한국에서는 축산이 안된다는 소리가 적지 않았다. 대통령 박정희는 그런 소리한 사람들을 상종하지 않았다. 직접 푸른 초원에서 우유가 생산되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었다. 국민이 우유를 먹게 만들었다. 정작 그 자신은 우유를 먹으면 설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건강을 위해 먹는 보약도 체질에 안맞아 먹지 않았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느끼한 음식과 질겅질겅 씹어먹는 고기가 입에 안맞았다. 지난날 못 먹어 배를 곯았던 세대가 거의 그러했다.

그가 가장 자신있게 하는 말이 있었다.
“가난에 대해선 내가 박사요, 박사.”
5.16혁명 직후, 군인이 어떻게 경제를 알아 국민을 먹여살릴 수 있겠는가라고 의구심을 품은 기업인들에게 그가 말했다. 그렇다. 경제는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가난으로부터 배운 것은 누구보다 많다고 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들과 고위층 인사들이 흔하게 갖고 있는 명예박사를 하나도 걸치지 않았다. ‘가난의 박사’에겐 명예박사라는 겉치레가 필요치 않았다.

오직 가난을 스승으로 알고 가난을 경배했다. 고난에 굴하지 않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도 잘살기 위해 꼭 해야 된다면 그것을 부둥켜안고 이루어내고야 마는 몸부림은 바로 가난으로부터의 힘이었다. 가난의 교훈이 국가경영 철학과 리더십을 만들어주었다.

우유 개척의 항로를 열었던 1968년에는 1.21사태와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으로 안보 불안과 시련이 적지 않았다. 분노를 억누르고 예비군을 창설했다. 분노를 억누르고 경부고속도로를 기공하고 포항제철을 설립했다. 그리고 미래를 향해 무섭게 달려간 그 힘은 바로 모질게도 서러운 가난의 폭발력이었다.

미래는 행복의 문을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고난과 불가능의 벽을 깨고 도전하고 개척하는 자에게만 전진의 길을 열어준다.

박근혜 전 대표의 호주와 뉴질랜드 방문은 단지 1968년의 17세 소녀로 돌아가는 추억여행만이 아니다.
개척과 전진의 검증된 역사를 동반한 미래를 향한 여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

▣ 출판편집인 동화작가 (김인만)
= 작가의 저작권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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