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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청주 강상촌 - 충렬사 입구 충신과 열녀의 마을 '여산송씨 정려각'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6/10/27 22:21:49)

▲ 송상현의 충렬사 입구, 청주 여산송씨 정려각 ⓒ20161027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일터에서 언덕배기에 사당같은 것이 보였다. 가을단풍이 들기 시작한 나무들이 제법 덩치가 큰 것으로 보아 보통의 마을같지는 않았다.

일부러 들를 시간적 여유가 없어 점심때 '뭔가'하고 입구까지 가 보았다. '忠烈祠'라는 간판이 먼저 든다. 충렬사는 충북기념물 제16호 청주충렬사(淸州 忠烈祠)라고 한다. [도로명: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상로18번길 44, 지번: 충북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178-1]

동래부사 송상현 충렬사(東萊府使宋象賢忠烈祠)는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직에서 순절한 송상현의 위패를 모신 사당. 광해군 2년(1610)에 창건하였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 송상현과 함께 임진왜란 때 충신 37분과 효열(孝烈) 4분을 봉안하고 있으며 지금의 건물은 1980년에 단장했다고 한다.

사당까지는 못갔고 대신 강상마을(전에는 청원군) 입구에 있는 청주 여산 송씨 정려각 등을 둘러 보았다. 리승만(이승만)대통령이 기념 식수한 느티나무가 건재하고 마을 켠에는 사과가 주렁주렁 익고 있다. 감나무 감도 먹음직스럽다.

정려각은 아래 충청북도 블로그 기자단 '푸른바다' 님 글로 대신.







충신과 열녀의 마을을 가다...청주 여산송씨 정려각(도 지정문화재)
2011.08.03 11:04

Posted by 충청북도 블로그 기자단 '푸른바다' 님 : http://blog.daum.net/cbkb21/16905395

청주 여산송씨 정려각(淸州 礪山宋氏 旌閭閣)이 충청북도 지정문화재(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정려각을 찾았다.


여산송씨 정려각은 가로수길 한켠에 자리한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자리하고 있다. 강상촌( 綱常村)이라는 마을의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삼강오상(三綱五常)의 정문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강상촌( 綱常村)’이라 줄여 부른다고 하니, 충신과 더불어 열녀와 효부의 산실인 듯 하다.

강상촌은 대대로 여산 송씨들의 집성촌이다. 마을 입구에 충렬공(忠烈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을 모신 충렬사(충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와 송상현 신도비,송상헌충렬각, 보호수, 밀양박씨(密陽朴氏)효열각, 연일정씨 효부각 등이 있다. 또 송상현의 두 소실이었던 한금섬과 이소사(李召史)의 정절을 함께 기려 세운 정려문도 있다

송상현은 1591년에 집의(執義)로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진되고 동래부사(東萊府使)에 임명되었다. 왜구의 침입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오는 가운데 임지에 도착하여 방비를 굳게 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이듬해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14일 부산진성을 침범한 왜군이 동래성으로 밀어닥쳤을 때 적군이 남문 밖에 목패(木牌)를 세우고는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으면 길을 빌려 달라” 하자,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고 목패에 글을 써서 항전할 뜻을 나타냈다.

그뒤 적군은 성을 포위하기 시작하고 15일에 전투가 전개되었다. 그는 군사를 이끌고 분전하였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당하자 갑옷 위에 관복을 입고 임금님이 계신 북쪽을 향해 절하고 단정히 앉은 채 왜병에게 피살되었다. 일본장수인 히라요시 등이 그의 충렬을 기려 동문 밖에 장사지내주었다 한다.

한금섬은 본래 함흥(咸興)의 기생으로 송상현의 첩이었다. 13세에 송상현을 따라 동래로 갔다가 임진왜란으로 동래성이 함락되고 동래부사 송상현이 순절할 때 곁에서 시중을 들다가 적에게 잡혀 3일간 항거한 끝에 순절했다.

이소사는 송상현의 소실로 임진왜란 때 동래에 있다가 왜적에게 잡혀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다. 일본에서 풍신수길에게 수청을 들라고 할 때 죽기를 각오하고 항거하자 적장도 그녀의 절의에 탄복하여 풀어주었다. 그후 귀국한 후에 송상현을 위하여 3년 복상(服喪)을 하였다고 한다.

송상현의 묘소는 선조 28년(1595) 동래에 있던 묘소를 지금 위치로 이장하고, 광해군 2년(1610)에 창건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980년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송상현의 충렬문과 그의 소실들의 정려문을 바라보며 좌측으로는 여산송씨 송현기의 부인인 밀양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55년에 세운 효열각이 있다. 밀양박씨의 효열각 편액에는 같은 효열로 "손상휘 처 채씨가 나라에서 요역과 전세 이외의 잡부금을 면제 받음.”라고 쓰여 있다. 잘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스치기가 쉽다.

충신과 열녀의 마을을 다녀오는데, 선조들의 나라를 위했던 충정에 마음 한켠이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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