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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폭염을 뒤로한 문학기행, "황순원과 이효석 그리고 김유정을 만나다!"
 이종납 칼럼니스트 (발행일: 2016/08/11 17:09:29)

[서울포스트 이종납 편집장=] 지난해 여름, 연일 37-8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으로 달궈지는 도시를 떠나 아내, 두 아이와 함께 난생처음으로 경기도를 거쳐 강원도로 이어지는 서정적인 문학가 황순원과 이효석 그리고 김유정의 문학세계를 톺아보기 위한 이른바 '문학여행'을 떠났다.

때는 8월7일. 출발 때부터 비가 올 듯 끄느름한 하늘이었다. 충남 아산에서 경기도 양평까지 짧지 않는 거리를 승용차로 달리면서 아이들에게 황순원의 역작 ‘소나기’ 얘기를 주고받으며 분위기에 젖어보려 애썼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에는 ‘황순원문학관’과 소나기마을이 있다. 소나기마을에 다다랐을 때 문제의 개울물이 보였다. 아내에게 “저곳이 소년과 소녀가 만났던 그 개울물?”이라고 말하는데 아니나다를까 소나기가 쏟아졌다. 소나기마을다운 환영인사였다. 아내는 게릴라성 폭우라 곧 그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나는 도무지 곧 개일 비는 아닐 것 같다고 장담했다.

쉴 만한 곳을 찾다가 마땅치 않아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우산 3개로 간이천막을 쳐놓고 물반빗물반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나는 아내에게 “물반빗물반으로 라면을 끓여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과는 인생을 논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소나기 속에서 진정한 인생이 나온다며 맞장구쳤다.

황순원 문학관 전경

경기도 양평, ‘황순원문학관’

소설가 황순원(1915-2000), 그는 1915년 평남 대동군 재경면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중학교와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했다. 경기도 광주, 대구, 부산 등지에서 피란 생활을 했다. 특별한 연고가 없는 경기도 양평군에 그의 문학관이 세워지게 된 것은 소설 소나기에 ‘어른들 말이, 내일 소녀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는 대목이 모티브가 됐다는 후문이다.

작가 황순원은 시와 소설의 세계를 넘나들며 서정성이 짙은 문학을 추구하며 ‘나의 꿈’을 비롯, ‘골동품’‘방가’ 등의 시를 발표했고 그의 역작 ‘소나기’를 비롯, ‘독짓는 늙은이’‘카인의 후예’‘일월’‘움직이는 성’ 등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을 선보여 현대소설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위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년과 소녀가 함께 비를 피했다는 수숫단에 착안해 수숫단 모양으로 지은 ‘황순원문학관’은 제1전시관, 제2전시관 그리고 카페테리아, 남푯불 영상실로 꾸며져 있다. 제1전시관과 제2전시관에서는 작가 황순원의 유품과 육필원고, 작품 감상 공간 등을 살펴 볼 수 있고 남푯불 영상관에서는 영상관에서 ‘소나기’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데 ‘소나기’에서 소녀가 떠난 이후 소년은 어찌 되었을까? 상상의 나래를 더하며 소녀와 소년이 재회하는 몽환적 스토리를 만날 수 있어 이채롭다.

작가 황순원은 일제 강점기로부터 이른바 근대화에 이르는 시기까지 그의 시와 소설 속에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도 역사성 결여라는 약점도 잘 극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학관을 나오자 거짓말같이 소나기가 개었다. 소년과 소녀가 만났던 징검다리는 폭우로 물에 잠겼지만 징검다리 위에서 개울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소년과 소녀가 만나는 모습이 그곳에서 오롯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이효석 문학관 입구

경기도 평창 ‘이효석문학관’

‘황순원문학관’에서 예상외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어 급히 가산 이효석의 고향 강원도 평창군으로 차를 몰았다. 아들녀석은 ‘메밀꽃 필 무렵’의 한 대목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를 연거푸 읊으며 “참 멋진 표현”이라며 입에 침이 마를새없이 읊조렸다.

저녁 7시즈음 봉평면에 위치한 ‘이효석 문학관’에 도착했다. 주변은 온통 메밀꽃이 아니라 메밀국수집이 즐비했다. 가산(可山) 이효석은 이곳 강원도 평창군 봉평 출생이다. 그가 태어난 생가는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어 아쉽지만 문학관을 통해 그의 문학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 듯하다.

‘이효석문학관’으로 오르는 입구 일주문 천정에는 그의 작품 한 대목이 씌어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그때 나는 딸애에게 “허생원이 동이가 자기 아들이란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하고 ‘메밀꽃필무렵’의 한 대목을 물었지만 딸애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아들녀석은 그것도 모르느냐며 딸애에게 핀잔을 주었다. 딸애는 “모를 수도 있지” 하며 여전히 당당한 표정이다.

지독한 가난에서 탈출하려다 혹독한 고독에 사로잡힌 작가로 알려진 이효석(1907-1942)은 1920년 경성제일고보에 입학하여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체홉 등의 러시아 소설을 탐독했는가 하면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했다. 경성제대 재학중이던 1928년 『조선지광』에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 ‘기우’, ‘깨뜨려지는 홍등’‘노령근해’‘북국사신’‘마작철학’ 등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옹호하는 글을 써왔다.

이후 이무영‧유치진‧정지용‧이상‧김기림‧이태준 등과 순수문학을 표방한 구인회를 결성한 것을 계기로 새로운 작품세계를 추구해 ‘돈(豚)’을 분수령으로 ‘분녀’‘산’‘들’‘메밀꽃 필 무렵’‘석류’‘화분’ 등을 썼다.

그의 소설속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애욕의 묘사와 더불어 이국취향, 즉 엑조티시즘이 소설의 주요 성향으로 손꼽힌다. 그 중에서도 그의 문학적 본령은 엑조티시즘에 있는데, 성과 자연의 자연스런 대비와 융합이 시적인 문체와 세련된 언어, 서정적인 분위기의 형성으로 작품화되어 나타난다. 이런 이유로 이효석은 한국의 1930년대 순수문학의 가장 빛나는 예술적 감동을 주는 소설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효석문학관’ 내부를 둘러보고 바깥으로 나오니 이효석 동상과 만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의 동상을 모델로 가족사진을 찍고 이곳 방문을 기념했다. 봉평마을의 명물 메밀국수와 메밀묵, 그리고 산채비빔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이곳에서 ‘흐뭇한’ 하룻밤을 묵었다.

김유정 문학촌 입구

강원도 춘천 ‘김유정문학관’

하룻밤 자고나니 잠시 생각이 바뀌었다. 강원도에 온 김에 정동진역이나 오죽헌 쪽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갈 길조차 만만치 않아 ‘김유정문학관’은 다음기회로 미루자고 만류했지만 아내는 ‘김유정역’엔 꼭 가보자고 해 아내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네이게이션을 춘천으로 찍고 ‘김유정문학관’을 향해 부지런히 달렸다.

강원도 춘천시 출신인 작가 김유정(1908-1937).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떠났으나 한 여인과의 사랑에 실패한 후 낙향, 고향 실레마을에 금병의숙을 세워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한때는 금광에 손을 대기도 했다. 1935년 단편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노다지’가 《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올랐고 그 후 구인회의 일원으로 창작활동을 벌였다.

그는 문단에 등단하던 해에 ‘금 따는 콩밭’‘떡’‘산골’‘만무방’‘봄봄’ 등을 발표했고, 그 이듬해‘산골 나그네’‘봄과 따라지’‘동백꽃’‘땡볕’‘따라지’ 등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김유정은 29세라는 한창 젊은 나이에 폐결핵에 걸린 지 몇 개 월 만에 사망했는데 그의 친구 필승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글이 읽는 이로 하여금 한 작가의 병마와 생활고로 인한 처절했던 비애가 가슴 먹먹하게 한다.

김유정은 죽기 11일 전에 그의 방안에 커튼을 치고 촛불을 켜놓고 필승에게 보내는 마지막 글을 남겼다.

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있다. 그리고 맹렬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달리 도리를 채리지 않으면 이 몸을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 담판이라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백원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하여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한 둬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번역해서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허거든 네가 적극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엎집어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쏙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딱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다우.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우.

그러나 김유정은 1937년 3월 29일 아침 6시 30분에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폐결핵. 향년 29세였다. 아내는 김유정의 마지막 유고가 된 ‘필승 前’을 읽고난 뒤 채 피어나지 못한 한 작가의 생애에 애잔한 감정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유정은 한 여인과의 사랑실패와 폐결핵 등으로 이어지는 짧은 생애동안 그가 펼친 문학세계는 본질적으로 희화적이면서도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흘렀다. 등장인물들의 우직하고 순진한 모습,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인 속어의 구사 등으로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유정문학관’을 나와 김유정역을 둘러봤다. 소설가의 이름을 따 지은 ‘김유정역’ 참 멋지고 낭만적이다. 그 기분에 어긋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명가닭갈비’에 들러 이곳의 명물 닭갈비를 맛보았다. 건강회복을 위해 닭30마리를 고아먹겠다던 김유정의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춘천닭갈비의 쫀득쫀득한 맛이 이번 여행의 의미를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난생처음으로 테마가 있는 문학기행,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이어지는 1박2일간의 문학기행을 끝내면서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흐뭇한 귀로에 올랐다.

황순원 문학관 입구에서

소년과 소녀가 만났던 개울가

황순원 일대기

이효석과 우리 가족

서정적이면서 유려한 문체가 돋보이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메밀밭의 때이른 코스모스

김유정의 생가

김유정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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