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홍제천 장의사지, 탕춘대지, 세검정, 홍지문
弘濟川 莊義寺址, 蕩春臺址, 洗劍亭, 弘智門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 우선, 국문법부터 언급하자. 전에도 지적했지만 예를 들어 '탕춘대지(蕩春臺址)'를 어떤 곳은 '탕춘대 터(蕩春臺 터)'로 현재 혼용한다. 언어 정립이 아직 안되었거나 외국인이라면 '탕춘대지'를 한 단어(한 명사)로 인식할 수 있다. '탕춘대가 있던 터'를 명사 로 보면 도무지 해석이 안된다. 국어가 고급 언어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두음법칙' 등 확 뜯어 고쳐야 할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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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제천따라 역사따라 ⓒ20140104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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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대에서 본 북한산 문수봉 과 보현봉(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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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 문수봉,보현봉을 뒤로 한 홍지문과 탕춘대성 ⓒ자료 |
북한산 남방 구기계곡 이 만든 홍제천은 위 쪽을 백사 이항복 의 별장 터였다고해서 백사실(白沙室)계곡이라고 부른다. 그 홍제천변을 따라 우리 조선 역사는 극적인 면도 있었다. 북한산으로 인해 풍류도 있는 곳, 궁에서 가까워 돈있는 권세가도 많고, 때론 사고(?)를 치고 바로 숨기 좋은 터가 되기도 했다. 때문에 유적지도 많다. 평창동(平倉洞)이라는 이름도 평창 터[平倉 : 북쪽 방위를 위한 총융청(總戎廳)의 군량창고, 신영동(新營洞)은 총융청이 새진지(新營)를 튼 곳]에서 유래했다.
개천 중간쯤인 곳 계곡물이 U자로 한바퀴 돈 지점에 탕춘대가 있었고 세검정도 있다. 그 부근에 대원군이 머무렀던 석파정 이라든가 춘원 이광수의 별장도 있다.
자료검색 등을 참고하여 탐방한 위쪽부터 나열하자.
1. 장의사 터(莊義寺 터)
장의사 터(서울 종로구 세검정로9길 1 (신영동))에는 보물 제235호인 '서울 장의사지 당간지주(서울 莊義寺址 幢竿支柱)'가 있다. 현 세검정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장의사 는 백제와의 싸움으로 황산(지금의 논산으로 추정)에서 전사한 신라의 장수 장춘랑과 파랑(罷郞)의 명복을 빌기 위해 신라 무열왕 6년(659)에 세웠다고 전한다.
2009년 11월 법보신문은 당간지주 설명이 '그냥 거기에 그런 것이 있다' 라는 투의 문화재청 자료에 '엉터리' 임을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에도 기록돼 있는 이 절은 삼국통일과정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과 함께 충신을 기린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정착되면서 고려는 물론 조선의 임금들까지 직접 다녀가기도 했다.
특히 조선 태조비인 신의왕후의 기신제가 이곳에서 봉행된 이후 왕실의 각별한 관심 속에 성종 때까지도 ‘법석(法席)’이 끊이질 않았던 유서 깊은 도량이다. 그러나 연산군 11년(1505) 돌연 “장의사를 없애고 그곳에 별궁을 짓고 화단을 쌓으라”는 명에 따라 하루아침에 폐사된 조선불교의 슬픈 운명을 여실히 보여주는 절터다. 그리고 이곳 당간지주는 1000년 장의사의 영욕을 보여주는 유일한 문화재다.]
장의사 바로 아래, 술과 색과 놀음을 즐겼던 연산군의 탕춘대가 있었던 관계로 탑골공원의 원각사가 없어진 것과 같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질펀하게 같이 논 사대부,유생들이 "전하, 중놈들 땜에 술맛 떨어집니다"고 했다면 끝나는 상황이다. 실제 조선때 유림들은 경치좋은 절을 유흥장으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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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검정초등학교 운동장에 남아 있다. ⓒ서울포스트 |
2. 탕춘대 터(蕩春臺 터)
3. 탕춘대(蕩春臺) : 종로구 신영동 136번지에 있던 돈대로서, 연산군 11년(1505) 이곳에 탕춘대를 마련하고 앞 냇가에 수각을 짓고 미희들과 놀았던 데서 유래된 이름.
영조 27년(1751) 가을에 영조는 탕춘대에 거둥하여 활쏘기로 무사를 뽑고, 29년(1753)에 탕춘중성(蕩春中城)을 새로 쌓고, 30년(1754)에 탕춘대를 고쳐 '연융대(鍊戎臺)'라 하고 홍상서(洪尙書)를 시켜 신영동 172번지 세검정 위 길가 바위에 '鍊戎臺'라고 새겼으나 세검정길 확장때 사라졌다. 탕춘대 터 에는 고급빌라 가 들어 서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탕춘대 는 숙종이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군사들의 휴식처로 세웠다? 사용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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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택이 들어 선 탕춘대 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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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탕춘대와 북한산 ⓒ서울포스트 |
3. 세검정(洗劍亭)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호.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이귀(李貴), 김류(金瑬) 그 밖의 서인(西人) 세력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光海君)을 폐위할 것을 의논하고 칼을 씻은 데서 이 이름이 생겼다.
'세검정'은 예로부터 널리 알려진 이름이어서 정자를 중심으로 한 그 일대, 즉 부암동, 홍지동, 신영동, 평창동을 통틀어 가리킨다.
세검정은 인조반정 때 검을 씻었다는 데서 유래했지만, 기록에는 1747년(영조 23년)에 세검정 이 지어졌고 194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77년 다시 세웠고 2008년 보수했다고 한다. 겸재 정선 의 세검정도 를 바탕했음(謙齊 鄭敾 洗劍亭圖).
여러 문헌을 종합하면 세검정 이란 이름이 붙여지기 전부터 정자가 있었고, 종이를 재활용하기 위해 사초 기초물을 씻는 장소(주변에 조지서 造紙署 터가 있음), 경치가 좋아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이용한 터가 있었다. 현 '洗劍亭'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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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검정 ⓒ서울포스트 |
4. 홍지문(弘智門)
홍지문 및 탕춘대성(弘智門및蕩春臺城) : 조선 시대, 서울 성곽과 북한산성의 방위 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1715년에 세운 문
'홍지문'은 1921년 대홍수에 수문과 함께 허물어져 방치된 것을 1977년에 50년전과 똑같이 오간수문 으로 복원하였다.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부른다. 전형적인 조선조 오간수문(五間水門, 오간대수문 五間大水門, 오간수대문 五間水大門)은 동대문 근방 청계천에 옛 터가 있다.
숙종이 친필로 '弘智門'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였으나, 현재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다.
'탕춘대성'은 숙종 44년(1718)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한 것으로, 현재 약 4km쯤 어른 키 높이정도가 계속되며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해 가만 놔둬야 훌륭한 사적이 된다. 명칭은 세검정 부근에 있던 탕춘대(蕩春臺)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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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지문 ⓒ서울포스트 |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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