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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 칸첸중가 분명히 올랐다" 셀파 '페마' 주장
 최성도 기자 (발행일: 2010/09/01 01:32:18)

오은선씨 칸첸중가 등정 여부를 놓고 진흙탕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칸첸중가를 같이 오른 셀파 '페마'가 "더는 위로 갈 곳이 없었다"며 분명히 정상을 밟았다고 말했다.

ⓒ자료사진
8.31일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같은 셀파 누르브가 주장한 셀파끼리 싸움도 없었다고 말했다.

작년 5월 오은선씨와 히말라야 칸첸중가를 셀파로 등반한 페마 치링(38)은 31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일년 전부터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얘기가 계속 있었는데 나를 포함해 누르부도 있었고 칸첸중가를 네 번이나 등정한 옹추도 있었다."고 말했다.

오씨가 의혹이 불거진 이후 옹추와 누르부는 다른 주장으로 인터뷰를 했었으나 페마는 그동안 언론접촉을 피하며 침묵으로 일관했으며 이번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가 처음이다.

'정상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우리한테는 정상에 네 번 등정한 친구(옹추)가 있다."며 "더는 올라갈 곳이 없었고 거기가 제일 꼭대기였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사진 진위에 대해서는 "정상 근처에 돌멩이, 바위가 있었는데 거기서 사진을 찍었다."며 "에베레스트만 해도 그렇고 사진은 시간에 따라 항상 다를 수 있다, 사진이 그렇다고 정상에 오르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정상이 아닌데 옹추가 정상이라고 우겨 싸웠다."는 누르부 주장에 대해 "거기서는 어떠한 말다툼이나 싸움도 없었다."고 잘라 말하며 "그 위로 갈 곳이 없었다. 캠프4에서 21시간이 넘게 걸렸다. 정상에서는 날씨가 안 좋아서 오래 있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수원대 깃발이 돌에 고정된 것에 대해서는 "그 깃발이 어떻게 거기에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거기가 바람이 얼마나 심하게 부는 곳인데 깃발이 날려가지 않고 있었겠느냐"고 반문하고 "이해가 안 된다."며 "거기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는지 (깃발 얘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서 물어보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이는 서울포스트가 깃발은 아무 증거가 못된다는 논단(보도)과 똑같은 말이다. - [논단] 오은선 칸첸중가 등정 인정돼야(2010/08/26)

누르부가 주장한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는 주장에 대해 자신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네팔 거주 페마는 1992년부터 히말라야 8천m급 8개 봉우리를 14차례 올랐고 칸첸중가는 오은선씨와 처음 올랐다.

(최성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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