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오은선은 칸첸중가 정상 밟았을 것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지난주 SBS(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많은 시청자들이 오은선씨가 칸첸중가(Kanchenjunga, Kinchinjunga 8,586m, 캉첸중가, 킨첸중가) 정상에 오르지않고, 가다가 7000-8000m쯤에서 대충 비슷한 사진 한 장 찍어 '정상정복'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SBS도 오씨가 오른 지점을 한마디도 보도하지 않아 더욱 그랬을 것이다.
오은선씨는 칸첸중가 8586m중 방송카메라에 마지막 잡힌 지점이 8400m, 김재수씨가 증거로 내민 수원대 깃발로 최소한 8566m부근(정상-20m)까지 오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문제가 된 것이 나머지 20여m다. 오은선은 정상은 밟았지만 악천후로 정상 7-8m 아래의 바위(위치는 노르웨이 산악인 욘 겡달도 확인)에서 찍은 사진을 제시했으나, 26일 한국산악연맹이 "오은선씨의 정상 사진에 나타난 지형은 칸첸중가 정상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아 등정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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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베레스트에서 내려다 본 캉첸중가와 마칼루 ⓒwww.edviesturs.com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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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첸중가 산(Kanchenjunga, Kinchinjunga 8,586m)은 네팔과 인도의 국경에 위치한 세계 제3봉. 8,450m가 넘는 네 개의 봉우리를 포함하여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여 '다섯 개의 눈의 보고'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Kangchenjunga. May 18, 1989 Ed's first 8,000 summit. ⓒwww.edviestur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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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선 대장이 2009년 5월 6일 칸첸중가 등정을 증명하기 위해 찍은 사진과 아래 논란이 있다는 내용 ⓒ자료사진 |
이날 회의에는 이인정 연맹 회장이 직접 회의를 참관하고 엄홍길(2000년 등정), 박영석(1999년), 한왕용(2002년), 김웅식(2001년), 김재수(2009년), 김창호(2010년) 씨 등이 참석해 입장을 정리했다고 한다.
이에 오은선측은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등정을 했다는 신념엔 변함이 없다. 다만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내 불찰도 있다, 연맹의 결정이 실망스러울 뿐이다, 사진은 정상 바로 아래에서 찍은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김재수씨 등 구성원의 편파성과 연맹 결정은 작은 단체 일부 의견일 뿐임을 지적하고 곧 추가 증거를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가장 먼저 오씨에 의혹을 제기한 산악인 김재수씨는 오씨가 2009년 5월 6일 칸첸중가에 다녀온 지 12일만인 18일 당시 고미영씨와 한 팀을 이뤄 그 정상에 올랐으며, 오은선팀과는 치열한 라이벌 관계였다. 필자가 보기에 당시 고미영씨 기세라면 '여성 최초' 타이틀은 고씨 차지가 유력해 보였다.
그런 고미영씨가 낭가파르바트 하산길에 맨 후미로 오다가 혼자 추락사했다는 것은 산 좋아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타이틀을 앞두고 있는 고미영씨를 내가 가이드했다면 전대원들이 고씨의 안전을 위해 자기가 먼저 희생될 각오가 있었어야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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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오른 설악산(대청봉-정상 표지가 분명하다)과 한라산(백록담-많은 사람과 눈보라 때문에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었다. 사진은 정상 부근). 한라산 사진은 정상이 아니기에 등반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임.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김재수씨를 포함한 한국산악연맹측은 지형의 상이성을 이유로 오씨 등정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하나, 외국산악인 사이트 중 위 '에드 비스터(Ed Viesturs 에드 위스터스)'의 칸첸중가 정상 부근 사진은 오씨가 찍은 배경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곳이다.
앞으로 오은선씨에 대한 논란은 타 산악단체에서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한국산악연맹은 같이 산을 타는 한 산악인에게 상식과 금기를 넘어 최초로, 전례없는 감정적 판단을 했을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후기 : 산도 좋아하는 필자는 2008년 미국인 에드 비스타 등정 기록과 함께 히말라야 14좌를 인터넷신문 서울포스트에 자세히 정리해 본 적이 있습니다.(아래 관련 기사) 고미영씨의 파키스탄 드리피카 초등도 실었었죠. 그만큼 자연의 아름다움과 외경스러움, 그리고 온난화로 녹아내리는 히말라야를 안타깝게 조명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내 학력, 경력에까지 딴지를 거는 등 인신공격을 했네요.(지웠지만) 나, 60년 전남 보성 생, 5000년 역사상 왕(박정희)이 설립한 유일한 고등학교 경북 '금오공고' 나왔습니다.(조선대 공과대 중퇴, 방송대 영문학과 재학) 우리들 사이이긴 하지만 소위 '왕립학교'라고 불렀죠. 그 학교에서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법, 가난한 자와 약자와 더불어 사는 법, 정의편에 서는 법 등을 배웠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301학군단소속으로 군사훈련도 마스터했습니다. 상무대 육군보병학교 중사전역(80년 5·18계엄경계군), 수협중앙회를 거쳐 지금은 서울포스트 발행인. 소위 명문대와 견줘 실력에서 뒤진다지만 다른 모든 것에서 그들에 손색없도록 교육 받아왔습니다. 됐습니까?]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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