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에 마지노선이 없다
소고기 뼈 얘기가 날마다 지면에 오른가 싶더니 소부터 넘어가기 시작해서 참여정부의 중장기 정책과제에 불과했던 한미FTA가 마침내 타결되었다.
1등 공신은 노 대통령이고 뒤를 이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권오규 경제부총리, 윤대희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김종훈 수석 대표 등이다. 간추린 5인방의 성과에 대해 보수층은 환영의 일색으로 그동안 줄곧 노 대통령에 적의를 보였던 전여옥 의원도 "이제는 대통령을 도와 주겠다"고 공언했다.
작년까지만해도 금방이라도 하야할 것 같던 대통령이 레임덕이 올 시기에 대박을 터뜨려 향후 대선까지 막판 뚝심을 보여줄 발판을 튼튼하게 마련했다. FTA반대를 위해 단식에 들어간 사람들은 대통령의 큰 틀 속의 비전에 묻혀 아직 단식을 하고 있는지 굶어 죽었는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일본은 멕시코와의 FTA체결로 미-멕시코와의 관계로 인해 간적접인 체결국이나 다름없지만 미국과 직거래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나라는 전세계 10여 개 국 중 동아시아에서는 싱가폴 다음으로 우리다. 구한말 서구 열강의 문호개방 압력에 굴하지 않고 쇄국으로 버티다가 일본에 덜미를 잡힌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려는듯 일본과 중국을 앞질러 'FREE'를 선언한 결과다.
돌이켜보면 을사조약도 역사의 흐름이요, 누군가가 소위 총대를 메고 나서지 않으면 아니될 상황이었다. 일본과의 조약으로 조선의 미래가 더 나을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는 현재의 FTA찬반만큼 뜨거웠을 것이다. 국가를 되찾았기에 이완용을 포함한 5인을 乙巳五敵으로 부른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이 눈부신 근대화를 이뤘다 하여도.
을사조약이나 한미FTA가 세계화의 대세라면 강제합방 100여 년이 지난 2007년, 5인방이 체결해서 앞으로 100년, 200년이 갈지도 모를 협정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우선 노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에서 보자면 자동차, 섬유, 전자 등 우리의 주력 수출상품은 물론, 신발, 고무, 가죽과 같은 중소기업 제품들도 경쟁국가에 비해 가격우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의료, 교육 분야는 당장 큰 영향이 없으며 가장 타격이 클 분야는 농업과 제약이다.
담화 내용을 종합하면 수출기업이 크게 돈을 벌고 고용이 증대되며, 수입으로 인해 손실을 받은 부분은 국가가 보전해 준다는 것. 홍익인간의 실현이요, 사해동포주의의 발현이다. 장사가 잘 된 부자집의 돈을 거둬 할 일없어 쫄쫄 굶는 서민에 나눠준다는 홍길동이나 임꺽정이나 장길산의 이념이다.
그런데 보자. 이 정부 들어서 빈부격차는 더 심해졌고 성장이냐 분배냐 논쟁만 분분했지 부는 갈수록 편중돼 서민의 기반이 송두리채 흔들리고 있다. 각종 세금 보험료의 끊임없는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가부채가 계속 늘어나기에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다는 얘기인가.
이런 점을 지적하면 "잘못 된 것이 뭐가 있냐, 국민들이 뭐가 얼마나 못살아졌느냐, 증거를 대봐라"고 오히려 윽박지르는 머저리 관료들이 판을 치고 있다.
생명을 저당잡힌 한미FTA
당장의 의약품이 개방되면 고령화에 진입하는 우리 국민에게 가장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약국을 접수한 미국산 의약품은 진료시장 개방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의료시스템을 의료용역(행위)만 제공하는 한국인(의사) 하드웨어에 미국산 소프트웨어(약)의 결합으로 나타낼 것이다.
생명과 직결된 순환계와 내분비계통의 시장을 내주고 껍데기만 잘 봉합하는 외과 의사만 있다고 가정해 보자. 현재 우리 의료체계는 약국이 병원에 완전 종속돼 병원이 약국 하나 죽이고 살리기는 일도 아닌데 이제는 뒤집힐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또한 이 고정비와 같은 의료비용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이는 가격변동과 시장의 질서가 불안정한 공산품 수출로 얻은 가시적인 이익과는 비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즉, 먹고 치료하는 것이 상수라면 기계장비는 변수이기에 헐값으로 수출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1,2차 산업과 IT분야의 수출을 늘리기 위하여 최첨단 생명공학 분야를 미국에 내준 결과가 이번 FTA다.
정부는 광범위한 반발과 명분이 예상되는 쌀 개방만을 막는다고 했다. 면적이나 종사자, 여론 등으로 봐서 가장 효과적인 대국민 설득이었다. 미국은 한반도 통일 이후까지 생각하고 이번 협상에 임했을 것이며 우리가 쌀에 집착하는 사이 의약 시장을 치밀하게 분석했을 것이다. 한국인 1인당 년간 쌀값이 고작 30만원, 미국쌀이 세계를 독점할 수 없는 미래라면 우리는 쌀 하나를 위해서 너무 많은 희생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거리에서 그들은 왜 FTA를 그토록 반대했는가. 아직까지 국제적인 진행상 특별히 맺을 이유도, 서두를 필요도 아직 없는 그 협정을 '한국의 쌀만은 절대로 지켜 줄께'라는 말해 다 속아 넘어간 결과다. 우리와 전혀 산업구조가 다른 싱가폴이나 멕시코를 우회함으로써 미국과 직거래 위험을 헤지한 일본을 본다면 이건 분명 무모한 협정이었다. 게다가 대미 교역 의존도도 아무리 높다지만 그 계수 면면에서 일본산의 핵심부품 값이나 수입원자재값을 제외하면 순수 국산 교역량은 훨씬 줄어든 현실인데 말이다.
문득 어렸을 때 친구들간 오갔던 농(弄)이 생각난다. - 자기를 실컷 미화하며 친구들 귀를 쏙 빼놓다가 얘기 말미에 '저 산으로 소(牛)가 넘어가더라'는 말 - '너희들은 모두 내 말에 소가(속아) 넘어갔다'는 뜻인데, 한참 생각하다가 웃었던 적이 있다.
남한이 그동안 미와 부시에게 잃었던 점수를 한방에 만회할 심산으로 무리하게 이끌어 낸 한미FTA라면 미래의 역사에서 현재의 5인방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우리는 먹는 것(쌀)에만 신경 썼지 사는 것(약)에는 너무 소홀히 한 듯 싶다. 을사조약처럼 결과를 예측할 수만 있다면 이번 협정은 대세론으로 혹은 양비론으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닐 것이다.
(양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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