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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대통령의 애창곡
박정희 테마 에세이 中
 김인만 작가 (발행일: 2008/04/24 12:58:42)

술시(戌時)는 하루 일을 끝낸 고단함이 있는가 하면 해방의 자유가 있다. 뱃속은 출출해 술꾼들은 술맛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이때 회식을 하고 여흥으로 노래 한자리씩 부르는 것은 우리네의 풍속이다. 대통령 박정희도 넥타이 풀고 퍼더버리고 앉아 먹고 마시고 노래하는 술시의 여흥을 꽤 좋아했다.

어느 하루 그가 인천 해안에서 해군의 대간첩작전 시범훈련을 참관하고 저녁나절에 주변 일행과 함께 회식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군 지휘관들과 내무부장관, 그리고 청와대 참모진들이 모시고 갔다. 저녁을 먹고 술잔이 돌기 시작하자,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이 흥취를 부추긴다.

“자, 노래 한곡씩 들어 봅시다.”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사회자로 나서고,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해군 참모총장이 대통령의 애창곡인 ‘황성옛터’를 먼저 부르는 게 아닌가. 졸지에 애창곡을 잃어버린 대통령을 염려해 사회자가 귓속말을 했다.
“아무 거나 선창하시면 우리가 따라 부르겠습니다.”
“왜 이래? 또 있어. 내가 그렇게 시시한 줄 알아?”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노래 한곡을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무난하게 불렀다.
고복수의 ‘짝사랑’이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1971년 가을, 인천의 해안가 호텔에서 있었던 일이다.

장모 이경령 여사의 팔순 잔치에서 노래하는 박대통령. 고음 부분에서 목소리가 잘 안나와 쑥스럽게 웃고 있다. 좌측은 당시 17세의 아들 박지만. 1975년 1월22일.
이 박정희의 ‘짝사랑’은 30년을 구비구비 흘러 2004년, 그가 가고 없는 딴세상의 젊은 누리꾼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노래하는 옛 대통령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급속히 퍼지자 이를 신문과 TV가 보도하고, 급기야는 노무현 정부의 행자부장관이 정치적 저의가 의심스럽다면서 동영상의 유포 경위를 조사해 조처해줄 것을 관계부처에 요구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는 국정홍보처의 국가기록영상관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가족과 함께’라는 제목의 34분짜리 영상물로, 그 원본이 행정자치부 소속기관인 국가기록원에 35밀리 컬러 필름으로 소장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망신살 뻗친 행자부장관이 덩달아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노래 ‘짝사랑’. 이 노래의 원본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 ‘청와대의 하루(가족과 함께)-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고 육영수여사의 모친 이경령여사의 80회 생신하례 및 친지들의 축하노래’라는 파일로 올라 있다.

화제의 동영상은 대통령 박정희가 부인을 잃은지 5개월이 지난 1975년 1월 하순에 있었던 이경령 장모의 팔순 잔치 장면을 찍은 것이다.
장소는 대통령 부인 육영수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청와대 본관 1층 식당으로, 홀아비 대통령이 쓸쓸한 저녁 시간에 퇴근 못한 비서관들과 막걸리잔을 놓고 국정 현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다.
그곳에 대통령의 일가친척이 모여 팔순 잔치를 열었던 것인데, 이경령 장모가 딸을 잃은 후 실어증에 걸려 있어 즐거운 자리가 못되었다. 식사를 하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며 무반주로 노래도 부르는 가운데 박정희는 짐짓 유쾌한 표정으로 농담도 하면서 장모를 위로하려고 애를 썼다.

당시 17세의 아들 박지만이 ‘새마을노래’를 부르다가 잘 안되어 머리를 긁적이자, 23세였던 장녀 박근혜가 같은 노래를 가곡 부르듯 두 손을 모은 자세로 박자와 음정 모두 잘 맞게 불렀지만 교과서적이라 흥이 나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부른 노래가 역시 ‘짝사랑’이었다. 그는 고음으로 올라가는 부분에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쑥스럽게 웃으면서 1절을 겨우 마쳤다.

그랬는데 이 장면이 30년 동안 묻혀 있다가 대통령 관련 국가기록물로 공개되어 누리꾼들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누리꾼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무섭고 독한 줄만 알았던 대통령의 숫기없는, 이웃 아저씨 같은 수더분한 모습이었다. 누리꾼들이 이 동영상에 ‘박대통령도 한 곡조 뽑습니다’, ‘노래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님’ 등의 제목을 붙여 수십 군데의 인터넷 공간에 퍼나르고 정감있는 댓글을 줄줄이 올려붙이면서 때아닌 ‘짝사랑’ 선풍이 불었던 것이다.

애창곡이 전유물은 아니다.
‘짝사랑’ 노래를 가지고 대통령과 맞선 사람이 있다. 시인 박재삼이다. 그가 동료 시인 박목월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짝사랑’으로 대통령과 한판 노래 대결을 벌였다.

박목월과 박재삼, 한국적 정한(情恨)의 두 시인은 대통령 부인 육영수의 전기를 집필했다. 대통령 부인이 타계한 것이 1974년이고 책은 1976년에 나왔다(三中堂, <陸英修 女史>). 박목월 저서로 되어 있는 책이지만 청와대에서 받아온 자료를 가지고 두 사람이 함께 썼다는 것을 문단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꽤 알고 있다.

그 인연으로 청와대에서 밥 먹고 술도 한잔 걸친 김에 박재삼이 대통령 박정희의 애창곡에 도전한 것이다. 중간의 박목월이 심사를 맡았다. 물론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박정희, 박재삼 모두 구성진 가락을 멋들어지게 꺾어 넘기는 노래 솜씨가 못되고, 그보다는 소탈하고 촌티가 나면서도 어수룩한 체하는 능청이 제법 어울릴 만한 두 사람이었다.

-잃어진 그 사랑이 나를 울립니다….

‘짝사랑’ 노래에는 홀아비 대통령의 목이 메일 것 같은 대목도 있지만 박정희, 박목월, 박재삼의 ‘3박자’가 흥겨웁게 어울린 자리였다고 한다.

왜 흥겨운 자리에서 애절한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슬프고 곡절 많은 세월을 살아왔고, 그런 노래를 불렀다. 노래에는 가슴 속에 깔린 아픔과 슬픔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걷어올리는 열정과 열망이 있다. 애절한 노래가 힘차고 뜨거운 삶의 가락을 풀어내는 것이다.

청와대를 거쳐간 다른 대통령들은 어떤 노래를 즐겨 불렀을까.
최규하는 노래를 즐기는 편이 아니었으나 ‘비 내리는 고모령’을 가끔 불렀고, 전두환은 애창곡인 ‘방랑시인 김삿갓’을 ‘…전삿갓’으로 바꿔 불러 자신의 백담사 생활을 자조적으로 풍자했다고 한다. 노태우는 ‘베사메무쵸’를 즐겨 불렀으며, 김영삼과 김대중은 여흥의 자리에서 엄숙하게 ‘선구자’를 자주 불렀다고 한다. 노무현의 애창곡은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로 시작하는 ‘작은 연인들’이라 한다.
지난날 많이 불렀던 옛노래들이다.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하지만, 저마다의 애창곡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변함없는 사랑이 검증된 노래들이다. 과거로부터 세월의 너울을 타고 오늘로 넘어오는 그 가락에 우리 인생의 궤적이 있다. (*)


▣ 출판편집인 동화작가 (김인만)
= 작가의 저작권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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