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사태에 가장 많이 놀란 사람들은 티베트인이나 국제 인권단체가 아니라 바로 중국인 자신들이다.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중국인들을 공격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목격한 본토의 중국인들은 치를 떨었다. 티베트의 자치나 독립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감히 중국 공산당을 공격 목표로 삼은 일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52세의 한 여성 공무원은 중국정부가 티베트 폭력사태를 초기에 진압하지 못할 정도로 허약하고 비겁하게 행동한데 분통을 터뜨렸다.

“달라이 라마가 중국을 분열시키려 한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폭도들을 반드시 소탕해야 한다.” 중국 공안당국은 티베트 소요를 진압하려 무진 애를 썼다. 공산당은 사태를 진압할 결의가 있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소요사태를 중국에 불리하게 보도하는 외국 언론을 규탄했다. 달라이 라마를 테러를 조장하는 ‘자칼“로 규정했다. 그리고 티베트의 분리주의에 맞서 ”인민의 전쟁“(People's War)을 수행할 것을 촉구했다.

이런 대응에 외부세계가 호들갑을 떨건 말건 공산당의 관심은 한 가지 뿐이다. 중국사회에 깊숙이 흐르고 있는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것이다. 한(漢)족의 자존심과 국가안보를 들먹이면서 공산당은 언론을 검열하고 프로파간다를 강화했다. 티베트인의 고통이나 불만을 알리려는 일체의 시도를 차단했다. 한족의 고향 중국을 음해하는 모든 획책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분명히 했다. 중국의 태도를 ’문화혁명‘의 악몽에 비유한 3월 31일자 뉴욕타임스의 분석이 흥미롭다.

이런 식으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일에는 모험이 따른다. 베이징 올림픽이 5개월도 채 안 남은 시점에서 언론을 탄압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지금은 외부세계에 환영메시지를 보내야할 순간이건만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웹사이트에는 외국 언론을 비난하는 메시지가 홍수를 이루고 베이징 주재 일부 외국 매체에는 상식을 초월하는 욕설이 쇄도한다.

중국의 국영 매체들은 또한 티베트에서 화를 당하고 있는 한족의 모습과 참혹하게 죽은 희생자들에 관한 보도를 홍수처럼 내보내면서도 티베트인들의 고통은 외면했다. 비평가들은 중국 정부가 인종적 증오를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국에 대한 중국의 민족주의 표출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특히 일본에 대해 그랬다. 그러나 티베트 사태를 둘러싼 최근 상황은 이곳이 중국의 일부인 만큼 인종에 대한 긴장은 더 날카롭다. 한 반체제 인사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진실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에 관한 언어에 충격을 받았다는 이 인사는 공산당이 거론하는 “인민의 전쟁”은 바로 문화혁명 당시의 구호라고 지적했다.

분석가들은 공산당이 어떻게 민족주의를 부추기며 대중은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놓고 자주 토론을 벌였다. 이 토론의 결과에 따르면 다르푸르, 기후변화, 공기오염, 인권 등에 대한 모든 공격은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음모로 인식된다.

그러나 티베트 소요는 중국 민족주의 핵심에 있는 분리주의에 대한 원초적 신경을 건들임으로써 발생했다. 티베트는 평소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슈였다. 특히 대만과 비교해서 그렇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시도로 티베트 사태를 바라본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3월 30일 “라싸 폭력사태를 달라이 라마 일당이 조직했음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제보자의 말을 인용, “달라이 라마 일당”이 “위대한 티베트”를 건설할 목적으로 시위를 조직하고 선동했음을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이 보도는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채화된 성화의 전달을 일부 시위대가 방해했다는 뉴스가 전해진 바로 그날 나왔다.

일단의 시위대는 경찰의 철통같은 경계망을 뚫고 항의 플래카드를 흔들면서 “자유 티베트”를 외쳤다. 이들은 성화가 그리그 스타디움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100 미터의 봉송을 저지했다. 경찰은 시위자 15명 중 10명을 연행, 경찰본부로 데려갔다. 성화는 3월 31일 베이징에 도착한 뒤 5대륙과 히말라야 산록을 거치는 13만 7천 Km를 달려 130일 만인 8월 8일 베이징의 국립 스타디움 개막식에 도착한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긴 여정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30일 베이징에서 달라이 라마와 대화하겠다는 정부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조건이 붙었다.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독립 요구를 포기하고 티베트와 대만이 중국에서 분리될 수 없는 땅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현재 티베트 소요에 대한 중국인들의 분노는 주로 인터넷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중국 매체들은 이 사태가 해외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만일 부시가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미 의회가 어떤 조치를 취한다면 중국 인민들도 뭔가를 할 것이다” 2005년 대규모 반일 시위를 주도했던 한 중국인의 말이다. 중국 인터넷 사이트는 이미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과 달라이 라마가 만난 것을 규탄하는 항의문으로 가득 찼다. 미 의회가 무슨 법을 통과시키면 중국 이민들이 거리로 나갈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중국 공산당은 올림픽을 통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할 작정이다. 첫째는 현대화 되고 자신감 넘치고 그리고 누구도 위협하지 않는 신생 강대국 이미지를 세계에 부각시키고 둘째 공산당의 집권기반을 강화하는 것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불평등이 없는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천명해왔다. 점증하는 외환 보유고와 더불어 중국의 해외 이미지는 높아지고 있으며 북한 핵 문제와 같은 주요 외교문제에서 중국의 외교력 또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티베트 사태는 암울했던 과거로 퇴행하는 중국 공산당 리더십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티베트의 승려들은 강제 “애국교육”을 받고 있고 중국 서부 지역에서는 광범위한 검거선풍이 불고 있다. 총리를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은 달라이 라마가 올림픽을 저지하려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 동아시아 담당 국무관보였으며 "허약한 강대국 중국“(China: Fragile Superpower)의 저자인 수잔 셔크는 지금 중국이 사용하는 언어들은 문화혁명 시대의 허장성세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이런 작태는 강력한 리더십의 모습일 수는 없다고 그는 단정한다.

지난 주 일단의 중국 지식인들은 티베트인들의 종교 및 언론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강력한 대정부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을 초안한 한 반정부 인사는 달라이 라마에 대한 공산당의 공격과 언론 검열은 1989년 텐안먼(天安門) 사태 때 사용한 수법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금 프로파간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는 그 이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주의 이념이 쇠퇴한 자리에 들어선 민족주의는 사실상 국가 종교가 되었고 경제발전은 최우선 국가 과제가 되었다.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대학의 티베트 전문가 디비에쉬 아난드에 의하면 중국의 민족주의는 중국 혁명가 쑨원(孫文)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한(漢), 만주(滿洲), 후이(回), 몽고, 테베트를 중국의 “다섯 손가락”(五肢)으로 불렀다. 한족은 현재 중국 인구의 92%를 차지하고 있으나 중국 지도자들은 오지 중 하나라도 없으면 온전한 중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산당은 민족주의를 중국을 하나로 묶는 이데올로기로 생각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티베트 소요를 그들의 기본적 정체성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국가에 대한 공격인 동시에 중국의 존재의미에 공격으로 인식된다. 티베트 시위자들에 대해 서방이 동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중국 민족주의에 불을 지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며 그 분노는 서방 매체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난다.

중국의 뉴스 논평자들은 서방 언론이 티베트 폭동에서 생명과 재산을 잃은 한족보다는 티베트인들에게 더 동정적이라고 비난한다. 해외의 중국인들은 티베트인을 구타하는 중국인들이 본토에서 투입된 것이라는 해외 언론보도에 분통을 터뜨린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런 보도태도를 가리켜 “못된 짓의 표본”이라고 비난했다. 정부는 서방기자들의 티베트 취재 자체를 금지했다.

당 지도자들은 민족주의의 위험을 2005년에 실감했다. 당시 정부는 반일시위를 뒤에서 조장했다가 도를 넘자 이를 진정시키느라 혼이 났다.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지금도 반일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울러 민족주의 또한 깊은 뿌리를 내려 경우에 따라서는 중국을 분열시킬 수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중국인들이 공감하는 것은 중국이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티베트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아는 중국인은 많지 않다. 이들은 그저 티베트는 중국의 시혜로 존재하는 자치구 정도로 알고 있다. 심지어 일부 중국인들은 티베트에 도로, 인프라 등을 건설해 준 은혜를 티베트인들이 망각하고 있다고 믿는다. 중국인들은 모든 형태의 종교를 용인하고 있는데도 티베트인들은 이를 이용만 한다고 욕하기도 한다.

외부 정보에 자유롭게 접촉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이 주로 국영 매체로부터 티베트 정보를 전해듣다보니 편견을 가질 수 있다. 한 중국 여성 공무원은 달라이 라마와 대화하라는 부시의 제의를 거부한 후진타오 주석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티베트의 살인자들은 반드시 처형돼야 한다.”고 말하는 중국인도 많다.

[편집=서울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