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6.10.26 (월)
 http://www.seoulpost.co.kr/news/6847
[연재] 숭례문, 잃은 것과 찾은 것
박정희 테마 에세이 中
 김인만 작가 (발행일: 2008/02/14 18:27:33)

숭례문을 잃은 비통한 심정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우리는 숭례문을 잃었지만, 잃었다가 되찾은 것도 있다. 숭례문을 잃으면서 절실히 깨우친 것, 그것은 이 나라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이다. 많은 사람들이 숭례문의 검은 잔해를 보며 눈물짓고 두손 모아 엎드려 용서를 비는 것은 우리 세태의 무관심, 국가관리의 허술함으로 숭례문을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과 스스로 매질을 하고 싶은 자책감, 역사와 조상 앞의 예를 숭상할 줄 몰랐던 죄스러움의 분출이다.

1963년 5월 1년10개월 동안의 중수 공사를 끝내고 새 모습을 드러낸 숭례문. ⓒ김인만 서울포스트

숭례문은 근현대사의 영욕이 점철된 역사의 문이고, 서울의 문이다. 그래서 박정희 혁명정부는 6.25때 훼손된 채 방치되어 있던 숭례문을 가장 먼저 보수 중건했다. 지구촌 1백 수십개 나라의 꽁무니에 붙어 있던 후진국 시절에 외국 원조에 의존해 근근히 꾸려가던 나라살림을 바꾸어 자립경제의 몸부림을 시작하면서 금쪽같은 돈으로 단장을 해놓았었다.

이 숭례문은 남대문이라는 또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식민지 시절에 일제에 의해 격하된 이름이라 해서인지 언론이 일제히 숭례문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남대문을 본래 이름인 숭례문으로 부르기로 공식화한 것이 10여년 전이라고 하는데 대중에게는 오랜 세월 동안 굳어진 남대문이 익숙하다. 남대문시장, 남대문경찰서도 그대로다. 예컨대 문화재라는 말 또한 일제시대의 소산이니 일일이 역사 감정의 얽힘을 피하고자 한다면 한이 없다. 그냥 차별없이 기왕 굳어진 우리말로 아울러 무방할 것이다.

대통령으로부터 시골 할머니까지 누구나 차별없이 마중하고 배웅하는 얼굴이 남대문이고, 그 옆으로는 하루에도 수십만대의 차량이 오가고 밑으로는 지하철이 달리고 있다. 그 일대는 남대문시장을 비롯해서 서민의 애환이 갈마드는 민생 현장이며, 그곳을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첩 속 추억이기도 하다.

가수 이미자는 남대문 과일장수의 딸로 자라 국민가수로 우뚝 솟았고, 널리 사랑을 받은 그 호소력 있는 한국적 정한(情恨)의 노래를 후세에 길이 전할 것이다.
현대 창업주 정주영은 건설현장으로 달려가기 위해 통금해제와 더불어 집을 나서면 남대문 일대에서 새벽장사할 물건을 리어카에 싣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부부의 모습을 볼 때마다 한없는 존경심과 유대감을 느끼며 무한한 힘을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대한항공의 조중훈은 일찍이 한진상사라는 간판으로 미군 군수물자 수송업을 할 때 창고에 보관중이던 군복 수만달러어치를 도둑맞고 망연자실했다가 남대문시장의 돈을 빌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또 있다. 한 기업인은 남대문시장에서 막노동자들과 함께 꿀꿀이죽을 먹으면서 한끼 식사에 매달리는 불쌍한 현실을 체험하고 일본에서 먹어본 ‘꼬부랑 국수’를 생각했다. 그는 그것이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대체 수단임을 강조하여 정부로부터 5만달러를 빌어 라면공장을 세웠고,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은 그렇게 생산되었다.

남대문시장 풍경. 1972년 4월. ⓒ김인만 서울포스트

남대문 옆 무역회관 꼭대기에는 수출입국의 기치를 올린 박정희 정부의 수출실적을 매일매일 나타내는 게시판이 붙어 있었다. 야생마와 같은 기업인들에 의해 수출실적은 껑충껑충 뛰어오르고, 남대문시장은 새벽부터 밤 늦도록 흥청거림이 멈출 줄을 몰랐다.
당시 육영수 여사는 세 자녀의 옷을 꼭 남대문시장에서 사 입혔으며, 진솔한 민심을 듣기 위해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을 자주 찾아갔다.
그러고 보면 남대문은 ‘한강의 기적’을 지켜본 기념물이기도 했다.

추억 속의 이름 남대문이라 해도 좋고, 이제는 역사와 조상에 대한 예를 숭상할 줄 아는 후손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숭례문이라 한다면 더 좋은 일이다.
애국애족과 고유문화의 태깔, 민족적 자긍심 등은 글로벌 시대에 대한 방해 개념이 아니다. 쉐익스피어는 철저히 영국적이고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의 자존심이다. 전란중에 망실되었다가 되찾은 베토벤의 유품은 독일 문화예술의 찬연한 꽃이다. 그러하듯 가장 한국적인 것은 가장 세계적인 것이기도 하다.

숭례문을 잃은 심정은 참담하지만 이제는 헤쳐나와야 한다. 우리는 뼈저린 깨달음을 얻었고, 무심한 세월 속에 잃어버렸던 우리것의 소중함과 사랑을 되찾은 것을 위안과 교훈으로 삼을 일이다.
사라진 숭례문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서 선연한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다. 숭례문의 모습, 푸른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펴는 듯한 지붕과 처마의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과 거기에 스쳐간 6백년의 바람, 조상의 숨결이 우리 가슴을 아프게 관통하며 살아오고 있다.
뜨거운 사랑으로 그 자리에 옛모습 그대로 재현되리라는 믿음과 더불어 새로운 꿈을 품으면서 아픔을 지워가야 할 때다. (*)


▣ 출판편집인 동화작가 (김인만)
= 작가의 저작권이 있는 글입니다.

[NEWStory makes History - 서울포스트.seoulpost.co.kr]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게시판모음

서울포스트
 
뉴스소개 | 광고제휴 | 이메일구독 | 공지알림 | 개인정보보호 | 기사제보

신문등록: 서울 아00174호[2006.2.16, 발행일:2005.12.23]. 발행인·편집인: 양기용.
서울시 중랑구 겸재로 49길 40. Tel: (02)433-4763. seoulpost@naver.com; seoulpostonline@kakao.com
Copyright ⓒ2005 The Seoul Post. Some rights reserved. 청소년보호책임자: 양기용.
서울포스트 자체기사는 상업목적외에 전재·복사·배포를 허용합니다.
Powered by Newsbui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