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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는 럭키맨이 아니야!
박정희 테마 에세이 中
 김인만 작가 (발행일: 2007/12/18 10:56:45)

박정희와 마르코스는 1917년생 동갑이다.
1917년은 미국이 3년째 계속되던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을 하고, 러시아가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소련으로 탈바꿈함으로써 미국과 소련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는 원년의 의미가 있다. 그로부터 아시아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박정희와 마르코스이다. 두 사람은 새카만 얼굴, 카랑카랑한 목소리에다 다부진 걸음걸이까지 비슷했고, 황소 고집에다 육영수와 이멜다 부인들의 키가 큰 것까지 기막힐 정도로 닮은 점이 세인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 박정희와 마르코스의 악수. 1966년 10월24일 베트남 참전 7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마닐라공항에 도착한 박대통령을 마르코스가 영접하고 있다. 국적기가 한대 없어 노스웨스트 전세기에 태극마크를 단 것이 당시 한국의 경제 사정을 말해주고 있다. ⓒ김인만 서울포스트

박정희에 대한 마르코스의 우월감은 대단했다.
1960년대 중반 박정희는 동남아 순방길에 필리핀에 가려 했지만 그쪽이 냉담하게 거부해 가지 못했다. 베트남 참전국회담이 마닐라에서 열렸을 때는 한국 대통령에게 배정된 방이 미국무장관의 방보다도 작았다. 일찍이 필리핀은 한국전쟁 때 군대를 보내주어 우리를 도왔고, 5.16군사혁명이 일어난 1961년에 필리핀은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82달러)보다 두배나 되었으며 마르코스 시대를 맞아서는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였다.

필리핀은 또 월등한 외교력의 소유자인 로물로 외무장관이 있어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도 컸다. 그는 명예박사 학위가 80여개나 되는 국제적인 VIP였다. 그 로물로가 1974년 한국에 와서 청와대의 오찬 대접을 받은 이야기가 있다. (장지량 <빨간마후라-하늘에 등불을 켜고>) 그때 로물로는 공군참모총장과 주필리핀 대사를 역임한 장지량의 주선으로 서울대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통령 박정희가 그를 위해 오찬을 베풀었던 것이다.

로물로는 과거에 한국을 도와준 고마운 은인과 같은 존재였다.
6.25전쟁이 터졌을 때 즉각 북한 공산군의 남침을 규탄하고 최초로 유엔군의 참전을 결의한 제5차 유엔총회의 의장이 바로 로물로였고, 뿐만 아니라 그는 필리핀 군대를 맨먼저 한국에 보냄으로써 16개국의 참전을 이끌어내는 데 가장 큰 힘을 발휘했다.

그는 또 전쟁이 일어나기 3개월 전인 1950년 3월 미 국무장관 애치슨과 함께 하버드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수상 연설에서 “미군이 한국에서 전면 철수한 것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침략 초청장을 발부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며 애치슨을 격렬히 비난했다. 아니나 다를까 3개월 후 한국전쟁은 일어났고, 미국은 한국을 아시아 방위선에서 배제한 ‘애치슨 라인’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치슨은 전쟁 기간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6차 유엔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국무총리 장면 일행에게 약소국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 오만무례한 인물이었다. 장면 일행이 협조를 구하러 애치슨의 숙소를 방문했더니 손님들에게 앉으라는 말도 없이 담배를 물고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꼬나보더라는 것이었다. 그런 애치슨을 공개적으로 질타해서 코를 납작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로물로였으니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한국 대통령의 오찬 대접이 의례적인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었다.

로물로가 청와대로 가는 길에 장지량이 동행했다. 장지량은 필리핀 대사로 있는 동안 나이가 23세나 많은 아버지뻘인 로물로와 두터운 친분을 쌓은 터였다.

로물로가 장지량에게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박대통령은 럭키맨이야.”
장지량은 그 까닭이 궁금했다.
“왜 럭키맨입니까?”
“부인 때문이야. 육영수 여사가 남편 뒷바라지하는 모습을 보면 박대통령은 정말 럭키맨이야.”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와 비교해서 하는 말이었다.

하긴 육영수와 이멜다는 극히 대조적인 퍼스트레이디였다.
나중에 밝혀진 사례를 보면, 마르코스와 이멜다가 권력에서 쫓겨나 하와이로 망명한 후 그들이 살던 말라카낭궁이 공개되었을 때 이멜다의 치장용품이 화제를 모았었다. 최고급 브랜드의 구두 2천2백켤레, 수백벌의 의상과 최고가품 파티용 장갑 68켤레, 각종 유명브랜드의 팬티 3천5백장, 가운 2천벌, 검은색 브래지어 5백개, 가발 30개, 뜯지도 않은 스타킹 박스 2백개, 수백개의 보석상자 등….
사치는 그렇다고 치부한다 해도 로열 패밀리가 정부 요직은 물론 90여개의 기업을 차지하는 등 마르코스의 독재는 부패로 악명이 높았다. 로물로는 그런 이멜다와 마르코스의 부패를 암시하는 외교적 수사로 대통령 박정희를 럭키맨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청와대 오찬이 지나고 며칠 뒤 장지량은 대통령에게 로물로의 이야기를 전했다.
“로물로 장관이 각하더러 럭키맨이라고 합니다.”
“왜 내가 럭키맨이야?”
“육영수 여사님 같은 영부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내 칭찬은 아니구먼.”
대통령은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장지량은 그 이유가 또 궁금했다.
“마르코스야말로 럭키맨이야.”
“왜 그렇습니까?”
“생각해 봐. 로물로 같은 인물을 외무장관으로 두었으니 럭키맨이지.”
딴은 로물로의 외교력이 대단했다. 미국과 유럽의 나라들이 마르코스의 독재를 비난해도 로물로가 한번 다녀가면 쑥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출범시키고 이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미국인들에게 한 말이 있다.
“당신들이 민주주의 아버지라고 존경하는 링컨은 어땠는가. 링컨도 남북전쟁 당시에 국론분열을 일으키는 불순분자 1천3백명을 영장도 없이 체포하고 재판도 없이 투옥시켰다. 나는 냉전하의 이 나라 안보를 책임진 사람이다. 나를 비판하려거든 당신들의 링컨을 먼저 비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하이오주립대 교수 렌들이 쓴 <남북전쟁과 재통합>이라는 책에 있는 내용이라 한다.
이렇게 말하는 박정희 앞에 미국 정치인들이 대꾸를 못했다지만, 그러나 로물로 같은 인물이 없는 박정희는 외로웠다. 더구나 분단국 한국의 안보와 정치 환경은 필리핀과 비교가 안되는 것이었다.

박정희가 로물로와 오찬을 함께 한 것이 1974년 8월6일이었다. 그는 그후 열흘도 안되어 8.15저격사건으로 부인을 잃는 비운을 맞았다.
결코 박정희는 럭키맨이 아니었지만, 1979년 한국을 1인당 국민소득 1천6백47달러로 필리핀(6백43달러)보다 3배 큰 나라로 만들어 놓고 세상을 하직했다. (*) (김인만)


▣ 출판편집인 동화작가 김 인 만
= 작가의 저작권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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