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포스트일상] 중고서적(헌책)을 사면서, 최근 알라딘 온라인에서 '써밍업(서머싯 몸)', 수원 오복서점에서 '아바나의 우기(에베르또 빠디야)' 구해.. 고서점에 가면 누군가의 삶과 지식의 무게, 간혹 책장에서 발견한 사연의 메모에서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梁奇龍) 기자
나는 책을 거의 빌려 읽지 않고 대부분을 사서 보았다. 한동안 신촌문고,세종서적에 친구가 근무해 할인가로 산 적도 있지만, 지금은 온오프라인 중고서적상을 자주 이용한다.
헌책방에 가면 갈색화한 종이냄새가 좋다. 주인 손을 떠나 그들의 손때부터 삶의 세월과 무게가 느껴진다. 누군가에 주었던 매물에는 짧은 메모의 축하 글, 감사 글, 고백 글, 안부 글, 연애편지같은 사연들도 볼 때도 있다. 지식까지 논할 나의 역량은 안되지만, 치열하게 공부했던 저들의 흔적도 발견하기도 하고, 고민하고 방황하면서 땀으로 읽어 낸 모습들이 그려진다.
나도 누군가에 책을 받기도 하고 사 준 적도 있다. 하일지 소설을 한 여자에게 줬다가 오해를 받기도 했고, 아들에겐 젊을 적 읽은 기억으로 김동길 책에 메모를 해줬으나 녀석은 책과 거리가 너무 멀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고 그저 좋아서 사 모으기만 한 것 같다. 기억에 남은 책은 군복부 때 광주 고서점(계림서적)에서 노벨문학상 전집(고려원출판사)을 사서 낑낑 대고 이사 다니다가 시골 조카에 남기고 올라왔다. 풍물시장에서 세계문학대백과사전 은 보석을 발견한 기분, 두 권을 산 책은, 헨리 밀러-북회귀선(같은 출판사), 잉게보르크 바하만-삼십세(같은 출판사), 헤르만 헤세-황야의 이리(같은 출판사), 니체-짜라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다른 출판사), 노발리스-푸른 꽃(다른 출판사), 실비아 플라스-일기(같은 출판사), 서머셋 모옴-써밍 업(다른 출판사) 정도다.
'노인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격언)이 있다. 서양에서는 '와이즈 맨 세이..'로 시작하는 말들이 많다. 현자의 경험이 세대에 전해지면서 인류는 발전해 왔다. 나도 살아오면서 수 많은 상념 소위 개똥철학의 편린들의 이 가을에 많이 스친다. 날것 그대로의 생각을 가장 인간적인 구어체로 서술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홍등가를 배회했으면 어쩔거고 쌍욕을 쓴 들 스스로 고귀함이나 천박함으로 자질할 문제가 아닌 게 삶인 것이다.
지식은 보고 들음으로부터 내것이 된다. 더해서 책은 소리내어 읽음으로써 나에게 쌓인다. 종이책은 읽는 것이고 전자책은 보는 것, 독서습관은 보기보다 읽음이 훨씬 낫다. 밑줄 치며 읽고 생각해야 오래 남는다.
최근, 써머 셋 모옴(W. Somerset Maugham 서머싯 몸,서머셋 모옴)의 '써밍 업(The Summing Up 서밍 업)' 이 생각나 알라딘 온라인을 뒤졌다.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 등의 대단한 소설도 있지만, 내가 한동안 영한대역으로 즐겨 읽었던 책이어서다. 한권을 쪼개 속주머니에 넣고 아무 데서나 영어원문과 글을 소리내어 읽었던 기억, This is not an autobiography nor is it a book of recollections. (이것은 자서전도 회고록도 아니다.)로 시작한 글은 그의 문학적 삶에 대한 회상이다.
모옴 은 파리주재 영국 외교관 아들로 프랑스에서 태어난 영국의 작가다. 영국 왕립학교에 다니다가 폐결핵이 걸려 프랑스에서 요양,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청강, 회계를 공부하다가 영국 칼리지 의대 졸업, 1,2차 세계대전 때 MI6 요원으로도 활동했다.
Life is not long enough for love and art. 사랑과 예술을 제대로 느끼기엔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도 짧다,라는 어록도 유명한데, 그건 아리스텔레스적 표현이고 비비안 리 도, 그들 뿐만 아니라 나도 우리 모두도 나이드니 그렇게 생각된다.
추석연휴 전날은 수원까지 가서 팔달문 옆 오복서점 주인장과 커피도 한 잔하면서, 지금은 절판된 책에 대한 단상의 시간도 가졌다. 쿠바 출신 작가 에베르또 빠디야(Eberto Padilla)의 '아바나의 雨期', 큐바 수도 하바나(Cuba Havana)의 우기는 정치사회 체제의 인간의 삶을 비가 내리는 우울한 계절로 묘사했다. 이 책도 오래전 읽었다가 이사 때 한번 정리하면서 사라진 책이어서 문득 생각났다.
수원은 동탄에서 일할 때, 정조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융건릉을 살폈고 화성과 행궁도 탐방 후 팔달문시장 통닭골목도 지나왔다. 몇 블럭이 전부 통닭집만 있어, 정조가 유독 통닭을 좋아하지 않았을까,는 생각도 잠시.
나는 꿈도 많았다. 언제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 해찰만 가득한 삶을 산다. 그러나 이제는 네덜란드에 가서 풍차와 운하, 튤립농장을 둘러보고 암스테르담 홍등가 탐방이 버킷리스트다. 풍차 하니 내 삶이 돈티호테적이니 않을까, 지금 생각하니 부모님은 나를 가난하게 살게 한 고귀한 뜻이 계셨다. 육사 갈 기회에서 접게 만든 건, 갔으면 나라 뒤집어 엎겠다고 쿠데타를 하다가 총살당했을 것이고, 대학 나와 돈을 많이 벌었다면 탄자니아 흑인 여자를 데려와 며느리라고 했거나 러시아 마피아 여자를 건들다가 칼맞아 죽었을 것이다. 나의 이 빈곤하고 어중간한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가, 새삼 감사해진다. (龍)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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