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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중구 회현동 동래정씨 회현방 옛터(정광필집터) 은행나무 두 그루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7/10/16 19:32:03)

▲ 서울 명동에서 남대문시장 가는 길에 담은 회현동 은행나무 두 그루. 정광필집터였다고 한다.
ⓒ20170909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서울포스트 량기룡 기자=] 한국에 오래된 나무 중 가장 많은 품종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일 것이다. 병충해에 강한 은행나무, 생명력이 강한 느티나무는 지금은 당당히 보호수나 천연기념물로 자리하고 있는 나무가 많다.

 

9월 9일인가. 명동을 들렀다가 남대문시장을 가는데 전에 보았던 은행나무가 생각나 사진에 담았다가, 단풍 들 계절에 푸르른 모습 그대로 내보낸다. 

 

회현동 은행나무는 지근거리에 두 그루가 있다. 각각의 나무 밑동 형태로 보아 엄밀히 여러 그루가 군락을 이룬 것처럼 생장하고 있다. 연리근 형태다. 상대적으로 작고 높이 자란 한 그루는 도로 중간에, 또 한 그루는 우리은행본점에 있다. 두 그루 다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로 훌륭하다.  

 

은행(나무) 아래 은행(점포)가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 하다. 은행이 열린 집터 전설대로라면 금은이 든 관(棺)은 이 시대로 말하면 은행의 금고로 비유될 수 있다. 보호수 지정일(1974년) 당시 475살 잡쉈으니 40년이 지난 지금은 500세를 훌쩍 넘었다.

 

이 곳은 정광필집터로 알려졌고 동래정씨 회현방 옛터 라고 한다. 금은이 든 관에 관한 전설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지만) 정광필 손자 정유길이 거쳐가 없어 과거 흉가에 기거하며  야간순찰직을 얻어 근무하는데 밤에 바느질하는 아내 무릎에 언 사내가 누웠다고 한다. 남편이 아님을 안 아녀자가 인두로 사내 머리를 지지자 말없이 건넌방으로 달아났다. 새벽에 귀가한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같이 그 곳에 가보았다. 천장이 축쳐져 있길래 뜯어 내리니 까만 관(棺)이 있더라는 것. 조심스레 열자 금은이 가득했다나. 그것을 조정에 바치고 높은 벼슬을 얻었다는 것이다. 현인들이 모인다는 회현동(會賢洞) 남산골은 한량들도 많아, 모이면 빠지지 않은 이바구가 남산골 귀신담. 이게 심심치 않게 전해 오고 있다. (서울에 현존하는 동래 정씨 집성촌은 중랑구 양원동이 있다. - 아래 표지석 참고)

   

기왕 서울의 보호수를 담았기에, 나무에 관한 기사도 소개한다. 아래 천년 넘은 강감찬 장군 식수 굴참나무는 문화재청 해석으로도 당시 참나무의 자목(子木)으로 보는 견해가 합리적이다.

 

 

 

 

↑ 서울 중랑구 양원리에 현존하는 동래 정씨 집성촌 ⓒ서울포스트자료

 

- 동래정씨 회현방 옛터

 

  이 일대는 조선조 명재상의 한 분으로 중종 묘정(廟廷)에 배향된 문익공 정광필(鄭光弼.1462~1533)의 옛집터로서 그후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400여 년간 동래정씨(東萊鄭氏) 집안이 세거(世居)한 곳이다.

  전설에 이르기를 문익공의 꿈에 한 선인이 나타나 집앞 은행나무에 서대(犀帶.정승만이두르는 물소뿔 장식 허리띠) 12개를 걸었다고 하는데 두 차례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의 후손 중 이 집터에서 대대로 배출된 정승이 12명에 이른다.

  손자 유길(鄭惟吉. 선조때 좌의정) ,증손 지연(鄭芝衍) 선조때 우의정), 창연(鄭昌練. 광해때 좌의정), 5대손 태화(鄭太和.仁宗-孝宗-顯宗의 3조 영의정),  치화 지화(鄭治和, 鄭知和. 현종때 좌의정), 6대손 재숭(鄭載崇. 숙종때 우의정),  8대손 석오(鄭錫五. 영조때 좌의정), 9대손 홍순(鄭弘淳, 정조때 우의정). 10대손 존겸(鄭存謙. 정조때 영의정), 11대손 원용 (鄭元容. 현,철종때 영의정), 13대손 범조(鄭範朝. 고종, 순종때 영의정)등이 그 이름이다. 

  명문대가 옛집은 일제 강점기에 사라졌으나 12개의 서대가 걸렸던 반천년의 거목, 전설의 은행나무는 서울시 지정 보호수로 남아 고도 서울의 최승지(最勝地), 명당중의 명당인 이곳 회현방(會賢坊)에 우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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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고려 강감찬장군 식수´ 나무 아직 살아있다(2010.05.18)
수령 1천살 넘어…방학동 은행나무는 871세
 
서울에서 가장 나이 많은 나무는 몇 살일까. 

18일 서울시 자료와 문화재청에 따르면 최고령 나무는 서울시 기념물로 수령 1천 살이 넘은 관악구 신림동 굴참나무(천연기념물 271호)다. 

이는 강감찬 장군이 지나다 꽂은 지팡이가 자라났다는 나무로, 주민들의 보살핌 을 받아 아직도 굵은 도토리를 맺는다. 

눈길을 끄는 다른 고목은 서울시 보호수 1호인 도봉구 방학동 은행나무로, 올해 수령 871세가 됐다. 

이 나무는 높이 25m, 둘레 10.7m로 서울시 천연기념물 나무 및 보호수 중 가장 크고 나이가 많다. 

박정희 대통령 타계 1년 전인 1978년에 불이나 소방차가 동원되는 등 우리나라가 위험에 처하면 스스로 가지를 태워 재앙을 예고해준다는 소문이 퍼져 ´애국나무´로 불린다.

1.2m에 달하는 유주(乳株)를 지녀 예부터 아들을 낳게 해주는 신령수로도 통한다.

은행나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주는 허공에 드러난 뿌리 일부분으로, 산모가 이를 만지면 아들을 낳고 젖이 잘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시 천연기념물 나무와 보호수에 대한 사연과 정보는 이 밖에도 많다.

480여세의 보호수인 은행나무가 있는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터는 조선 중종 시절 영의정 정광필의 집으로, 꿈에 정승 허리띠 12개를 나무에 건 이후 400년간 12명의 정승이 났다고 알려졌다. 

임진왜란 때 이 나무를 베려던 왜군을 동네 노파가 생선 1마리를 주고 말렸으며, 이 나무에는 당시의 상처가 뿌리 부분에 남아 있다고 한다. 

성동구 성수동 느티나무는 경북궁 증축 시 징목으로 지정됐으나 주민이 흥선대원군에게 간청해 징목에서 제외된 뒤 대감나무로 불렸다. 이후 이 동네는 ´전해 내려오는 나무가 있는 고을´이라는 뜻의 전나무골로 이름지어졌다. 

동대문구 전농4동의 물푸레나무에는 수호신이 깃들어 6.25 전쟁 때 이곳에 피신한 사람이 한 명도 사망하지 않았다고 서울시는 소개했다. 

이밖에 학술 및 관상적 가치가 높은 천연기념물 나무는 대부분 종로 일대의 궁궐과 절에 있다. 

종로구 가회동 헌법재판소 내 백송(천연기념물 8호)은 수령 600년이며, 조계사 에는 수령 500년의 백송(5호), 창경궁에는 700년생 향나무(194호) 등이 있다. [연합뉴스 = 조성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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