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가을 월출산의 밤, 아침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월출산의 밤
월출산에 들어오면서 부터 그믐달이 뒤를 밟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구름다리를 건널 때 사자봉 신새벽 바람에 날을 시퍼렇게 세운 그믐달이 등뒤에 서 있었습니다.
초롱초롱한 샛별이 묵묵히 그 뒤를 따르고 있었구요.
가던 길 멈춰서서 고개를 치켜세우고 별바래기를 합니다. 삼태성이 서쪽 하늘을 독차지하고 밤을 지샌 북두칠성 사자봉 묵직한 그림자에 노곤한 몸을 기대고 있군요.
넋을 잃고 별을 바라보다가 아련한 추억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월출산의 밤입니다.
대지(大地)의 여명(黎明)
천황봉에 올랐습니다.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는 하늘과 불야성의 도시와 농촌마을의 가로등들이 밤을 지키는 대지를 바라봅니다. 검은 대리석처럼 단단한 어둠은 한발짝도 물러설 것 같지 않은데 동녘 지평선에 검붉은 띠가 둘러쳐지면서 여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렌지색 빛다발이 온 하늘에 번집니다.
견고한 어둠이 허물어지고 대지에선 산과 들과 마을들이 봄의 새싹처럼 피어납니다.
박명(薄明) 그 시간의 격랑속에서
별들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빠르게 밝아옵니다.
동녁하늘을 버얼겋게 달구던 빛이 북쪽과 남쪽으로 번지더니 하늘을 가득채웁니다.
월출산의 박명속에서 시간은 하루중 가장 빠른속도로 흘러갑니다.
나주.광주. 화순. 장흥. 강진. 해남등지의 크고 작은 산들이 선명한 마루금을 드러내더니 이윽고 어둠을 벗어던지고 봉긋봉긋 솟아납니다. 잠에서 깨어난 나주평야가 기지개 켜고 황금빛 들녘을 펼쳐 보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시나브로 밝아오고 동쪽 하늘은 금새라도 터질것 처럼 석류빛으로 농익고 있었지만 해는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강진 들녁에는 때 아닌 구름바다가 펼쳐지고...
구름이 흘러 강을 이루고 바다를 채우다.
여명 무렵부터 월출산 남쪽 기슭 성전분지를 구름이 채우고 있었지만 대지를 덮기엔 미약하여 구름바다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박명과 더불어 보성과 강진의 험준한 골짜기들에서 흘러나온 구름이 강을 이루고 드넓은 강진 들녘을 삽시간에 채우면서 구름바다가 탄생했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운해 그리고 박명은 월출산이 주신 선물입니다.
구름바다위로 솟아난 나주 금성산, 영암 오봉산, 강진 장군봉, 장흥 천관산 강진.해남의 주작덕룡. 두륜산 같은 남도의 준봉들이 지존 천황봉을 향해 일제히 부복하는 이 경이로움과 함께 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어찌 주체할 수 있을까요.
천황봉의 일출
세상의 모든 색은 일출과 함께 깨어납니다.
아직 해는 뜨지도 않았는데 하늘과 산이 맞닿는 마루금에 프르스름한 비취빛이 서려있어 일출을 기다리는 군요.
부풀어 오른 하늘은 금새라도 터져버릴 것 만 같습니다.
천황봉 사람들은 숨을 멈추고 일제히 동녁하늘 한 점을 응시하지만 해의 걸음걸이는 더디기만 합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것 같습니다.
‘와 해다’ 누군가의 탄성과 더불어 햇살이 장군봉 언저리 박명을 찟고 나와 온누리로 번져갑니다.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눈이 부신 가을의 맑은 햇살입니다.
해가 동쪽 지평선에서 반뼘 남짓 떠오를 때까지 사진기를 내려놓고 이 경이로운 천지창조의 순간을 함께 합니다.
월출산의 아침
옅고 부드러운 아침 햇살입니다.
세상이 열린 첫날이 그랬겠지요.
산 아래 펼쳐진 너른 평야와 구릉사이마다 줄렁줄렁 매달린 마을들 월출산 자락에 수없이 박혀 있는 우왁스런 바위봉우리들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순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햇살을 받은 저마다의 얼굴도 어린아이처럼 여리고 순수해 보이는군요.
이 신선한 월출산의 아침엔 오직 희망 사랑, 평화, 자비로움만 있을뿐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치 에덴동산처럼.....
미명, 박명, 여명, 일출, 아침 으로 이어지는 월출산의 새벽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면서 부두에 정박된 배가 분주한 항해준비를 마친다음 닻줄을 풀고 망망대해로 떠나가는 장면을 연상했습니다.
망망대해란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분량의 일상이며 인생이란 그 순결한 일상에 남긴 하루분량 항적들이 축적된 결과겠지요. 하느님이 홍해바다를 건너 희망을 찾아가는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고 샘을 열어주었듯이 하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매일 일용할 분량의 희망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오늘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좌절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일 또 내일 얻는 그 희망을 귀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다보면 언젠간 꿈꾸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테니까요.
월출산의 아침이 가르쳐 주었으니 틀림없는 진리일 것입니다. ^^
아무리 감수성이 풍부한들 산정에서 찬바람 맞아가며 한 시간 넘게 우두커니 앉아서 박명과 여명 그리고 일출을 지켜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천황봉에 오른 대부분의 산객들이 일출이 끝나자 채 10분도 머물지 않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황급히 떠나는 것 만 봐도 그렇습니다.
제 산행의 본질이 상당부분 블로그 포스팅을 위한 목적으로 변질된것 같아서 고민 하고 있던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로그라는 동기라도 있으니 한 시간 남짓 천황봉에 머물면서 월출산의 아침을 숨이 멈추는 것 같은 박진감을 갖고 지켜볼 수 있었네요.
제 생활에 있어 블로그가 갖는 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계기로 받아드렷네요.
어쨋든 월출산의 아침을 저는 충분히 누렸으니 그 신선함을 당신께 다 드리겠습니다.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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