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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바그너 탄생 200주년…음악속 정치色 과 총체예술 이론 논란
 온라인팀 (발행일: 2013/05/19 21:00:52)

불멸의 작곡가로 불리는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5.22 ~ 1883.2.13) 의 탄생 200주년인 오는 23일을 앞두고 그를 둘러싼 논란이 새삼 불거져 나오고 있다.

바그너 초상. 독일 바이에른주 바이로이트 소재
세계 곳곳에서 바그너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는 기념행사가 펼쳐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의 민족주의를 겨냥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오페라를 통한 '위대한 독일정신의 계승자'라는 평가 이면에 독일인의 우월함을 구현하는데 지나치게 치중한데다 여성 혐오주의와 반유대주의 성향을 두드러지게 내보인 인물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다.

희대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사랑한 음악가라는 점이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1813년 5월 22일 태어난 바그너는 나치즘이 등장하기 오래전에 사망했지만 그의 작품 '리엔치'는 아돌프 히틀러가 정치활동을 시작하는데 커다란 영감을 제공했고 그의 후손들은 히틀러와 가까운 사이였다.

또 나치는 그의 음악을 수많은 선전영화와 집회에 사용했다.

최근에는 독일의 한 오페라 감독이 그의 대표 작품 '탄호이저'를 나치시대 배경으로 새롭게 연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논란에도 바그너가 음악계에 남긴 업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바그너는 비극적 사랑을 다룬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을 통해 새로운 화성계를 만들었으며 시, 음악, 미술, 연극 등이 하나로 합쳐진 총체예술(Gesamtkunstwerk) 이론을 탄생시켰다.

아울러 그는 클로드 드뷔시, 아르놀트 쇤베르크 등 수 많은 후대 작곡가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바그너의 증손자이자 음악이론가인 고트프리드 바그너는 18일(현지시간) "놀라운 면과 어두운 면이 함께 존재한다"며 그를 둘러싼 다양한 평가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고트프리드는 "사람들을 위해 바그너를 망칠 생각은 없지만 그를 낭만화하거나 불쾌한 사실을 숨겨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일부 바그너 지지자가 음악과 그의 정치적 성향을 분리해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에 반대를 표했다.

정치인들이 매년 7월 바이로이트 축제(바그너의 음악만 공연하는 유럽의 대표적 음악 축제)에 참석하는 이유도 이 행사가 정치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트프리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바이로이트 축제에 참석한다면 단순히 이를 그의 아름다운 음악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Wilhelm Richard Wagner - Lohengrin - Vorspiel 3. Akt und "Wedding March"
= Bridal Chorus from Opera 'Lohengrin' (Bridal March)
결혼행진곡 - 신부입장[바그너]


Mendelssohn - A Midsummer Night's Dream - Wedding March
퇴장[멘델스존]

 


바그너 는 1813년 5월 22일 라이프치히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드레스덴으로 이사하여 9세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고, 18세 때 라이프치히대학교에 들어가 음악과 철학을 공부하였다. 1832년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첫 오페라 《혼례 Hochzeit》를 프라하에서, 1834년에는 제2작인 《요정 Die Feen》을, 1836년에는 제3작인 《연애금제(戀愛禁制) Das Liebesverbot》를 뷔르츠부르크에서 완성하였다. 1836년 여배우 미나 플라너와 결혼하였으나 불행하게 끝났고, 1839년 《리엔치 Rienzi》를 작곡하던 중 러시아령(領)의 리가에서 파리로 갔으나 생활은 불우하였다. 그러다가 1842년 《리엔치》가 드레스덴오페라극장에서 상연된 것을 계기로 드레스덴으로 이사하여 궁정 오페라극장의 지휘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방황하는 네덜란드 사람 Der Fliegende Holländer》을 직접 지휘하여 초연했고(1843), 다음 작품 《탄호이저 Tannhäuser》는 1845년에 상연되었다. 또,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으로 여겨지던 베토벤의 《제9교향곡》을 지휘하여 그 진가를 일반에게 알렸다...

많은 음악론도 집필했으며, 이에 따르면 그가 생각하고 있던 '전체예술(종합예술)'이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① 예술이란 일부 계층의 오락도구가 아니라 사회 각계 각층을 망라한 국민 전체의 예술적 표현이어야 한다.
② 가장 근원적이며 순수한 국민적 시작(詩作)의 소재는, 모름지기 한 시대의 성격에 사로잡히지 말고 본질적인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신화(神話)이어야 한다.
③ 예술이란 근원적이며 인간적인 것, 또한 인간 전체의 표현이어야 한다. 단순히 개개의 예술(이를테면, 조형예술·시·음악 등)이 고립된 채로는 전체 인간을 표현할 수 없다. 이들 예술이 모두 하나로 뭉쳐져 작품이 만들어져야 한다.
④ 개개의 예술은 근원적으로는 공통의 기반을 가지고 있다. 멜로디는 말에서 생겨난 것이다. 시는 뜻깊은 선율을 낳기 위해서는 두운(頭韻)을 써야 한다. 관현악은 그리스비극에 있어서의 합창과 같은 몫을 하며, 이야기의 일반 인간적(一般人間的)인 것을 표현하여, 과거를 회상케 하며 또한 미래를 예감하도록 한다.
⑤ 일반적인 사상면에서는 쇼펜하우어의 의사부정적(意思否定的)인 염세철학과 그리스도교, 그리고 불교에서 영향을 받아 인간존재의 비극적인 모순을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독일 낭만파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구제의 이데아’를 그 작품의 중심에 두었다.
⑥ 음악은 여성이며 시는 남성이다. 양자의 결합으로 비로소 예술은 성립된다. 음악은 시의 의도를 존중하여 시에 봉사하여야 하고, 음악 스스로가 규정적(規定的)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편집=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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