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의상봉에서 본 북한산의 새벽풍경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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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상봉에서 북한산 새벽풍경 ⓒ20120707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
아이를 데리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소에 갈땐 찾아가기 가장 쉬운 장소 하나를 정해놓고 이렇게 일렀다.
" 만약에 길을 잃거든 이리로와. 그러면 틀림없이 아빠가 여기 있을꺼야. 어때 할 수 있겠지? "
살다보면 길을 잃거나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다는걸 느낄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찾아가는 곳이 있다.
잃었던 길을 찾아서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을 초기화 할 수 있는 곳 북한산 의상봉을 찾았다.
2012년 7월 7일 토요일
새벽 4 시 30분
산성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의상능선으로 접어드는 산길은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비 개인 숲속은 신선하기 이를데 없다. 내시 비석을 지나는데 어느 무당이 비방을 해 놓았는지 아이의 색동옷이 놓여있었다.
의상봉 가는길이 아니었더라면 머리가 쭈볏섰을 것이다.
가파른 바위를 잡고 오르는데 등산화가 확 밀렸다.
간밤까지 쏟아지던 비에 바위가 젖어서다.
아까 본 색동옷이 생각나고 새삼스럽게 무섬증이 들어 쇠줄을 잡고 올랐다.
헤드랜턴을 꺼도 될만큼 환해졌다.
잠시 몸을 돌려 산 아래 세상을 바라본다.
간밤에 참 많은 사연이 있었겠지만 신새벽의 연무가 강처럼 흐르고 있어서 고요하고 평온해보인다.
4시 50분
쌍토끼 바위 쉼터에 벌러덩 드러 누었다.
여명인데도 비에 씻겨서인지 달빛이 참 맑다.
얼핏 고향을 떠올리다가 살폿 잠들었다.
바람이 깨워주지 않았더라면 마냥 자고 말았을게다.
물을 벌컥벌컥 드리켰다.
한 둘금 찬 바람에 숙취가 날아가고 세상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몽롱했던 정신도 서서히 맑아진다.
5시 15분 의상봉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처음 의상봉을 만났을때를 떠올렸다.
북한산성 종주 막바지라서 잔뜩 지쳐있었다.
여기에 이르렀을때 무릎도 아프고 다리에 힘도 없어 털썩 주저앉았다.
문득 눈을 들어보니 백운대가 보였다.
막연한 감동이 아니라 진짜로 가슴이 떨렸다.
그 때부터 저 산을 가슴에 담았다.
힘든일이 있을때 마다 후회스러운 일이 생길때마다 여기 의상봉에 퍼질러 앉아 저길 바라보고 있으면 다시 일어나 걸어갈 힘이 솟는다.
세상을 압도하는 웅장함.
완벽한 조화로움.
그리고 마음을 품어주는 자애로움.
그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흰 바위 백운대!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구름 바다에 잠겨있는 백운대를 볼 수 있을거라 기대했지만 새벽 북한산엔 연무 한 점 없다.
동튼하늘을 배경으로 선 백운대의 마루금이 만지면 베일 것 처럼 선명하다.
북한산의 하루는 용암봉에서 시작된 붉은 빛에서 시작되었다.
정작 백운대에선 그 색조가 다소 옅어지고 염초봉과 원효봉사이에서는 새벽녘에 짚불로 밥을 짓는 어머니의 아궁이처럼 도봉산 오봉을 불씨삼아 붉게 타올랐다.
하늘이 서서히 맑고 투명해지면서 그 여린 빛이 번지면서 굵은 능선에서 시작하여 치마폭같은 산성계곡의 잔 주름까지 차츰차츰 모습을 드러낸다. 한 시간이 넘도록 꿈쩍도 하지 않고 의상봉에 앉아서 북한산에 아침이 깃드는 장엄한 풍경을 감상했다.
멀리서 계양산이 아침인사를 건네는걸 보면서 아내에겐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나오려는데 어느새 알아차리고 일어나
" 미쳤구만 미쳤어! "
잔뜩 지청구를 늘어놓으며
" 아니 오이만 갖고 어떻게 산엘가.
배는 골지 말아야지 "
하면서 이것저것 챙겨준 아내는 이 속아지 없는 남편을 보내놓고 잠이나 제대로 잤을른지.
의상봉에서 바라본 용출봉
용출봉 테라스에서 본 국녕사와 산성계곡
용출봉에서 본 의상봉
6시 30분 용출봉
의상봉에 오래 머문탓에 산행을 갓 시작한 것 같은 느낌에 의상봉에서 용출봉까지 가는길이 이토록 험했나 싶을 정도로 힘겹다.
햇살이 용암봉을 딛고 올라와 산성계곡에 번지면서 말끔해진 산성 골짜기의 숲이 생명력으로 꿈틀거리고 산엔 온통 물 흐르는 소리 뿐이다.
엊그제만 해도 길고 혹독한 가뭄으로 생기를 잃고 말라가던 북한산이었다.
용혈봉과 증취봉
아침햇살에 더 자애로워 보이는 할미바위의 표정
다리를 벌리고 누어있는 모양의 응봉능선에 아침햇살이 내려앉고...
그 햇살은 용출봉으로 번졌다. ( 용혈봉에서 )
아직도 덜깨어난 잠꾸러기 강아지
나월의 첨탑은 빛과 어둠의 경계선
풍성한 단비로 생명력으로 가득한 북한산의 숲
부황사지에 깃든 아침햇살
북한산에 물이 돌아왔다.
가뭄에 시들어가는 작물을 보면서 속이 타들어가는 농민의 절박한 심정을 안다.
오랜 가뭄끝 단비가 전답을 흥건히 적실때 그 감동과 반가움을 경험한적이 있다.
올같은 가뭄엔 산꾼이나 농사꾼이나 똑같은 심정이다.
갈수기에 계곡이 마르는 것이야 가끔 있는 일이지만 초목까지 마르거나 시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첨이다.
그걸 보고있으면 마음이 너무 아퍼 당분간 산에 들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차를 주차하고 산성입구에 들어서는데 반가운 소리가 온 산을 울리고 있었다.
계곡을 울리는 요란한 물소리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산성계곡에 발을 담그고 커피를 마셨다.
지상에서 가장 맛있는 봉지커피다.
중성문의 아침
부지런한 산꾼
개연폭포로 오르는 계곡
계연폭포 너머로 만경대
개연폭포를 찾았다.
폭포아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백운대에서 부터 시작하는 북한산의 정기가 우람찬 소리로 쏟아져 내리는 그 기운으로 마음에 쌓여있는 오욕칠정의 먼지를 씻어낸다. 북한산이 주는 세례(洗禮)다.
머리속을 가득 채운 번뇌망상이 사라지고 폭포수가 일으키는 시원한 바람이 포말과 함께 얼굴에 부딪힌다.
그제서야 회개(悔改)하는 마음이 들었다.
" 길을 잃었는데 찾으려하지 않았습니다."
" 제게 주신 소중한 것들을 너무나 헛되이 낭비했습니다. "
오전 9시 40분 산행끝
탐방지원센터에서 계곡을 따라오르는 우회길은 산으로 향하는 등산객들로 만원이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산성계곡의 폭포수 앞에서 탄성을 지르며 인증샷을 찍는 산객들의 밝은 표정이 해갈된 산만큼이나 보기 좋다.
가야 밀냉면집 주차관리 아저씨가 오랜만인데도 알아보고 반색을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잘 사는것이 이렇듯 마음먹기 달렸는데 무엇이 이토록 길을 벗어나 힘겹게 살도록 만드는 건지 의상봉에 올라 삶을 다시 RESET 해 놓았으니 당분간은 잘 살수 있을것 같다.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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