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겨울산행의 진미 영하 12도에 맛보는 땀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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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원효암에서 숨은벽까지 ⓒ20111220 세상을 향한 넓은 창 -서울포스트 나종화 |
2003년 이후 지난 8 년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 가장 혼돈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내게 그런 아픔이 없었다면 산행이나 블로그 그리고 독서같은 감성적인 활동에 이토록 몰입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신이 주신 성장통쯤으로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즐거움이나 환희도 영원할 것 같은 고난도 결국은 시작이 있었던 것처첨 끝이 있게 마련이다.
고통스런 순간에서 벗어나려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매번 무위로 끝나는 것을 경험하면서 아~ 이게 운명이구나 싶어 진득하게 지켜보기로 작정하고 선택한 방편이 산행이었다.
이제는 그 끝이 보이는 것도 같다. 하지만 아직도 아프다.
그것이 영하 12도의 추위를 무릅쓰고 기꺼히 북한산을 찾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채비도 단단하게 했고 바람도 거의 없어 생각보다는 춥지 않다.
원효봉을 가기 위해 지금까지는 효자비에서 시작했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덕암사를 들려본다.
절집을 향하는 시골길 같은 느낌의 오솔길이 정겹다.
스님의 독경소리가 낭낭하게 울려퍼지는 덕암사 마당에 서서 맞 비치는 햇살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동안 의상봉과 마주하였다.
금새 마음이 차분해진다.
터가 참 좋다.
우리나라의 유서깊은 사찰들의 안내판엔 한결같이 의상.원효.도선 이 세분 중 한 분을 창건주로 기록하고 있다. 절 하나 세우는데 한 10년 걸린다고 치면 아무리 도력이 높은 스님이라 할지라도 고작 대 여섯개 짓다 보면 평생을 다하기 마련이라서 혹여 절터를 잡아주었거나 잠시 들려서 머물다 갔을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 그분들의 고명에 의지하려는 측면이 더 클것이다.
그러나 시구문에서 원효봉 가는 8부능선에서 만나게 되는 너럭바위 위에 제비집처럼 얹혀진 이 작은 수도처 원효암은 분명히 원효스님께서 손수 세우셨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솔직히 근거는 없다.
원효암 문설주옆 자연바위를 쪼아내어 만든 절구통이 눈길을 끌었다.
원효암 담장너머로 열심히 의상봉을 살펴봤으나 지난번 일소일소님이 블로그에 포스팅하신 그 용암의 실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산성 상가 입구에서나 보일 듯 하다.
전위봉에 서서 소나무숲 너머로 보는 백운대의 풍경이 가장 빼어난 것 같다.
원효봉 앞에 있다고 해서 전위봉(前位峰)?
텅빈 원효봉 마당이 다정하게 인증샷을 날리고 있는 부부산객 덕분에 쓸쓸해 보이지는 않는다.
백운대의 아름다움만이 단연 빛나던 전위봉에서와는 달리 원효봉에 서면 염초봉. 장군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이 180도 펼쳐져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아이맥스 영화를 관람하는 듯 하다.
원효봉을 출발한 이후 한번도 쉬지않고 단숨에 백운대 중턱까지 올라섰더니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백운대 정상이 영하 13 도라니 적어도 영하 12 도쯤 될텐데 바로 이 땀 맛이 겨울 산행의 가장 큰 묘미가 아닐까 한다.
북한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를 꼽으라면 당연히 백운대에서 보는 인수봉이다. 언제부터인가 화려함 보다는 단순함이 더 아름다워 보이더라.
매섭게 불어대는 골바람 때문이기도 했지만 브이안부에서 숨은벽으로 내려서는 내내 왠지 음산하고 외로웠다. 한 십여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마치 영원인듯 길게 느껴졌던 이런길은 혼자 다니고 싶지 않다.
지난 8 년간 내가 걸어왔던 그 길처럼...
숨은벽 대슬랩 앞에서 올들어 가장 맹렬한 추위와 마주쳤다.
비상용으로 가져온 방한용 모자와 목 보호대를 착용했다.
차디찬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숨은벽의 바위덩어리들이 마치 북극의 얼음덩어리처럼 여겨졌다.
점심시간을 훨씬 넘겼는데도 밥먹을 자리가 마땅하지 않아 한참을 헤멧다.
마음속으로 '숨은벽아 바람없고 햇살고운 자리 하나 내주면 고맙겠다'
했더니 거짓말 처럼 그런 자리를 내어준다.
40도 짜리 진도 홍주를 반주삼아
꿀맛같은 혼자만의 오찬을 즐겼다.
오늘 자리를 내어준 숨은벽 너도 한잔 고시레~~~
저 카메라가 홍주 인증샷을 위한 받침대 구실밖에 못했다.
충전중이었던 밧테리를 깜빡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의 사진들은 모두 스마트폰의 콩알만한 눈구멍으로 담은 것들이다.
사진을 찍다가 가끔 경험하는 일인데 간혹 피사체가 먼저 말을 걸어올때도 있다.
"여기 좀 봐!"
숨은벽 전망대에 서서 맹렬히 불어오는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서있는 소나무에 쏟아지는 늦은 오후의 햇살만큼은 고왔다.
추사의 새한도를 연상하면서 담았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거면 또 어떠냐.
내 나름의 걸작이다.
다른 스케줄 때문에 오전 10시에 산성입구를 출발하여 덕암사. 원효봉을 거쳐 백운대. 숨은벽을 지나 다섯시간만에 밤골로 내려온 다소 무리한 산행이었다.
그래도 발걸음은 부산했을 지 몰라도 마음만큼은 느긋했던 산행이었다.
산에 드는 동안 만큼은 산처럼 살 수 있는 능력이 제법 늘었나보다.
이번에도 북한산은 많은 위로와 더불어 큰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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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 |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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