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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it] 드라마 '광개토태왕' 재미있게 보기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1/11/10 02:03:48)

[Post it] 드라마 '광개토태왕' 재미있게 보기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고구려 광개토대왕(高句麗 廣開土大王, 374~412, 재위 391∼412)의 정복활동을 드라마화 한 총 80부작 '광개토태왕'은 중반쯤에서 국정을 장악하고 왕권을 농단한 국상 개연수(최동준 역)가 결국 반역을 일으키더니 실패,처단되고, 이를 진압한 고담덕(이태곤 역)이 고구려 19대 대왕으로, 고국양왕 고이련(송용태 역)의 뒤를 이은다.

ⓒ자료사진

[여담이지만, 고구려(高句麗)의 기상은 2000년이 흐른 현재까지 한국에 만연하고 있다. 고高씨(주몽) 왕조인 고구려의 국혼을 고려高麗(왕王씨 왕조)가 승계했고(조선朝鮮은 단군조선을 승계), 고려가 중국을 거쳐 서방세계와 교역하면서 얻은 '꼬레아(Corea)'는 지금의 코리아(Korea)다. 그 뿐만 아니라 고려대학교는 대통령을 배출한 명문사학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전반부는 태자 담덕이 왕위에 오른 과정, 나머지 후반부는 영토를 넓히는 정복활동에 포커스가 맞춰질 것 같다. 왕위에 오른 담덕은 사료에 의하면 한강유역의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이북의 관미성 등을 빼앗는다. 그리고 후연의 영향권에 있는 요동성을 정복한다.

백제는 진사왕(박상규 역)의 뒤를 이어 17대 아신(阿莘 재위 392~405년, 박정철 역)이 왕위에 올라 동시대의 광개토대왕과의 대립을 그릴 것이다. (드라마상 개연수의 아들로 역적으로 몰린) 고운高雲(김승수 역)은 후연의 풍발(정호근 역)과 함께 고구려를 탈출하여 후연에서 풍발에 의해 왕에 오르지만 살해되며 풍발이 그 뒤를 이을 것이다.

역사에서 후연(後燕)은 황제 모용수(慕容垂 김동현 역)에 이어 모용수의 장자 모용보(慕容寶 임호 역), 모용수의 장인 모용성(慕容盛), 차남인 모용희(慕容熙 조인표 역)가 왕을 승계하지만, 풍발 등이 폭군 모용희를 살해하고 모용운을 왕으로 추대(북연北燕) 하나 모용운도 살해되고 풍발(馮跋)이 왕위에 오른다. 모용보의 양자가 된 모용운은 고구려 왕족 고화(高和)의 손자로 고구려 이름은 고운(高雲)이다.

아래 우리와 중국의 역사를 곁들인 양념을 참고해보면 더욱 실감날 듯.

▲ 476년, 고구려 전성기때의 지도 ⓒMyself

지금도 '고려' 는 러시아 등 북방에서, '조선' 은 일본 등 남방에서 자주 써서 한국인은 중앙아시아에서는 고려인, 동남아시아에서는 조선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는 '대한제국'에서 따 온 '한국'이라는 이름의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과 한민족에 쓰는 '한韓'은 삼한(三韓) -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에서 유래했고 마한은 백제로, 진한,변한은 신라로 발전했으며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 '삼한(三韓)'이 통합되었다. 한민족은 종족명칭이 아닌 상징적 명칭이며, 우리종족은 동이족東夷族 이라고 하거나 예맥족濊貊族 이라고도 하는 설. 그러나 게르만족, 유태족, 슬라브족, 아이누족 처럼 계통적 정립이 더 필요한 상태다.=기자 주관)

ⓒ자료사진

고조선(古朝鮮,BC 2333-BC 12세기 말) -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 또는 전조선/후조선
건국배경 : 배달국을 이어 단군왕검에 의해 유일한 한민족의 국가형태를 수립 하여 단제(단군)라는 군주칭호를 사용
영토 : 남만주 지역과 한반도 북부 지역일대

기자조선(箕子朝鮮,BC 12세기 경-BC 2세기)
단군조선에 이어 기원전 12세기말부터 기원전 2세기초까지 약 1천 년 간 기자(箕子)와 그 후손이 만주에서 평양에 이르는 지역을 다스렸다는 내용을 받아들였으며, 조선 후기 이후로는 기자의 동래와 관련된 기록의 신빙성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과 북한의 사학계는 일반적으로 기자조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명칭은 조선 땅에서 기자가 세운 나라이므로 '기자조선'으로 부른다. 조선 시대에는 후조선으로 부르기도 했다.

위만조선(衛滿朝鮮,BC194-BC108)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로, 기원전 194년 연나라에서 이주한 위만(衛滿)이 고조선의 왕인 준왕(準王)의 왕위를 찬탈하고, 국호는 그대로 조선으로 한 뒤 왕검성(王儉城)에 도읍하여 건국되었다.


중국에서는 진(秦)나라가 연을 멸망시키고(BC 222), 요동군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였으나 진(秦)이 내란으로 망하고, 대신 BC 202년 한(漢)이 중국을 통일했다. 한은 진과 같이 동방진출을 적극 꾀하지 않고, 다만 과거 연이 쌓은 장새만을 수축하고 고조선과의 경계를 패수(浿水)로 재조정했다. BC 195년 연왕(燕王) 노관(盧綰)이 한에 반기를 들고 흉노로 망명한 사건이 일어나자, 연지방은 큰 혼란에 휩싸이고 그곳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고조선지역으로 망명했다. 이들 가운데 위만(衛滿)도 무리 약 1천 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들어왔다. 준왕은 위만을 신임하여 박사(博士)라는 관직을 주고 서쪽 1백리 땅을 통치하게 하는 한편, 변방의 수비 임무를 맡겼다.

BC 194년 위만은 자신의 세력을 모아 중국 군대가 침입하여 온다는 구실을 허위로 내세워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패배한 준왕은 뱃길로 한반도 남부로 가서 한왕(韓王)이 되었다. 이때부터를 일반적으로 위만조선이라고 부른다. (위만조선에서는 한씨韓氏, 기씨奇氏, 선우씨鮮于氏를 많이 사용했다. 고조선의 한씨(韓氏)는 마치 부여의 해씨(解氏), 고구려의 고씨(高氏), 백제의 부여씨(扶餘氏), 신라의 박씨(朴氏)·김씨(金氏), 발해의 대씨(大氏), 고려의 왕씨(王氏), 조선의 이씨(李氏)와 마찬가지로 한국 고유의 대성(大姓)이었다.)

BC 108년 결국 왕검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한무제 유철(漢武帝 劉徹, BC 156년~BC 87년, 재위 BC 141년~BC 87년)은 전한의 제7대 황제로 위씨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의 영역에 낙랑 ·임둔 ·현도 ·진번 등 4군을 설치했다. 이때도 많은 조선인들은 남쪽으로 이주하였고, 그들은 삼한사회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고구려는 BC 37년 주몽(朱蒙)이 이끈 부여족의 한 갈래로 압록강 지류인 동가강(佟佳江;渾江) 유역에 건국했다. 이후 퉁거우[通溝]로 옮긴 뒤 낙랑군과 임둔군(臨屯郡)의 교통로를 단절시키는 등 한족(漢族)과의 투쟁과정에서 강대해졌다.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된 이후 현도군(玄菟郡)의 지배권 안에 있었으나 태조왕(太祖王, 재위 53~146) 때부터 강력한 대외발전을 꾀했다. 태조왕은 현도군을 푸순[撫順] 방면으로 축출하였고, 요동군(遼東郡)과 낙랑군(樂浪郡)을 공격하여 청천강 상류까지 진출하였으며, 임둔군의 옛 땅에 자립한 옥저(沃沮)와 동예(東濊)를 복속시켜 동해안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봉상왕(烽上王, 재위 292~300년) 때는 선비족인 전연(前燕)의 모용외(慕容廆)의 침입을 두 차례 받는 등 위기를 겪다가 313년 미천왕(美川王, 재위 300~331) 때는 서안평을 확보하고 낙랑군과 대방군을 정복, 한반도에서 한사군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 고조선의 옛 땅을 회복했다.

※ 고구려(高句麗)는 장수왕 이후 국호를 '고려(高麗)'로 변경했으나, 구분의 용이를 위하여 고구려로 지칭되고 있다. 고조선(古朝鮮)도 원래는 그냥 조선이나, 이성계의 '조선(朝鮮)'과 구분하기 위해 우리 역사서는 그렇게 표기한다.

ⓒ자료사진

중국은 춘추시대(春秋時代 BC 770년~BC 403년),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03년~BC 221년) 동안 전국칠웅(戰國七雄 - 동방의 제(齊), 남방의 초(楚), 서방의 진(秦), 북방의 연(燕), 그리고 중앙의 위(魏)·한(韓)·조(趙) 나라) 시대가 있었다.

진(秦)나라(BC 221~206)는 주周나라(BC 1046∼BC 771) 때 제후국의 하나였다가 중국 최초로 통일을 완성한 제국. 제31대 왕(영정赢政: BC 259 ~ BC 210) 이 진나라의 최대의 적인 초나라를 멸망시켜,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통일한다. 스스로 황제-첫 황제이므로, 시황제始皇帝라고 자칭했으나 내분으로 멸망하고 한(漢)나라가 건국된다.

연(燕)나라는 전국시대에 요서지방에 위치해있던 국가로 BC 222년에 진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또한 5호 16국 시대 때는 화북지방에 전연과 후연. 북연과 남연이 존재했다.

후연(後燕, 384∼409)은 5호16국(五胡十六國, 304년~439년) 의 하나로 전연(前燕)의 유제 모용 씨의 위(幽帝:慕容暐)의 숙부인 모용수(慕容垂)가 부흥시킨 선비족(鮮卑族)의 나라다. 문무에 뛰어난 모용수(世祖:武成帝)는 384년 연왕(燕王)이라 하고 중산(中山:河北省 定縣)에 도읍을 정했다. 가장 융성할 때는 영토가 중산과 업(鄴)을 중심으로 한 화북평야(華北平野) 일대에서 북으로는 남몽골·한국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북위(北魏)가 강대해짐에 따라 분쟁이 잦았고, 394년 북위를 공격하나 참합파(參合陂:大同 부근)에서 대패하여 모용수는 분사하고 북위군에게 중산이 함락되어 괴멸했다. 이후 모용수의 장자 모용보(慕容寶)가 뒤를 이었으나 난한(蘭汗)에게 찬탈당하고, 3대 모용성(慕容盛)에 이어 4대왕 모용희(慕容熙)의 학정이 심하자 풍발(馮跋) 등은 모용희를 살해하고, 모용운(慕容雲)을 왕으로 추대했다(407년 북연의 건국). 모용보의 양자 모용운은 고구려인 고화(高和)의 손자로 고구려 이름은 고운(高雲)이다. 이 당시, 광개토대왕은 모용운에 사신을 보내 동족의 우의를 표하기도 했다. 409년에 모용운이 측근에 살해되고 한인(漢人) 풍발(馮跋)이 집권하게 된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허난성(河南省)을 중심으로 한 인근지역을 중원(中原)이라고 하고, 먼 주변을 변방(邊邦)이라하여 변방의 이민족을 오랑캐라고 했다. 12세기에 여진족인 만주족이 변방(화북지방)에 금(金)왕조를 세운다. 명나라는 이들 여진족의 여러 부족에 대하여 시종 분열정책을 취하였으나, 조선의 임진왜란(1592∼98)을 전후하여 만주에 대한 명나라의 통제력이 이완된 틈을 타서 '누르하치 努爾哈赤 Nurhachi'가 여진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1616년 스스로 한(汗)의 위(位)에 올라 국호를 후금(後金)이라 하고, 흥경(興京)에 도읍을 정했다. 이 사람이 청 태조이다.

이후 청은 오늘날의 중국 영토의 조형(祖型)이 되는 중국 사상 최대의 판도를 확립함과 아울러, 동아시아 거의 전역을 그 위령(威領)하에 두었다. 세계적으로 중국은 가장 많은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수집,정리 龍)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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