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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모인 중년의 사랑방 회원들 |
“만나면 만날수록 정이 들고 아름다운 게 중년이라고 했던가?” 전국에서 모여든 포털사이트 다음의 '중년의 사랑방‘카페(cafe.daum.net/lyh.l)회원들이 대전 보문산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이 모이고자 하는 시간은 10시30분이었으나, 시간반전부터 대전에 사는 회원 등이 준비에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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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이 준비한 기념품 |
포천 ‘이동막걸리’와 ‘묵’을 준비하신 분, 첫 대전모임을 기념하는 ‘수건’과 ‘떡’ 등을 준비한 분 등 나름대로 대전 보문산 모임에 쏟은 정성이 대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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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명물 보문산성 |
우선 가벼운 보문산 산행에 나섰다. 대전의 名山이자 도심지 공원인 보문산을 그나마 등반했다고 하자면 보문산성을 지나 보문산 정상인 시루봉까지 가야할 터이지만 보문산성까지만 등반하기로 했다. 대전 중구의 중심에 위치한 보문산은 11개동에 걸쳐있는 대전을 대표하는 산으로 ‘寶物山으로 불렸다’고 전한다.
“무엇이 寶物인지 또 어디에 寶物이 감추어져 있는지”는 지금도 숙제지만 혹자는 “돌(石)이다”며 “오래전에 보문산에 석굴암이 있었는데 그 곳을 나룻배를 타고 들어가다 보면 돌로 된 부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지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면 대전시민을 먹여 살릴 만큼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올 것이다”면서 “앞을 내다보지 못한 위정자들이 그곳을 유사시 피난처 겸 서류창고로 개조했지만 원상복구하고 보문산과 대전천을 잇는 개울이 청계천처럼 복구된다면 보문산이 왜 보물산으로 불리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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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운대에서 대전시내를 내려다 보고있다 |
어쨌거나 회원들은 보운대로 먼저 향했다. 寶雲臺는 한자어 그대로 보물인 ‘보문산과 구름이 닿은 곳’이란 의미로 지금처럼 대전이 커지기전 대전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던 전망대다. 보운대에서 옆 능선을 타고 백제시대 말기 신라와의 전투가 치열하던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보문산성에서 넓어진 대전 시내를 보며 대전의 미래상을 가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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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산성에서 기념사진 찰칵 |
특히 일행들이 찾은 대사동은 옛 지명이 ‘한절골’로 ‘한’은 크다는 의미의 ‘大’로 변하고 절은 ‘寺’로 변했을 정도로 큰 절이 위치하였던 곳이다. 결국 大寺洞에 절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것도 지명 탓인 것.
이후 준비된 한방오리에 ‘산소가 3배 이상 들어 있어 한 시간 먼저 깬다’는 ‘맑을 린’으로 반주를 하고 한 시간에 걸친 노래방에서의 유흥, 대전에만 있는 각 姓氏를 소개하는 탑이 서 있는 孝를 주제로 한 테마공원인 뿌리공원을 둘러보며 자신들의 뿌리를 되새김하며 대전모임을 마감했다. 전국에서 모여든 30여분의 ‘중년의 사랑방 회원’들 앞날이 무궁할 것을 기원한다.
(송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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