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하루를 달려 요하네스버그 역에 도착했다. 킬리만자로 가는 길에 빅토리아 폭포를 구경할 생각이었고, 빅토리아 폭포행 기차를 타기위해 블라와요에 가는 길이었다.

블라와요 행 버스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앞에 서있는 녀석의 손에 240Rand (약3만3천원)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와 행선지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 나랑은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전광판에 오늘 블라와요 표 매진이라는 글자가 뜨기까지는.


그는 작게 ‘악’소리를 내더니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다. 나를 보고 어딜 가나고 물어보더니 자기도 블라와요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함께 택시를 타지 않겠냐고 제의하면서 둘이서 택시를 타도 합쳐서 600Rand (약9만원) 정도인데다가 버스처럼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고, 국경에서 걸리는 서너시간을 20분정도로 단축시킬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가볍게 “노”라고 대답했지만 그는 우선 택시 값을 물어보고 결정하자면서 내 가방을 들고 걷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택시 값은 알아둬야 하겠기에 따라 걸었다.

요하네스버그 역 택시 승강장으로 들어가는 복도에서 경찰은 나를 저지한다. 앞서가던 그는 우리가 친구라고 설명했지만 경찰은 간단하게 그의 신분을 조사하더니 우리가 함께 여행할 수 없다며 그 남자만 보내주었다.

내게는 7시간 후에 떠날 또 다른 회사의 버스를 알려주면서 혼자 택시를 타는 것도 안 된다고 경고하였다. 나는 이곳이 요하네스버그임이 퍼득 떠올랐다.

케이프타운에서 지내면서 경계심이 몽땅 무너져버렸나 보다. 모르는 사람과 택시 승강장까지 간다는 것. 하마터면 큰 실수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경찰들은 내게 요하네스버그역 안에 있을 것을 명령하였다. 그게 말이 되냐. 나는 요하네스버그가 얼마나 위험한지 익히 알고 있지만 여행을 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심각한 표정이다. 얼마 전 이유없이 총 한방에 날아가 버린 일본 여자이야기를 해주면서 이곳의 여행자들은 모두 호텔에서 데리러 오는것이라고 한다. 만약 역에서 한발자국이라도 나간다면 자신들도 내 생명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열심히 설득하였다.

아프리카까지 왔건만 역에만 앉아있으라니.. 싫은 얘기였지만 그들 말대로 요하네스버그가 위험한 것은 사실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의 설득에 넘어가려는 순간 시계는 정오를 가르킨다.

경찰들은 점심시간이라며 나보고 점심을 사달라고 했다. 돈 없다고 하니까 그러면 커피.. 그것도 돈 없다고 하니까 그냥 점심 먹으로 가 버린다. ...나도 락커룸에 가방 맡기고 거리 구경에 나섰다.

남아공은 흑인 백인 함께 사는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거리에는 흑인 밖에 안 보인다. 내게 전혀 관심 안 갖는 뚱땡이 흑인 아줌마들이 지나가고 젊은 흑인 남녀들은 건물 벽에 붙어서 흘끔흘끔 나를 쳐다 보았다.

무작정 걸어 보았다. 한시간정도 걸었더니 대학교가 나온다. 어딜가나 마찬가지겠지만 간판에는 대빵 좋은 대학교라 소개해 놨다. 학교를 둘러보며 세계 어딜가나 대학교만은 뽀대 난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내가 다니는 SJ대는 왜 그리 쬐그만겨..? 쳇.

학교를 구경하고 나와서 흑인 전문 음식점 일 듯한 그럴싸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남아공 어느곳을 가던지 메뉴는 항상 서양식이다. 값은 또 왜 그리도 비싼건지.

햄버거와 포테이토 세트를 사고 적당히 먹다가 버스 안에서 먹을 생각으로 남는 것을 싸서 나왔다. 길을 겉는데 조그마한 흑인 청년이 툭 친다. 손에 들고 있는 남은 음식을 달라고 했다. 아마도 그는 레스토랑 밖에서 쭉 지켜보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음식을 주고 나는 다시 커다란 슈퍼마켓으로 들어 갔다.

정체불명의 과자들을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물 한병과 가방에 매달수 있는 물컵만 샀다. 20시간의 버스여행이 될 테지만 유리창 밖에서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흑인들이 문제였었다. 먹을 것을 샀더라면 또 삥 뜯길 것이 분명한 일이다.

그래도 총 맞거나 날치기 같은 것을 당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라 해야할지 당연하다 해야할지.

★ 달리는 버스안에서 나와 내 친구들.. 오른쪽이 뎐이다. -SPN-

국경에서 짐바브웨의 비자는 30$(3만원)이라고 했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비자료를 버스 회사 사람들은 없다고 말했었지만 그들은 아프리카 현지인들. 외국인에게는 비자료가 있음을 모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나는 깜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100$를 내놓았지만 잔돈이 없다고 했다. 밖으로 나가 암환전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버스에서 만난 친구 쟌은 내게 현지돈으로 빌려 줄 테니 내일 블라와요에서 갚으라고 했다.

새벽2시.. 비자를 받고나니 이번에는 가방을 풀어놓은채 검문을 받아야 했다다. 국경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은 우글거리고 있었고 희미한 가로수가 두어개 있을 뿐이었다.

오랜 시간 버스여행으로 나는 온몸을 비비꼬고 있었지만 버스에서 사귄 친구들은 내가 불안했는지 나를 둘러싸고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여기저기 환전상들이 돌아다녔다. 미국달러를 제시하니 환전상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100$에 2,000,000Z$라는 흥정 값을 마지막으로 들었을 뿐, 이곳에서 환전을 하는 것도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뎐네 집에서 무료함을 달래기위해 사진기를 들고 집앞을 나섰다. 동네 꼬마들... 경사났다. -SPN-

다음날 버스는 정오를 훨씬 넘어 블라와요에 도착했다.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돈을 갚아야 했던 나는 은행 문이 열리는 월요일까지 쟌의 집에서 묵기로 했다. 앗싸~! 라고 기뻐했던것도 잠시, 쟌의 집은 블라와요에서 왜 그리도 멀던지 또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들어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