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하면 우선 우리는 주요섭씨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떠 올린다. 이 소설에는, 체면과 도리를 중시하며 절제된 몸가짐을 바탕으로 한 유교적 사상이 짙게 베어 있다. 이것이 우리네 부모님들, 조부모님들의 삶이었다.

요즈음 같으면 딸 옥희를 매개로 할 필요도 없고 또 시어머니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사랑한다면 직접 대시를 할지 모른다. 더러는, 시어머니는 물론 자기가 낳은 딸 옥희까지도 버리고, 둘이 눈 맞아 달아나는 세상이니까. 하기야 현실적으로 보아, 시어머니만 좀 더 너그러워질 수만 있다면, 시어머니의 동물적 본능 때문에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손님과, 어머니와 옥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손님과 어머니가 결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도리와 남편에 대한 절개를 지켜서 옥희 어머니는 자기의 사랑을 희생시키고 만다.

이와 같이 사랑방은 정말 남녀간의 사랑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사랑방에는 또 낯선 손님들이나 생판 모르는 과객들이 들르거나 묵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랑방은 사회사업이나 자선(慈善)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사랑방에는 동네 어른들이나 이웃들이 찾아와서 담론도 하고 오락도 하며 놀다(?) 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사랑방은 정(情)과 관련이 있는가?

사랑방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우선 ‘사랑’의 어원(語原)부터 찾아 봐야 한다.

‘사랑’은 원래 아래 아( . ) 자를 써서 ‘ㅅ . 랑’ 이라고 썼었다. 그러면, 우리의 ‘ㅅ . 랑’ 이라는 고어(古語)의 뜻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사랑’ 과 같은 뜻이었을까? 여러 고문(古文)에 보면,

‘….삭풍(朔風)에 떨고 있을 ㅇㅇ댁을 ㅅ.랑ㅎ.니 가슴이 메어…’,

‘…천리길 머나먼 곳에 떨어져 있는 딸년을 ㅅ.랑ㅎ.여 ㅇㅇ 일습을 보내니…’ 등의 글이 보인다.

이들 문장에 나오는 ‘ㅅ.랑’은 과연 무슨 뜻일까? 이는 두 말 할 나위도 없이 ‘생각’하니, ‘생각’하여 를 의미하는 ‘생각’ 이라는 말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ㅇㅇ댁’은 집에서 심부름 보낸 하인이다. 대가 댁 마나님이 동성인 하인을 ‘사랑(love)’한다는 것은 앞뒤 문맥으로 보아 말도 아니다. 여기서는 ‘걱정하다’, ‘생각하다’ 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즉, 동정심에서 배려해 주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순수한 우리말 ‘ㅅ.랑’은 원래 ‘생각하다’ 라는 뜻을 기본으로 하여 주로 다음 3가지로 파생된 의미를 나타냈었다.

첫째, 원래의 기본 어원인 ‘생각하다(think)’의 뜻이며 그 예문은 위에 열거한 바와 같다.

둘째, 가슴으로 ‘생각하다’, 즉 ‘그리워하다’, ‘사랑하다(love)’, ‘연모(戀慕)하다’ 의 뜻이며

현재 쓰이고 있는 의미와 같다.

셋째, 깊이 또는 골똘히 ‘생각하다’, 즉 ‘연구하다’, ‘공부하다’ 의 뜻이다.

이와 같이 주로 위에 예시한 3가지 뜻으로 사용되던 순수한 우리말 ‘ㅅ.랑’은, 그 기본 어원인 ‘생각하다’ 의 의미는 한문에서 따온 ‘생각(生覺)’이라는 단어에 자리를 내어 주고,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의미인 ‘가슴으로 생각하다’ 와 ‘깊이 생각하다’ 로 만 사용되다가, 세 번째 의미마저 한문인 ‘연구(硏究)’, ‘공부(工夫)’에 내어주고, 두 번째 의미인 ‘사랑(love)’이라는 말로만 쓰게 된 것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랑방’은 세 번째 의미인 ‘연구하다’, ‘공부하다’ 에서 나온 것이고, 그 뜻은 ‘공부방’ 즉 서재(書齋) 또는 ‘연구실’ 이라는 말이며 이 서재나 연구실을 접견실, 접대실 또는 응접실로도 사용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방’은 ‘사랑’ 즉 love와는 전연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사랑방’ 하면 ‘사랑’ 즉 love를 연상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첫째, ‘ㅅ.랑’ 이라는 말에서, ‘생각하다’ 또는 ‘배려하다’ 라는 뜻과 ‘깊이 생각하다(硏究)’ ‘공부하다’는 뜻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문에 자리를 내어 주고 현재는 love라는 의미로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둘째, 어원이 같기 때문에 혼란이 야기되는 것이다.

셋째, 발음상의 여운이다. 발성학 상으로 볼 때, 영어의 love는 무엇인가 둔탁하고 깊은 고뇌의 느낌이 들지만, 우리말의 ‘사랑’은 애틋하고 살가운 맛이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단어에서는 좀처럼 ‘연구’나 ‘공부’가 연상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주요섭이 ‘사랑방’ 원래의 의미인 ‘공부방(書齋)’, ‘연구실’ 또는 ‘응접실’ 의 의미를 퇴색시킨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손님’이라는 표제를 씀으로써 ‘응접실’ 또는 ‘접대실’의 의미를 강하게 살려내고 있다. 다만 ‘사랑방’과 ‘사랑(love)’을 절묘하게 연결시키고 있을 뿐이다.

▣ 2007, 11, 19. 재미교포 자유기고가 심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