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이란은 안 되고 사우디는 가능?… 트럼프의 ‘핵 협정’ 속내는
입력 2026.07.23.
美-사우디, 이란 전쟁 이후 소원
이번 협정, 사우디에 ‘선물’ 준 격
美에도 상당한 경제적 이익 부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우라늄 농축 가능성을 열어둔 민간 원자력 협정을 체결했다. 사실상 사우디에 우라늄 농축의 길을 열어주면서,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소원해졌던 양국 관계도 다시 가까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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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미 백악관에서 만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 로이터=연합 |
미국 에너지부(DOE)는 22일(현지 시각) 크리스 라이트 장관과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이 이른바 ’123 협정’으로 불리는 평화적 원자력 협정과 이에 수반되는 양자 안전보장 조치 협정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성명에는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관련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기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사우디에 자체 핵물질 농축·재처리를 잠재적으로 허용하면서 무기급 핵물질 생산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문제 삼아 군사행동까지 벌인 직후 사우디에는 사실상 농축의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이중잣대’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다만 이란 전쟁 과정에서 소원해졌던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이번 협정을 계기로 더욱 돈독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사우디는 미국의 원자력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오랜 숙원 사업인 협정을 체결했다”며 “이번 협정은 중동 전역이 전쟁과 불확실성에 휩싸인 가운데 미국과의 관계를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중동의 대표적인 동맹이었던 미국과 사우디는 이란 전쟁 발발 이후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란이 미국에 대한 보복으로 인근 국가들을 공격하면서 사우디 최대 석유화학 단지 등이 피해를 입었다. 미국에 불만을 품은 사우디는 지난 5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상선을 호위하는 작전을 위해 자국 영공을 사용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번 원자력 협정은 미국이 불만을 품고 있던 사우디에 ‘선물’을 건넨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중동 지정학경제 책임자인 디나 에스판디아리는 NYT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사우디가 극도로 불만을 품고 있는 시점에 미국이 건넨 ‘당근’”이라며 “최근 사우디는 미국으로부터 얻은 것이 거의 없다고 느껴왔는데, 이번 협정은 미국이 사우디에 제공한 중요한 양보”라고 말했다.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의 정치경제학자 카렌 영 교수는 이번 협정이 사우디에는 “이란의 어떤 핵 역량과도 대등하거나 이를 뛰어넘는 능력을 갖췄으며, 그것을 미국의 공식적인 승인 아래 이뤄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도 “전쟁 이후의 전략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사우디를 미국 편으로 더욱 끌어들이는 기회”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번 핵 협정은 미국이 꾸준히 ‘핵 야욕’을 드러내 온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에 상당한 규모의 우라늄 매장량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도 자국 내 우라늄 농축 권한을 요구하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는 2018년에도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할 경우 사우디도 그 뒤를 따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협정은 미국에도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는 건설에 10년 이상 걸리는 만큼, 이번 협정으로 사우디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원자력 기술을 사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웨스팅하우스를 비롯한 미국 원전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따낼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 소재 연구기관인 아랍걸프국가연구소의 선임연구원 크리스틴 디완은 “이번 협정은 상업적·지정학적으로 미국의 큰 승리”라며 “미국 기업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고 사우디를 미국에 더욱 밀착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국제 핵 비확산 체제에는 상당한 손상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송이 기자 grap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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