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편히 쉬십시오.”
방문을 닫아 주며 호텔 사장은 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편히 쉬기에는 기분이 너무나도 언짢았다. 이렇게나 비참할 수도 있을까.. 삼일 전 호텔 로비에서 잠깐 만났던 한국인 배낭 여행객은 날 보더니 그럴 줄 알았다며 한쪽 입가로 웃었다.
일주일간의 사막여행이었다. 왜 이유 없이 사막을 떠돌아다니고 싶었던 건지, 왜 팀을 짜지 않고 굳이 가이드랑 단둘이 사막에 가겠다고 했었던 건지. 그래도 솔직히 말한다면 내 바람 자체에 후회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행복했어야 할 사막여행이 가이드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으로 변해버렸고, 삼 일째 되는 날 커다란 사구에 도착했을 때 결국 가이드를 따돌리고 짚차를 수배하여 도시로 돌아와야 했다는 것이 너무나 슬플 뿐이었다.
“여자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하지 않아요?”
“인도 사람들은 모두 다 착해요. 혼자 다녀야 친구도 쉽게 사귀고 내 맘대로 계획 없이도 돌아다닐 수 있지요.”
“처음엔 누구나 다 그렇게 얘기 하죠”
한쪽 입가로 웃는 한국인 여학생이 내 기분을 거슬리게 했지만 어쩌겠는가. 무시하고 나는 내 여행을 다시 떠날 수밖에..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사막이라고..
어린왕자의 여우도 그랬었지. 어딘가에는 오아시스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사막.. 나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사막을 마음껏 겪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팀을 짜지 않고 혼자서 사막을 가겠다는 기분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내 가이드 체나는 범죄까지 저지를 만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나와 달리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확실한 사람이었고, 그가 자랑스럽게 보여준 커다란 가이드 노트에는 한국인들이 쓴 영어로 된 그에 대한 칭찬과 함께 한국어로는 그의 생각을 조심하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충고가 여기저기 적혀있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한국인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싶었다. 여행까지 와서 인도인들의 가치관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뒤따라올 한국인들을 위해 가이드 노트북에까지 쓰고 떠난 사람들이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 사막에 들어갔던 첫날 밤, 내 가이드 체나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음식이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양념을 맛보고 싫은게 있으면 미리 말하세요. 빼고 요리를 하면 되니까.”
“사막의 별은 참 아름답습니다.”
저녁은 배부르게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밤새 바람이 불면 아침에는 모래에 반쯤 묻혀 깨게 될 것이라며 시원스러운 웃음으로 내가 잠들 때까지 모닥불을 피울 것이라고 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지대로 가는 길입니다. 마담을 팔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요. 전 고향으로 돌아와 색시를 얻어 어머님을 모시고 살 겁니다.”
파키스탄인은 열 명 이상의 아내를 두고 산다며 그는 재미있다는 듯 웃어댔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어딜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사막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내가 탄 낙타 ‘라쥬’하고도 이제는 꽤 친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다가갈 때마다 울 것 같은 눈동자로 고개를 돌려버리더니 이제는 내심 내게 다가오고 싶어 하는 눈치도 보인다.
오랜 시간 누군가를 바라만 보면서 조용히 가까이 있는 것. 이것은 어린왕자의 여우생각처럼 모든 생명체에게 언제나 알 수 없는 신뢰를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막이었기에 풀 한포기가 감동이었고, 밤이 되면 불어 닥치는 혹독한 추위와 나를 덮어버리는 모래 바람들, 기대보다는 훨씬 적었던 사막의 별들까지 모두 특별한 한 순간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체나는 자신의 낙타를 끌기만 했다는 점이다. 언제 탈것인지를 물어보았지만 항상 내일이라고만 대답했다. 아침을 늦게까지 챙겨먹은 후 낙타를 타고 두 시간을 걸었고, 점심을 챙겨먹고 억지로 두 시간의 낮잠시간을 가진 후 두 시간을 또 걸었을 뿐이었다.
체나는 양을 사서 양고기 바비큐와 맥주를 먹자고 했다. 그리고 집시를 불러 밤새 집시의 춤과 노래를 즐기자고 했다. 들은 척도 안하니깐 이번에는 사랑 고백이다. 한국에 남편이 있는 유부녀라고 했더니 남편도 한국에서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있을 것이라고 진지한 얼굴로 설득한다. 나는 그날 밤 그와 단둘이 있는 것이 불안해져 결국 집시를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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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하 서울포스트 |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집시들은 너무 굶어서 쉬어버린 목소리로 괴로워하며 노래를 불러 댔고, 삐쩍 마른 몸매로 유치원 율동 같은 동작을 반복했을 뿐이었다. 그녀들의 사리는 화려하고도 원색적인 느낌의 색상이었고, 오랫동안 씻지 않고 빨지 않았음을 추측할 수 있는 그러한 냄새들이 배여 있었다. 손가락에 반지 대신 수도꼭지의 고무핑킹을 끼고 있는 집시는 목에 걸고 있던 플라스틱 검은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 주었다.
힌두어로 “메 사디슈다 (결혼한 여성)”이라는 말만 알아들을 수 있었을 뿐.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였으나 그녀들은 미소 지으며 부러진 플라스틱 팔찌까지 내 손목에 채워주었다. 집시들은 인도어로 이것저것 말을 걸었고 나 역시 영어로 대답했지만 실제 우리가 서로 뜻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짓는 것이 전부였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너무나도 약하고 착해 보였었기에, 어느덧 형편없는 노래와 춤을 샀다는 불만은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체나는 악사(집시 남편들)과 밤새 술을 마셨고, 나는 집시들과 춤을 추다가 밤이 깊어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혼자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시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모래에 반쯤 덮혀 있었다. 저 멀리 모닥불엔 희미하게 불빛이 남아 있었고 집시들은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체나는 그날 아침 어느 마을에 들려 친구에게 나를 맡겨두고 물품을 구하러 가겠다며 떠나버렸다.
이른 오후, 나는 낙타에게 물을 먹이며 잠시 앉아 있었다. 저 멀리서 들리는 대구사투리! 나는 무의식중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누군가 큰소리로 영어로 소리치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정확한 한국식 발음에 대구식 억양을 구사하고 있어서 꽤 유식한 영어문장을 대구 말이라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대구에서 오셨나요~?”
나는 힘껏 소리쳐 보았다.
보기 좋게 건장한 청년이 힘차게 대답한다.
“네~! 그쪽도 대구에서 오셨나 봐요?”
“하하.. 아니요. 그런데 이렇게 완벽한 대구 억양의 영어는 처음 들어봐서요. 놀려서 죄송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영어인데요?”
그들은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스무 명 남짓의 한국인들이었다. 1박2일의 사막여행이라는데.. 사실 사막여행이라기보다는 낙타 관광이리라. 그들의 낙타는 넘버원이 뛰면 경주하듯 모두 따라 뛰었다.
“왜 이런 곳에 혼자 있습니까?”
낙타가 뛰고 학생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사이 그들의 가이드가 내게 와서 혼자 이곳에 있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내 사막 여행과 함께 가이드 체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가이드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마담, 여기까지는 마을이 많았었지만 앞으로는 사막만 나올 겁니다..”
그리고 체나와 단둘이 더 이상의 사막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충고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가이드에게 미소 지었다. 문득 체나의 가이드 노트에 적혀있던 충고들이 떠올랐다. 하루 만에 내게 반했다며 한국의 남편을 믿지 말라던 체나의 생각. 사막에서 춤과 바베큐, 집시들을 좋아하고 감기에 걸린 것 같다니까 감기약으로 ‘방’(마약의 일종)을 권했던 그의 행태들.. 설령 그가 감기약으로 진짜 방을 사용하고, 그의 생각 없는 말들이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나는 더 이상 그를 신뢰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해야 할 사막 여행이 두려워졌다.
이 사람은 체나를 아는 걸까..? 나는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그가 어떤 대답을 하던지 간에 인도인들의 상술과도 관계없는 흔한 거짓말에 쉽게 흔들리고 싶지도 않았었지만, 만약 그가 체나를 알고 있다면 그는 동료일지도 모르는 체나와 나, 둘 중 누군가에게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Hey~ My friend! (이봐요 가이드!)!”
저 멀리서 한국인 청년이 큰소리로 가이드를 부른다.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가이드는 낙타에 올라 그들에게 가버렸고, 넘버원 낙타가 뛰자 한국인들은 내 시야에서 멀리 사라져 버렸다, 나 역시 마을로 돌아갈 때가 된 듯 싶어 물을 마시고 있는 낙타에게 다가갔다.
“푸르릉! 푸르르릉~!!!” 체나의 낙타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제자리에서 뛰어 올랐다! 그리고 순간 나는 체나가 낙타를 타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낙타는 극도로 흥분했고 위험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체나는 처음부터 낙타를 탈 생각이 전혀 없었고, 그렇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사막을 향한 것이 아니라 마을과 마을 사이로만 짧게 짧게 걸었을 뿐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나는 낙타가 또 다시 흥분할까봐, 또는 멀리 도망 갈까봐 조바심을 내며 마을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무작정 체나의 친구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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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하 서울포스트 |
늦은 오후에 돌아온 체나는 낙타의 고삐를 잡고 다시 사막으로 향했다. 나는 체나에 대한 나의 마음을 어찌 정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를 믿고 사막여행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낙타는 2시간쯤 걸었을 것이다. 세상을 집어 삼킬 듯 거대한 사구(모래언덕)들이 나타났다. 바닥에는 백여 대의 짚차들과 관광차들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었고 족히 십여 미터는 넘을 듯 보이는 끝없는 사구들에 수백 명의 관광객들과 낙타들이 석양을 바라보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발이 사정없이 빠져대는 거대한 모래언덕을 나는 낙타에서 내려 미친 듯, 정신없이 꼭대기까지 허우적대며 뛰어 오르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었다.
거대한 하늘의 1/4를 차지하는 태양이 사구에 내려앉았을 때 나는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내 탄성소리는 이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탄성소리와 카메라의 셔터소리에 묻혀 버렸다.
사막의 아름다움이란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수많은 짚차들과 낙타들... 그리고 수백 명의 관광객들... 나는 이들 역시 사막의 일부분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사람들은 사막의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한순간의 풍경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어느덧 체나는 내 뒤에 와 오늘밤은 사막의 마을에서 묵자고 했다. 1000Rs(2만원)짜리 집시들을 부르면 어제 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아름다운 춤을 구경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을의 여관 값과 집시 값은 어제 밤처럼 둘이 반반씩 내자고 했다. 그는 계속 "If you want to.. (만약 당신이 원한다면)이라며 열심히 나를 설득하고 있었지만 나는 석양이 완전히 질 때까지 대답 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졌을 때 나는 조용히 사구를 내려왔다. 가능하다면 아주 오래도록 사막을 바라보고 싶었으나 체나가 두렵다면 더 어두워지기 전에 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가방을 챙겨 차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니 체나가 따라오며 무슨 일인지를 묻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사막여행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혼자 호텔로 돌아가는 짚차를 수배하겠다고 했더니 그는 굉장히 당황한 표정으로 변해 버렸다. 낙타를 타고 자신과 함께 돌아가자고 했다. 만약 그와 함께 돌아가서 자신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호텔 주인은 결코 남아있는 내 돈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애원 반 협박 반이다. 그러나 나는 남아있는 4일간의 계약기간 보다 그저 되도록이면 빨리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200Rs를 주고 도시로 돌아가는 짚차를 쉽게 수배할 수 있었다. 낙타를 타고 3일전에 떠나왔던 사막도시는 짚차로 불과 2시간 거리, 사구에서 완전히 져버린 줄 알았던 석양은 짚차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내내 지평선 끝에 걸려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