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순형 의원

요즘 정치권의 뉴스꺼리 중 하나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내용이다. 50년 전통의 민주당 해체를 요구하며 무조건 민주신당과의 통합을 강요했던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민주당 사수파이자 현재 민주당의 잔류 정치인들은 경쟁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섰다.

특히 민주당 독자 경선의 대선 후보로 나선 조순형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당 일부 지도자들은 평화노선에 어긋난다'며 자신을 비판한 것과 관련하여 "평화노선을 어겼다고 하는데 그것은 김 전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이라고 반발하면서 "김 전 대통령은 국가원로로서 체통을 지키고 정치개입 발언을 그만둘 때가 됐다"고 강력 비판했다.

조 의원은 최근 김 전 대통령이 목포MBC 창사 39주년 특별대담에서 "민주당과 민주신당이 대화를 잘해 단일 정당으로 선거에 임해주길 바란다"고 말한 데 대해 "민주당과 민주신당이 각자 경선에 들어간 마당에 DJ의 말 한 마디로 통합이 되는가"라고 반문하고 "통합의 당사자도 아니데 왜 관여하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후보단일화를 통한 통합만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조 의원의 DJ 비판에 대해 민주당은 찬반 양론으로 갈라지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박상천 민주당 대표는 28일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단선적 채널로만 정보를 보고받는 것 같다”며 “균형을 잃은 판단”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김 전 대통령은 현실정치인이 아니라 정계를 은퇴한 분”이라며 “민주당을 위해 발언해 주면 좋지만 김 전 대통령의 말씀에 의해 현실정치가 방향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지난 27일의 민주당 제17차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손봉숙 최고위원이 “김 전 대통령이 한 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한 것은 아주 적절치 않다”고 말했고 이상열 정책위의장은 DJ의 대통합 관련 발언을 지적하며 “민주당도 김 전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인 신국환 의원도 조순형 후보를 적극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서 DJ를 맹공하고 나섰다. 신 의원은 28일 보도자료에서 ‘조순형의 원칙과 양심은 최소한 남아 있는 민주당의 자존심이다’라며 “위장된 진실과 얄팍한 말장난으로 DJ를 옹호하고, 조 후보를 폄하하여, 표몰이로 가지 말라”면서 당내 논쟁을 비판했다.

그리고 “DJ는 민주당을 만들고, 누리고, 떠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깨버리려고 하고 있다”며 “열린우리당이 만족스럽게 되어 자랑하고 있다”고 DJ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는 지난 27일, 이인제 의원의 기자간담회에서 "햇볕정책은 훼손될 수 없는 민주당의 정체성이자 민족의 미래를 개척해 온 이정표로서 창조적으로 계승해 생산적 햇볕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조 의원을 우회 비판하자 나온 역비판의 내용으로 해석된다.

또한 민주당 경선 후보중 한사람인 김영환 전 장관도 지난 27일 "남북정상회담, 반드시 필요합니다" 라고 주장하며 민주당내에서 민주당의 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 있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음을 우려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 전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냉소도 그쳐야 한다고 말하면서 김 전 대통령도 민주당과 민주당원들의 분투를 비판이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상과 같이 민주당은 대선을 위한 경선 일정을 앞두고 대선 후보들간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는데 이러한 신경전의 핵심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옹호라는 양면에 따라 갈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순형 후보와 신국환 후보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론자이며, 이인제, 김영환, 김민석과 장상 후보 등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하여 일정부분 옹호를 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민주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계가 이렇게 험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민주당 분당과정에서부터 시작된 복합적인 문제로서 미니정당으로 전락한 3년여 기간, 민주당이 DJ의 도움을 원했으나 DJ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천명하면서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와서 민주당 해체와 나아가 범여권 대통합이라는 명분하에 대선용 급조 잡탕 정당을 강조하고 있음에 불거진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50년 민주당 역사에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호남을 대표하고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로서 그의 지도력은 이제까지 누구하나 반발하거나 토를 달아서 안되는 높은 수준의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지금 DJ는 민주당은 물론 호남지역민들에게서 조차 비판과 증오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이는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릇 리더란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간섭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간섭을 하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은 차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균형잡힌 안목으로 구체적인 현장의 정보는 물론 지식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수립할 것과 통찰력을 강조하는 반면, 현실 정치에 대한 정보와 이해를 터득하는 것에 소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이는 행보는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략적 구상에만 치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치권의 구도와 내부적으로 벌어지는 이전투구 혹은 범여권의 인간관계 등, 통합에 걸림돌이 되는 제반 사항에 대해 깊이있는 정보와 지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뜻이다. 정치권의 내막을 제대로 파악하고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과 전략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강제적일 정도로 비쳐지는 간섭은 자연히 반발과 충돌이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합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치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사항을 소홀함에 부작용이 발생하였고 자칫하면 그의 정치인생에 오점이 남겨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력은 꾸준한 내공에 의해 차츰차츰 쌓여지는 것이지 정치 기술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스프리즘, 정인대 논설위원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