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화려한 휴가’와 ‘D-War’를 연달아 관람했다. 근래 안성기, 박중훈의 ‘라디오스타’와 송강호의 ‘우아한 가족’ 이후 한동안 만족스런 한국영화를 보지 못해 답답하던 터였다. ‘라디오 스타’는 남자 선후배간의 속 깊은 우정을 386정서와 지방도시의 풍취를 배경으로 따뜻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우아한 가족’은 조폭 스토리의 통속적 재미와 기러기 가족의 사회성, 40대 가장의 인간적 애환을 적절히 조화시켰다는 점에서 영화 보는 재미를 충분히 남겨준 수작들이었다. 스크린 쿼터 논란 이후 최근 한국영화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터라 ‘화려한 휴가’와 ‘D-War’ 두 영화를 관람하기 전의 기대는 설렘에 가까운 것이었다.
1. 화려한 휴가는 나처럼 ‘광주’를 정신적 기둥으로 청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겐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운 영화였던 것 같다. 영화의 세세한 면에 눈이 갈 틈이 없이 영화가 담고 있는 역사적 배경, 80년대 중반 20살 대학생이던 나 자신의 피를 끓게 했던 당시의 추억, 영화 속 장면들의 사실성이 어우러져 내내 가슴이 뻐근하고 자꾸만 눈물이 흘러나왔다. 옆 자리에 혼자 앉아 연신 손수건을 눈가에 갖다대던 내 또래 여인도 아마 비슷한 심경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80년 광주의 현장에 있던 광주와 호남인들이 이 영화를 볼 때의 심정은 또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5월 혼자서 망월동을 찾았던 적이 있다. 매년 여럿이 참배하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조용히 혼자서 그 곳을 찾았는데, 느낌이 특별히 강했던 것이 다시 상기되었다. 1980년 이후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는 모든 정치, 경제, 사회적 자유는 ‘광주’ 위에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는 대한민국 사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혼이다. 영화는 주제를 ‘어떻게’ 다루는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다루는 가가 역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교과서에서만 ‘광주’를 알던 후세대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줬다는 점과 함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살아야지.” 하는 반성의 몸가짐을 새로이 다지게 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2. "D-War"는 또 다른 의미에서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보기만은 어려운 영화였던 것 같다. ‘용가리’를 제작하던 영등포 스튜디오 시절, 스튜디오를 직접 찾아 제작현장을 둘러본 이후 심형래 감독의 집요한 도전과 실패, 재도전을 멀리서 지켜봐온 나로서는 인간적 모멸에 가까웠을 것이 분명한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혹독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가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경이이자 감탄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D-War는 최소한 절반의 성공임은 분명한 것 같다. 한국고유의 이무기 전설과 영화말미의 배경음악 아리랑으로 대표되는 한국적 컨텐츠를 미국 LA를 배경으로 해서 풀어내는 새로운 방식의 ‘세계영화’적 접근의 발상, 용 변신 장면에서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박진감 있는 컴퓨터그래픽, 비교적 짜임새 있게 진행되는 시나리오나 구성 등 세 가지는 토종 한국영화가 이런 장르의 영화에서 이 정도 수준에 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점에서 성공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하드웨어적 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배우들의 연기나 무대, 기본 장비 등은, 최첨단을 지향하는 영화로서는 걸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 영화의 세련미와 완성도에 문제가 있다면 이런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심감독의 기본실력을 입증했고, 이번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에게 몇 가지 문제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자신감을 제공할 것이라 믿는다.
3. 전혀 다르게 보이는 이 두 영화를 연달아 보고 나는 의외로 ‘대한민국의 세계화’라는 화두를 떠올리게 되었다. 대한민국에 아시아 최고수준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자유를 제공한 기초인 ‘민중의 투쟁을 통해 얻은 민주주의’, 그리고 세계무대를 직접 향한 도전의 꿈을 꾸게 한 터전으로서의 ‘창조적 문화토양’과 ‘한류’. 이는 모두 대한민국이 인류보편의 가치에 기여할 확실한 자산이다. 이런 자산이 확보되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이제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향해 보다 과감하게 자부심을 갖고 뛰어나가야 한다는 신호이자 조건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에서 몇 해를 보내는 동안, 세계의 눈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또 한국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교차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정치의 현장에 복귀한지 두 달. 국가비전에 대한 고민과 국제적 시야의 면에서 여전히 답답한 제자리걸음을 계속하고 있는 국내정치현실에 대한 고민이 깊어가는 시점에서 두 영화를 통해 ‘비전의 제시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뚫자’는 귀국 당시의 초심을 새로이 다진다.
▣ 칼럼니스트 전의원 김 민 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