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사막의 도시 아가데즈..


술탄의 집과 낙타시장을 둘러보고 마을의 결혼식도 보았지만 딱히 특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자신의 집에서 머무르라는 오마르의 청을 뿌리치고 천장에 선풍기가 있는 주유소 창고에서 머물렀었지만 하루에도 몇 개씩 탄산음료를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고 하루 두 번 태양빛을 피해 마을의 샤워실에 가는 것 정도가 내 일과의 전부였다..

저녁이 되어 기분좋게 샤워를 하고나니 또 다시 할 일이 없어진다.
가방하나를 챙겨 낙타시장으로 갔다. 요즘에 흥미가 생긴 것은 아프리카 부족들의 전통 칼들.. 며칠 돌아다닌 덕에 이제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눈이 생겼다. 처음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칼 뿐이었는데 이제는 낙타 도살용, 그리고 진짜라 할 수 있는 전쟁용도 구별할 줄 알았다. 이런것을 두고 견문을 넓힌다고 하는거겠지 싶어 나름대로 뿌듯한 기분도 들었다.

시장으로가는 길은 꽤 멀다. 지루함을 참으며 길을 걷고 있는데 파리떼가 얼굴에 달라붙는다. 빌어먹을 사막기후.. 나도 모르게 또다시 욕이 튀어 나온다.

■ 환경의 우열을 말하는 것은 단순히 한국인의 편견일지 모르겠다. 적어도 이들은 땀띠나 파리떼를 크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듯 했으니까.. SPN

샤워를 하고 걷고 있는데도 TV에서 본 난민촌 아기들의 얼굴과 내 얼굴이 다를 바가 없다. 동네 사람들에게 땀띠와 고름은 씻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라고 말해 줬지만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씻어대는 내 등에도 이제는 땀띠가 생기기 시작한다.

머리를 감지 않은지는 이 주일이 넘었다. 탄자니아에서 샀던 목욕샴푸는 이미 다 쓴지 오래..
날마다 머리감던 한국에서의 버릇이었지만 이곳에서는 굳이 감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전혀 찝집하지도 않은데 괜히 세수비누를 썼다간 머리결만 더 뻣뻣해질지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 가게들을 뒤져봐도 빨래겸 세수비누와 일회용 세제 가루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오마르의 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던 날 흑인 아저씨는 빨래 세제를 잔뜩 사와 직접 손을 씻겨 주시고 남는 건 샤워할 때 쓰라고 싸 주시지 않았던가. 서서히 해질무렵.. 슬슬 온몸이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몸으로 느끼기에 사막이 건조하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공기중에 습기도 많지만 온도가 너무 높아 다만 포화수증기량을 채우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 몸을 기어다니는 미세한 땀방울들은 나를 신경질적이고 포악한 동양여자로 만들곤 했으니 말이다.

'딱~!'

뒤를 돌아보니 거리의 꼬마가 던진 돌이 내게 한참 미치지 못한채 땅에 떨어진듯하다.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왜 돌을 던진거지? 꼬마와 주변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악의가 없다. 부끄러운듯 누이 뒤에 숨는 것으로 보아 그냥 관심을 끌고 싶었나 보다.

고개를 돌려 다시 길을 걷는데 이번에는 어마어마한 모래바람이 불어오면서 엄지손톱만한 돌멩이가 정통으로 내 빰을 때리고 지나간다. 지루한 날씨에 모래바람이 이는 것은 불과 2~3초.. 당황한 마음에 담벼락으로 붙어보지만 모래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바람이 그치는대로 오토바이를 타고 주유소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내 뺨은 멍이 들었고 다음날 저녁 역시 낙타시장에서 나는 짧은 간격으로 불어대는 하마탄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머리카락 사이의 모래들을 빼내기 위해 결국 찬물에 세제를 풀어 머리를 감아야만 했다.


이틀간의 하마탄은 어딜가고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선선하다 싶다. 하마탄이 저녁에만 불었던것을 감안하여 이번에는 늦은 아침 낙타시장으로 향했다. 늘 그랬듯이 거리에서 만난 소녀들은 부끄러운듯 서로에게 숨어버리고 용감해 보이는 꼬마들은 자기 길을 가는 척 나를 쫓아오기도 한다.

날씨가 좋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세상이 순식간에 어두어진다. "쿠르르 쾅쾅!"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리면서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느집 현관에 붙어보지만 역시나 빗살을 피할 수는 없다. 온몸에 멍이 들겠구나 각오를 하고 있는데 집주인 아주머니가 들어 오라고 손짓을 한다.

방안의 습도와 파리떼는 엄청났다. 아이가 셋.. 앳되보이면서도 가늘가늘한 아주머니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이어트를하는 한국 친구들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손님을 의식했는지 아주머니는 막내에게 바지를 입히지만 엉덩이쪽에 구멍이 뚫려있어 기어다니는 아이에게 별 효과가 없다.

외국인 손님이 좋은가보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 아주머니는 직접 만든 구질구질한 수공예품을 이것저것 꺼내어 구경시켜 준다. 소중하게 숨겨둔 망가진 플라스틱 장신구들과 조각들도 모두 꺼내왔다.

■ 비가 그친 후 마을 바닥은 온통 물범벅이 되면서 오토바이나 택시를 타는 것도 쉽지 않았다. SPN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물 한대접 대접하지 않았다.
목이 마르긴 하지만.. 이런 집에서는 물조차 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조바심에 물을 청하지 말자 생각했는데 이때 집에 들어온 남편이 내게 물을 대접하라 아내에게 명한다. 더듬거리는 원주민어로 대화를 하지만 비가 언제 그치는지 모른다는 건지 말을 모른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사용하는 아프리카 언어에는 미래시제가 없으니까. 오늘밤은 자고 가라는 말만 겨우 알아들을 정도였다.

폭우같은 소나기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쏟아진다. 빗줄기는 다시 굵어지고 저녁 나절이 되어서야 오랫동안 가늘게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또다시 시장 어귀에서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주유소로 돌아와야만 했다. 애써 시장까지 갔건만 오늘도 아무런 소득이 없다. 날씨는 오싹하도록 추운 것도 같고 후덥지근한 것 같고.. 내 신경세포들은 몽땅 어디로 날아간건지 알 수가 없다.

그때는 몰랐었지만 건기에서 우기로 넘어가는 바로 그날이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내가 갔던 사하라의 곳곳은 모두 빗물투성이었고 녹음이 푸르렀고 저멀리 기린이 보이곤 했었으니까.

■ 우기가 찾아온 후 사하라 근처의 사헬지역들.. 공기도 상쾌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SPN

그리고 그날이 확실한 건기도 우기도 아닌 가장 좋은 날씨였는지 아니면 기후가 변하는 가장 끔직한 날씨였는지는 그건 잘 모르겠다. 영어나 불어를 유창하게 한다하더라도 그런 세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곳이 한국인으로서는 쉽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약간의 신경통과 얼굴의 멍을 빼면 건기와 우기를 모두 보아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여행을 다니면서 운이 좋았다고 느끼는 것은 정말로 운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여행이 특별하다고 느끼는 여행자들의 습성 때문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