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광복절, 세계를 바꿀 우리를 생각해보다
-SPn 서울포스트, 권종상 자유기고가 

어머니는 '해방되던 날'에 대한 기억을 아직도 또렷하게 갖고 계십니다. "그날 희한하게 바람이 세게 불었거든. 나중에 사람들이 그 바람이 '해방 바람'이라고 했어. 뭔 바람이 그렇게 불던지."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을, 그리고 어떤 이들에겐 '절망'을 가져왔을 그 바람. 일본인들은 짐을 챙겨서 떠나야 했고, 마을 사람들이 그 일본 사람들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하러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무지했겠지요. 일제 36년은 우리로부터 많은 것들을 앗아갔습니다. 물질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도. 

민중의 분노는 일제에 기생해 횡포를 부려온 조선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일제의 주구들은 두들겨 맞고, 심하면 죽기까지도 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중단됐습니다. 일단은 퇴각하지 않고 잔존한 일제의 세력이 치안권을 그대로 미 군정으로부터 넘겨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미 군정이 한참 각 지역에 인민위원회를 자발적으로 설치하며 일제로부터 치안권과 행정권을 넘겨 받기로 약속받은 몽양 여운형 주도의 건준을 불법화시켰기 때문에. 

역사에 가정이란 건 없지만, 미국이 그때 일본이라는 존재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제대로 알았다면 지금처럼 일본에 동북아의 질서주도권을 그대로 넘기려 했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해 보게 됩니다. 그들 스스로의 반공 로직에 빠져버린 미국은 '반공'이라는 화두 아래 수많은 무리수를 썼습니다. 물론 이같은 그들의 잘못된 정책 결정 배경엔 군산복합체들의 야욕, 호전주의적인 일부 군부 내 강경주의자들의 목소리, 그리고 '백인우월주의'가 있었을 겁니다.

얼마 전 버지니아에서 사망자까지 낸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저는 오래전 한반도를 지금의 이 지경으로 몰아 넣은 백인우월주의의 한 면을 봅니다. 사실 유럽 같으면 이것이 분명한 민족주의로 갔을 겁니다. 독일의 나치 같은 경우가 분명히 이 점을 보여주지요. 게르만 우월주의에 빠진 독일이 어떤 식으로 망가졌는지는 재론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미국은 애초부터 이민의 나라. 그렇기에 이곳에서 극우는 인종주의의 모습으로 자라날 수 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미국엔 원주민이 존재했고, 그 원주민들을 사지로 몰아내고 나서 세운 이 나라는 백인의 나라일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미국이 이렇게까지 성장하게 된 가장 큰 배경인 물류의 자유 이동엔 중국인들의 힘이 있었고, 한인들의 이민 역사도 이곳에서 농장 노동자로서 시작됐었습니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힘 역시, 정치 혐오에 곁들여 자기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는 것에 분노한 백인 저소득층들의 인종주의가 깔려 있는 극우적 보수주의였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이곳에서도 '범죄'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60년대의 인종 갈등을 통해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법들이 지금 깨지고 있는 것은 결국 미국 스스로가 잘못 선택한 정책이 부메랑처럼 미국의 뒷통수로 날아왔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인간과 복지를 생각하던 때 선택했던 정책은 레이건 이후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을 위한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세우기 시작한 이후, 즉 분배의 공정성이 깨진 이후 미국의 극우화는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 안에서 키워낸 불만 세력들이 자라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 중 소수인종들의 경우 심지어는 IS 의 테러에 가담하는 등의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메이저인 백인들은 이렇게 극우로 돌아서는 겁니다. 

문제는 이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겁니다. 어쩌면 이런 이들이 사회에 넘칠 때, 이 사회는 스멀스멀 전운에 몸을 기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미국이 안고 있는 이 불씨는 결국 분배의 불평등이 독버섯이 되어 사회에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가진 '위상' 때문에, 이것은 이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가 되어 버린다는 겁니다. 

이들이 전에 잘못 선택한 정책은 한 민족으로 수천년을 함께 살았던 우리 민족을 반쪽으로 갈라 놓았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두 개의 다른 모습의 정치 세력이 극단적 반목을 지속하며 살아 오도록 강요했습니다. 우리의 광복은 우리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기회였으나, 전혀 다른 두 개의 정치세력이 그들의 정권욕을 위해 엄청난 수의 민족 구성원이 내몰려 희생되게 만든 발원지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의 광복의 의미를 제대로 생각하고, 우리가 직접 민족의 문제를 결정하려 하는 의지를 다시 되새기는 것은 중요합니다. 적어도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약소국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의 이 기회는, 과거의 광복이 우리의 어깨 위에 올려 놓았던 '청산해야 할 짐'들을 한번에 치워버릴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할 겁니다. 그렇게 우리가 제대로 우리의 짐을 털어버린다면, 오히려 지금 미국을 썩게 만들고 있는 이 인종주의마저도 털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촛불 혁명이 한국을 그런 위치의 나라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시애틀에서....

▣ 재미교포, 자유기고가 (권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