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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 캠페인] 시민들이여, 박근혜 파면날(탄핵인용 결정) 우리 태극기 흔들며 '대한민국 만세!'를 맘껏 외치자!!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7/03/05 19:58:51)

[서울포스트 캠페인] 시민들이여, 박근혜 파면날(탄핵인용 결정) 우리 태극기 흔들며 '대한민국 만세!'를 맘껏 외치자!!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 기자


박근혜 파면될 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탄핵인용 순간, 박근혜는 검찰수사 연속선상에 서게 된다. 헌재에 보낸 특검수사의 연장이다. 사형이냐, 무기종신형이냐, 유배형이냐, 유기형이냐, 집행유예냐의 판가름은 법원 몫이다.

국민들아, 박근혜 탄핵날 드라이 한 세력에게 빼앗긴 태극기를 들고 맘껏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자.

▲ 서울포스트 창간10년 기획캠페인-대한민국 1인혁명-그리고 또 다시 광화문에서. 2016년 봄에 사용한 피켓 에 문구만 만들어 붙였다. ⓒ20170212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우리가 최근년도에서 국내 현안에 태극기를 들지 않고 촛불을 들었던 이유는, 촛불의 상징성 때문이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는 등불,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길잡이로서의 기능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때, 소고기 수입에서 광우병문제, 최근 박근혜탄핵까지 촛불은 그 기능에 충분히 부합되었다. 물론 과거 촛불 이전엔 독재에 항거하거나 민주화운동에서도 태극기를 주로 사용했었다.

반면, 태극기는 국가간 경쟁이나 문제에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대한독립만세운동, 외국간 스포츠경기, 독도문제나 위안부문제 등 대일본 규탄대회, 미군 등 대미국성토대회 등에서 그랬다.

그런 까닭에 '태극기 집회'라는 국내 시위용 단일 용어는 과거 어떤 자료나 기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을 작년 2016년 12월 필자가, 서울역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집회하는 탄핵반대 무리를 향해 최초로 '촛불집회'와 대비되는' 태극기집회'로 명명했다. 현상을 스케치 하듯 한 이름이지 본질을 정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희박하지만) 준엄한 역사가 새로 시작될 가능성이 도래했다. 국기문란죄인인 박근혜를 내쫒는 촛불혁명이 그것이다. 이는 대한민국혁명의 종결이 아니라, 앞으로 혁명적 국가가 뿌리 내릴 '시작'인 것이다. 우리도 박근혜파면날(탄핵인용일)을 프랑스대혁명처럼 한국대혁명기념일로 만들어야 할 판이다.

[※ 프랑스대혁명: 1789년 프랑스에서 부르봉 왕조를 무너뜨리고 국민 의회를 열어 공화 제도를 이룩한 시민 혁명. 자유, 평등, 박애를 3대 이념으로 했다. 루이 16세가 부르봉 왕가 마지막 사람으로, 왕정도 1792년 9월 21일에 무너졌으며 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는 반혁명죄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이전과 이후 수 십년이 걸린 '프랑스혁명'에서 주목할 부분은 많다. 재정 등 국가위기에서 '개혁성향의 귀족들'이 봉건귀족과 성직자 등 특권계층, 부르조아 들의 분담을 늘리고 민중의 부담을 줄이자는 데서 출발했다. 농민과 민중이 개혁성향의 자코뱅당을 전폭지지했다. 왕(루이16세)과 특권계층이 다시 민중을 속이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민중의 권리를 거부하자, 파리 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이것이 혁명의 시발이다. 유럽국가들도 프랑스 와 비슷한 사회구조이기에 이에 위기를 느낀 루이 16세는 대 유럽 자원전쟁을 하게 되었고, 유럽국가들은 자국의 권력붕괴 위기감으로 프랑스 혁명세력을 공격하는 전쟁을 시작하게,되었다.

179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 말기 나폴레옹 이 혁명에 성공해 1804년부터 1815년까지 황제를 지냈으며, 프랑스 는 이 시기에 대부분의 유럽을 장악해(나폴레옹 전쟁) 프랑스제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1812년의 러시아 원정실패, 1813년에 라이프치히 에서 제6차 대프랑스 동맹에 의한 패배로 퇴위하고 엘바 섬에 유배, 1년이 안돼 섬을 탈출해서 다시 권력을 잡았지만, 1815년 6월에 워털루 전투에서 대패배, 6년을 영국 왕실에 의해 구속된 채로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최후를 보낸다.

나폴레옹 이 사라지자 프랑스 는 다시 부르봉 가의 왕정으로 복귀하였다. 루이 18세가 폐허가 된 프랑스 왕으로 등극하여 지난 25년간의 사태를 잘 수습했으나, 그의 왕위를 계승한 샤를 10세(Charles X)는 귀족편에 놀아나는 정책을 펼쳤다. 사정이 달라지지 않음을 안 시민, 학생, 노동자들은 1830년 봉기하여 샤를 10세를 폐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 혁명을 계기로 영국,프랑스,벨기에(독립) 등은 온건한 자유주의가 뿌리내리기 시작했으나, 왕정에 눌린 프로이센(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에서는 자유주의 억압체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박근혜정부로 치면, 최순실과 골치아픈 일들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여 한반도에 터무니없는 사드 를 '긴급' 배치하고 북한, 중국,러시아 와 긴장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 사드 는 미국본토 방위를 위한 장거리미사일 방어체계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은 막지 못한다. 따라서, 북한 도발을 막기 위한 사드 배치라는 정부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 1830년 프랑스 혁명(Révolution française)을 그린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년 4월 26일 ~ 1863년 8월 13일)의 1830년작,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소장 ⓒ자료

오늘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답지 않은 행동을 너무 많이 해서 보수를 완전히 궤멸시키고 대한민국을 두 동강으로 절단내고 본인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 같다"고 밝혔다. 사태를 적확히 지적한 혜안이다.

이번 탄핵으로 최태민과 함께한 박근혜의 40년여년의 적폐는 죄가를 받겠지만, 한국사회에서 청산해야할 적폐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龍)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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