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근로자의 날엔 <한국 차문화사>를 집필하신 류건집 교수님과 저녁 약속이 있었습니다.
서점 몇 군데 다니다가 시간을 맞추어 간다고 인사동엘 갔는데 아직 시간이 남습니다.
그저 거리 구경이나 좀 해야겠다 싶어서 가는데
금발의 아주머니, 아니 할머니쯤 되어 보이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영어로 된 지도를 가지고 들여다 보는 폼이 어딘가를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용감하게 다가가서 영어로 "도와드릴 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분들 너무나 고마워 하면서 갈곳을 손가락으로 짚어 줍니다.

"창덕궁" 창경궁은 아는데, 창덕궁이라, 현대 본사 옆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우회전해서 300미터쯤 가면 왼쪽에는 비원이 있고,
길 건너편 오른 쪽에는 창덕궁이 있다'고 알려주었더니 고마워 합니다.

그리고는 헤어져서 인사동 길로 내려오다 보니
그분들이 길을 건너려면 지하도도 들어가야 하고, 좀 복잡할 것 같았습니다.
시간도 아직 남아있기에 다시 되돌아가서 부지런히 그분들을 따라갔습니다.
종로 경찰서 앞에서 다시 그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영어로 <나는 당산들과 함께 거기에 갈 시간이 있다." 고 말했습니다.
그분들 무척 고마워 하면서 가다보니,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데 불어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불어로 <프랑스 사람이냐?> 고 물었더니 놀라면서 반가워 합니다.
불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기에 조금한다고 했더니 또박또박 불어로 이야기합니다.

'불어를 전공했냐'고 묻길래 제대로 못하면 좀 그래서 솔직히 거짓말을 좀 했습니다.
전공이 불어가 아니고 국문학이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이분 신이나서 파리에서 왔다면서 프랑스에 와본 적이 있느냐는 등 이야기를 합니다.
어쩌다 영어가 섞여나와서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임무완수하고 오는 길이 즐거웠습니다.

비록 거짓말을 했지만 그분들이 돌아가면 한국어를 전공했다는 사람이
영어도 좀 하고, 불어도 좀 하고, 거기다가 아주 친절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사실 불어를 써먹은 지가 오래되다 보니 어쩔 수없이 거짓말을 했습니다.
다시 불어책을 끄집어 내어 공부라도 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란 죽는 순간까지 공부를 하도록 태어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즐거운 이 아침, 뭔가 다시 공부하는 시작이었으면 합니다.

▣ 칼럼니스트 문필가 최 복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