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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구국의 결단
정치인 노무현에게 (퇴수일기 11. - 2007.5.8)
 김민석 칼럼니스트 (발행일: 2007/05/08 13:49:14)

미국 대통령이 되는 제1요건이 무엇인가 질문한 적이 있다. 하버드 대학 케네디스쿨에 유학하던 시절, 대통령학 과목에서의 일이다. 포드, 레이건, 부시 3대 공화당 정부에서 백악관 경제, 정책 수석을 지낸 교수의 답은 Desire(열망)였다. 최근 예비대권주자들의 연이은 불출마선언을 지켜보면서, 소명의식에 기초한 불굴의 권력의지야말로 최고지도자의 필수적 자질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2002년 대선의 최대변수는 후보단일화였다. 2007 대선에서도 여야 공히 후보단일화가 최대변수가 될 것이다.
비한나라당 진영은 춘추전국과 백가쟁명의 난세를 맞이하였다. 이 난세를 평정하는 이가 최종 승리자가 될 것이다. 2002년 후보단일화의 태풍의 눈 한 가운데 서 있었던 나에겐, 그때와 오늘의 정치현실이 한 눈에 교차되어 들어온다. 그 때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 결단이다. 난마처럼 얽힌 정치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이 아닌 힘과 행동이다. 정치적 힘과 행동은 개인보다는 전체와 국가를 생각하고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결단에서만 나온다.

1. 현 정국

노대통령은 정권재창출과 독자정치세력화를 위해 정치전면으로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 협상 타결 이후 조중동 등 제도언론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국정지지도 30%선을 회복한 노대통령은 ‘입이 째지게’ 기분 좋은 자신감을 배경으로 공격적인 대선관련 발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유시민 장관을 필두로 한 친노세력 또한 대선과 총선을 향한 조직정비에 박차를 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노대통령과 친노 세력의 자신감과 기대는 대형 착각일 뿐이다. 진정한 중도개혁세력의 통합과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이러한 허망한 자신감과 기대를 꺾어야만 한다. 최근 여론조사에는 3대 허수가 숨어있다.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율에는 현 정권에 대한 국민적 반감에 따른 반사이익이 허수이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에는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한 중간계층과 일부 중도개혁세력, 386세대 및 호남지역의 지지가 허수이다. 최근 상승한 노대통령의 국정지지도에는, 총선이나 대선에서 노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보수층 및 한나라당 지지층의 지지가 허수이다.

‘노대통령의 재출마가 허용된다면 대통령으로 찍겠습니까?’, ‘노대통령이 미는 대선후보가 나오면 찍겠습니까?’, ‘노대통령의 추종자들이 만든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가 당신의 지역에서 출마하면 찍겠습니까?’ 이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라! 그러면 현실은 명료해진다. 세 질문 모두 결코 한자리수의 지지를 넘지 못할 것이다. 국민은 노무현같은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같은 정당이 다시 나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안전한 마무리를 바랄 뿐이다. 따라서, 대선에서 승리하고, 혹 실패하더라도 제1야당으로 살아나고 싶다는 노대통령의 기대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 지지율, 이명박 후보 지지율, 노대통령 국정지지도,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실제투표에서 사상누각이라는 점이다.

재보선을 석권하던 한나라당이 첫 패배를 맛본 것은 노대통령이라는 비판의 타겟이 무대에서 사라진 무노(無盧)선거였기 때문이었다. 노대통령과 추종자들이 이 냉혹한 사실을 망각하고 국정지지도의 일시적 상승이 주는 환각에 취해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결국 노대통령이 정치적 발언을 할 때마다 지지율이 추락했던 아픈 기억을 다시 맛보게 될 것이다.

2. 노무현 정치의 평가

노대통령과 친노 세력의 정치적 장래는 본인들의 몫이지만, 그들의 행보가 중도개혁진영 전체의 대통합과 대선 승리를 망치는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 주체적인 세계화, 지속적인 혁신, 절대평화의 유지가 국가생존의 기본조건인 대한민국의 주류는 중도개혁노선이다. 뿌리 깊은 부패의 관성과 낡은 냉전적 사고를 버리지 못하는 한나라당도, 중국의 문화혁명과 같은 얼치기좌파의 사이비개혁노선으로 국민의 염증을 불러온 친노 세력도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니다. 중도개혁세력은 통합과 후보단일화의 1차전에서 노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을 제압하고, 대선 본선이라는 결승전에서 한나라당에 승리해야 한다. 노무현 정권 심판과 한나라당 집권저지라는 양대 목표를 달성하고 新중도개혁정권을 창출하는 것이 이번 대선의 과제이다. 지금은 이 두 번의 순차적 승리를 위해 중도개혁세력이 각성하고 결단할 때이다.

왜 노무현 세력의 정권재창출과 정치세력화가 용납되어선 안 되는가? 지난 5년간 노대통령이 해온 식의 국정운영이 연장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치는 신(新)PK지역주의, 분파주의, 책임전가, 준비부족, 독선의 5대 특징으로 종합된다.

신PK지역주의는 고향에서 비주류로 일관한 노대통령과 그 주변의 정치적 금의환향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대통령은 정치적 원칙과 노선을 저버리고 무원칙하고 지역주의적인 구애(求愛)를 해서라도 영남의 호감을 얻고 차기총선에서 자파세력을 당선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해왔다. 민주당 분당, 대북송금 특검, 영남 편중인사, 대연정 제안 등이 바로 그 것이다. 호남표를 얻기 위해 민주당에 들어와 후보로 당선된 노대통령은, 막상 당선되자 자신을 당선시킨 민주당을 깨더니 이제는 민주당과 통합하는 것조차 지역주의로 매도하고 있다. 이는 결국 원칙을 깨서라도 자기 고향에서 승리해 대접받고 싶다는 치졸하고 비양심적인 신지역주의일 뿐이다. 100보를 양보하여 노대통령의 이런 태도를 YS의 민자당 합류 이후 무너진 영남민주세력 복원시도로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해도 문제는 그 원칙과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노대통령은 열린당 탈당파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국회의원과 장관이 되기 위해 열린당에 들어온 사람들이 당을 깰 수 있냐고 하지만, 노대통령 본인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민주당에 들어왔다가 목표를 이루자 당을 깨지 않았는가? 정당정치의 원칙을 운운하는 그 비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본인 스스로 민주당을 깨지 않고 민주당에 남아 영남출신 대통령의 위치를 십분 활용하여 지역주의극복을 이뤄냈어야 한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노대통령 임기 중에 영남의 지역주의는 사라지지 않았고 호남은 더 큰 배신감을 느껴 총체적으로 이 나라의 지역주의는 더 악화된 것이다. 누가 뭐래도 지난 5년간 이 나라에서 지역주의가 심화된 가장 큰 책임은 노대통령이 져야 한다. 민주당의 분당과 중도개혁세력의 분열은 노대통령의 최대의 역사적 과오이다. 민주당을 깬 노대통령이 열린당을 탈당하는 정동영과 김근태의 배신을 논하는 것은 그래서 자가당착의 희극이다. 신PK지역주의는 지금도 대통합을 막고 있는 최대의 장애물이다.

분파주의는 전체보다는 소그룹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다. 중도개혁세력의 대선승리보다는 소그룹의 기득권유지를 우선하거나, 노선의 이념적 선명성을 핑계로 대통합을 회피한다면 바로 그것이 분파주의이다. 기득권 유지적 분파주의와 이념적 분파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2002년과 2007년 대선에서 노대통령 세력은 똑같은 기득권 유지적 분파주의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측은 대선 승리보다는 후보의 기득권 유지를 통한 대선 이후 당권장악과 신당창당을 내심 더 우선시했다. 내외의 압력에 밀려 결국 수용했지만, 후보 단일화를 끝까지 거부한 것도 그 때문이다. 노정권의 소위 코드정치란 분파주의를 노골적으로 내놓고 한 것이다. 지금 열린당 해체를 거부하고 독자세력화를 시도하면서 민주당과의 통합을 지역주의로 매도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친노 세력이 ‘대선에 지더라도 원칙을 지키자’고 이야기하지만 그 속내는 ‘독자정치세력화가 우선이고 중도개혁세력의 대선승리는 그 다음’이라는 기득권 유지적 분파주의이다.

중도개혁세력이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드는 지금은 이념적 분파주의 또한 여러 세력을 유혹할 수 있다. FTA 반대나 신자유주의 반대 등을 기준으로 진보개혁의 깃발을 내건 김근태, 천정배 의원과 시민운동세력 또한 이런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만일 민주당이 중도개혁진영내의 상대적 진보세력과의 통합을 과도하게 기피한다면 그 또한 보수적 이념분파주의의 유혹이다. 그러나 정당과 세력, 정파는 다른 것이다. 중간층을 포괄하는 중도개혁세력 단일정당을 위한 대통합의 길에서, 상대적 보수건 상대적 진보건 각 정파는 작은 차이를 뛰어넘어 크게 하나가 되어야 한다.

책임전가는 노대통령의 대표적 정치수법이다. 노대통령은 주변의 흔들기를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2002년 민주당 후보선출 이후 후보단일화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의 왜곡이다. 광주에서 시작된 노풍이 꺼졌던 첫 계기는 민주당 후보선출 직후 YS를 찾아간 ‘YS시계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노후보의 뇌리 속에 잠재해있던 신PK지역주의가 밖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지지율 폭락의 첫 계기였던 셈이다. 자신의 경솔한 언행으로 지지율 폭락의 위기에 처한 노후보는 ‘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의 민주당후보를 당선시키지 못하면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 다음엔 ‘재보선에서 패배하면 물러나겠다’고 하더니 급기야 ‘재경선을 하자.’고 했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시킨 사람은 없었다. 스스로 내뱉은 말이었다. 지방선거와 재보선에 패배했지만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재경선이란 무엇인가? 기존의 경선결과를 무효로 한다는 뜻이니, 이미 선출된 후보는 기존의 후보자격이 자동 상실되는 것이다. 남들이 흔든 것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흔든 것이다. 이런 노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그가 압력에 밀려 단일화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YS시계사건으로 지지율이 추락한 이후 단 하루도 이회창 후보를 이기지 못하던 노후보는 후보단일화가 성사된 이후의 여론조사에서 단 하루도 이회창 후보에게 진 적이 없다. 그러나 노후보는 집요하게 기득권에 집착하면서도, 끊임없이 남들이 자신을 흔들었다고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자파세력을 결집시키고 국민을 기만했다. 민주주의 원칙을 철저히 수호해온 것처럼 주장하는 노대통령의 주장은 그래서 위선이다. 이러한 책임전가정치는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계속됐다. ‘대통령 못해먹겠다’, ‘재신임’ 발언이 그것이다. 임기응변으로 그 때 그 때 위기를 모면하는 책임전가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치적 혼란과 갈등, 국민 분열을 심화시키고 정치를 희화화시켜 정치적 불신을 가중시킨다는 점이다. 노대통령을 당선시킨 것 외에는 아무런 죄도 없는 민주당을 지역주의의 원흉으로 매도하는 것 또한 이런 책임전가 정치의 전형이다.

준비부족은 국가경영자로서 노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노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비로소 국가경영 전반에 대한 학습을 시작했다. ‘반미면 어떠냐?’로 임기를 시작한 노대통령이 저돌적인 신자유주의자가 되어 ‘묻지마식 FTA타결’로 국정을 마무리하고 있는 대반전이 그것을 증명한다. 청와대는 절묘한 현실주의라고 강변하지만 사실은 다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보수층은 노대통령의 좌파성향을 걱정했지만, 노대통령의 진정한 문제점은 좌냐 우냐가 아니라 장시간 깊이 있게 학습된 일관성이 없는 점이었다. 그것이 임기 내내 외교와 남북관계, 경제 등에서 설익은 구상과 경솔한 용어선택, 정책혼선, 불안정한 국정운영, 대통령 권위의 실추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 5년간 국민의 정치적 학습의 결론은 ‘이제는 실력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단순한 권력욕이 아닌, 준비된 Desire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정치, 경제, 외교, 교육 등 국정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학습이 일관된 체계로 차분하게 정리된 사람이 국정을 맡아야 한다는 것. 다시는 이런 식의 실패한 국정운영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것. 이것이 노대통령이 국민에게 준 또 하나의 교훈이다.

현 정부 임기 내내 국내정치는 경색되었다. 여야관계만 경색되던 역대정권과의 차이는 여권 내부의 여여관계까지 경색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소수 자파세력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과 적대관계를 만들어낸 것이 노무현정치의 결산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독선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후보단일화의 덕을 가장 많이 보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후보단일화세력은 물론 자신을 지지했던 세력마저도 다 포용하지 못하고 심지어 탄압했다. 최근 열린당의 붕괴국면을 맞아 노대통령은 다시 정치전면에서 소위 서신정치를 통해 다른 모든 정치인과 세력을 원칙과 도덕의 잣대로 재단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노대통령은 그렇게 원칙적이고 깨끗한가? 그도 재벌의 돈을 받았다. 자신이 도덕적 기준선으로 억지로 설정한 ‘한나라당의 10분의 일’ 이상의 대선 자금을 썼다. 자신을 포함해 정치자금으로 문제가 된 사람들은 대통령도 하고, 장관도 시키고 특사도 시키면서, 남들은 구속하고 발을 묶었다. 노정권 하에서 구속된 구 민주당 소속 정치인 중 상당수가 사실상 무죄로 입증됐다. 박주선, 권노갑, 박지원, 이인제가 그렇다.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원칙을 논하지만 자기를 당선시킨 민주당을 깼고, 심지어 자신의 대선 빚조차 거덜 난 민주당에 떠넘겨 기본적인 정당 활동 자체를 제약하는 야비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정치는 어떤 의미에선 국민과 국가를 대신해 궂은일을 하는 청부업이다. 고상한 일뿐 아니라 때로는 험하고 욕먹는 일도 해야 한다. 정치인의 인생은 본질적으로 영욕이 교차하는 것이다. 선거로 평생을 사는 프로정치인이 보통사람 수준의 도덕적 기준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대한민국에서 정당정치나 정치자금의 원칙적 문제에 대해 수도자 수준의 도덕적 결백을 유지할 수 있는 지도급 정치인이라면 조순형 의원 한 분 정도가 아닐까? 분명한 것은 적어도 노대통령은 그런 원칙을 자신만의 것으로 주장하는 독선을 행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 독선을 고집한다면 노대통령은 임기가 끝난 후 18대 국회 청문회에 서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노대통령이 100% 잘못했을까? 그렇지 않다.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10여년간 국가적 혼란을 초래한 모택동을 평가하면서 공(공적)이 과(과오)보다 크다고 했다. 노대통령에게도 공이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가 공보다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대통합을 가로막는 가장 큰 마지막 과오를 추가하려 하고 있다.

국민은 노대통령의 후계자들이 다시 정권을 잡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실정은 심판되는 것이 역사의 철칙이다. 따라서 중도개혁세력은 이번 대선에서 노정권의 실정을 심판하여 정권을 교체하고 진정한 중도개혁정권을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

3. 대통합: 원칙은 대담하게, 현실은 치밀하게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나는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의 단일화 성사를 위해 몸을 던졌다. 노무현후보가 완강하게 단일화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이어서, ‘단일화를 성사시키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성명과 함께 민주당을 떠나 정몽준 캠프에 합류했다. 충분한 예고와 대국민 설명의 시간적 여유도 갖지 못하여 국민들께는 죄송한 엄청난 무리수였지만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었다. 결국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수락을 이끌어냈고 정후보측 협상대표가 되어 노후보측 대표였던 신계륜 의원과 함께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작업의 집행을 책임졌다.

후보단일화라는 1차 임무를 완수하고 나서, 나의 2차 임무는 대통합이었다. 북한 노동당과 맞상대할 수 있는 ‘햇볕정책’ 지향의 거대 중도개혁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었다. 단일화 협상과정에서 나는 ‘대선 이후 통합을 고려한다.’는 문안을 포함시켰다. 민주당, 정몽준 후보의 국민통합21, 유시민의 개혁당, 시민사회세력을 포괄하는 대통합정당을 대선 이후 출범시켜 총선을 치른다는 것이 기본구상이었다. 정몽준 후보의 공감도 얻어냈다. 지지철회 파동만 없었다면 아마 대통합임무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돌출적인 지지철회 파동이 생겼지만, 노대통령이 당선 이후라도 이러한 대통합을 추구했다면 한국정치는 훨씬 안정적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정반대로 최악의 뺄셈정치를 했다.

오늘날 중도개혁세력의 대통합이 필요한 이유와 당위성은 2002년 대통합정당이 필요했던 이유와 동일하다. 한나라당은 부패의 뿌리를 근절하지 못하고 있고 냉전적 대북인식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2년 당시 내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부시 미국대통령의 일방적 강경노선에 차기정권이 수동적으로 휘둘릴 경우의 한반도 전쟁위험이었다. 따라서 햇볕정책에 동의할 수 있는 세력을 최대한 결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대통령은 당선 이후 대북송금 특검을 실시함으로써 기존의 햇볕정책 지지층조차 분열시켜버렸지만, 대통합이 이루어졌다면 노대통령이 임기 초반 햇볕정책을 그처럼 결정적으로 훼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최근 한반도주변정세의 변화가 요구하는 것은 햇볕정책의 발전이지 폐기가 아니다. 사회경제정책상의 상대적 보수와 상대적 진보 및 중간층을 널리 포괄하되, 기본적으로 햇볕정책에 동의하는 세력을 최대로 모아 중도개혁 단일정당을 만드는 것. 나는 이것이 한국정치의 주류가 되어야 된다고 확신한다. 이것이 양당제를 선호하는 국민의 뜻과도 맞는다. 이런 점에서 보면 큰 틀에서는 민주당과 시민사회세력, 한나라당 이탈세력 뿐 아니라 열린당에 참여했던 친노세력, 심지어 맹목적인 냉전적 입장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북한을 비판하는 입장을 가진 일부 뉴라이트 세력마저도 대통합의 범주에 포함된다. 대통합의 원칙과 대상은 대담하고 포괄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2002년 시점에서 대통합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대통합의 원칙과 범위에 대한 답은 자명해진다.

그러나 현실의 통합은 치밀하고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 노대통령과 친노 세력이 민주당과의 통합을 지역주의로 매도하며 거부하고 있고, 민주당 분당과 노대통령의 失政(실정)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노 세력이 민주당을 포함한 대통합을 거부하고 독자세력화 의지를 드러내 대통합의 걸림돌이 된 것이 명백해진 이상 대통합은 대선 이후, 심지어 2008년 총선 이후가 되어야만 이루어질 수도 있는 과제가 되었다. 따라서 이제 대선 이전(以前) 중도개혁세력의 현실적 우선과제는 ‘비노 중도개혁 대통합’ 즉, 친노세력을 제외한 비노(非盧)중도개혁세력의 최대한 통합과 후보단일화가 되었다. 이 과제를 이루고 나면 친노 세력을 포함한 중도개혁세력 전체의 후보단일화는 국민적 요구와 압력에 의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비노 중도개혁세력의 통합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민주당과 국민중심당, 한나라당 탈당세력, 열린당 탈당세력, 시민사회세력을 포함한 비노 중도개혁세력 전체가 선(先)통합하여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비노 중도개혁 단일후보를 선출한 후 통합하는 방식, 민주당과 국민중심당 및 기타 세력이 각각 후보를 선출하여 후보단일화를 한 후 대선 전후에 통합하는 방식 등이다. 이 비노 중도개혁세력의 대선후보는 기본적으로 한나라당 후보, 노대통령 후계후보와 맞서는 3파전을 각오하여야 하지만, 남북관계와 주요 경제사회정책 등에서 공통점을 도출할 수 있다면 친노 후보와의 단일화를 최종순간에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통합과정에서 중요한 원칙은 민주당 정통성의 인정, 분당 및 실정 책임자들의 응분의 책임, 발전적 정당민주주의 등이다. 민주당 정통성의 인정은 단순한 민주당 중심주의나 기득권의 고수가 아니다. 이번 통합은 불가피하게 2002년 민주당 분당 이전 상태로의 원상회복 성격을 갖는다. 분당이 잘못되어서 문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분당 이전의 2002년 민주당으로의 복원’이 없으면 ‘발전적 대통합’도 없다. 이를 위한 ‘도로 민주당’은 바람직한 것이다. 현재의 민주당은 비록 의석수가 작고 지역적으로 위축되어 있으나 엄연히 반독재민주세력의 역사적 정통성을 승계하고 있으며, 가장 강고한 지지층을 갖고 있는, 비노 중도개혁세력의 대표정당이다. 열린당 탈당파 의원들 상당수의 솔직한 속내는 민주당 지지기반에 다시 접합하여 총선에서 살아남고 싶은 것 아닌가? 과거 민주당에 속했던 재선급 이상 열린당 탈당파 의원들은 제3지대 운운하며 에두를 것 없이 민주당으로 복귀하는 것이 가장 정직한 행보이다. 민주당의 기반과 접합하고자 하는 대선주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민주당의 정통성을 인정하라는 것은 위축된 현 민주당의 기득권을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통합세력의 역사적 법통확립을 위해 민주당의 정통성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노 중도개혁세력의 통합논의과정에 각 소그룹의 의석수로 세를 논할 수도 있지만, 현재의 의석기반에 분포한 세력비교란 사실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만일 내일 당장 총선을 치른다고 해보자. 과연 열린당의 의석수가 민주당보다 많겠는가? 아마 한나라당이 1당, 민주당이 한참 처지는 2당, 열린당과 민주노동당이 3등을 다투는 형국이 될 것이 분명하다. 호남은 민주당이, 충청은 국민중심당과 한나라당이, 영남은 한나라당이, 수도권은 한나라당과 극소수의 민주당 및 열린당이 당선되지 않겠는가? 열린당 자체가 이럴진대 하물며 어제까지 열린당 소속이던 열린당 탈당파들 의원의 숫자가 몇 명이건, 자기들끼리 당이나 교섭단체를 만들건 그것이 무슨 정치적 의미가 있겠는가?

민주당 분당과 노정권 실정의 책임자들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그 범위는 최대한 좁혀져야 한다. 탈당한 열린당 출신 평의원들은 노정권 실정에 대한 진솔한 대국민사과가 필요하다. 재선급 이상은 민주당 분당에 대한 책임도 공유할 수밖에 없다. 만일 열린당의 현 정세균 지도부가 열린당 해체의 결단을 내린다면 그 자체가 국민적 사과가 될 것이다. 천정배, 정동영, 김근태, 김한길 등 열린당의 역대 대표급 지도자들은 원칙적으로 열린당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탈당한 경우 대선후보출마 포기나 통합주도권 포기 등 대국민 사과의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 옳다. 그것이 본인에게도 통합에 도움이 된다. 열린당 탈당파들의 독자신당 창당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통합을 추구한다는 본인들의 탈당명분과도 모순되고, 현실적으로도 대중적 지지기반이 없는 부실한 창당이며, 국고보조금을 겨냥한 것이라면 정치가 아닌 장삿속이라는 극단적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통합정당은 지지자정당, 정책정당으로의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 열린당이 도입했던 기간당원제는 정당민주주의의 퇴행이었다. 당비납부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당원의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낡아빠진 20세기 초 볼셰비키 정당에서나 볼 수 있는 시대착오였다. 일반국민 대다수와 유리된 소위 기간당원제도는 정보화 시대 현대적 국민정당의 시대적 추세와 맞지 않는다. 열린당이 소수의 친노 홍위병들에 의해 좌지우지 된 것도 기간당원제의 책임이 크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국민의 세금이 국고보조금으로 정당에 지원되는 나라이다. 모든 정당의 운영자금의 50% 이상이 당비가 아닌 국고보조금에서 나온다. 따라서 납세자들은 세금납부만으로도 자신이 좋아하는 정당에 대해 발언할 권리를 당연히 갖고 있다. 나는 이제 정말 필요한 것은 정책당원제의 도입이라고 본다. 내가 주장하는 정책당원제란, 충분히 예고되고 토론되고 숙지된 주요정책사안에 대해 모바일투표나 인터넷투표를 통한 전당원투표를 도입하여 당의 정책결정을 소수 의원의 손에서 당원대중과 국민일반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4. 후보단일화: 시대정신을 향한 후보들의 노력이 우선이다

노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이 한나라당의 집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듯, 4.25재보선의 한나라당 패배와 내분이 비한나라당 후보들의 지지율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지지율을 높이는 것은 후보 자신의 비상한 노력이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데도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의 지지율이 비한나라당 후보들보다 여전히 높은 이유는 비한나라당 후보들이 국민들로부터 국가운영의 비전을 가진 재목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나는 비노 중도개혁세력이 한나라당을 이기고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총재의 대세론이 형성되어 민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물론 후보단일화 가능성조차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때, 나는 후보단일화와 대선승리 가능성을 보았고 믿었고 행동했다. 지금 한나라당이 노정권 실정의 반사이익과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업고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만, 결국 대선은 미래에 대한 선택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과연 ‘구시대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나라당’과 , ‘유신시대의 정치와 경제를 대변하는 박근혜, 이명박’에게 맡길 것인가를 놓고 국민은 주저할 것이다. 비노 중도개혁세력의 1차 단일화를 반드시 이루고, 나아가 친노 세력을 포함한 2차 단일화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좋은 후보만 나선다면 중도개혁세력은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비전과 정책을 가진 실력 있는 후보가 나서는 것이다. 최근 정운찬 총장의 낙마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정총장의 낙마 그 자체가 아니라, 그가 한국경제나 국가의 미래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기억에 남는 화두를 던지고 떠나가지 못한 점이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명참모였던 딕 모리스는 현대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과 조직이 아닌 이슈라고 했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슈가 우선이다. 그것이 있으면 돈과 조직은 따라 온다. 하다못해 경부운하 공약정도의 논쟁이라도 일으킬 자기 프로그램의 제시 없이 추상적인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는 모든 중도개혁진영의 대선주자들은 반성해야 한다. 단순한 후보단일화만으로는 결코 2002년 단일화 역전극의 기적을 재연할 수 없다. 그 주인공들이 치열한 학습과 노력을 통해 기적의 내용을 채워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이명박 후보의 경부운하공약이다. 나는 지난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와 경합한 적이 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청계천 살리기를 들고 나왔고 나는 그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나는 상대후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가 나 자신의 프로그램을 보다 선명히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무언가 ‘이것을 내가 하겠다.’고 연구하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의 공약을 비판하다 선거가 끝난다. 이 때의 실패는 내게 뼈아픈 교훈이 되었다. 나는 대선 이후 민주당에 복당한 후 2004년 총선에서 원래 지역구의 옆 지역구인 영등포 갑구로 옮겨 단 한 달 만에 총선을 치렀다. 비록 패배했지만 지역구 이전, 탄핵정국, 철새시비, 조직부재, 준비부족 등 최악의 조건에서 그래도 민주당의 서울 지역 후보 중 최상위권의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서울시장 선거 때의 뼈저린 경험을 교훈으로 ‘영등포 교육특구’라는 내 독자브랜드의 이슈를 선점한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나만의 구체적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연구하는 데 집중해왔다. 비한나라당 후보들이 지금 정말 치열히 노력할 최대과제는 경부운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가, 시대정신에 맞는 자기 자신만의 구체적인 비전과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것이다.

미국의 중간 선거 이전에 썼던 ‘퇴수일기 5’ 에서 나는 젊은 흑인 상원의원 오바마가 미국 대선에서 태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이미 오바마는 힐러리를 앞서기 시작했다. 나는 만일 앨 고어가 전격적으로 대선전에 뛰어든다면 고어 대통령-오바마 부통령 카드야말로 민주당의 필승카드가 될 것이라고 보지만, 여하튼 오바마는 이번 대선의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오바마가 이번 대선의 스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대해온 나로서는 자못 고무적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대선은 시대정신의 선택이다. 나는 이번 미국대선의 시대정신은 ‘존경받는 미국의 재건’이라고 본다. 부시대통령의 일방주의와 이라크 전쟁 때문에 훼손된 미국의 국제적 위상과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미국국민의 시대적 요구가 있는 것이다. 지구환경문제에 대한 고어의 진보적 입장, 오바마가 상징하는 진보적 다양성, 만일 미국이 이들을 선택한다면 미국은 국제정치에서 다시 한번 진보적 위상을 과시할 것이다.

나는 지난 2002년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시대교체’라고 규정했었다. 3김 시대의 교체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시대적인 이회창 후보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2007년의 시대정신은 ‘실력 있는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국민은 결코 보수적이 아니다. 주체적인 세계화, 지속적인 혁신, 남북의 평화를 원한다. 다만 이러한 총체적 개혁을 노대통령처럼 좌충우돌, 엉터리로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지금 이명박 후보가 앞서가는 이유는 그가 현재 비한나라당 후보들보다 실력 있어 보이고, 박근혜 후보보다 개혁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2007년 한국의 시대정신이 ‘실력 있는 개혁’이라는 점에 이번 대선의 진정한 변수가 숨어있다. 나는 미국처럼 한국의 대선에서도 몇 달 내에 새로운 바람이 불 것으로 예측하고 또 확신한다. 지금 지지율 1,2위가 아닌 비노 중도개혁진영의 후보 가운데서, 심지어 아직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은 사람 가운데서도 반드시 대선 전체에 활력을 일으키는 후보가 나올 수 있고 또 나올 것이다. 경제, 외교, 교육 문제에 식견을 갖추고 국제 감각을 지닌 실력 있는 개혁주의자로 인정받는 그 누군가가, 자신의 구체적인 국정프로그램을 제시할 때 국민의 신선한 주목을 받고 돌풍을 일으키는 상황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번 대선은 비유하자면 용봉탕과 추어탕의 대결이다. 지지율로만 본다면 20%를 넘는 한나라당 후보들은 용이고, 5%대의 손학규 후보 외에는 대부분 1% 전후를 맴도는 비한나라당 후보들은 미꾸라지 수준이다. 그러나 국민 앞에 최종적으로 내놓을 메뉴 가운데 무엇이 선택될 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 지지율 1%대의 후보 20여 명의 경쟁으로 시작된 치열한 경선과 단일화의 레이스가 대선의 최종승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열린당 잔류파 가운데도 대여섯 명의 후보가 자체경선을 통해 친노후보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열린당의 경선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참여는 낮을 것이며, 거기서 뽑힌 후보의 지지율 또한 저조할 것이다. 노대통령을 승계하는 후보는 누구도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YS와 DJ가 각각 대통령이던 시절, 당 대표와 총리, 비서실장을 지내고 대통령의 지원을 받던 인사들 중 누구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대권은 현직 대통령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선택하는 것이다. 열린당 탈당파, 손학규 후보, 시민사회 등 이른바 제3지대에서도 예닐곱 명의 후보가 경선레이스에 뛰어들 것이다. 이 가운데 열린당의 지도자들이었던 탈당파 후보들은 최종승자가 되기 어렵다. 그들의 명분이 가장 약하다. 민주당 또한 후보들이 나올 것이고 또 반드시 나와야 한다. 중도개혁세력의 본산인 민주당의 정통성을 말로만 주장하는 것은 대선국면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세력통합론은 원칙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적으로 대선국면에서는 후보중심론을 압도하기 어렵다. 따라서 민주당과 민주당 밖의 비노중도개혁세력을 포괄하는 오픈 프라이머리가 이루어지는 경우이건, 민주당과 민주당 밖의 세력이 각각 후보를 선출해 1차 단일화를 하는 경우이건 민주당은 반드시 후보를 내야 한다. 재보선에 후보를 못낸 열린당이 죽은 불임정당이듯, 대선후보를 못 낸다면 민주당도 마찬가지로 불임정당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친노 세력이 독자대선후보선출을 작정하고 있고, 민주당 바깥의 비노 세력 또한 조속히 정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민주당은 조만간 자체 대선후보선출에 대한 입장과 일정을 정해야 한다.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을 사실상 비노 중도개혁진영의 빅매치로 만들어내는 것, 이것은 민주당으로선 반드시 추구해야 할 과제이며, 또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후보가 지지율 3%를 넘기는 순간, 비노 중도개혁진영의 후보구도는 급변하게 되어 있다. 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고 대표성을 갖는 후보가 비노 중도개혁세력의 단일대선후보가 되고 나아가 대선의 최종승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확신한다. 최소한 비노 세력 전체에 활력을 일으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민주당에서 대선 후보들이 나서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2002년에도 이회창대세론을 꺾거나, 심지어 후보단일화조차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야 모두 그랬고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이런 점에서 나는 민주당의 지도급 인사들이 결단해야 한다고 믿는다. 민주당 중심의 통합론을 주장하는 분들은 당과 국가의 장래에 더욱 더 책임감을 느끼고 과감히 뛰어들어야 한다. 이미 출마의사를 표명한 김영환 전 의원뿐 아니라, 조순형 의원께서도 결단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마 조순형 의원께서 결단한다면 가장 먼저 3-5%대의 지지율을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 한화갑 전 대표가 복권된다면 한 전 대표 역시 결단해야 한다. 노대통령은 조속히 한 전 대표를 복권시키는 것이 정치도의상 맞다. 자신과 측근들의 대선자금은 다 사면하고 공직에 기용하면서, 한 전대표의 발목만 묶어놓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그 외에도 민주당에는 대선경선에 뛰어들 자격을 갖춘 인물들이 충분히 있다. 지금 이명박, 박근혜를 빼놓고 나머지 모든 후보들이 1% 안팎을 오가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동안의 패배의식을 벗어던지고 과감히 결단하는 것이다.

비노 중도개혁진영의 후보경선은 한나라당의 후보가 결정된 9월 중순 이후에 시작하여 11월초까지 해도 늦지 않다. 지지율이 안 오르면 어차피 미리 뽑아야 헛일이다. 그 때면 한나라당 후보는 선출되고 내분은 격화되고 한나라당 후보의 거품은 빠지기 시작할 것이다. 국민의 관심은 선출된 한나라당 후보가 아니라 중도개혁세력의 경선에 쏠릴 것이다. 각 후보들은 경선 과정에서 자신의 공약과 정책을 발표하면 된다. 친노 후보가 그 전에 뽑혔다 해도 그 후보의 지지율은 여전히 저조할 것이다. 비노 중도개혁세력 후보는 지지율에서 친노 후보를 압도할 것이다. 친노 세력을 포함한 최종적인 단일화를 할 경우, 그 결정은 11월말 전후여도 상관없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후보결정은 후보등록 전 날 이루어졌다.

민주당의 후보경선이건, 1차단일화이건, 2차단일화이건 이번에는 2002년에 비해 훨씬 안정되고 진전된 방법에 의한 후보결정이 가능하다. 모바일투표를 포함한 대규모국민경선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가 아닌 실질적인 국민참여가 가능한 것이다. 나는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를 선출한 국민경선방안을 실질적으로 입안한 민주당 특별대책위원회(위원장 조세형)의 간사로서 국민경선안의 실제디자인을 총괄했고,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의 협상대표로 여론조사단일화를 직접 집행한 경험이 있다. 문제점도 알고 개선방향에 대한 나름의 의견도 있다. 이제 국민경선과 후보단일화 모두 국민의 참여를 더 높이면서 그 뜻을 보다 정확히 반영하고 집행도 안정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후기: 나의 새로운 퇴수- 新중도개혁정권 창출의 불쏘시개로

지난 2002년 이후 5년 만에 정치에 대한 내 생각을 거의 다 털어놓은 것 같다. 사실 지난 5년은 어떻게 지나갔나 싶도록 참 힘겨운 시간이었다.

80년대, 서울대학생회장이던 20살 때 ‘광주항쟁 진상조사’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3년간 감옥생활을 하고 나온 당시만 해도 나는 정치에 뛰어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긴 학생운동에 뛰어든 것도 학생회장을 한 것도 다 내가 원해서라기보다는 시대흐름을 거역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87년 민주화 이후 나는, 재야의 정치참여-야당통합운동-민주당후보로 첫 국회의원 출마와 낙선-미국유학-정계복귀한 DJ에 합류-국회의원 당선-서울시장출마의 길을 걸어왔다. 그 과정에서 처음엔 외로운 결정을 내렸지만 결국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결정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합류한 경우가 많았다. 20대에 감옥을 갔지만 내가 자청한 일이었고, 40살 전에 국회의원을 두 번 하고 경선을 거쳐 집권당의 서울시장후보까지 했으니 이 때까지는 시체말로 ‘참 잘 나간 셈’이다.

서울시장 후보에 낙선한 2002년 6월 이후 내 원래 계획은 몇 해 전부터 구상해온 ‘북한의 해외유학생을 위한 국제장학재단’을 만들어 한 10년간 그 일을 하는 것이었다. ‘대화를 위한 지원(aid for dialogue)’인 햇볕정책 1단계에서 ‘변화를 위한 지원(aid for change)’인 햇볕정책 2단계로 가는 길에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후보 선대위발족을 앞두고 서울대 사회학과 선배이던 이해찬 의원께서 노후보의 대선기획을 함께 돕자고 하는 권유를 고사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9월이 넘어가면서 나의 고민은 깊어갔다. YS 시계사건 이후 추락한 노후보의 지지율은 지방선거와 재보선 패배를 거쳐도 반등의 기미가 없었고, ‘후보사퇴와 재경선’이라는 본인의 언명으로 민주당 내부는 내홍을 거듭했다. 시장선거에 나서면서 의원직도 내던진 나로선 그저 바라보며 고민할 뿐이었다. 나는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면 한반도정세가 악화된다고 판단했다. 단일화가 답이라는 것은 분명한데 논의만 무성할 뿐 물꼬가 열리질 않았다. 이회창대세론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드디어 민주당과 자민련에서 한나라당으로 당을 옮기는 의원들이 나타났고, 단일화의 대상이던 정몽준의원의 지지율마저 떨어지기 시작해 자칫하면 단일화를 해도 이길 수 없는 상황의 분기점이 왔다.

한 달여를 넘게 밤잠을 못자고 고민하던 나의 결심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나라도 해보자!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의 한나라당 행을 보고 결국 나는 그 후 이틀 만에 후보단일화를 위해 민주당을 탈당하여 정몽준 캠프에 결합하는 거사를 결행했다. ‘후보단일화를 이루고 민주당에 돌아오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사전에 정몽준 의원과 전화통화 한 통 하지 않고 단일화성사에 정치생명을 걸어버린 무모한 결정이었다.

철새니 김민새니 하는 비난이 쏟아졌다. 각오는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엄청났다. 우여곡절 끝에 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키고 자랑스럽게 ‘거봐, 내가 된다고 했지!’라고 했던 순간의 기쁨도 잠시. 대선 마지막 날의 지지철회 파동은 온갖 경우의 수를 다 따져봤던 내게 인간의 얄팍한 지혜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세상일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 것인가를 가르쳐주었다.

지지철회는 결국 신사협정을 위반한 노후보의 야비한 정치적 배신을 정몽준 의원이 정치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일어난 사건이었다. 기분 좋게 내일의 승리를 자축하며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닥친 이 파동 앞에서, 또 이 과정에서 직시한 몇몇 정치인들의 환멸스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좌절했다. 철새라는 비난이야 어차피 큰일을 위해 각오한 것이었고, 또 일을 완수했다는 자부심으로 버텨낼 수 있었지만 지지철회파동은 마지막 자부심의 근거까지 무너뜨리고 정치인으로서 나를 지탱할 힘을 다 빼앗아갔다.

지금 동일한 상황이 온다면 과연 5년 전과 똑같이 행동했을까? 아마 지금의 나라면 목표는 같아도 달리 행동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는 마음이 워낙 급해 오류가 많았다. 단일화라는 한 가지 목표만 생각하고 막상 그 대상들에 대한 인간적 이해를 경시했던 점도 나의 불찰이었다. 무엇보다 정치가 국민과의 대화와 소통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내 생각만 한 것이 잘못이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좀 더 생각했다면 아마 훨씬 지혜롭게 목표에 접근했으리라. 정치인으로 거의 철저하게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야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대선 이후 한국정치는 나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그 이전부터 노대통령이 국가의 최고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정도가 심했다. 사실 노대통령과 나는 그 이전에 일도 같이 해봤고 국회의원으로서는 나쁜 사이가 아니었다. 92년 대선 때는 함께 전국을 누볐다. 나 또한 영남에 연고를 가지고 있는 정치인으로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애정이 있는 편이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노대통령 임기 내내 나는 언젠가 전직대통령이 되실 분으로 생각하면서 가급적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왔지만 결국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노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중도개혁세력 전체의 장래가 어려워진다고 생각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 글의 부제를 ‘정치인 노무현에게’로 한 이유도 노대통령이 정치인 최후의 구국적 결단으로, 퇴임이후 정치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국정마무리에 전념하여 중도개혁세력 대통합문제에서 손을 완전히 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나는 비록 나와 늘 사물을 보는 방법론이 달랐지만 ‘바보 노무현’의 진정성을 진심으로 믿고 싶다. 노대통령에 대한 애정과 확신을 갖고 말하지만, 그러면 노대통령의 지지는 더 올라가고 그동안의 공이 제대로 평가되고 중도개혁세력도 승리할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노대통령께서 큰 정치가의 눈으로 나의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기를 바란다.

2002년 대선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당초의 약속대로 민주당에 복당했다. 이 과정 또한 정말 어려웠다. 거의 진흙탕을 기는 심정이었다. 이미 분당 이후 다 쪼그라진 민주당에 그런 대접을 받고 꼭 돌아가야 하느냐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로선 단일화를 이루고 복당하겠다는 약속을 지킨다는 차원뿐 아니라, 워낙 민주당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 나는 2000년 민주당 창당 작업의 사실상 실무책임자였다. 당시 정균환 특보단장의 총괄 아래 약 8개월 동안 영입자를 추리고 접촉했고 여론조사와 공천과정에 이르기까지 전력을 투구했다.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께도 창당 작업을 직접 보고하는 일이 많았고, 결국 민주당의 첫 총재비서실장을 맡았다. 그 기간동안 밤잠을 제대로 안 자 막상 2000년 내 자신의 총선 때는 손힘이 다 빠져, 지원유세를 간다고 하고 몰래 이틀간 쉰 적이 있을 정도였다. 단일화를 위해 엄청난 고민 끝에 잠시 당을 떠났던 기간을 포함하여 단 한 순간도 민주당의 적자라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다. 그것이 복당한 가장 큰 이유였다.

2004년 총선 패배 이후 나는 유학길에 올랐다. 정치활동을 할 기력도 없었지만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었다. 서울시장 선거 때 SK에서 받은 2억의 선거자금 영수증을 떼어주지 않은 것이 정치자금법 위반이 되어 정치활동자격이 2007년, 즉 올 6월 10일까지 정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본인 요청이 아니라 당의 요청으로 가져온 후원금을 사적 용도가 아닌 선거대책본부의 선거자금으로 썼지만, 실무적 착오로 영수증이 발급되지 않은데 대해 후보로서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집행유예판결을 내렸다. 수사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 담당검사로부터 들은 내용을 생각하면 그나마 감옥에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철새라는 비난, 복당과정의 어려움, 총선 패배, 정치자금법 재판, 그 외에도 주변의 어려움까지 겹쳐 2002년 이후 유학길에 오르기 전후의 약 3년간은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었다.

그러나 지난 5년은 내 인생에 다시없는 행운의 시간이기도 했다. 딸 비단이와 12년 터울인 늦둥이 아들 희단이가 태어났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었다. 미국 뉴저지 주립대 로스쿨의 미국법 박사과정과 중국 청화대 로스쿨의 중국법 석사과정을 거의 마쳤고, 올 6월이 지나면 모두 논문을 쓰는 한 학기씩만 남기게 된다. 각각 논문을 쓰면 미국과 중국 두 군데서 학위를 마치게 되니 그간의 시간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쓴 셈이다. 공부를 쫒아가기에 허덕였던 10년 전 미국 유학시절과 달리 이번에는 미국과 일본, 중국 등에서 지도층과의 커넥션도 형성할 수 있었고 마음껏 독서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코리아 어젠다라는 화두로 생각해온 국가운영의 비전과 프로그램도 나름대로 구체화할 수 있었다. 올 한해를 보내고 있는 청화대학에서는 기숙사에서 강의실까지 자전거로 통학하며 체력단련까지 하고 있으니 이런 기막힌 기회를 주신 하늘에 그저 진심으로 감사드릴 뿐이다. 캄캄한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나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도 힘들었을 벗들이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준 것은 내 가슴 깊이 박힌 뜨거운 기쁨이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배낭을 둘러멘 모습이 이젠 더 편안해졌고, 학생운동과 정치로 20,30대를 다 보내면서 메말라버린 정서에 숨통을 틔우고 시를 쓰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즐길 시간을 가진 것은 가외의 행복이었다.

지난 해 6월, 오랜만에 서울에 들러 DJ를 뵈었을 때 “오래 정치할 사람이니, 지금 퇴수(退修. 물러나 내공을 닦음)하기를 잘했다”는 격려를 듣고 홈페이지에 쓰기 시작한 퇴수일기가 어느새 1년이 되었다.

다시 대선을 앞둔 지금, 정치활동이 자유로워지는 6월 10일을 한 달 남짓 앞두고 나는 사실상 정치활동을 접었던 지난 5년간을 돌이키며 깊은 상념에 빠져든다. 감옥에 있던 20살 때부터 오늘까지 20여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생각해온 한반도의 국가전략은 지난 몇 년간도 여전히 나의 최대화두였지만, 솔직히 어떻게 공부를 마치고 아이들을 좀 편안히 키울까 하는 고민이 끊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나의 새로운 퇴수를 시작할 때가 되었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나의 새로운 퇴수는 혼자 연구하고 생각하던 그동안의 퇴수와 달리 보다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퇴수가 될 것이다. 나라의 장래를 연구하고 자신을 갈고 닦는 나의 퇴수는 계속되지만, 이번 대선에서 내가 사랑하는 민주당이 살아나고, 내가 기대하는 신중도개혁정권이 창출되고, 내가 희망하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펼쳐져 사람들의 살림이 보다 좋아지는데 작은 힘을 보태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고자 한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지는 아직 나도 모른다. 오늘처럼 내가 생각하는 정치 이야기를 쓰는 것도 그 하나다. 앞으로 퇴수일기는 중도개혁세력이 제시해야 할 국정프로그램과 핵심적 대선공약에 대해 지난 몇 년간 생각해온 내용들을 중심으로 써보려고 한다. 민주당과 중도개혁세력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말석에서라도 거들고 불쏘시개라도 할 것이다. 유학길에 올랐던 3년 전, 등록금하라고 건네준 한 후배의 격려금을 당비로 내놓고 떠난 이후, 나는 민주당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많은 동료와 선후배들이 고생할 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것을 늘 죄송스럽고 부끄럽게 생각해왔다.

이제 보다 적극적인 새로운 퇴수를 시작한다는 결심을 하는 것은, 지난 몇 년간 타향에서 외로움을 벗 삼아 독백처럼 자신과 대화하는 새로운 생활의 재미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솔직히 쉽지 않고 두렵기조차 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결심을 한 가장 큰 이유는, 나만 편하게 지내기보다는 다시 화살을 맞더라도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 일과 말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용기를 내어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이것이 지금의 김민석에겐 나라를 향한 결단이다.

10년 전 케네디스쿨 유학시절, 사회복지학 교수가 ‘20세기 최대의 정치가를 누구로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교수의 답은 등소평이었다. 왜? ‘가장 많은 사람을 가장 많이 잘 살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실력 있는 개혁이란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일 뿐이다.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던 홍위병들이 생매장시키려 하던 등소평은 부활해 중국을 살려놓았고, 문화혁명과 홍위병들은 역사의 심판대에 올라 결국 사라졌다. 대한민국의 역사 역시 사이비 개혁의 혼란을 극복하고 빛나는 전진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의 새로운 퇴수를 시작한다.


[위 내용 요약 - 김민석]

1. 현 정국

-노대통령이 정권재창출과 독자정치세력화를 위해 정치전면으로 복귀
-노대통령과 친노 세력의 자신감과 기대는 대형 착각
-최근 여론조사의 3대 허수: 모두 사상누각
한나라당 지지율 (국민적 반노정서의 반사이익이 허수)
이명박 후보 지지율(대안부재의 중간계층과 중도개혁세력, 386 및 호남의 지지가 허수) FTA 후 노대통령의 국정지지도(보수층 및 한나라당 지지층의 지지가 허수)
-국민은 노무현같은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같은 정당이 다시 나와선 안 된다고 생각
-노대통령이 정치적 발언을 할 때마다 지지율이 추락했던 아픈 기억을 다시 맛보게 될 것

2. 노무현 정치의 평가

-대한민국의 주류는 중도개혁노선이다.
-낡은 한나라당도, 사이비개혁 친노 세력도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니다.
-노무현 정권 심판과 한나라당 집권저지. 新중도개혁정권 창출이 이번 대선의 과제
-왜 노무현 세력의 정권재창출과 정치세력화가 용납되어선 안 되는가? 지난 5년간 노대통령이 해온 식의 국정운영이 연장되어선 안 되기 때문
-노무현 정치는 신(新)PK지역주의, 분파주의, 책임전가, 준비부족, 독선의 5대 특징
-신PK지역주의: 무원칙한 지역주의적 구애(求愛)로 영남의 호감을 얻기 위해 민주당 분당, 대북송금 특검, 영남 편중인사, 대연정 제안
-자신을 당선시킨 민주당을 깨더니, 민주당과 통합하는 것조차 지역주의로 매도.
-노대통령은 열린당 탈당파를 비판할 자격이 없음. 국회의원과 장관이 되기 위해 열린당에 들어온 사람들이 당을 깰 수 있냐고 하지만, 노대통령 본인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민주당에 들어왔다가 목표를 이루자 당을 깨지 않았는가?
-지난 5년간 이 나라에서 지역주의가 심화된 가장 큰 책임은 노대통령이 져야
-민주당을 깬 노대통령이 열린당을 탈당하는 정동영과 김근태의 배신을 논하는 것은 자가당착의 희극. 신PK지역주의는 대통합 최대의 장애물
-기득권 유지적 분파주의와 이념적 분파주의
-2002년과 2007년 대선에서 노대통령 세력은 기득권 유지적 분파주의의 행태 반복.
2002년 단일화 거부. 코드정치. 열린당 해체 거부
-(진보, 보수의) 이념분파주의의 유혹도 문제
-중간층을 포괄하는 중도개혁세력 단일정당을 위한 대통합의 길에서, 상대적 보수건 상대적 진보건 각 정파는 작은 차이를 뛰어넘어 크게 하나가 되어야
-책임전가는 노대통령의 대표적 정치수법
-대표적인 예가 2002년 민주당 후보선출 이후 후보단일화에 이르는 과정
-‘YS시계사건’으로 노풍 폭락, ‘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의 민주당후보를 당선시키지 못하면 물러나겠다.’, ‘재보선에서 패배하면 물러나겠다.’, ‘재경선을 하자.’
-남들이 흔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흔든 것
-남들이 자신을 흔들었다고 책임전가. 세력결집, 국민기만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대통령 못해먹겠다’, ‘재신임’. 민주당 지역주의 원흉 매도
-준비부족은 국가경영자로서 노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점
-좌냐 우냐가 문제가 아니라 장시간 깊이 있게 학습된 일관성이 없는 점이 문제
-국민의 결론은 ‘이제는 실력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여야관계뿐 아니라 여여관계까지 경색. 소수 자파세력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과 적대관계를 만들어낸 것이 노무현정치의 결산. 그 가장 큰 이유는 독선
-자신을 지지했던 세력마저도 다 포용하지 못하고 심지어 탄압
-열린당의 붕괴국면을 맞아 노대통령은 다른 정치인과 세력을 원칙과 도덕의 잣대로 재단-노대통령은 그렇게 원칙적이고 깨끗한가? 재벌의 돈을 받고. ‘한나라당의 10분의 일’ 이상의 대선 자금을 쓰고. 자기편은 다 풀고 남들은 구속하고 발을 묶고. 노정권 하에서 구속된 구 민주당 소속 정치인 중 상당수 사실상 무죄 입증. 박주선, 권노갑, 박지원, 이인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원칙을 논하지만, 자기를 당선시킨 민주당을 깼고, 대선 빚조차 거덜 난 민주당에 떠넘겨 활동 자체를 제약하는 야비한 짓
-노대통령은 독선을 행사할 자격이 없음. 독선을 고집하면 18대 국회 청문회 서게 될 것
-노대통령에게도 공이 있지만, 과가 공보다 크다. 대통합을 막으면 가장 큰 마지막 과오
-국민은 노대통령의 후계자들이 또 정권을 잡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
-노정권의 실정을 심판하여 정권을 교체하고 진정한 중도개혁정권을 창출해야

3. 대통합: 원칙은 대담하게, 현실은 치밀하게

-2002년, ‘단일화를 성사시키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성명과 함께 민주당을 떠나 정몽준 캠프에 합류. 국민들께는 죄송한 엄청난 무리수였지만 불가피
-후보단일화 이후 2차 임무는 대통합이었음. 북한 노동당과 맞상대할 수 있는 ‘햇볕정책’ 지향의 거대 중도개혁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이 당시 나의 소신
-지지철회 파동만 없었다면 대통합임무도 달성할 수 있었을 것.
-오늘날 중도개혁세력의 대통합이 필요한 이유와 당위성은 2002년과 동일
-대북송금특검으로 햇볕정책 지지층분열. 대통합이 이루어졌다면 햇볕정책 훼손 어려웠음 -민주당, 시민사회세력, 한나라당 이탈세력, 친노세력, 일부 뉴라이트도 대통합 범주
-친노 세력이 민주당과의 통합을 지역주의로 매도. 민주당 분당과 노대통령의 失政(실정)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 통합과정은 치밀하게
-친노 세력의 거부로 대통합은 2008년 총선 이후가 되어야 이루어질 수도.
-현실적 우선과제는 ‘비노 중도개혁 대통합’과 후보단일화. 그 후 친노 세력을 포함한 중도개혁세력 전체의 후보단일화는 국민적 요구와 압력에 의해 이룰 수 있을 것
-비노 중도개혁세력의 통합은 세 가지 경우의 수
-한나라당 후보, 친노와 3파전 각오하되, 정책 공통점 도출하면 단일화 고려가능
-통합원칙: 민주당 정통성 인정, 분당 및 실정 책임자들의 책임, 발전적 정당민주주의
-민주당 위축되었지만 비노 중도개혁세력의 대표정당
-과거 민주당 소속 재선급 이상 열린당 탈당파 의원들은 민주당으로 복귀가 정직
-비노 중도개혁세력의 의석비교 무의미
-열린당 탈당평의원들은 대국민사과. 재선급 이상은 민주당 분당책임 공유. 열린당 해체하면 그 자체가 국민적 사과. 천정배, 정동영, 김근태, 김한길 등 열린당의 역대 대표급 지도자들은 원칙적으로 열린당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탈당한 경우 대선후보출마 포기나 통합주도권 포기 등 대국민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야
-열린당 탈당파들의 독자신당 창당은 원칙적으로 잘못. 명분 모순. 부실 창당
-기간당원제는 정당민주주의의 퇴행. 정책당원제 도입 필요

4. 후보단일화: 시대정신을 향한 후보들의 노력이 우선

-비한나라당 후보들의 국가운영 비전 국민에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음
-비노 중도개혁세력 정권창출 가능. 대선은 미래 선택이기 때문
-‘구시대적 한나라당’과 , ‘유신시대의 정치와 경제를 대변하는 박근혜, 이명박’
-문제는 비전과 정책을 가진 실력 있는 후보가 나서는 것
-단일화만으로는 2002 역전극 기적 재연 불가능. 주인공들의 학습과 노력 필요
-경부운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가, 시대정신에 맞는 자기 자신만의 구체적인 비전과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2007년의 시대정신은 ‘실력 있는 개혁’. 현재는 이명박 후보가 비한나라당 후보들보다 실력 있고 박근혜 후보보다 개혁적으로 보임
-2007년 한국의 시대정신이 ‘실력 있는 개혁’이라는 점이 이번 대선의 진정한 변수
-몇 달 내에 지지율 1,2위가 아닌 비노 중도개혁진영의 후보 가운데서, 심지어 아직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은 사람 가운데서도 대선 전체에 활력을 일으키는 후보가 나올 것
-지지율 1%대의 후보 20여 명의 경쟁으로 시작된 치열한 경선과 단일화의 레이스가 대선의 최종승자를 만들어낼 수도
-열린당 경선 국민의 관심과 참여는 낮을 것. 노대통령을 승계하는 후보는 패배할 것.
-열린당 탈당파 후보들이 가장 명분이 약함
-민주당은 반드시 후보를 내야
-민주당 후보가 지지율 3%를 넘기는 순간, 비노 중도개혁진영의 후보구도는 급변할 것
-김영환, 조순형 결단하고 한화갑 복권시켜야
-비노 중도개혁진영 후보경선은 9월 중순 이후에 시작하여 11월초까지 해도 늦지 않음
-한나라당 후보 선출 후 내분 격화, 한나라당 후보 거품은 빠질 것
-친노 세력 포함 최종 단일화 경우, 11월말 전후 결정 무방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후보결정은 후보등록 전 날
-모바일투표를 포함한 대규모국민경선 기술적으로 가능


후기: 나의 새로운 퇴수- 新중도개혁정권 창출의 불쏘시개로

-지난 5년은 참 힘겨운 시간
-40살 전에 국회의원을 두 번, 집권당 서울시장후보. 시체말로 ‘참 잘 나간 셈’
-2002년 6월 이후 원래 계획은 ‘북한의 해외유학생을 위한 국제장학재단’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의 한나라당 행을 보고 결국 이틀 만에 후보단일화를 위해 민주당을 탈당하여 정몽준 캠프에 결합하는 거사 결행. ‘후보단일화를 이루고 민주당에 돌아오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사전에 정몽준 의원과 전화통화 한 통 하지 않고 단일화성사에 정치생명을 걸어버린 무모한 결정
-철새니 김민새니 하는 비난, 각오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엄청남
-후보단일화를 성사의 기쁨도 잠시. 지지철회 파동
-지지철회는 노후보의 신사협정파기를 정몽준 의원이 감정적으로 처리하여 발생
-지금 5년전 동일한 상황이 온다면, 목표는 같아도 달리 행동했을 것
-단일화 목표만 생각하고 대상들 인간적 이해 경시 불찰.
-정치가 국민과의 대화와 소통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내 생각만 한 잘못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노대통령을 정면 비판 안타까우나 불가피
-부제를 ‘정치인 노무현에게’로 한 이유: 최후의 구국적 결단으로, 퇴임이후 정치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국정마무리에 전념하여 중도개혁세력 대통합문제에서 손떼기를 바람
-2002년 대선 이후 민주당에 복당. ‘단일화후 복당’ 약속과 민주당에 대한 애정 때문
-2004년 총선 패배 이후 유학길
-서울시장 선거 정치자금법위반으로 정치활동활동자격 정지 2007년 6월 10일까지
-지난 몇 년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었지만, 다시없는 행운의 시간이기도
-DJ격려 계기로 퇴수(‘물러나 내공을 닦는다’)일기 홈페이지 기고 1년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새로운 퇴수 시작
-향후 퇴수일기, 중도개혁세력 국정프로그램과 핵심적 대선공약 그간 생각한 것 정리
-민주당과 중도개혁세력을 살리기 위해 말석에서라도 거들고 불쏘시개라도 할 것
-나로선 쉽지 않은 일. 그러나 다시 화살을 맞더라도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 일과 말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 용기를 내어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지금의 내겐 나라를 향한 결단
-대한민국은 사이비 개혁 혼란을 극복하고 빛나는 전진을 다시 시작할 것.

▣ 2007. 5. 8 김 민 석 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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