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6.10.26 (월)
 http://www.seoulpost.co.kr/news/31593
[논단] 인천상륙작전 65주년, 맥아더장군을 기리며
 구기차 논설가 (발행일: 2015/09/15 19:56:13)

[논단]인천상륙작전 65주년을 맞이해 맥아더장군을 기리며
-SPn 서울포스트, 구기차 논설가


1950년 9월 15일은 더그라스 맥아더 장군이 북한의 남침이후 인천지역에 대한 작전을 통해 북한괴뢰군의 병참선과 배후를 공격하여 전쟁을 반전시킨 상륙작전일로서 오늘이 바로 65주년을 맞는 날이기도 하다.

↑ 인천 상륙 작전을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자료

6.25전쟁 남침 3일 만에 소련군 탱크를 앞세우고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북한괴뢰군에 맞서 한국군은 맨주먹에 고작 소총, 수류탄, 화염병으로 대항하며 낙동강까지 밀려내려갔다. 하여 낙동강방어선을 구축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신세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지휘한 월턴 워커중장은 적의 기관총위협에도 불구하고 정찰기를 타고 저공비행을 하면서 겁을 잔뜩 먹고 후퇴하려는 부하들에게 “전선으로 돌아가 끝까지 싸우라.”고 독려했다.(6.25전쟁 중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지만 쉐라톤 ‘워커힐’에 그 이름을 남겼다.)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1950년 6월 29일 북한괴뢰군에 의해 서울이 함락됨과 더불어 북한괴뢰군의 공세가 가해지자 한강전선을 시찰하던 맥아더원수는 인천의 상륙작전을 통하여 북한괴뢰군을 섬멸할 계획을 꾸민다. 즉 북한괴뢰군을 독안에 든 쥐로 몰아 박살내고 북진하려는 작전임은 물론이다.

하여 1950년 7월 첫주 맥아더 장군은 참모장 알몬드 소장을 지휘소로 불렀다.
“귀관 잘 듣게. 일본에 있는 제1기병사단을 7월하순에 은밀히 인천으로 출동시켜 상륙훈련을 시키게. 작전명은 ‘블루하츠(Blue Hearts)’이네. 절대 북한괴뢰군이 모르도록 조심해야 되네.” “네!. 명령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참모장은 명령대로 비밀리에 상륙훈련을 실시했고 7월초순경 본 작전을 개시하려 하였으나 유엔군의 병력부족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잘 훈련된 정예부대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맥아더 사령관은 서해안 인천, 군산과 동해안 주문진을 통해 상륙케 하는 3가지 방법을 내놓고 참모들과 상의한 후 인천해안으로 상륙하는 작전이 가장 합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즉 만조일이 9월15일이므로 2~3일내 상륙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기후)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날을 D-데이로 잡았다.

하여 8월26일 미제1해병사단, 미제7보병사단, 그리고 한국군 제1해병연대와 보병제17연대를 동원했고 부족한 병력은 애국심이 투철한 한국청년 8,000여명을 선발하여 일본에 주둔중인 미군부대로 보내 훈련시킨 후 배치했는데 이것이 카투사(KATUSA)의 시초인 것이다. 이리하여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제10군단이 편성되기에 이른다.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기 전에 북한괴뢰군을 속이고 교란시키려는 양동작전을 폈다. 과연 명장 중에 명장이었다. 즉 9월5일 평양에서 남으로 군산, 인천 등 서해안지역에 폭격을 실시했고 9월12일 미영연합군이 군산과 월미도를 폭격했고 또한 9월14일부터 이틀간은 동해안함대는 삼척일대에 맹포격을 가했다. 북한괴뢰군은 놀란 사슴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지만 겁도 없이 악착같이 덤비고 버티었다.

맥아더장군은 제10군단 예하 미군 2개 사단과 한국군 2개연대병력 7만여 명을 미제7함대소속 261척의 함정에 나누어 타게 하여 9월15일 새벽2시에 카운터다운 보턴을 눌렀다. 미 해군이 함포사격을 가하는 동시에 미 해병대가 월미도를 점령했고 나머지 부대는 인천해안의 교두보를 확보하여 인천시가지 작전을 폈다.

드디어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 작전은 성공하여 북한괴뢰군의 병참선을 일거에 차단시키며 사기를 떨어뜨린 반면, 낙동강 방어선에서 하느님만 찾던 부대들도 생기가 돌아 반격을 개시하게 된다. 동시에 서울수도 탈환을 하는 기쁜 날이기도 하다.

낙동강 전선에서 부하들을 독려했던 워커중장과 인천상륙작전을 진두지휘하고 감행한 맥아더장군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은 진작에 김일성 손아귀에 넘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인천상륙작전은 ‘세기의 작전’이라고 지금도 전사(戰史)에 불리고 있는 것이다. 맥아더장군이야말로 우리로서는 구세주요, 귀인인 것이다. 고로 미국의 고마움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기가 막힌 것은 진보좌파세력과 보수세력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진보좌파세력은 인천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 동상을 철거하려고 안달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로 맥아더는 한반도 분단을 부추긴 점령군 괴수이고 6.25전쟁 때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전쟁범죄자라고 매도하며 그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지 않았더라면 우리민족은 통일됐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2015,9,15 동아일보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장의 열린시선)

반면 보수세력은 인천상륙작전으로 대한민국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한 탁월한 군인이자 냉전시대 자유수호를 위해 세계 반공전선을 이끈 지도자로 추앙하며 이적단체의 철거운동에 맥아더동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보도를 우리는 자주보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보도를 보니 이렇게 한국내의 이념갈등을 보다 못한 미국인들은 차라리 맥아더동상을 미국으로 옮겨가겠다고 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이거야말로 한미동맹에 금이 가서야 쓰겠는가.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구기차 논설가)

[NEWStory makes History - 서울포스트.seoulpost.co.kr]
'서울포스트' 태그와 함께 (상업목적 외) 전재·복사·배포 허용
(*포털 다음 에 뉴스 송고)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게시판모음

서울포스트
 
뉴스소개 | 광고제휴 | 이메일구독 | 공지알림 | 개인정보보호 | 기사제보

신문등록: 서울 아00174호[2006.2.16, 발행일:2005.12.23]. 발행인·편집인: 양기용.
서울시 중랑구 겸재로 49길 40. Tel: (02)433-4763. seoulpost@naver.com; seoulpostonline@kakao.com
Copyright ⓒ2005 The Seoul Post. Some rights reserved. 청소년보호책임자: 양기용.
서울포스트 자체기사는 상업목적외에 전재·복사·배포를 허용합니다.
Powered by Newsbui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