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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애매한 외교문서 작성으로 재미 보는 일본!
항상 당하는 한국 외교의 어리석음!
 장팔현 칼럼니스트 (발행일: 2015/07/07 08:56:36)

[진단] 애매한 외교문서 작성으로 재미 보는 일본!
항상 당하는 한국 외교의 어리석음!
-SPn 서울포스트, 장팔현 칼럼니스트


일본외교는 교활하다.

누천년 일본과 상대하면서 우리 정부는 늘 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그만큼 우리보다 일본 측이 신의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번 당하는 것은 상대국의 잘못이라 하더라도 연거푸 당함은 우리가 그들에 대하여 연구를 게을리 한 탓이기에 어리석다 할 것이다. 아울러 일선에서 활약하는 외교관들의 책임의식에 비난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처럼 이웃 국가인 일본과의 중요한 외교에는 신뢰성이 없기에 언제나 뒤탈이 많다. 왜냐하면 일본외교는 신뢰성이 결여된 잔꾀외교를 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끈질긴 ‘타마무시이로(玉虫色)외교’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과의 외교전에서는 신중하고도 명쾌한 문서 작성에 신경을 써야한다. 깔끔하게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항상 조심하여야한다. 타마무시는 비단벌레를 일컫는 말로 ‘타마무시이로’란 비단벌레색깔이라 해석되며 ‘애매함’을 뜻한다. 이는 비단벌레의 색깔이 빛의 각도에 따라 녹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금록색으로도 보이는 등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성이 원래 속내를 잘 밝히지 않는 내성적 성격 탓으로 직설적인 말보다는 에둘러 말하던 습관이 외교문서나 사업상의 계약문서에서도 곧잘 나타난다. 때문에 필자는 일본외교의 특질을 ‘타마무시이로외교’로 명명했다(졸저 ‘일본역사와 외교’ 참조).

일본은 메이지시대 자신들의 근대화 유적지라며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에 대한 등재를 유네스코에 요청했다.

아울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독일 본에서 39차 회의를 열고 지난 5일 일본이 신청한 군함도(軍艦島; 군깐지마로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하시마[端島]) 등에 대한 심의를 벌여 이 유산의 등재를 결정했다. 그동안 피해 당사국인 한국의 이의제기로 우여곡절 끝에 하루 늦게 일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외교적 상황이 이번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후에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한일 합의에 따라, 강제노역 사실을 설명하는 주석이 달렸고, 일본 대표도 공개적으로 이를 확인했다. 그러나 세계유산등재 관련 일본의 서명문구 'forced to work' 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유네스코 등재 후 잉크도 마르기 전인 6일 일본에서는 키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에 이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나서 연이어 ‘물 타기’에 나섰다. ‘강제노역’이 아닌 ‘일하게 됐다('하타라카사레타[働かされた」)’라고 억지 해석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강제노역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23개의 유산 중 군함도 등 7개 시설은 과거 조선인 5만 7900명이 강제 징용돼 강제노역을 당했던 곳이다. 그 중 군함도 탄광에서는 조선인 800여명(600 여명이라는 설도)이 강제 징용되어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거나 ‘배고프다’, ‘ 어머니 보고 싶다’ 등이 암벽에 각인된 처절한 아픔이 진하게 배어있는 곳이다.

이처럼 조약체결 당시부터 일본외교는 일부러 애매한 문구로 작성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일본외교는 애매한 외교문서 작성으로 차후 변화되는 국제정세에 따라 언제든 자국이익에 부합되며 임기응변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잔꾀를 부쳐 책략을 꾸민다는 특징이 있다.

일본 고전을 읽다보면 동북지역의 순수한 아이누족(일본열도의 원주민)의 통치자를 꾀어 수도로 불러들인 후 우호관계를 환영한다며 연회를 베푼 후 참수하는 사례가 여러 번 있었던 것과 오버랩된다.

일본과의 외교는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한다. 예를 들면,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되면서 일본은 한국 침략을 목표로 끈질긴 외교를 행하던 중 임오군란이 발생했다. 이에 일본은 자국인 피해배상 문제 해결 시 조선과 제물포조약(1882)을 맺게 되었는데, 당 조약 제5조 는 ‘일본 공사관에 군인 약간 명을 두어 경비한다. 그 비용은 조선국이 부담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여기서 ‘약간 명’은 극히 애매한 문구로 조선 측에서는 ‘수명에서 수백 명’ 단위로 생각할 수 있으나, 일본 측은 이를 빌미로 명성황후 쪽에서 불러들인 서울 주둔 청나라 병사 수준인 4,000여 명을 염두 해 두고 일부러 이러한 애매한 문구로 트릭을 썼음이다. 그런데도 당시 조선의 외교담당자들은 이러한 일본정부의 흉계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외교문서에 조인하고 말았다. 통탄할 일이다. 나라가 문약하면 서희장군처럼 외교라도 잘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러한 일본외교의 특질은 1965년 6월 22일에 맺어진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에서도 여실히 입증된다. 즉, 제2조의 구조약 무효에 대한 해석문제에 있어 ‘한일합방은 무효이다.’라는 문구에 대하여 일본 측 해석은 1945년 8월 15일 이후부터라고 주장하는 반면, 한국 측은 ‘한․일합방은 조약체결 당시부터 무력에 의한 강제합방임으로 국제법에 따라 1910년부터 이미 무효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7차에 걸친 협상 끝에 한국 측이 ‘한일합방은 무력에 의한 것으로 조약체결 당시부터 무효라는 용어에 국제법상 가장 강한 표현인 ‘null and void(소급하여 무효)’ 를 사용하였으나 일본이 제시한 타협안은 ‘null and void’ 라는 표현은 사용하되, 술어부분에 ‘have become’을 사용하여 ‘have become null and void’ 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고 협정 체결 이후에는 엉뚱한 해석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즉, 일본은 현재완료의 시제를 사용함으로써 구조약의 무효시점을 최초부터가 아닌 특정의 어느 시점부터라고 하는 의미를 내포한 서술로 할 것을 주장한 것이었다. 이 점이 바로 타마무시이로 외교의 특질이다.

또한 한일기본조약 제3조에는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연합 총회결의 제 195호(Ⅲ)에 분명히 명시되어진 바와 같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이다.’라 되어 있다.

이는 1948년 12월 12일 유엔총회 결의에서 ‘유엔 한국임시위원회가 관찰하고 협의할 수 있는 전 한국인의 대다수가 거주하고 있는 한반도의 이 부분에 대한 유효한 지배 및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는 합법적인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선언하였던 것을 근거로 한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유엔 임시위원회가 ‘관찰.협의’할 수 있었던 곳은 남한뿐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기본조약 제3조의 규정은 한국을 한반도 전역에서 유일 합법정권이라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한국 정부는 ‘일본은 기본조약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것을 인정하였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외교는 의도적으로 애매한 문구로 외교문서를 작성하여 시대흐름에 따라 자국 이익에 도움이 되게끔 해석의 폭을 넓히는 외교특질이 엿보인다(이상 졸저 ‘일본역사와 외교’ 참조) .

일본과의 외교에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특히 일본의 이러한 행태는 문서로 하는 외교의 특성상 더욱 교묘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특질은 언어사용에서 연유하지 않나 개인적으로 추정해 본다. 예를 들면 ‘흙토(土)’라는 한자를 보고 우리는 ‘흙이라는 뜻을 가지고 음은 토’라 하지만, 일본인들은 음독과 훈독에 이어 다양하게 읽힌다는 점이다. 즉, 우리처럼 ‘土 = 쯔찌 도’라고 훈독과 음독을 하면서도 단순히 흙의 개념과 함께 ‘영토’, ‘나라’라는 광의를 내포하고 있다. 그들의 언어는 다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요, 다양하게 읽히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은 수천 년 녹아든 일본인들의 언어와 문화 속에 외교특질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한 문장, 한 단어에 다의성을 가지고 있는 일본과 어려운 외교를 함에 있어서는 우리 측이 더욱 신중하게 임해야 잉크도 마르기 전에 뒤통수 맞지 않을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 외교관들 중에 훌륭한 분도 있었다. 조선과 선린우호를 주장한 에도막부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8~1755)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의사이자 주자학을 익힌 유학자였다. 한문과 조선어에 능통했으며, 조선과 무역을 하던 쓰시마 번에서 외교 담당 문관으로 크게 활약하였다. 일본 최초로 조선어 교과서인《교린수지》(交隣須知)를 집필하였으며, 조선과의 대등한 외교관계를 강조했다. 아울러 이웃 국가와의 선린우호를 바탕으로 한 신뢰외교를 주장한 인물이다.

아울러 그는 선린우호의 상징처럼 우삼동(雨森東)이라는 조선식 이름을 사용하여 친근함을 더욱 과시했다.

일본외교는 이제 잔꾀 부리는 꼼수에서 벗어나 신실한 근린우호외교를 주창한 아메노모리 호-슈-로부터 크게 배워야할 것이다.

(장팔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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