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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退修日記(퇴수일기)를 시작하며
퇴수일기 1. - DJ의 교훈 - 지금은 대통령이 외교에 집중할 때 - 2006. 9. 16
 김민석 칼럼니스트 (발행일: 2007/04/17 01:26:44)

-DJ의 교훈
-지금은 대통령이 외교에 집중할 때


1.
방학 중인 지난 8월, 金大中 전 대통령을 찾아뵈었다. 한 시간을 훌쩍 넘긴 대화 내내 한반도문제가 주제였다. 미국의 네오콘을 비판해서 주목을 받은, 최근 DJ의 외신회견 내용을 대부분 말씀하셨다. 나도 몇 가지 의견을 보탰다. 2002년 대선 이야기도 솔직히 나눴다. 그 경험을 통해 많이 배웠을 것이라고 하셔서 그렇다고 했다. 나중에 배석자 분이 말씀하셨다. 많이 아끼시는 것 같다고. 저런 모습 별로 못 봤다고. “불쌍해서 그러시겠지요 뭐” 하고 웃었다.

유난히 가슴에 남는 말씀이 있었다. 앞으로 오래 정치를 해야 할 사람이니, 지금 퇴수의 시간을 갖기를 참 잘 했다고. 공부 꼭 마치라고 말이다. 退修......, 조용히 물러나 자신을 닦고 내공을 기른다는 뜻이다. 음미할수록 뜻이 깊었다.

그동안 별러왔던 글쓰기를 이제 시작하려 한다. 정치인으로서의 나는 퇴수 중이다. 그 시간이 언제 끝날지는 나도 모른다. 국제법 공부를 위해 입학시험까지 치르며 시작한 로스쿨 3년 과정을 마치는 2008년 여름이 지나도 나의 퇴수는 계속될지 모른다. 40대 초반에 배낭에 노트북을 낑낑 매고 길거리를 걷는 이 시간은 내겐 가장 고독한 시간이지만 어쩌면 가장 행복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나라 생각만 하고 지냈던 20대 초반 3년간의 감옥생활이 나중에 보니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듯이 말이다. 지금의 내가 정치인인지 학생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퇴수일기라는 제목으로 정치 얘기든 공부 얘기든 사는 얘기든, 그저 인간 김민석의 다양한 상념들을 시간 나는 대로 써보려고 한다.

2.
최근의 DJ를 보면서 나는 94년 북핵위기를 떠올린다. 92년 대선패배와 정계은퇴 후 영국에 있던 DJ는 북핵문제가 전쟁위기로 치닫는 시점에서, 일괄타결론과 카터 특사론으로 상황타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지도자란 나라가 어려울 때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 때 이후 DJ를 일관되게 지지했다. 오늘 한반도는 퇴임한 노정치가의 절박한 발언이 불가피한 새로운 민족적 위기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요사이 국내 상황은 YS의 임기 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세계화를 주창하며 선진국클럽 OECD 가입을 추진한 YS의 임기는 결국 IMF위기로 막을 내렸다. 경제위기 국회청문회의 멤버였던 내 머리 속을 내내 맴도는 질문이 있었다. “왜 YS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됐을까?” 오늘 나는 다시 자문한다. “왜 노대통령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이렇게 잘 안될까?”.

대한민국은 숙명적으로 외교를 잘해야 하는 나라이다. 외교를 잘해야 경제도 살고 안보도 산다. 정치나 외교나 원리는 같다. 내 편을 늘리는 것이다. 적을 많이 만들면 뺄셈정치가 되고, 상대방과의 신뢰가 줄면 뺄셈외교가 된다.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상대는 미국, 북한, 중국, 일본이다. 지난 4년 그들과의 외교점수는 덧셈일까? 뺄셈일까?

노대통령의 대미정책은 처음보다 훨씬 친미적이 됐지만, 사람들은 한미관계를 우려한다. 왜일까? 북핵해법을 놓고 한미간에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이 처한 입장이 다르기에 당연하다. 단지 그 때문일까? 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미국주도의 중립화’라는 밑그림이 들어있다. 대통령이 격찬한 책의 골자이다. 중립화는 한미동맹을 해체하는 것이다. 이것이 ‘친미자주’다. 이런 자기모순이 불신의 근원이다. 이라크 파병과 FTA로 친미를 입증하려 해도 안 믿고, 작전권문제를 ‘自主’라 강변하니 더욱 헷갈리는 것이다. 친미냐 자주냐 보다 더 문제인 것은 속내가 불명료한 것이다.

대북관계는 어떤가? 탈DJ, 탈호남을 바닥에 깔고 대북송금 특검을 다뤘던 현 정부는 정작 DJ 재방북 외에는 마땅한 대북카드를 찾지 못하고 고뇌하고 있고, 남북관계는 과거 햇볕정책의 성과에 의존해 남북의 직접적 군사긴장을 피해오고 있다.

최근 한일관계의 악화는 기본적으로 일본 책임이다. 그러나 DJ시절보다 한 치도 나아지지 못한 한일관계에 과연 한국정부는 할 일을 다 했는가? 과거사종식을 선언하는 자리에서 백범을 실패한 정치가로 평하는 엉뚱함으로 시작된 노대통령의 대일외교는, 비장한 어조의 독도도발 규탄으로 바뀌었지만, 그 정도는 시민단체의 몫이다.

한중관계는 이제부터가 본게임이다. 美中경쟁의 역관계와 북핵문제는 한중관계의 접점을 넓혀놓았다. 그러나 중국은 동북공정에 이어 백두산, 이어도 등에서, 만만치 않은 내심을 드러냈다. 한국정부 또한 한중FTA가 한미FTA보다 우선이라는 연구결과를 묵살하고 중국위협론을 강조하면서 對中 경계심을 노출시켰다. 탈냉전시대의 한중간 외교쟁점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상 미소의 대리전을 하면 그만이던 냉전시대의 한국외교의 과제는 단순명쾌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외교는 ‘탈냉전-9.11이후’의 훨씬 복잡한 정글을 헤쳐가야 한다.

DJ와의 대화 중에 나는 이런 얘기를 했다. “햇볕정책이란, 달리 말하면 미국, 북한, 중국, 일본과 다 최대한 잘 지내면서 한반도문제를 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남북관계의 진전은 실제로 그런 균형외교의 산물이었고, 어느 한 고리만 막혀도 결국 전체 그림이 잘 안 풀린다는 현실주의적 인식이 바탕이었다. 그러나 9.11 이후의 새로운 상황에서 업그레이드된 햇볕정책을 요구받았던 지난 4년의 한국외교는 美北中日 어느 한 고리도 만족스럽게 다루지 못해왔다. 그 첫 째 이유는 전략의 균형감각과 일관성 부족 때문이었다.

한미동맹의 확고한 토대 위에, 소신을 갖고 설득한다는 기본입장이 보다 말끔히 정리되지 않으면, 대미정책은 수시로 불필요한 오해와 긴장에 노출될 것이다. 네오콘의 대북제제입장에 동의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선 더 그렇다. 대북정책은 보다 일관성 있는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정상회담 추진도 필요하다. 역사왜곡, 독도, 신사참배 문제에서 우리는 일본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지만, 對美협조, 對北지원, 對中균형, 韓流확산, 아시아통합을 위해 일본과 숙명적인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큰 그림을 치열하게 고민하면, 싸움의 방식과 언어, 전략이 달라진다.

對中전략의 정립은 새로운 과제이다. 大中華(중화)民族主義의 새로운 통치이념 아래 경제발전과 국가통합을 이루어야 하는 중국에게, 조선족과 북한을 염두에 둔 동북공정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소수민족의 역사를 한 울타리 안에 넣는 속지주의사관(屬地主義史觀)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韓中日 3국간의 치열한 역사논쟁은 그래서 불가피하다. 북핵을 둘러싼 정치협력, 역사문제, 간도문제, 경제협력 각각에 대해 정치적, 학술적, 법적 대응을 적절히 안배하는 정교한 對中전략은 시간이 갈수록 더 절실히 요청될 것이다. 특히 아시아통합의 제창은 중화주의 전통에 기초한 중국과 대동아공영권구상의 역사를 가진 일본 사이에서 한국이 정치, 경제, 역사, 법률적 쟁점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남북 공히 새로운 활로를 열어갈 새로운 중요한 외교과제가 될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나의 최대관심사는 바로 이 아시아공동체의 문제이다.

둘 째, 전략의 문제와 함께 지난 4년 한국외교의 문제는 정제된 표현력에 있었다. 외교란 속이 달라도 이해관계의 일치를 추구해야 하고, 이해관계가 달라도 정제된 표현을 구사해야 하며, 강하게 비판하더라도 네오콘(미국), 극우파(일본), 강경파(북한)처럼 대상을 최대한 좁혀서 상대국가 내의 잠재적 우군이나 중간그룹의 입장을 살려주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노대통령이 남은 1년 동안 전략과 표현의 문제점을 잘 정리하여, UN사무총장 배출추진이라는 화려한 외교적 도전에 상응하게, 북핵을 해결하고 핵심주변국들과의 신뢰를 강화하는 외교적 성과를 이루었으면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대통령의 몇 가지 선택은 우려스럽다. 정무특보확대 구상, 퇴임 후 당 복귀 희망 등은 대통령의 강력한 정치개입의지와 퇴임 후 정치계속의 욕구를 느끼게 한다. 헌법재판소장 인준이 법절차의 하자로 좌절된 것도 결국은 정치적 영향력을 무리하게 연장하려는 과욕의 결과가 아닐까? 지금의 대통령에겐 민주당분당, 대북특검 같은 정치적 오류를 되풀이할 시간이 더 이상 없다. 퇴임 후를 염두에 둔 청와대의 정치구상과 대선개입은 결국 다 뜻대로 안 될 것이다. 지금은 그간의 문제점을 점검하여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인 외교에 전심전력해야 할 때이다.

3.
요사이 모르는 분들로부터 메일이 자주 온다. 386세대가 대부분이다. 386이 몰매를 맞고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의 목소리가 많다. 나 자신이 386에 대한 비판을 초래한 주역중 하나이다. 첫 386 국회의원으로서 과분한 기대와 격려를 받았으면서도, 많은 오류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선시즌이 1년 앞으로 다가오니 대선에 관해 의견을 물어 오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과거에 정치를 할 때, 내공에 비해 과도한 역할을 맡았었다. 일찍부터 닦인 정치적 감각은 있지만, 크게 보고 깊이 공부하고 오래 숙성시킨 내공이 부족하니 결국 정치공학의 노예가 된 것이다. 결국 문제는 내공이다.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경쟁국가의 상대방들과 비교하여 내공이 부족하면 결국 국가경쟁에서 지는 것이다. 언젠가 대한민국을 책임질 386들이건, 1년 후 나라를 맡을 그 누구이건 국가를 위한 내공을 쌓으며 매일매일 자신을 퇴수하는 것. 그것이 정녕 필요한 것이리라. 나의 퇴수일기 또한 언제 끝날지 모를 나의 퇴수를 향한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 2006. 9. 16. 김 민 석 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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