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우리는 불행하게 살도록 교육받았다.
이지성의 생각하는 인문학 2015-05-19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누가 저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교육 때문이다."
1800년대 초반 유럽의 프러시아에서 기존에 없던 형태의 교육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교육제도는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바보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부와 군대와 기업의 명령에 드 어떤 의문도 품지 않고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국민을 길러내도자 하였습니다.
유럽의 약소국이었던 프러시아는 그렇게 대량생산된 새로운(?)국민들을 군대, 기업, 공장 등에 대거 투입했고 이를 통해 짧은 시간에 독일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프러시아가 만든 새로운 교육제도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9세기 미국의 지배계급이었습니다. 본래 미국의 교육은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인문학 교육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지배계급은 이 교육을 자신들의 자녀들만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영원히 대물림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백인 중하류층, 흑인, 히스패닉 이민자, 아시아 이민자의 자녀들은 러시아식 교육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자녀들이 이들을 쉽게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미국의 교육은 상류층이 받는 사립학교 교육과 중하류층이 받는 공립학교 교육으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리고 미 군정에 의해 미국의 공립학교 교육이 해방된 우리나라에 이식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인문학>에 자세히 써놓았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프러시아와 미국 교육의 역사에 대해 보다 깊은 공부를 원하시는 분은 존 테일러 개토으 저서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프러시아 교육제도의 가장 큰 목적은 개인의 인간성과 창의성을 말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사람을 로봇처럼 마음대로 부릴 수 있으니까요. 이를 위해 도입된 게 주입식 교육 시스템과 시험 성적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주입식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교사와 학생이 서로 인간적으로 만나고, 대화하고, 교감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국가가 교사와 학생을 '지식을 주입하는 기계'와 '지식을 암기하는 기계'로 바라볼 때만 가능한 교육 시스템입니다.
프러시아의 시험 제도는 학생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주고, 자기 점수 이상의 미래를 꿈꾸지 못하게 할 의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래야 부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당황스러운 사실은 우리가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프러시아식 교육을 기본적으로 12년 이상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살률과 술 소비량이 세계 1위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프러시아식 교육을 받고 있는 십대들의 불행지수가 세계1위인 것입니다.
우리는 돈 때문에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희생하면서 삽니다. 하지만 부자가 되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대부분 가나하게 죽습니다. 그렇다고 부자들이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사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훨씬 불행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자든 빈자든 불행하게 살다가 불행하게 죽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사회 시스템얼 만들게 된 것일까요?
앞의 문장들에 나오는 '돈'을 '성적'으로, '부자'를 '명문대'로 바꺼보세요. 그러면 답이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불행하게 공부하다가 불행하게 졸업하는 교육을 받았기에, 불행하게 살다가 불행하게 죽는 사회를 만든 것입니다. 제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프러시아식 교육제도가 정착하기 전의 우리나라를 생각해보기시 바랍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못 살았지만 지금처럼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어쩌다가 이런 사회구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구조를 바꾸려면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교육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을 가르치는.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생복해졌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적향상은 덤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인문학 교사들에게 오직 이것 하나만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당신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기 전에는 <논어>를 가르치치 마라. 아이와 인간적인 교감이 생기기 전에 행해지는 수업은 교사의 옥망 충족 행위이지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폴레폴레 교사들은 이 원칙을 충실히 따라주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 5년은 물론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폴레폴레 인문학 교실에서는 교육 기적이라고 할 만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폴레폴레의 인문학 교육이 공교육에도 적용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 우리 아이들을 짓누르고 있는 프러시아식 교육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답을 찾게 도리 것입니다. 또 친구를 만드는 법과 사람을 믿는 법과 꿈을 꾸는 법과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한 번 상상해보세요. 이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만드는 세상을. 아마도 그 세상은 지금의 우리 사회와는 매우 다를 것입니다. 한편으로 저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인문학을 권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도록 창조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라도 <논어>를 통해 공자의 사람을 사랑하는 '인'을 만나고, 플라통의 저작들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영혼을 돌보고 죽음을 준비하는 '파이데이아'를 만라고, <성서>의 예수를 통해 우너수조차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아가페'를 만나다보면 인문학의 행심인 '인간답게 사는 법'과 '영혼을 사랑하는 법'을 저절로 터득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학교 교육을 통해 두뇌 깊숙한 곳에 은밀하게 설치된 프러시아식 생각 시스템이 소멸되는 경험을 하는 것은 덤입니다.
저는 한 번씩 상상해봅니다. 생각하고, 실천하고, 사랑하고, 나누는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우리나라의 모습을. 제가 꾸는 꿈에 동참하기지 않으시겠습니다.?
제 꿈은 당신이 행복한 세상입니다.
p.s. 제가 학교 현장에서 실시한 인문학 교육법과 폴레폴레의 인문학 교육법이 궁금하신 분들은 <리딩으로 리드하라> 와 <생각하는 인문학>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부모와 교사가 반드시 알아야할 인문학 공부법과 초중고 아이들을 위한 단계벨 인문고전 도서목록이 실려 있습니다.
[편집=서울포스트, 뉴스검색제공 제외]
[
NEWStory makes
History -
서울포스트.seoulpost.co.kr]
Copyright ⓒ2015 서울포스트 - 무단전재,복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