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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고석정은 왜 임꺽정의 활동무대로 알려졌을까
 나종화 객원기자 (발행일: 2014/03/15 20:26:19)

[철원] 고석정은 왜 임꺽정의 활동무대로 알려졌을까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 철원 고석정 여행 ⓒ20140221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한탄강 물굽이를 내려다 보면서 우람하게 서 있는 바위 그 맞은편 언덕에 제비집처럼 걸터 앉은 정자, 드라마에서, 다큐에서, 사진으로 이 풍경을 접하고서 언젠가는 가보리라 했던 고석정(故石停)! 드디어 만났습니다.

이번 철원여행에 따라나선것도 고석정에 대한 기대감이 컷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감동이 크지는 않았습니다. 주변에 인공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고석정의 경관을 망쳐놓고 있었거든요.

고풍스러움과는 거리감이 있는 정자와 유람선, 그리고 몰입을 방해하는 각종 팻말들을 무시하고 찬찬히 바라보니 숨겨져있던 고석정(故石停)의 빼어난 풍경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석정 난간에 기대어서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한다면 뉘라도 저처럼 시 한수는 절로 읊게 될 것입니다.


흰눈 흩날리고
흐르다가 걸음 멈춘 강물의
정겨운 찰싹임도 모른채 하며
세상에 저 혼자 사는 양
먼 하늘만 바라보는 바위여.

그리는 님이 뉘길레 그리도 간절하냐.



고석정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근육질의 맨몸에 환도를 비켜들고 두 눈을 부릅 뜬 임꺽정 동상이 세워져 있더군요. 경기 북부 일원을 산행하다가 임꺽정 전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는데 고석정은 아예 임꺽정의 주요한 활동무대였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더라구요.

고석정 앞에선 저 우람한 바위가 마치 임꺽정처럼 보이기 때문일까요.


소를 잡는일을 비롯한 옹기장이같은 각종 수공업에 종사했던 조선시대 최 하층민들을 백정이라 불렀습니다. 실제 임꺽정은 황해 봉산에서 갈대를 꺽어 고리를 만드는 고리백정이었다고 합니다.

황해 일원에는 왕실과 명문거족들 소유의 토지가 많았는데 조선 중기부터 대대적인 개간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개간에 동원된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음은 당연했겠죠.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서도 황해도 개간사업에 대한 백성들의 고통과 불만이 상세하게 묘사됩니다.

임꺽정 역시 생계 터전인 갈대밭 개간 때문에 더 이상 고리백정노릇조차 할 수 없었을뿐만 아니라 극심한 노역에 시달렸겠죠. 그 참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만 세력을 규합하여 황해도와 경기도 경계에 있는 재약산 청석골로 들어가 화적패가 됩니다.

그는 기골이 장대했을뿐만 아니라 두뇌 회전이 빠르면서 대단한 리더쉽까지 갖춘 사내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처음에는 주로 장꾼들의 봇짐을 약탈하거나 민가틀 약탈하는 노둑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세력이 커지면서 방비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관아 ( 오합지졸 열명정도가 지키고 있는 )를 습격합니다. 그리고 창고를 열고 약탈물들을 인근 백성들에게 나눠주지요. 어차피 그걸 죄다 청석골에 들고 갈 수 없었을테니까요.

이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황해도 일원으로 번지면서 그는 일약 백성의 영웅으로 떠오릅니다. 그의 명성을 듣고 청석골로 찾아들어온 장정들의 수가 늘어가면서 어지간한 군사조직 수준으로 세력이 커지고 일반 백성들 뿐만 아니라 권력에서 소외된 양반들까지도 그에게 협력하거나 암묵적인 지지를 보내게 됩니다.

임꺽정은 이렇게 기세를 키워간다면 도적질에 그칠 것이 아니라 조정을 뒤 엎을 수 도 있겠다는 야심을 품게 되지요. 그리고 점점더 대담하게 관아를 습격하고 관군과 대항합니다. 안성등의 경기 남부 일원과 개성은 물론이고 도성안에도 협력자를 둘 정도로 화적패가 아닌 반란군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역사학자들이 이 사태를 [임꺽정의 난]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관군의 적극적인 토포작전에도 불구하고 임꺽정과 동조세력들은 무려 3 년간을 황해도와 평안도 남부 그리고 경기 북부를 장악할 정도로 맹위를 떨치게 됩니다.

하지만 임꺽정 자신은 청석골이나 구월산에 은거한채 어지간하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피아간 구분이 모호한 상태에서 대 놓고 돌아다니다가는 조정에서 파견한 살수들의 표적이 될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알카에다의 빈 라덴같은 역할이었다고 봅니다. 이런 신비주의행보 덕분에 무수한 임꺽정 전설이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요?

뒤늦게 임꺽정 일당을 도적이 아니라 반란군으로 규정한 조정은 당대 최고의 무장 남치근 장군이 지휘하는 정예 부대를 파견하여 정규전수준의 토벌작전을 감행한 끝에 어렵사리 난을 진압합니다. 행적이 묘연하던 반란군의 수괴 임꺽정도 측근이었던 서림의 밀고로 체포하여 의금부로 압송합니다.

그리고 구름떼처럼 몰려든 백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조선 민중의 영웅 임꺽정의 목은 망나니의 칼날에 잘리고 장대에 매달립니다. 백정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뒤집어 엎겠다는 야심을 품었던 임꺽정이라는 풍운아에 대한 제가 아는 역사적 팩트입니다.


입(口)은 임꺽정이 활약했던 조선 명종대의 가장 강력한 미디어 수단이었죠. 구전의 특징은 한입 건너갈때마다 말이 덧붙여진다는 점입니다.

외척 윤원형이 권력을 쥐고 흔드는 가운데 그와 결탁한 탐관오리가 발호하면서 백성들의 삶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집니다. 길거리에 뒹구는 굶어 죽은 시체가 즐비했다는 기록을 실록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민란들이 들불처럼 번지고 양민들마져 산으로 들어가 화적떼가 됩니다.

그때 임꺽정이 등장하면서 그에 대한 소문이 눈덩어처럼 부풀려지면서 썩어빠진 조정을 박살내고 백성을 도탄에서 건져내줄 수 있는 불사신같은 조선의 영웅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1462년 임꺽정은 참수형을 당했는데도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믿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 이전에도 가짜 임꺽정 이 나타났거나 공에 눈먼 벼슬아치들이 무고한 사람을 잡아서 임꺽정으로 둔갑시킨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목이 잘린 임꺽정도 분명히 가짜일꺼라고 생각한 거지요.

천군과 함께 백마를 타고 나타난 임꺽정이 썩은 조정을 쓸어버리고 모두가 배부르게 먹고 사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백성들의 믿음은 더욱 강력해지고 그것에 부응하여 임꺽정 사후에도 임꺽정을 사칭하거나 의적행세를 하는 무리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게 되지요.

운악산의 임꺽정, 감악산의 임꺽정, 불곡산의 임꺽정 그리고 사패산의 임꺽정처럼 이곳 고석정의 임꺽정도 그런 민중의 염원이 만들어낸 사실같은 신화의 결과물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임꺽정이 실제로 이곳 고석정을 근거지로 삼지 않았다 하더라도 고석정 풍경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 만큼은 탐관오리를 응징하고, 고관대작들의 부정한 재물을 뺏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정의로운 도둑 임꺽정의 활동무대로 딱 맞어 떨어집니다.

로빈훗이 활동했던 음침한 숲속 보다는 이렇게 환하고 기암괴석이 즐비한 이런 풍경이 백성들의 영웅 임꺽정과 훨씬 더 잘 어울리더라구요.

가을에 다시한번 가보려 합니다. 보트도 타고, 고석정에서 강을 건너가서 건너편 언덕에서 다른 모습의 풍경을 감상할 것입니다.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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