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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일본(日本)’이라는 국호, 백제와 왜(倭) 중 누가 먼저 사용했을까?
처음 사용 시는 ‘해 뜨는 동쪽의 나라’라는 방위 개념!
 장팔현 칼럼니스트 (발행일: 2013/09/27 02:59:38)

[진단] ‘일본(日本)’이라는 국호, 백제와 왜(倭) 중 누가 먼저 사용했을까?
처음 사용 시는 ‘해 뜨는 동쪽의 나라’라는 방위 개념!
-SPn 서울포스트, 장팔현 칼럼니스트


일본(日本)이란 국호는 백제와 왜국 중 어느 나라에서 먼저 사용했을까?

이러한 문제를 논하는데 있어서는 우선 ‘해 뜨는 곳의 땅’이라는 의미인 ‘동쪽이라는 방위개념’이 들어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일본에도 물론 있었다. 성덕태자 때의 일이다.

왜대왕 추고(推古) 때의 섭정이었던 성덕태자가 서기 607년에 수양제에게 국서를 보냈다. 그 당시의 국서 내용을 보면, 당시의 왜국 국력으로써는 너무 자신에 찬 내용이었다. 즉, 국서에서 성덕태자는 “해 뜨는 나라의 천자가 해지는 나라의 천자에게 서신을 보낸다(日出處天子致書日沒處天子無恙云云).”라 하여 괄괄하였던 수나라 양제가 격노했다고『수서』에 전하고 있다. 이에 동쪽 바다에 떠 있는 왜국이란 나라가 과연 어떤 나라이기에 ‘해 뜨는 나라의 천자’라고 건방을 떠는가 하고 확인 차 수양제는 608년 문림랑(文林郞)과 배세청(裴世清) 일행을 왜국에 사신으로 보냈다.

과연 세계의 중심 수나라가 있는데, 동쪽의 왜국이 어떤 나라이기에 이렇게 무도한가 하고 확인 차 보냈을 것이다.

이때도 일본이란 국호는 열도에서 사용되지 않았다.

일본이란 국호가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670년 문무(文武10년12월)조에 나온다. 즉, “왜국(倭國)이 국호를 바꿔 일본이라 하였다. 이는 스스로 말하기를 해 뜨는 곳과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그와 같이 이름을 지은 것이다(‘倭國更號日本. 自言近日所出以爲名’).”라고 하였다.

또한 중국의 ‘구당서’ ‘동이전(東夷傳)’에서도 서기 670년 왜가 일본으로 국호를 바꾼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국은 왜의 다른 명칭이다. 이는 그 나라가 해 뜨는 곳에 있어서 만들어진 이름이요. 혹은 말하기를 왜국이라 함이 아름답지 못한 이름으로 스스로 싫어하였다. 그런 이유로 일본이란 이름으로 고쳤다(“日本國者倭之別稱也 以其國在日處故爲名.或曰倭國自惡其名不雅.故改爲日本).”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왜국에서 일본이라는 국호의 공식적인 사용은 서기 701년 다이호오(大寶) 율령 제정 후에 쓰이게됐다.

그렇다면 백제가 660년 나당연합군에 패하고 663년 부흥운동마저 실패한 후로부터 40여 년 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백제 멸망 후 왜국이라는 기존의 일본열도를 나타내는 국호로부터 일본(日本)이란 새로운 국명이 정식 채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 망한 백제 왕족과 귀족들은 상당수가 왜국으로 건너가 융숭한 대우를 받았다. 이는 무령왕과 왜대왕 계체나 성왕과 흠명, 의자왕과 제명여제의 관계로부터 추정하건데 혈연관계로 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긴밀히 밀착된 관계였다.

때문에 기존에 왜열도를 가리켜 일본(日本)이라 부르던 백제인들이 패망 후 상당수가 열도의 귀족층화 해가면서 ‘키가 작다’, ‘추하다’란 의미가 들어있는 왜국을 버리고 일본이라 고치자고 40여 년간 야마토정권에 주장하거나 건의, 또는 논의하는 과정이라 보인다. 즉, 백제 지식인들의 권고로 왜국에서 일본으로 국호가 변경됐을 것이란 추정이다.

왜국이 자신들의 나라를 일본이라 했을 가능성은 적다. 왜냐하면 일본열도에서 ‘해 뜨는 나라’, ‘해 뜨는 곳(땅)’을 찾는다면 분명 태평양상의 괌과 같은 섬나라가 될 것이다. 물론 당시까지도 태평양 동쪽은 미지의 세계였다. 때문에 백제에서 해 뜨는 곳 동쪽의 나라로 왜국을 일본이라 불렀다함은 자연스럽다.

그러면 백제를 중국에서 일본이라 불렀을까? 물론 있다.

백제 유민으로 중국 당나라의 신하가 된 예군(禰軍·613∼678)의 묘지명(墓誌銘)에 등장하는 ‘일본(日本)’이란 단어가 있다. 이 묘지명에서는 국호(國號)가 아니라 당나라 동쪽의 해 뜨는 나라, 그중에서도 백제를 가리키는 호칭이란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성시(재일동포 사학자)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문학학술원장과 토오노 하루유키(東野治之) 나라(奈良)대 교수가 있다.

예군은 660년 나당연합군이 웅진성(공주)을 공격할 때 그곳으로 피신한 의자왕을 당나라군에게 넘기고 중국에 들어가 무관으로 출세한 예식진의 형이다.

예군 묘지는 지난 2011년 왕롄룽(王連龍) 중국 지린대(吉林大) 고적연구소 연구원이 학술잡지 ‘사회과학전선’ 7월호에 탁본사진과 판독문을 공표하면서 처음으로 존재가 알려졌다.

왕 연구원이 공개한 묘지석 탁본사진에 따르면, 예군 묘지(墓誌)는 1행에 4글자씩 4행 16자가 음각된 덮개석과 31행에 모두 884자가 음각된 지석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이 비석의 10행에 ‘우시일본(于時日本)’이란 문장이 나온다. 이는 예군이 백제(日本)출신임을 지칭한다.

이 지석 명문에서 일본이 국호가 아니라 방위개념으로 쓰였다. 즉, ‘동쪽 국가를 의미’하는 어구로, “때마침 日本(백제)의 잔당은 부상(扶桑:왜지)에 의거하여 주벌(誅罰)을 피하고 있었다. 풍곡(風谷: 고구려)의 잔당은 반도(盤桃: 신라)를 거점으로 하여 (그 적을 막는 모습은) 견고하였다”라고 하는 부분이다.

이처럼 방위의 개념으로 중국에서는 백제를 일본(日本)으로 표기했다는 점이요, 백제는 왜국을 일본(日本)으로 불렀다는 점이다. 고로 일본은 ‘동쪽의 해 뜨는 나라’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실을 숨김없이 솔직히 토로하는 학자들도 일본에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1907년에 출간된 일본의 저명한 고대 사학자 요시다 토오고(吉田東伍·와세다대 교수)가 쓴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제 4부로 나눠져 있는데 제3부 ‘국호편’에서 “‘일본’이라는 국명은 원래 한국인들이 일찍부터 사용해 온 것으로 그 이름이 아름다워 우리나라 이름으로 정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국호가 되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외에도 일본 국호가 한국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글을 싣고 있다. 차례로 보면, 먼저 키무라는 “일본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사용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국호가 됐다(木村正辞)”라 하고, 호시노는 “일본이라는 문자는 상고로부터 사용해 온 말에 적당한 한자를 붙인 것으로 ‘일본’이라는 이름 자체는 삼한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星野恒)”라 했다.

반 노부토모는 “일본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일찍부터 사용해 왔던 것으로 우리나라가 그 이름이 아름다워 국호로 결정했다(伴信友)”라고 나온다.

이처럼 일본이란 국호는 처음 백제인이 사용했던 것이다.

아울러 백제 멸망 후 왜열도로 건너간 그들을 따뜻이 받아주었던 야마토정권과 백제왕족 간에는 역사적으로 기록하기 힘든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다.

특히 ‘일본서기’ 기술 내용이 일본열도에 관한 내용으로 대부분 기록되어야함에도 한반도 국가에 70% 정도의 과다한 비중으로 편찬되었음은 뭘 말하겠는가?

또한 ‘일본서기’는 ‘백제기’, ‘백제신찬’, ‘백제본기’라는 백제3서에서 인용한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우리 역사서에 보이지 않는 백제관련 부분은 ‘일본서기’ 편찬 후 보이지 않는 이들 3서에 간접 투영돼 어렴풋한 백제사가 조금은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편찬자가 한반도 백제인의 시각에서 가야와 고구려, 신라를 보고 ‘일본서기’를 기술하고 있는 것도 문제요, 이후 백제3서가 전해지지 않음도 의문이다.

양직공도에 나타나듯 백제는 한반도 주변의 여러 나라를 소국시하는 천하관을 가진 나라였다. 아울러 중국 연호도 사용치 않는 등 독자적인 중심국으로써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주변 여러 나라를 방소국(旁小國)이라 하여 반파, 다라, 하침라 등의 7개국을 직접 지배하고 있다고 대 양나라 외교를 통해 자랑한 것이 중국 측 기록에 남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백제가 왜열도를 일본이라 부르고, 패망 후에는 야마토정권에 협조하면서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새로이 지어 부르는데 도움을 주고, 백제3서를 인용하면서 ‘일본서기’를 편찬하였다.

때문에 일부 학자는 ‘일본’이라는 국호와 ‘일본서기’ 편찬을 한반도에서 패망한 백제가 일본열도에서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면서 내건 독립선언서라고 까지 주장하는 것이다.

고로 일본이라는 국호 또한 백제인이 ‘동쪽에 있는 나라’라는 의미로 먼저 사용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백제가 동해상에 떠 있는 왜국을 일본으로 부르다가 한반도에서 나당연합군에 패망 후 열도로 건너가 일본, 일본 하던 것이 왜국정부에서 정식으로 채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구당서’ 동이전과 ‘신당서’ 동이전 일본조에는 이상한 문장이 있다. 즉, ‘구당서’는 “일본이 왜를 제압 합병하고, 일본이라는 국호를 취했다.” 하고, ‘신당서’는 “왜가 일본을 제압하고 일본국호를 취했다”고 거꾸로 기록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왜가 일본이 됐다는 선입견으로 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오기로 생각하나, 일본=백제라 보면 이해가 된다.

이를 풀어보면, ‘구당서’ 기록은 “백제(일본)가 왜를 제압 합병하고, 일본이라는 국호를 취했다”가 되고, ‘신당서’는 “왜가 백제(일본)를 제압하고 일본국호를 취했다”가 된다. 즉, 이는 백제 패망 후 왕족과 귀족층 상당수가 왜국의 야마토정권으로 들어갔다. 고로 이를 두고 왜국이 일본인(백제인)들을 흡수하고 국호를 일본이라 바꿨다고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어 쓸 수 있다. 고로 일본이라는 국호는 백제인들이 먼저 사용했음을 의미한다.

즉, 중국에서는 그들의 동쪽에 있는 백제를 일본이라 했음이 예군의 묘지석에서 증명되었듯, 구당서와 신당서에서의 일본이라는 상기 문장은 분명 패망 후의 백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013년 9월 27일 일본문학박사 장팔현 씀)

(장팔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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