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있을때의 일이다. 내가 있는 싸구려 숙소에는 각국의 가난뱅이란 가난뱅이들은 다 모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미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왔다는 십대 소년은 학교 다닐 때 선생님만큼 섹시한 존재도 없었다면서 밤마다 술 취한 눈빛으로 추근거렸고, 남자친구와 여행 중이라는 유럽 여학생은 내가 무엇인가를 훔쳐가지 않을까 경계하는 얼굴빛이 역력하였다.
한방에 40여개의 침대가 놓여 있는 그곳 도미토리 안에서 제대로 된 사람은 미국회사로 인턴을 나왔다는 프랑스 흑인 아가씨 밖에 없어 보였다.
얼핏 보기에 그녀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았다. 19살이라는 젊음이 싱그러웠고, 총명하게 빛나는 눈동자, 오렌지 빛 검은 피부에 탄력있는 피부, 우아한 몸가짐.. 그녀가 하얀색 캐쥬얼 정장을 입고 숙소를 나설 때면, 마치 흑진주 같다는 생각에 문득문득 부러워졌다.
그녀에겐 작은 버릇이 있었다. 퇴근 때면 늘 인근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와 나눠먹을 누군가를 찾곤 했는데 간식으로 한 개를 다 먹자니 살찔 것이 두렵고,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고급 햄버거 값이 너무 싸다는 것이다. 골목 끝 햄버거 가게에서 가장 싼 햄버거의 가격은 우리 돈으로 만오천원.. 아침에는 숙소 앞 빵집에서 샌드위치와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출근하는 그녀를 보면서 유럽인의 경제력이 은근 궁금해졌다.
“나..? 월급이 얼마냐고?”
조금 조심스러운 질문에 그녀는 무안한 듯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겠구나.. 네 눈엔 우리가 부자로 보이겠구나..”
프랑스에서는 파리 근처 뒷골목에서 가족들과 살았다는 그녀는 그런 말을 했다.
“여기가 더럽다고 생각해? 비싸다고 생각해? 그건 네가 프랑스 뒷골목을 안 가봐서 그래. 프랑스에서 이정도 햄버거를 먹으려면 최소한 12Euro(이만원)는 줘야 한다고. 여기서는 인턴 일에 월급 80$(약110만원)를 주지만, 프랑스에서는 내게 60Euro(약90만원)밖에 주지 않아. 아시아인들은 우리가 부자라고 생각하지. 걔네들은 파리의 거리와 물가만 볼 뿐이지 실제 나라의 복지를 받아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우리도 유럽이 복지가 잘 되어있다는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알고 있잖아. 젊은이들에게 매겨지는 터무니없는 세금과 물가. 비정규직. 파리에서 일본인이나 동양인 유학생들을 보면 쟤넨 자기네 나라에서 귀족급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얼마나 부러움이 밀려온다고.”
“인턴일이 끝나면 월급이 얼마정도 되는데?”
“별로 많지 않아. 아마도 130$(약 160만원)정도..? 사실 프랑스에서도 나 혼자 산다고 한다면 괜찮지. 하지만 파리에 있는 우리 할머니, 아버지, 동생들.. 모두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봐. 거리에는 흑인 차별이 없다고 해도 세계 어딜가나 빈민촌 차별은 있는 법이라고. 언젠가는 유럽에도 가보고 싶다고 그랬지? 만약 그때 내가 프랑스에 있다면 우리 집에 초대해 줄게. 하지만 혼자서는 뒷골목에 가지마. 우리들 눈에 파리의 동양인들이 얼마나 부러운지를 안다면 넌 절대 그런 생각 못 할 거야.”
유럽대륙.. 나는 한번도 파리를 다녀온 친구들에게서 프랑스 뒷골목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도 그저 잘 사는 사람들, 복지 혜택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쫓아 사는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다.
관광객들 눈에 보이는 환율과 복지정책에 현혹되어 나 역시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오해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날 이후, 여행을 나설 때마다 그녀의 모습을 찾는 작은 버릇이 생겨 버렸다.
나는 여기서 무얼 보고 있을까.. 나는 여기서 무얼 더 배워야할까..
처음보는 거리에서 많은 이야기가 환영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여행이 깊어질수록, 그녀가 떠오를 때면, 낮선 거리에서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박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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