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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단상] 내가 아는 세상이야기
 박근하 기자 (발행일: 2011/09/20 18:55:16)

아프리카의 어느 시골 식당.
백인 여행자들이 골목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반가운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식당아저씨는 음식을 만들다 말고 나를 보며 소리쳤다.
“너! 아까부터 보자보자 하니 자꾸 백인들한테 눈길 주는데, 우린 아시아인들이 백인 아니라는 거 알고 있어! 저들도 아시아인들이 같은 백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걸? 행여 저들하고 어울리려고 가서 꼬리치거나 귀찮게 굴지마!”
아프리카에서 백인인 척(?) 하는 아시아인들은 인종차별을 받는다.

유엔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와서 일을 하거나 자선단체의 이름으로 머무르는 봉사자들 대부분이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년 전 프랑스의 정치 잡지(신문)에 실렸던 미 국방성 하버드대 박사학위 논문은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유럽 여행자들 사이에서 한때 논란의 대상이 됐었다.
<우리끼리의 이야기지만 이미 미국 내에서 처리 불가능한 핵폐기물은 아프리카에 묻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도에는 아기를 빌려주는 사업이 있다. 조직에서 갓난아이를 데리고 있다가 여자거지들에게 빌려주는 사업인데 아기의 대여료는 하루당 천원. 여자거지들이 그냥 구걸을 하면 사람들이 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생긴 사업이라고 한다.
여자거지들은 외롭기 때문에 쉽게 아기에게 정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반년마다 아기를 바꿔서 빌려준다고 했다.
이렇게 빌려주다가 아기가 자라면 남자아이는 팔다리를 절단하고 얼굴에 화상을 입힌 후 구걸을 시킨다. 이왕이면 한쪽 눈도 뭉개서 흰자위가 보이는 장님으로 만든다.
여자아이의 경우에는 조금 더 남는 장사가 되는데, 매춘굴에 팔기 때문이다. 이렇게 팔려간 아이는 그곳에서 잡일을 하다가 소녀가 되면 몸을 팔아야 한다.

나는 미국에서 어느 일본인을 만났다. 그는 대학시절에 여행을 다니다가 인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어느 거지 여인이 아기에게 정을 주고 말았지요. 아기가 어린이가 되었을 때 조직에서는 회수를 요구했습니다. 아이는 팔려가고 싶지 않다고 매달렸고요, 거지 여인은 아이를 안고 도망쳤습니다. 결국 여인과 아이는 조직의 손에 잡혔고, 가장 비참하게 죽어야 했습니다. 조직은 본보기를 원했죠. ..소문이 퍼져나가자 국제 인권단체가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인권을 보장받기 이전에 이들에게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니까요. 짐승보다 못한 생존권 말입니다.”
정작 내가 인도 여행을 다닐 때는 듣지 못한 참담한 진실이었다.


아프리카에는 두 부족이 함께 사는 르완다라는 나라가 있다.
지금이야 사이가 좋아져 평화로운 나라가 되었지만, 식민지 시대에는 정말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벨기에 [*유럽국가의 이름]는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두 부족을 서로 미워하게 만들었고, 결국 독립 후에 한쪽이 한쪽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살육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준비했죠. 그들이 돌아오면 상상도 못할 보복전이 벌어질 것이라고요. 하지만 한편 믿었던 겁니다. 설마 유엔이 눈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일방적인 학살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라고, 노인과 어린이, 여자들을 데리고 피난가기 보다는 차라리 안전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유엔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문을 닫고 모두를 외면했죠. 길거리 살육은 처참했습니다. 며칠 동안 총알 없이 도끼나 몽둥이, 벌초용 낫만으로 50만 명이 도륙 되었고, 300만 명이 도망쳤습니다.
그것은 어떤 정치적인 이유나 독립국가의 내란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예상되어 있었고 얼마든지 개입할 명분이 있는, 민간인들을 지킬 수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귀찮았던 겁니다. 게을렀던 이유에는 얼마든지 명분을 내세울 수 있으니까요.

거리의 시체들을 짐승들이 뜯어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도망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웃나라와 취재진, 구호단체들이 이 사태를 눈치 채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유엔은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한 개입을 선언합니다. 3300명의 군인이 투입되었죠. 3300명으로 무었을 했냐고요? 글쎄요.. 이미 50만 명이 죽은 후인데, 딱히 할 일이 있었을까요?
물론 아프리카에서 국제기구는 꼭 필요합니다. 아마 국제기구라도 없었다면 아프리카는 이미 모든 것이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그들은 현장에서도 문 닫고 일하는 관료주의가 어떤 건지 진심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르완다 내전의 진실을 르완다가 아닌, 브라질의 버스 정류장에서 들었다. 그는 한국에서 의과대학을 중퇴하고, 지금은 종군기자업체와 계약을 맺은 상태라 했다. 그는 미국 잡지에 위험지역의 의료현황을 투고하는 프리랜서이기도 했다.
“어떤 증상이 나타나도 병의 원인이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특정한 병이 돌기 전에 일률적으로 예방접종을 실시합니다. 대부분은 제때 팔지 못했던 구형 약들이죠. 이것은 오히려 병의 진화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겐 면역력을 키울만한 충분한 시간도, 체력도 없으니까요.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건강입니다. 하지만 결국 같은 말이지요. 빈민촌일수록 오염된 공기와 식수, 전염병 환자들에게 노출되어 있으니까요.
나는 이곳에서 진화된 병균들이 언젠가는 인류를 위협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곧 잘 하곤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땐 부자들도 빈민들을 결코 외면할 수 없겠지요. 만약 정말로 내 상상 그대로,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면, 그들은 백신을 찾아내는 즉시, 빈민촌과의 공존을 선택하기보다는 몰살을 선택해 버릴겁니다.”


부자 십대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미국 마이애미.
이곳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MSF(국경없는의사회)에 있었다고 하셨다.
“게릴라 정부와 반정부군이 맞서 싸웁니다. 둘 다 명분을 내세울 수는 있지만, 둘 다 정당하지는 못한 단체들이지요.
그들은 난민들을 잡아다가 난민촌에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합니다. 2주 쯤 굶으면 아이들은 아사하고 어른들은 참혹하게 말라갑니다. 이때 취재진들을 부르고, 구호단체들을 통해 국제 사회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렇게 들어온 구호품들은 우선적으로 그곳 관리자들의 배를 채우게 됩니다. 하지만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다이아몬드 광산이나 밀매로 들여 온 무기고에 비한다면 정말 애들 장난 같은 돈이겠지요.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영역싸움의 명분을 얻고, 위급 시에는 난민을 방어막으로 내세우는 것이 그들의 주된 목적입니다.
..내가 수술한 수 십 여명의 사람들 중에 단지 세 사람만이 살아남았습니다. 10% 정도의 생존율에 우리는 막대한 지원을 한 셈이죠.

그럼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그 돈이라면 백 여명의 아이들에게 영양제를 놔 줄 수 있습니다. 곧 죽을 사람들에게 국경없는의사회라는 이름으로 달려가는 순간, 살아남을 가능성을 가진 백 여명의 아이들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직접 만나보면 알게 될 겁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의사들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을 갖고 죽어가는 사람들을요. 공포와 절망 속에서 구원 받았다고 믿으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말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가능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현재를 외면할 수는 없는 겁니다. 누구든지 현장에 있으면 깨닫게 될 겁니다. 우리가 죄인일 수는 있어도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국제규모의 참사가 일어나면 외신들이 달려옵니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지만, 난민촌의 장면들은 기대만큼 참혹하지 않습니다. 쓸만한 장면이 찍히지 않으면 취재진들은 보도의 방향을 돌립니다. 과연 국제기구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가? 구호단체들은 정말 구호품들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가? 그들은 비난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대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으면 방송이 된다한들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정부에 불만을 터뜨립니다.”
밥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반찬거리 삼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연금을 받아 편안한 노년을 보내는 것보다는,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게 오늘을 위해 살아 갈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재테크를 하며 미래를 걱정하는 동안 적어도 그들은 뒷골목에서 쓸쓸히 사라질 자신의 인생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아쉽지만 이제 정말 안녕이군요.”

나는 지금도 가끔 후회한다.
나는 왜 한국인 종군기자를 따라 같은 버스를 타지 않았을까?
그날 그를 따라 갔더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텐데. 단지 세계의 3대 축제라 불리는 리오의 카니발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왜 그날 할아버지의 저녁 식사에 따라가지 않았을까?
나를 귀찮아하는 할아버지의 무뚝뚝한 태도에 상처 받아서? 아니면 물가가 비싼 마이애미의 고급 호텔이었기 때문에?

세상에는 긴 시간의 여행보다도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해 주는 만남이 있다. 뒤돌아보면 나 역시 거창한 관광 교과서를 따르느라 그 순간을 놓치고 살아왔던 것 같다. 내 삶을 변화시킬 무언가를 깨닫는 것은 언제나 그 순간이 아닌 먼 훗날의 이야기이다.

스무살의 나를 스물아홉으로 키워준 것이 여행이다. 스무살의 방황을 잡아 주었고, 인류를 사랑하고자 했던 나에게 사람의 소중함을 알려준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뒤돌아보게 만든 것도 여행이었다.
이제 나는 순진하지는 않아도 조금 더 순수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살아간다. 나는 여행에서 무엇을 얻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내가 겪은 사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철없던 스무살부터 시작하여 인류의 역사를 생각하게 만든 스물 다섯..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사랑하게 만든 스물 아홉의 이야기까지.. 가끔은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가슴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내 한심한 글 솜씨를 한탄해보면서 말이다.

(박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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