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왕은 백제 제8대왕이다. 백제의 역사는 고이왕이 전부다 할 정도로 그는 백제 웅비의 기틀을 다진 훌륭한 왕이다. 고이가 왕이 되기 전 구수왕 때의 일이다. 당시 백제 조정은 고구려에서 내려온 해씨(解氏)와 토착세력인 진씨(眞氏)로 가득 차 있었다. 구수왕이 어린 사반 왕자를 두고 승하하자 고이는 조카 사반을 대신해 왕의 자리에 오른다. 해씨들은 왕후를 대대로 배출하던 집안이었는데 진씨를 등에 업은 고이에게 어이없게 참패를 당한 것이다.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그러나 고이왕은 해씨들을 너그럽게 포용했다. 세월이 흐르자 백제 조정은 다시 평화를 찾은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이왕은 몇몇 근신들을 데리고 심신도 단련할 겸 혈구도(강화도)로 사냥을 떠났다.
해씨 집안에 해웅이란 자가 있었다. 해웅은 고이왕을 저주했다. 해씨 사면령에도 불구하고 집을 뛰쳐나가 혈구도로 갔다. 혈구도 도주(島主) 적발구와는 예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적발구는 해웅을 감춰줬다. 해웅은 적발구 집에 머물면서 은밀히 용사를 길렀다. 때가 되면 고이왕을 죽여 복수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참에 고이왕이 혈구도로 온다는 건 하늘이 준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해웅과 적발구는 고이왕을 암살하려는 만반의 계책을 세웠다. 고비고개에 용사들을 숨긴 후 왕의 행차가 당도하면 나가서 참살 할 계획이었다. 이때 적발구 밑에 아장이 있었는데 저순이라 했다. 저순은 적발구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는 해웅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마침 왕이 혈구도로 행차하는데 이 둘의 회동이 잦자 의심을 품고 왕의 숙소에 달려가 내막을 샅샅이 고한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적발구는 이튿날 왕의 행차를 길잡이하려고 고이왕의 숙소에 들렸다. 이때 고이왕은 적발구를 잡아 문초했다.
“네 이놈. 네가 나를 죽이려 했다며?”
“그럴 리가 있나요! 음모입니다.”
적발구는 극구 부인했지만 저순과 대질하자 일이 틀어진 것을 눈치 챘다. 왕은 적발구를 꽁꽁 묶고 입에 재갈을 물린 후 왕의 어가에 실었다. 고이왕의 행차는 질서 정연했다. 고이왕의 행차가 고비고개에 이르자 매복했던 해웅이 철퇴를 휘두르며 용사들을 거느리고 뛰어나왔다.
“이놈 고이야! 철퇴 맛 좀 봐라!”
해웅이 휘두른 철퇴에 어가는 박살나고 흘린 피가 부서진 어가를 홍건하게 적셨다. 수행하던 신하들은 깜짝 놀라 뿔뿔이 흩어졌다. 해웅은 고이왕의 죽음을 확인하려고 부서진 어가를 들쳐 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고이왕이 아니고 입에 재갈을 물린 적발구였다. 해웅은 곧 이어 당도한 고이왕의 군사들에 의해 참살됐다.
자고로 모든 일은 용의주도해야 하고 또 조금도 실수가 용납되지를 않는다. 주변 사람들 특히 아래 사람들을 잘 단속해야 한다. 댐이 무너지는 것도 안에서 작은 구멍이 나기 때문이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요즘도 아래 사람들을 잘못 다뤄 패가망신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가까이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 서울대학교 겸임교수, 도서출판 마야 대표
(임동주)
[
NEWStory makes
History -
서울포스트.seoulpost.co.kr]
서울포스트 태그와 함께 상업목적 외에 전재·복사·배포 허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