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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우리 초등교육의 희망이 보인다 - 보성남초등학교
박사교장의 당찬 교육관 활기 넘치는 초등교육현장
 김선태 대기자 (발행일: 2009/03/25 18:07:44)

어제 내가 1970년대 초에 내가 근무하였던 보성남초등학교(교장 : 문덕근, 전남 보성군 보성읍)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24학급의 1,200여명 어린이들이 득실거리던 학교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 절반으로 줄은 겨우 13학급만 남았다. 더구나 학생수는 그 당시 인원에 비하면 1,000명을 뺀 나머지 숫자 정도 밖에 안 되는 학교가 되어 있었다. 학교가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학생수가 너무 적어진 탓이었을까? 5교시 수업시간이었지만, 학교 안에 너무 고요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 보성남초등학교 현재의 모습 ⓒ김선태 서울포스트

이런 학교 느낌으로 교장실을 노크한 나는 들어서는 순간 놀라움에 멈칫했다.
교장실 가운데 자리 잡은 커다란 원탁위에는 마치 교보문고의 전시대 마냥 수많은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얼핏 보아도 30여권은 되어 보이는 책들은 모두가 신간 서적들이었다. 차마 묻지 못한 채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물어 보았다. 김용국 교감선생님이 곁에서 대답을 해주셨다.
“이 책들을 교장선생님께서 사다 놓으시고 선생님들이 누구나 보고 싶은 책을 가져다 읽으라고 내주시는 것입니다. 한사람이 몇 권씩 가져가기도 하지만 늘 이렇게 보충을 해놓으십니다.”

나중에 교장선생님의 말은,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이 늘 책을 들고 사는 모습을 보이면 저절로 책을 읽는 분위기가 조성 될 것 아닙니까?” 하는 말씀으로 당신의 의도를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 문덕근 박사교장선생님 ⓒ김선태 서울포스트
영어교육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신 교장선생님은 박사 학위를 가지신 분이었다. 교직에 있으면서 학문에 뜻을 두고 휴직을 하고 박사과정을 마치신 학구파이었다. 박사님을 교장선생님으로 모신 초등학교가 된 것이다.

교장선생님은 선생님들부터 영어를 쉽게 사용하는 버릇을 기르기 위해서 애를 썼다. 그 방법으로 학습현장이 아닌 놀이시간인 친목배구를 할 때만은 영어만을 사용하기로 한다고 하였다. 놀이에서 영어로 놀기를 하고 이것이 익어지면 다음으로는 식당에서 식사시간에 영어로 말하기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나씩 영어로 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 가다보면 생활영어가 저절로 익혀 지게 될 것이라는 계획이었다.

전문적인 학위와 확고한 교육관을 가진 교장선생님은 물론 교감 선생님도 영어 교육에 관한 대단한 열성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영어교육콘텐츠에 대해 설명을 하면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담당자를 불러서 들어보게 한다. 그렇지만 교감선생님이 직접 인터넷으로 접속을 하여서 일일이 열어보고, 이용방법을 실제로 실행해 보는 등 꼼꼼하게 확인을 하였다.

이렇게 관리자가 직접 챙겨 보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렇기에 정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자신이 확고한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교장 교감이 직업 확인을 하고 경험을 해보면서 장단점을 파악하고 질문을 해서 재확인을 하면서 이미 확실한 판단을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박사교장선생님은 이렇게 멋진 교육활동으로 이 학교의 모든 선생님이나 어린이들에게 정말 행복하고 기분 좋은 학교로 만들고 있구나 싶었다.
이렇게 높은 학식과 교육관을 가지고 진심어린 노력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 교육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감격하였다.

▲ 1974년 필자가 근무당시의 보성남초등학교 교정 ⓒ김선태 서울포스트

부러움을 안고 떠나면서 30년 세월이 지나버린 지난날들을 생각해보게 하였다.
1972년12월 5일 발령을 받아서 1976년 3월4일까지 근무를 하였던 학교이다. 발령을 받은 것도 12월로 전임지에서 6학년을 담임하여서 중학교 입학 원서를 다 써놓고 졸업사진을 찍으려다 발령이 나서 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 학교에 와서 3년 3개월 동안에 무던히도 많은 사연을 가진 학교이었다.

학교가 좁아서 학교 운동장을 건너서 울타리 곁을 지나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있고 이 길을 건너서 산비탈을 깎아서 지은 별관 건물에서 7학급이나 따로 공부를 하는 그런 학교이었다. 추운 겨울에 울타리도 없는 길가에 서 있는 학교 밖에 있는 교실에서 한 학급에 62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수용한 4학년 교실이었다. 이렇게 해서 맡은 아이들을 6학년 졸업 때까지 그대로 이끌고 올라가야 했다. 이렇게 졸업생을 배출하고 나서 이듬해에 5학년을 맡아서 6학년에 올라가서 다시 담임을 맡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벽지 학교 희망을 내어 놓았는데 무슨 말썽이 있어서 발령이 보류 되어 6학년 담임을 맡았지만 3일 만에 발령이 나고 말았다.

이리하여 발령부터 중간발령으로 들어갔다가 중간 발령으로 떠나게 된 이상한 인연을 가지게 된 학교이었다. 그보다 더한 것은 이 학교에서 겪은 몇 가지 특별한 일들이다.

난생 처음으로 5학년짜리 아이들을 126명이나 되는 두 학급의 대 인원을 무더운 여름 3개월 동안이나 맡았던 아픈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또 5학년이지만 술, 담배 도박까지 하는 말썽꾸러기 아이 하나를 이끌어서 모범생으로 만들었던 보람을 가지기도 하였다. 교장 선생님과 함께 학교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여서 2년 동안 학교 환경을 바꾸어 놓았던 일이다. 이것이 잘 되어서 학교공원화 사업사례집에 소개가 되기도 한 모범적인 공원화 사례가 되었던 기쁨도 누렸다. 또 이런 일로 해서 공로상을 받기도 하였었던 학교이다.

(김선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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