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벌초 가는 날

8월 한가위 날이 다가오면 벌초 시즌이 된다.
가정마다 조상님의 묘소 찾아 봄. 여름 무성하게 자란 잔디를 깎고 잡초를 뽑으며 깨끗이 손질을 한다.
필자의 윗대 조상님의 산소는 경북 청송군 보현산 일대에 두상 모셨고 경주 건천에 부모님의 산소가 있다.
종반 간에 조상님산소를 분담하여 벌초하기로 정하고 필자가 맡은 부분이다.
조모님과 증조부님을 모신 산소는 1.000m 가 넘는 산의 8부 능선에 모셔서 해마다 벌초시즌이 되면 길 없는 풀숲을 해치며 서두르면 두 쌍구 벌초가 가능했다.
몇 해 전에는 태풍매미가 지나면서 보현산에 산사태가 났다.
산소지형이 바뀌어져 그 다음해는 산소 길을 찾지 못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상 산소를 찾는 벌초 길은 멀고도 힘들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더군다나 TV보도 채널은 벌초하다가 말벌이나. 땅벌 집을 건들어서 벌에 쏘여 귀중한 생명을 잃었다든가 예초기에 큰 부상을 입었다는 불안감이 조성되어서 아름다운 우리나라 조상숭배 풍습이 삶의 기훈을 저하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신묘(辛卯)년 8월 한가위 날은 9월12일이다.
자식들이 머나먼 타국에서 해외근무 중이므로 벌초 길은 혼자 떠나야 했다.
긴 장마에 유난히도 무더위마저 꺾이지 않아 33도를 오르내리는데 필자는 예년과 같이 낫과 톱이 잘 손질된 배낭을 메고 청량리역에서 경북 안동역까지 밤 9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3시간 반이 소요 되는 안동역에 도착되었다.
안동역을 가깝게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어서 날이 셀 때 까지 인근의 찜질방을 둘러서 목욕과 잠을 잠시 취하고 잃은 아침 청송군 도평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곤 했는데 안동시가 도청소재지로 들어서면서 버스터미널이 이전되었다.
우선 터미널부근에서 쉴 생각하고 택시에 올랐다.
버스터미널이 가깝게 있으리라 생했는데 심야 할증료까지 해서 7.600원이나 나왔다.
버스터미널이 굳게 닫혀있어서 버스 승차장 앞 벤치에 앉아 외롭게 시간을 보내려니까 모기 기성에 자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새벽 4시가 되여서야 관리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터미널 실내에서 수면을 취하려니 파리가 달려들어서 뜬눈으로 보냈다.
아침 9시 안동에서 청송군 도평 까지 시외버스로 1시간 20분이 소요되었고 도평에서 택시로 월매리를 지나 보현산 아래로 경북대학 하계휴양소 앞에 다다르니 오전 11시가 되었다.
나뭇가지를 처서 지팡이를 만들고는 해마다 표시해둔 산길로 서둘러 800m 고지에 모신 조모님 묘소에 올랐다.
벌초를 깨끗이 마치고 보현산 산신령님께 고하고 조모님께 차례인사를 올렸다.
그리고는 시간을 쫌 단축하려고 눈짐작으로 산길을 잡고 증조부님의 산소를 향했다.
깊은 산속에서는 산등선을 한번 잘못 타게 되면 전혀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데 이날따라 산의 형세가 다른 곳이 아닌가.
필자는 왔던 길로 되돌아 가기위해 나침판으로 월매리 방향을 잡았다.
출발하려하니 인접한곳에서 늑대울음 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배낭을 풀고 낫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산을 몇 구비를 타다보니 왼쪽발 등산화의 뒤축이 벌어 졌고 점차로 떨어지는가 하면 신발 밑창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참 ! 큰일이었다.
돌산 길에 한쪽 발은 맨발이었으니 발을 디딜 때 마다 발바닥에 통증이 왔다.
설산가산 이라드니 이날에는 생고생을 하게 되었다.
기어가기도 했고 내리막에는 떼굴떼굴 구불기도 하면서 산 아래로 내려오니 몸이 다치지 않고 온전한 것에 기적이라 느껴졌다.
한참 정신을 가다듬고는 그 마을의 택시기사에게 오실 때 운동화 한 컬래를 싸 오게 하여 챙겼다.
이날 증조부님의 산소는 차일에 뵙기로 하고 도평에서 안동 가는 버스표를 싸야 하는데 정신이 멍해서 안동 말을 못하고 있으니 “대구요. 포항이요. 아니 그러면 어디요.”
매표소에서 안동이라는 말이 나오고는 “아 ! 안동 표 부탁합니다.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보니 정신이 멍해서 그렇습니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서울도착 집에 와서 보니 이날은 점심 저녁도 못 먹고 집에서 밤늦은 식사를 하게 되였다.

▣ 환경운동가 · 시인, 수필가 (구담 정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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