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 귀신에게 묻고 싶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의문스러운 삶에 고뇌 될 때는 문득 문득 생각나게 된다.

경북 청송 골 보현산 아래 마을은 팥 밭 메어 곡식을 수확하는 첩첩산골이다. 시골생활이 빈부를 느끼기 보다는 우선 끼니 때우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세월이 전부다.

필자의 아버님께서는 다섯 살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여이시고 가 진 고생을 다하신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머리에는 버짐이 번졌고 엄마를 부르며 울며불며 지쳐서 잠들기도 하는 눈물의 세월을 보다 못해 할아버지께서는 암울한 일제치하의 농원에 위탁했던 고아의 시절도 있었다. 이따금 식 고생담을 말 하실 때마다 필자의 가슴이 서늘하게 저렸다.
아버님께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아버님의 어린 시절은 왜? 그렇게 살아야 했든가? 위문에 쌓인 아픔을 잊을 수가 없다.

항구도시 부산의 백양산 아래의 필자가 살던 마을에는 어릴 적에 정답게 놀던 친구가 있었는데 가난해서 굶을 지경이 되면 가끔 우리 집에서 때를 있기도 했는데, 필자가 중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 방과 후 집으로 돌아오는 중간 지점에 고대라는 고개위에서 그 친구가 “아이고 배야” 하며 쓰러져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고 친구 아버지는
“여기서 앓으면 어찌하노? 빨리 집으로 가자”
하는 너무나 애달픈 분위기를 보고만 있어야 했는데 그다음 날 아침 그 친구는 죽고 말았다.
급성 냉장염을 앓았는데 서면의 부전동 도심가에는 큰 병원이 있었지만 수술비용이 없어서 퇴자 당하고 돌아오는 그날 고대 고개에서 만난 그 친구는 마지막 이별의 자리가 되었다.

살다보면 자나 치고 말 것 같지만 충격적인 일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자신과 위문의 인생살이로 가슴에 쌓여서 고뇌되고 있다.

필자의 지난 젊은 시절이었다.
군에서 만기 제대를 하고 집에서 잠시 쉬던 한가한 날이었는데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낙동강 하구의 제도라는 마을에서 볼일을 보고 나서니 해거름이 되었다.
낙동강 구포다리를 건너서 구포에서 집까지 버스를 타면 한 시간 거리다.
그날따라 하늘은 침침하게 구름에 쌓였는데 도보로 집을 가려면 백양산 줄기의 만덕고개를 넘어야 되는데 필자는 왠지 밤길이라도 산을 넘고 싶었다.
거름을 재촉 하면서 산을 넘고 싶은 속마음은 가는 길에 혹 귀신이라도 만나면 필자가 평소에 고뇌해오는 몇 가지 인생살이의 위문 점들에 이야기를 나누며 풀고 싶었다.
만덕고개를 넘으려면 길이 없기 때문에 산 아래에서 대략 넘어야 할 코스를 정해서 넘어야 한다.
산 중턱을 다다르자 벌써 사방에 어두움이 짙었다.
산은 대체로 민둥산 이었는데 손에 잡히는 대로 솔잎 가지를 잡기도 하고 어두운 산을 넘으니 산중턱부터는 공동묘지다.
그 날이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밤이었는데 공동묘지에 다다르니 저 멀리서 희누름 한 것이 가끔 나풀거리기도 하며 보였다.
이제야 귀신을 만나게 되겠구나 하며 다가서니 나뭇가지에 걸린 하얀 천이 아닌가.
사방을 둘러 봐도 묘지뿐이다.
공동묘지 바로 아래는 부산 일대에서는 유명한 당감동 화장막이 있었는데 그 화장막 건물 가까이에 다가가서 깨어진 창문 안을 들어다보니 내부의 화구 몇 개가 보였고 인적이 없었다.
관리자들이 저녁이 되면 서둘러 퇴근 해버린 빈 건물이었다.
캄캄한 밤길로 집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넘었다.
부모님께 구포에서 밤길로 만덕 산을 넘어 왔다 하니 깜짝 놀라시며 나무람을 받았다.

필자는 귀신의 존재를 믿는다.
6.25 동란 때 일어난 일이다.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쟁 통에 부산은 피난민들의 정착지가 되었는데 평소에 가정마다 치르는 제사를 모실 겨를이 없어서 날자가 지나쳐 버리는 긴 박 한 피난시절이었는데 한겨울 밤에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방문을 여니 방문 바로 앞에서 갓을 쓰고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수염이 나신 할아버지가 필자를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필자는 얼마나 놀랬는지 소리를 지르며 문을 닫았는데 어머니께서 놀라며
“왜 ? 그러느냐.”
“엄마 ! 밖에 사람이 있다,”
“밖에 대문이 닫쳐 있는데 누가 들어오겠나.”
하며 방문을 열고 살펴봐도 대문이 닫긴 그대로였다.
그 순간
“아 ! 큰일이다. 오늘이 아버님 길일이다.”
하며 너의 할아버지가 오신가 보다며 늘 지켜온 제삿날을 할아버지께서 필자에게 보이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귀신을 만나서라도 삶의 고뇌를 풀려는 마음이 앞서 귀신과의 면담은 이루지 못했지만 필자의 추억담으로 남아있다.

▣ 환경운동가 · 시인, 수필가 (구담 정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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