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 ~ 돈이 웬수다
-SPn 서울포스트, 정기보 칼럼니스트

잘 사는 사람 잘 못사는 사람 잘나고 못난 사람 이렇게 언제 어디를 가나 이 세상은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세상을 살아 갈수록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기 먹을 복은 타고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데 그 최종적인 평가는 돈으로 느끼게 한다.

그 많은 인생살이 중에 자신이 지내온 세월은 어떤 팔자였는가 ?
회상해보면 과연 후회 없는 삶이 얼마나 될까 ?
대체로 돌아보기도 싫은 삶만은 지워버리고 싶은 사연도 많다.

피치 못할 사연에 잠 못 이루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몸부림치는 인간의 심사를 운명의 신들은 어떻게 보실까 ?

이세상의 모든 이치는 사람의 마음 다루기에 달렸다는 인생교훈을 동감하면서 한 장막의 스토리를 풀어 헤쳐본다.

몇 해나 지나간 여름철이었다.
환경에 뜻을 둔 필자의 사업장에 어느 고등학교 후배가 찾아 왔다.

후배 : “선배님 그동안 별일 없었습니까?”
선배 : “아니. 후배 아닌 가 ? 참 ! 오랜 만일세”
후배 : “네. 진작 찾아 뵈온다는 게 좀 늦었습니다.”
선배 : “아무튼 잘 왔어요.”

필자의 사무실을 찾아온 후배는 몇 달 전만 하여도 식당영업을 하였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서면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L 호텔이 들어서기 전에는 후배가 그 지역에서 이름께나 날리던 호텔의 총지배인으로 있었는데 모교의 동문회 발전에 많이 기여했다는 소문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대했다.

L 호텔과 백화점이 부산지역의 상권을 장악 하는가 싶더니 결국에는 몇 해를 견디질 못한 채 구형 호텔들은 문을 닫게 될 때 후배는 부산을 떠나 향리의 울산으로 터전을 잡은 것 같다.

그 후배의 울산생활 첫 출발은 식당이었는데 2층 전체가 식당으로 실내 장식이 매우 고급스러웠다.
5년간의 식당영업 후에는 그 집채 땅 주인의 소유권이 되는데 필자는 그 시절 제울 동문회를 운영하면서 월례회 모임을 후배의 식당에서 자주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시절이 조류독감이나 가축전염병이 끊임없이 나돌아서 식당의 불경기가 수년간 계속되더니 후배의 식당은 5년 만기를 넘겼는데도 빚만 남은 게 아닌가.

필자의 환경업소는 오수정화 시설과 중수도 처리 시설을 하면서 좀 무리 한 감이 없지 않지만 과학진흥원으로부터 부설설연구실을 인증 받아 사회에 뜻있는 유업이 꿈이었으나.
세무감사를 받고 미숙한 부분들의 유권해석으로 납세 폭탄을 받았는데 쉽게 말해서 빚에 빚을 안는 사업이 되었다.

활동여건이 너무 어려우니 곤경에 빠져있는 남들의 유사한 사정에도 내 마음같이 “아 ~ 너무 안됐다.” 동정심이 앞서니 이것이 사람의 본심이런가.

지금 선배를 찾아온 후배는 그 눈동자에 초점이 잃어 보였다.

“선배님 이제 살기가 싫어졌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선배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말은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되는 일자리 아니고는 답이 없었다.

우선 회사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을 들면서 최소한 마음을 위로하는데 정성을 다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마땅한 일자리를 찾아 볼 테니 가족을 생각하여서도 힘을 내라는 당부를 하였다.

울산 권에 자리 잡은 L 호텔과 백화점을 겸용한 시설의 중수도 처리를 필자의 환경회사가 위탁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일할 자리가 나왔다.

임금은 다소 적더라도 우선 생활에 어려움은 면할 것 같아 후배에게 통보하니 흔쾌히 받아드렸다.

L 백화점에서 위탁을 맡은 필자의 환경업소는 몇 안 되는 소수 인원이지만 대다수가 그렇게 어려운 시절에 온 분들이다.

필자의 환경사업이 나이가 황혼기를 넘게 되자 환경회사를 가깝게 친분이 있는 젊은 사람에게 넘기고는 빈 몸으로 울산에서 자식 모두가 서울 생활을 하는 곳으로 정든 땅을 떠난 지도 거의 삼년이 되었는데 회사를 인수해서 잘 운영하는 S 사장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S 사장 : “형님 요즘 잘 지내시고 건강 하십니까 ?”
필 자 : “오 ! S 사장 반갑네.” “별일 없는 가”

S 사장 : “ 형님 큰일 났습니다.” “ L 백화점의 중수도 위탁관리를 갑자기 해제하고는 자체 운영을 한다는데 그 직원을 다 고용하지 않고 둘 만 받아들여서 둘은 일자리를 잃게 되니 퇴직금이 문제 되어서 노동부에 신고 했다 하니 해결부탁 합니다.”

필 자 : 그래. 알겠다. 만나서 이야기 하자.

대 기업의 행패는 때와 사정을 가리지 않고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 하청 업소를 무참하게 짓밟는 구나.
아혼 아홉 섬 하는 땅 부자가 한 섬지기 땅으로 간신히 살아가는 집을 노리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죽으면 그 모든 걸 그대로 두고 갈 걸.
염라대왕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
갑자기 그런 잡생각이 떨쳐지질 않는다.
하기야 서울에서도 대기업의 행패에 정부마저 끌려가는 형편이다.

서둘러서 울산을 가게 되었고 옛 직원들을 만나려니 둘 다가 필자를 피하는 게 아닌가.
온 종일 서성이다가 노동부의 담당 감독관을 뵙고 가능하다면 적당한 선의 해결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전하기도 했다.

필자가 경영했던 H 환경회사는 지난 시절 세무감사와 불경기에 겹쳐서 폐업만이 자구책이 되기도 하였다.

재기하는 결심으로 노동부 지방사무소에 채용신고서를 신고하였으나 4대 보험 외는 상여금과 퇴직금이 매달 소급지급 한 제도가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한편 그 후배가 어쩌면 그렇게도 L 백화점과의 악연이 연속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돈이 뭐길래 선후배의 관계도 무색한 이런 세상이 되어야만 하는가.
그래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는 않다.
“돈이 웬수다.”
석연찮게 무거운 마음을 안고 저녁나절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 환경운동가 · 시인, 수필가 (구담 정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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